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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창환 裵昌煥
1955년 경북 성주 출생. 1981년 『세계의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 놀러 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등이 있음. poetbch@hanmail.net
볍씨 한알
평생 아날로그 때를 벗지 못하다 컴맹에서 막 탈출한 터라, 휴대폰으로 문자나 겨우 주고받아, 줄 갈아끼울 줄도 모르고 그냥 달고 다녔는데, 어느날 후배 여선생님이 대추리에서 거둔 마지막 씨앗이라며 새 줄을 달아주어,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가만 보니, 작은 화분에 떡잎 두개 단 식물의 꽃자리에 볍씨 한알! 덩그렇게 얹혀 있었다.
땅에 떨어져 내년을 기약하든지, 가마니에 담겨 농민들의 겨울 양식이 되어야 할 볍씨가 휴대폰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 마냥 눈물겹기도 했다. 아마도 대추리 사람들은, 소나무가 죽음 앞에서 남은 힘 다하여 솔방울을 퍼뜨리듯, 고향 산천 어디에도 심어놓을 데가 없는 대추리 볍씨를, 마지막으로 세상에다 흩뿌려 사람농사라도 짓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마음 구석이 저려왔다
볍씨는 내 가슴에 고요히 실뿌리를 내렸다. 어딜 가든 모든 길은 대추리에 닿을 것 같았다. 이제 볍씨 없는 사람은 다시는 대추리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누구에게도 이 씨앗을 나눠주지 못했고, 세상 어느 흙에도 다시 뿌려 거둬들이지 못했다.
대추리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던 날, 그날 나는 대추리, 가지 못했다
그 겨울 선창 풍경
낮달이 있는
희끄무레한 구름 사이로 낮달이 하나, 떠 있었다
이중섭이 날마다 나와 안아보던 달, 물 건너 친정 보낸
일본인 아내가 되기도 하고 꿈에나 보던 아이들이 되기도 했을
그 선창의 허연 달이
하루에 두번 끄떡끄떡 했다던 영도다리 아래, 바다 쪽으로 살짝 비탈진 내리막길
자갈치 들머리, 50년대 국산영화 쎄트장 같은, 연안(沿岸) 골목길
축대 난간에 바람 부는 날의 쪽배처럼 나붓나붓 떠 있는 포장마차 머리 위로
취객들이 포장 들추고 나와 철철 쏟아낸 오줌 받아안은 잔물결처럼
이지러진 낮달이 하나, 박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앞치마에 손 닦으며 나와 돈 받던 주인 아낙이
둥근 허리를 깊이 구부렸다
두세평, 바람막이 포장 안에 열두명 시인들이 대낮부터 끼여앉아
전쟁하듯 마셔댄 생막걸리에, 고봉으로 구워주던 고등어 꽁치 삼치 안주값이 4만원,
몇발짝 돌아가면 즐비한 횟집, 회 한접시 값도 못 되는 하루 노동을 순식간에 끝내준 취객들을 따라나오며
아낙은 몇번이나 희미한 달빛 웃음을 던져주었다
자갈치, 자갈치 하면 그 시절 피난민들이 생선 사러 와서 밟던, 자갈이 자갈자갈 하는 소리 들리고
갈매기, 부산 갈매기들이 선창에 부려진 생선 낚아채 날아오르던 이미지로 가득했던 나의 풍경에
화덕 하나, 석쇠 하나, 잠시 쉴 틈에 아픈 허리 지지기도 할 전기장판 평상과
탁자 두개에 딸린 앉은뱅이 의자 몇개가 전부인 그 겨울 포장마차와
산처럼 느릿해서 좋았고, 한걸음 뒤쪽에 물러선 바다처럼 도무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중년 아낙의 둔중한 허리에 슬슬 감기던
생선 굽는 달콤한 연기 냄새와, 그 연기에 말없이 쓸리던 낮달 하나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