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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현실의 참조와 현실의 창조
고명철 평론집 『뼈꽃이 피다』
김종훈 金鍾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문태준, 황병승론」 등이 있음. splive@chol.com
고명철(高明哲) 평론집 『뼈꽃이 피다』(케포이북스 2009)는 두툼하고 다채롭다. 하지만 요약하기 어려운 편은 아니다. 내용이 쉬워서라기보다는 일관되고 확고한 신념이 논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줄곧 말한다.‘현실’과‘주체’의 길항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를 위해 그는 현실의 개입이 넘쳐서도, 모자라서도 안된다는 조건을 단다. 두 경우 모두 현실에 압도되거나 현실을 망각한, 즉‘비판적 능력’을 상실한 주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가‘탈주체적 상상력/비평’‘탈이성주의’를 싫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작가에게 현실을 이탈하기보다는 현실 안에서 견디며 그 모순을‘내파’하기를 주문한다(5면).
이것이 최근 정신분석 담론에 기댄 여러 비평과 고명철 비평을 가르는 지점이다. 그에게는 무의식보다 의식이 중요하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실재계와 상상력보다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과 상징계에 관심을 쏟는다. 분열된 주체, 현실과 유리된 낭만성, 낭만성이 한 축을 이루는 모더니티 등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에게는 후기자본주의 체제, 상징적 권력, 대중문화의 융단폭격 등의 당면한 폭압적 현실을 다루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주체와‘현실’의 진전을 기획하며」). 그같은 상황에 휘둘리면 결국 주체는 현실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추억의 힘’으로 대변되는 역사와 기억의 문제가 개입한다. 고명철은 주체의 비판적 의식이 유지되기 위해‘추억의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맺힘과 권태’에서‘풀림과 신명’으로」, 348면). 거대한 역사뿐 아니라 사소한 역사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또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연계하는 것으로‘역사와 일상의 교섭’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추억의 힘’은 그의 글에서 1990년대 김소진, 최인석, 윤대녕의 후일담 소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데 쓰인다. 또한‘서구 근대적 예술형식’의 유입에 가려졌던 재래의 시가나 서사양식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끌기도 한다. 그는 역사소설뿐 아니라 황석영, 박금산, 김재영, 이경자의 소설에 도입된 무가(巫歌), 판소리, 가사(歌辭)의 문체들에 주목한다. 전통양식을 토대로 한 문체실험에서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추억은 이러한 논의를 거치며 개인의 것에서 역사의 것으로 퍼져나가는 한편, 주체의 자리는 역사와 사회를 둘레로 하여 명확해진다. 그가 옹호하는 현실이란 기억의 깊이를 지닌 역사이며, 그가 저어하는 현실이란 그 기억을 앗아가는 후기자본주의 체제이다. 역사는 개인에게 삶의 지표를 제공하며 욕망의 폭식이나 편식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모습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써 보편성에 기댄 다양한 현실‘들’을 드러낸다. 작가나 비평가에게 그 현실은 여러 문학‘들’로 나타난다. 바로 이 부분, 그가 위치해 있는 곳의 토대를 분석하거나 문학 현상들을 옹호하는 지점에서 고명철 비평의 개성이 도드라진다. 이 지점은 현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의 저 깊숙한 곳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5면) 상상력의 진원지는 자신의 삶이다. 개별적인 삶의 깊이있는 천착은 보편성 확보의 전제조건이다. 기초예술정책 수립, 문학제도의 갱신, 문예창작과의 쇄신, 청소년 문예지의 방향, 국가보안법의 영향 등 문학장의 토대 분석에서 생겨나는 보편성도‘둘레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재영의 소설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정도상이나 전성태의 소설에서 탈북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나의 기억과 다른 기억들이다. 저자의 고향인 제주도의‘4·3문학’에 대한 비평이 울림을 주는 까닭도 그 자신이 처한 현실과 역사의 개별성을 확고히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들’의 개별성을 확인하고 문학의 보편성을 가늠하는 쪽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차이를 지닌 연대를 조성한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이미 마련된 문학의 보편성은 문학‘들’의 개별성을 쉽게 가린다. 고명철은 여러 곳에서 문학과 문학‘들’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곳에서 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다. 이러한 신념은 간혹 여러 문학‘들’에서 보편성의 구현 정도를 측정하도록 방향을 틀어놓기도 한다. 가령 김재영이나 황석영의 소설을 분석하며 자본의 침략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과 소수자로서 아시아인들이 연대할 것을 요청할 때의 목소리는 단호하지만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데서 연대가 형성되지만, 그렇다고 같은 해결방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해결방안까지 같다면 문학‘들’이라는 복수 접미사는 잉여의 표현이 될 것이다. 그가 시도하는 대화가 종종 교술(敎述)처럼 느껴지고, 질문이 종종 제안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는 주체와 현실의 길항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때의 현실은 이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학은 기존의 현실을 참조하는 것뿐 아니라 미지의 현실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문학의 부정성은 근본적으로 후자의 기능에서 비롯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학은 늘 비평가들을 좌불안석의 자리로 옮겨놓는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정체를 띤 그것 앞에서 가치를 따지려 하는 비평가는 안절부절못한다. 그것은 참조할 현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비평가의 확고한 신념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것은 비평가에게 모험의 순간을 겪게 한 뒤에 역사가 되고 현실이 된다. 이 문학이 지금‘트렌드’라는 이름을 달고‘탈주체적 상상력’쪽에 섞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안과 밖을 동시에 보는‘복안(複眼)’내지‘겹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시선이 필요한 곳이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