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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배우성 『조선과 중화』, 돌베개 2014
믿고 싶은 것만 믿은 조선 엘리트의 중화 인식
계승범 桂勝範
서강대 사학과 교수 nocon@sogang.ac.kr
『조선과 중화』는 한반도의 조선국이 중원 중심의 제국질서에 속해 500년가량 존속하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형성된 중화(中華) 및 주변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장기사(長期史)의 관점에서 정치하게 추적한 연구서이다. 조선 엘리트의 중화 인식과 관련한 선행연구들이 대개 연대기나 문집 같은 문헌자료에 의존한 점을 고려할 때, 문헌자료뿐 아니라 다양한 지도를 주요 자료로 삼아 각 지도에 담긴 의미를 명쾌하게 읽어낸 저자 배우성(裵祐晟)의 통찰력과 분석력이 돋보인다.
또한 선행연구들이 대개 근대를 경험한 현대 역사가의 입장에서 조선의 중화 인식을 다분히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랑케(L. von Ranke) 식의 역사주의 입장에서 조선의 중화 인식을 후대의 단선적 시각보다는 당대의 복잡한 상황과 입장에서 파악하려 한 점에서 방법론상으로도 의미가 있다. 책의 구성 면에서도 삼전도비(三田渡碑,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인조가 항복한 자리에 세운 청 태종 공덕비)에 얽힌 사실과 의미를 상세히 다룬 장(章)을 서두에 배치한 것은 성공적이다.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조선 후기(17~19세기) 중화 인식의 원인과 배경을 응축해 보여주는 상징물이 바로 삼전도비이기 때문이다.
흔히 ‘조선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특정 주제로 조선시대 500년을 관통한 연구서는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비교적 통시적 시각의 연구서라 해도 대개는 조선 전기나 후기만 다루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화 인식이라는 주제를 조선시대 500년을 관통해 천착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조선 초기(15세기)부터 이미 유교문명 질서를 보편적 진리로 전제한 바탕 위에서 조선의 고유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대세였기에 명(明)·청(淸) 교체 이후에도 조선의 지식인들이 명(중화)에 대한 의리를 극구 강조했다는 저자의 통찰은 조선 후기의 중화 인식이 사실(현실)을 수용하기보다는 이념적으로 흐르게 된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덕분에, 임진왜란 때 경험한 ‘재조지은(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 때문에 조선이 명에 대한 의리에 집착했다는 통설을 넘어 한차원 높은 이해가 가능해졌다.
아울러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대사와 만주 일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을 민족적·근대적 현상으로 설명한 해방 후 1세대 학자들의 경솔함이 이 책을 통해 한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선 후기에 고대사와 만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이유는 ‘오랑캐’ 국가인 청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조선문명의 기원을 중화와 연결시키려는 문화적 자구책과, ‘영고탑회귀설’(寧古塔回歸說, 청이 멸망해 북경에서 그들의 근원지인 영고탑으로 퇴각할 시에 조선을 경유할 경우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에 따른 정치적 자구책의 산물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책의 장점을 외형적으로 보자면, 단연 문장의 간결함과 명료함이다. 주어와 술어가 분명하지 않거나 만연체 문장이 여전히 적지 않은 학계의 글쓰기 현실을 감안할 때, 저자의 글쓰기는 좋은 귀감이 된다. 그래서 두꺼운 학술서임에도 한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도 몇가지 아쉬운 점은 보인다. 먼저, 조선 후기 중화 인식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현실(청질서)과 의식(중화)의 괴리 현상이다. 이런 괴리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이 책은 사실적이고도 분명한 설명을 실증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나 그런 괴리 현상이 조선왕조의 전체 역사에서, 더 나아가 한국사의 전체 진화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거시적 해석은 별로 없다.
조선 후기 엘리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고 그것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스스로를 의식화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개 그러했다. 어느 문명인들 전근대사회에서 그런 현상이 없었겠느냐마는, 문제는 바로 그런 지식인들이 조선이라는 국가의 거의 모든 분야를 독점적으로 지배한 세습 기득권층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은 외부세계를 현실적으로, 이념적으로, 또는 제3의 시각에서 보려는 다양한 그룹이 공존한 사회가 아니라, 이념으로만 외부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사실인 양 의식화한 자들이 경향(京鄕)과 조야(朝野)에 편만(遍滿)함으로써 다른 여지를 거의 용납하지 않은 사회였다. 이 점은 조선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시해주는 일종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데, 통시적 시각으로 조선시대를 관통해 살핀 이 책에서 이런 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저자가 상세히 다룬 영고탑회귀설과 ‘하이(북해도)를 통한 일본의 재침 우려’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얼마나 자기 믿음에만 기초해 외부세계를 인식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 위기의식이 지도의 제작이나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믿음에 따른 대응이다보니 지도의 내용이나 외부인식의 실상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조선 엘리트 지식인들의 중화·외부세계 인식은 여전히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면이 강했던 것이다. 저자도 물론 이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으나, 그런 관념적 인식이 조선이라는 국가사회를 200년 이상(17~19세기) 독점적으로 장악한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일정한 분량을 할애해 분석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전후 문맥을 모두 살피는 작업은 역사학에서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아쉬움은 책의 핵심어이자 제목에도 노출된 ‘중화’의 개념이다. 이 책에서는 중화를 대개 지리적 중원, 정치적 중국, 문화적 유교문명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정작 중화의 핵심 실체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천착하지 않았다. 가령 책의 말미에 “결국 중화란 무엇인가” 같은 소절을 넣었더라면 더 좋았겠지 싶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중국과 중화가 부분적으로 혼용된 감이 있는데, 조선 후기에 이 두 단어가 공유한 지점은 무엇인지, 차이는 무엇인지도 분명히 언급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을 넘어, 이 책은 조선시대 중화 인식과 관련해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연구서보다 거시적이고 통시적이고 종합적이다. 자료의 활용과 연구시각에서도 돋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 전공자는 물론이고, 한국사의 범주를 넘어 동아시아 지성사를 공부하는 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