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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임현 林賢

1983년 전남 순천 출생.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dasimarvel@naver.com

 

 

 

좋은 사람

 

 

1

오래전에 나는 이런 기사를 읽었다. 다리가 무너진 사고 이후로 10년이 지난 다음에 추모식에 다녀왔다는 내용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재건된 다리를 건너면서 이정표 같은 걸 보긴 했으나 그걸 따라 위령비를 찾아가기는 아주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복잡한 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워두고 다시 차로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백화점도 비슷했는데 붕괴된 자리가 아니라 거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전에 우재와 갔던 여행지를 생각하다가 언제부턴가는 그 기사의 내용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남해와 가까운 도립공원에 올랐다가 산중턱쯤에서 조난당한 적이 있었다. 험한 편이 아니었으나 갑작스러운 폭우였고 그것으로 고립되었다. 외부와 연락이 닿아서 가까운 대피소까지 안내받았는데 그때는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했다. 비치된 라디오를 틀어놓고 ‘비구름이 서북서진하고 있으나 중부지역은 종일 무더울 것’ 하는 예보를 들으며 놀라워하던 우재가 기억난다. 이렇게 멀리 와 있구나, 여기는 전혀 다른 곳이구나, 생각하니 나도 아득했다. 대피소는 이렇다 할 구획도 없이 방 하나 크기의 시멘트벽으로 지어져 있었다. 지하실 냄새가 났는데 아늑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날 우리는 대피소에서 반나절 정도를 머물다가 내려왔다. 가는 길에 계곡이 불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젖은 흙이 미끄러웠으나 우리 중 누구도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했다.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산 아래에서 보았던 하늘이 무척 맑았다. 도착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도 잘 보였다. 멀리 탑인 듯 높은 조형물도 보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마 그게 그런 종류의 것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무언가를 기리려고 세워둔 게 아닐까. 중요하지만 자꾸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까 가장 후미진 곳에 그걸 두기로 한 게 아닐까. 그러나 그때는 이런 곳에 저런 게 하나쯤 있는 게 당연해 보였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고, 원래 저 자리가 맞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정말로 불행을 위로하려는 사람들이나 추모하려는 가족들은 힘들겠다, 같은 걱정은 하지 못했다.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사를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으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남자에 대해 무언가를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뒤의 일이었다.

 

나는 재작년쯤에 우재의 촬영을 도운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남자와는 딱 한번 만났고 그것 외에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나고도 특별히 만나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얼마 뒤에 우재는 그 남자가 사고를 당했다고 전화했다. 장례식에 가는 길이라고도 했다. 병원까지는 내가 있던 곳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으나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 우재도 같이 가자는 의도로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으라고.” 하는 우재의 말이 나를 배려해서 그런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운하게 들렸다. 일종에 자격이 없다, 너는 그럴 수 없다, 하는 것처럼 들렸다. 후에 나는 우재를 만나 대강의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가 트럭 아래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명쾌하게 요약이 가능한 사고였다.

 

 

2

얼마 전에서야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무언가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그날 그 사람이 어땠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 훗날 사고를 당해서 이게 나한테 이런 의미더라, 같은 것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랬는데도 우리가 만나 무엇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같은 게 떠오르는 게 아니라 우재가 무슨 말을 했고 우재는 어떤 사람이다, 하는 것들만 분명해졌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없고 우재에 대해서라면 아직 할 말이 많구나, 같은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우재와 만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났으나 우리 중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었다가 서먹한 기운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사이가 틀어져버렸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자주 멀어지는 편이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점을 발견하고 결국엔 그걸 참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들과 내가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너무 닮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재와도 결국 같은 이유로 멀어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너무 닮았던 게 아닐까. 그걸 알아보고 우재나 나나 결국 참지 못했던 게 아닐까.

우재에게는 선한 면이 있었다. 분위기랄까 기운 같은 게 그랬는데 진지한 걸 웃기게 잘 말했다. 그게 가끔 부러웠다. 일종의 레퍼토리 같은 게 있어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매번 재미있었다. 한번은 무슨 대화 중에 심폐소생술이란 단어가 나와서 우재가 자기는 해봤다고, 모르는 할아버지가 터미널 매표소에서 갑자기 자기 앞으로 쓰러졌는데 그때 그걸 해봤다고 말했다. 우재는 배운 대로 신발을 벗기고 양말도 벗기고 몸을 조일 만한 단추나 벨트를 풀었는데 발이 하얗고 발톱이 굳은살처럼 탁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한 게, 오도독 도도독 하는 게 느껴지는 거야. 왜, 손가락 관절 꺾으면 나는 소리 있잖아. 실밥 터지는 것처럼 가슴을 누를 때마다 손바닥으로 그걸 느끼는데 뼈가 이렇게 다 부러지면 살아도 아프겠다, 생각이 드니까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도 할아버지한테 미안하더라.”

생각해보면 그 일은 전혀 웃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나 그걸 말하는 우재는 웃겼다. 우재는 진지했지만 진지하게 오도독 도도독 하는 것이 사람을 웃게 했다. 이후에 나는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몇번 한 적이 있다. 우재를 모를 만한 자리에서는 아는 누가 그랬다, 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전에 그래봤다고, 확인할 수 없을 테니까, 어쩔 땐 우재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어렵고 그래서 그냥 편한 대로 거짓말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기대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지는 않고 오히려 이상하게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러니까 우재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불편하지 않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잘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재를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우재는 죽는 게 무섭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주변에 누가 또 그런 일을 당할까봐 미리 대비를 하는구나. 정확하게 꼭 맞아떨어지는 우재 같은 사람은 없지만 우재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자주 들었다. 그걸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너무 몰랐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금방 들킬 만한 것들이어서 그게 진짜 우재야? 우재의 전부가 그거야?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을 과연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시 돌아보면 우재가 온전히 선했던 것만은 아니었고 고집을 부릴 때도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우기고 그게 너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지겹다, 진짜 지겹다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재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컸느냐면 입관할 때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 무릎을 굽혔는데도 모자라더라.” 그걸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재의 선한 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우재의 영화는 좀 그런 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재가 연출한 영화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20분이 채 안되는 단편이었고 주인공인 남자는 처음엔 야맹증인 줄 알았으나 점점 시야가 줄어드는 병을 앓고 있었다. 육개월에 한번씩 진행속도를 검진받아야 했는데 그 첫번째 육개월이 돌아왔을 때 첫사랑을 찾아간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였다. 우재는 그것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실제 이야기라고 했는데 “저 사람 얘기야, 저 친구가 지금 자기 이야기를 연기하는 거라고” 같은 말을 다 듣고도 나는 좋네, 좋다, 너 대단하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구성이랄까 개연성이 부족하다 싶고 실제랑 영화는 좀 달라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으나 우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걸 찍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고 자기 물건 중 무엇을 팔아야 했는데 그걸로도 한참이 모자라더라, 같은 하소연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즈음 우재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자체 기획한 아이스크림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공모전에 당선된다면 상금이 생길 테고 그것으로 이번에는 지금과 다르고 중요한 무언가를 찍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지난해 수상작들을 검색해서 보여주며 이 정도 수준이라면 할 만하다고, 거기에 내가 출연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어렵지 않아.” 우재가 여러번 강조해서 그러자고 해버렸는데 반나절을 꼬박 촬영하고 난 뒤에 다시는 이런 일에 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3

촬영장소는 우재가 다니던 대학에서 가까운 식당이었다.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므로 자정이 지나서 만나기로 했다. 당일 입고 와야 할 의상을 알려주었는데 겨울이었으나 아이스크림 홍보기 때문에 되도록 두꺼운 걸 피하라고 했다. 어떤 색깔의 어떤 느낌이 좋겠다고도 당부했다. 집에서 출발하려는데 벌써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식당 안은 협소하고 테이블이 많았다. 대여섯개쯤? 그런데도 빼곡해 보였다. 그만큼 좁았고 조리공간은 선반 하나로 나뉘어 있어서 무언가를 굽거나 볶는다면 틀림없이 연기가 천장에 자욱할 것 같았다. 우재와 우재의 친구들 여럿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대여섯명이었는데 거기에 카메라, 조명기구, 쓸모를 알 수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함께 모아두니까 정말 복잡했다. 우재의 후배라는 사람이 소주 마시는 연기를 할 것이고 그것은 괴롭거나 일이 잘 안 풀린다거나 아무튼 안 좋은 일을 겪었음을 암시해줄 거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남자는 우재가 형이라고 부를 만큼 젊어 보였다. 그 남자가 소주를 마시는 배우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것이 그날 우리가 찍어야 할 장면이었다. 내가 맡은 배역은 두 사람을 창밖에서 바라보는, 아이스크림의 요정이라고 해야 하나 분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었는데 설정 자체가 유치했고 유치한 게 공모전의 의도와 잘 어울린다고 우재가 설명했다. 촬영분량은 많지 않았으나 대기시간이 길었다. 우재는 조명이 어둡다, 하고 소주 마시는 장면을 여러번 다시 찍었다. 실내등을 확인하고 가져온 조명기구를 옮기고 그럴 때마다 여럿이 붙어서 반사판의 위치를 어디에 두는 게 좋으냐, 같은 것을 의논했다. 그러고도 다시 카메라의 위치를 옮기고 이미 찍은 것을 반복해서 찍다보니 예정보다 길어졌다.

나는 거기서 우재 외에 아는 사람이 없었고 우재가 그중 가장 분주했으므로 기다리는 시간이 몹시 지루했다. 다들 무언가 할 일이 있었는데 나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미안해서 도울 것 없느냐, 물으면 괜찮다, 하는 게 방해하지 말라는 것 같아서 무안했다. 식당 남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필요도 없이 주방을 드나들었다.

“저기요, 형.”

우재가 남자 쪽을 돌아보았다.

“다 들려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하자 남자는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그 뒤로는 남자도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하품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워했다. 그게 욕심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여유로운 것도 아니면서 손해 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남자가 능숙하지 못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내게 전공이 뭐냐고 묻는 게 그랬다. 대화를 주도하거나 불필요하지만 어색함을 채우는 말 같은 걸 잘 하지 못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나는 전공이 뭐냐는 그 질문이 어떻게 보면 그냥 일상적인 것일 수도 있었을 텐데 식당 주인에게 들으니까 어딘가 어색해져버렸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다른 출연자에게 학번을 묻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몇년생이냐고, 나이가 몇이냐고 묻지 않고 학번을 묻는 게 무척 작위적이고 이상해 보였다. 내가 알기로 그 사회자는 운동선수 출신이고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은 누가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나, 자기도 대답하지 못하면서 왜 그런 걸 물을까?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몸에 배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런 거에 집착하는 거겠지. 그게 부러웠을 거야.

 

가게는 좁고 가게 밖은 추웠다. 남자와 나는 잠깐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그사이 촬영이 다시 시작되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 눈이 내렸는데 쌓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차양 바깥으로 손을 뻗어보더니 접히는 야외 테이블을 문 가까운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근처에 큰 화분도 있었는데 심긴 것이 바짝 말라 있었다. 거기서 꽁초 같은 것을 골라내기도 했다. 나도 그걸 도왔다. 몇개 되지 않아서 금세 끝나버렸고 우리는 담배 한대를 더 피웠다. 적막하고 추웠는데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기는 상고를 나와서 복식부기 같은 걸 잘 본다고, 부모님 뭐 하시나 묻고, 가게 같은 거 하려면 세무서 가지 말고 여기로 가져오라고, 자기가 봐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잃어버렸다. 잊은 게 아니고 처음부터 잘 듣지 않았으니까 그냥 잃어버렸다. 찢어진 채로 아니면 군데군데 지워진 채로 들었는데 남자는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자기 친구 중에도 영화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나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이 이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은 그 친구가 불러서 나갔는데 거기서 유명한 영화평론가를 본 적이 있어요.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지. 우리 같은 사람이 그래요. 텔레비전에 안 나오면 잘 몰라.”

그때 나는 영화라고는 나도 잘 몰라요,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다. 그게 당신이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는 뉘앙스로 들릴 것 같아서 신경 쓰였다. 그런데도 그 말을 무르지는 않고 여전히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게 남자를 더 말하게 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나를 보더니 전공이 뭐냐고 묻는 거예요. 내 친구가 고졸이다, 상고 나왔다고 대신 대답했어요. 질문한 사람이 민망해하는데 나도 따라 민망하더라구요. 다른 누가 그게 뭐가 중요하냐, 술이나 마시자, 해서 그런 식으로 넘어갔는데 괜히 미안해지더군요. 나 때문에 그 자리가 어색해진 거 아닌가. 그런데 뭐랄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점점 기분이 나빠지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내 친구의 말에는 하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데 이후로 흘러가는 상황이나 분위기 같은 게 이상하게 불쾌한 거예요. 사람들이 무언가 조심스러워 하는데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왜 나를 배려하나. 왜 나를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보살피려고 할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면서 왜 중요한 사람 대하듯 그 자리에 내가 이 대화를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고, 모를 만한 주제는 피하려 드는지, 나를 두고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너무 빤히 보여서 불쾌하더란 말입니다. 왜 함부로 나를 배려하려 드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전부터 오래 내리고 있었는데 쌓이지는 않았다. 나도 무언가를 쌓자고 듣던 것은 아니었으나 젖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그때 나는 대답을 할 뻔했거든요. 내 친구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상고에서 내 전공이 세무행정이었다고, 그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뭘 묻는지 몰랐던 거지. 그랬다면 더 민망한 자리가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진짜 불편했겠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는 그걸로 뭔가 쓰고 싶은 거예요. 내 이야기를, 그때의 감정 같은 걸 써보면 좋겠다, 싶은데 잘 안돼. 그래서 대단해 보여요. 당신처럼 그걸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부러워요.”

그 말에 나는 아니라고, 내가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다고 대답했는데 사실은 그런 류의 것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부정이었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어딘가 소설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그래서 원래부터 쓰기 어려운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구나, 싶었다. 장소를 빌려주고 싫은 소리도 않는 게 다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이 안에서 우재가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드는 줄 아는구나.

이후로도 남자는 더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 대부분을 잃어버렸는데 눈이 내렸다가 금방 녹아버리듯 그렇게 잃어버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시구나 하면서, 잃어버렸다. 실은 혼자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게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우재였고 무언가 말해서 들어오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다 들려요.” 다시 소곤거리더니 닫아버렸다.

 

 

4

새벽이 더 깊어졌을 때서야 나는 우재의 후배를 알아볼 수 있었다. 소주 마시는 연기를 하던 그가 어딘지 낯익다 생각했는데 그런 경우는 많았고 화면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달라서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즈음 우리는 어느 선을 넘은 것 같았다. 몽롱한 상태로 오가는 대화도 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특별히 누군가 실수를 많이 했다거나 모자랐다기보다는 오히려 다들 열심이어서 길어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우재는 구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배우 뒤쪽으로 무언가 걸린다고, “화면에 이런 게 함께 들어오니까 너무 한쪽으로 기운 것 같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도 같이 보았는데 모니터 귀퉁이로 광고 포스터가 보였다. 그것을 떼어내자 바랜 자리와 너무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그 정도라면 사소해서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다들 우재의 말에 긍정하는 편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다시 신경을 쓰고 보니까 무슨 의도적인 오브제처럼 보이는 게 좀 거슬리네, 나도 동조했다. “아무래도 좀 그렇지?” 우재도 그제야 확신이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자리를 새로 골랐다. 그러고는 이미 다 끝났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촬영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내 경우, 그날 일정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우재가 표정을 바꾸라거나 동작을 크게 하라거나 무언가 주문하면 그대로 들어주었다. 맡은 역할을 잘 이해한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하고 배도 고팠고 이게 다 끝나야 뭐라도 먹고 집에도 갈 수 있겠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좋아했다. 카메라를 옮겨 다시 세우고 이것저것 장비의 위치를 고치는 동안 “잘하네, 연기가 좋아요.” 누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쑥스러웠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걸 연기라고 할 수 있나, 의아했던 게 먼저였다. 촬영을 한다면 뭔지 몰라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작업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어딘가 어설펐다. 다들 진지하고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고민하는 게, 그런 점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연기가 좋다고 말해준 것은 우재의 후배였다. 그가 「갈매기」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연극부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며 여자가 세명인가 네명 등장하는데 남고라 그걸 다 남자애들이 연기했다고도 했다.

“그 연극에서 죽은 갈매기가 나오는데요, 재능 없는 극작가가 그게 자기 같다고, 그래서 자기도 곧 자살할 거라고 하는 대사가 있어요. 내가 맡은 배역이 그 인물이었어요.”

그는 대학 입시에서도 같은 장면을 연기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서 갈매기 박제를 소품으로 챙겨 갔는데 지하철을 타고 고사장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이 자꾸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관심 받는 것 같아서 좋았으나 결과는 안 좋았다.

“몰랐는데요, 입시 때 체호프 대사가 열에 아홉이에요.”

그날 대기실에서 갈매기 여러마리를 더 보았더라는 말에 나는 웃었다. 그러니까 자기한테는 그런 게 없다고, 남들하고 다른 게 부족해서 떨어진 거라고 자평했는데 나한테는 그게 보이니까 그래서 좋은 거라고 자꾸 칭찬해서 부끄러웠다.

 

우재가 간식거리를 사러 간다고 했을 때 나도 따라 나섰다. 몇명이 더 그러겠다고 했으나 그 후배라는 사람만을 더해서 셋이 다녀오기로 했다. 식당과 편의점 사이는 아주 먼 것은 아니었으나 교차로를 끼고 있었고 그 시간에도 점멸하지 않은 신호등이 있었고 차들이 빨리 달렸다. 그랬으므로 제법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우재의 후배는 횡단보도 앞에서 우재와 내가 어떤 사이인지, 어떻게 해서 가까워졌는지 같은 것들을 묻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우리에게는 계기라고 해야 하나, 이해관계라고 해야 하나, 딱히 그럴 만한 게 없었다. 시작이 모호했다. 우재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명절이었는데 어떻게 살았냐, 서울에서 한번 보자, 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먼저 연락하진 않다가 그다음 설인가, 추석에 다시 고향에서 만나 뭐야? 있어? 이 번호 맞아? 서로의 전화기를 들고 놀라워했다. 그러고 난 뒤에도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우재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 하냐? 거기로 갈게.” 그날 우리는 날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우재와는 죽이 잘 맞았다. 고등학생 때도 그랬나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는데 보지 않고 자라는 동안 통하는 게 많아졌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묻는 사람도 우재가 누굴 좋아했는데 나도 그 여자애를 같이 좋아하다가 둘 다 잘 안됐으므로 남은 우리끼리 의기투합했다, 같은 걸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그럴 만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그때 내가 들려줄 만한 일화라면 아마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우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는데 장례식장에서 나는 우재를 보자마자 웃어버렸다. 소리 내어 크게 웃은 건 아니었지만 그냥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었을 뿐인데 그러고 나니 크게 실수한 것 같아서 금방 굳은 표정으로 우재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때 우재가 물었다. 표정이 왜 그렇냐고, 내 표정이 진짜 웃기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고맙고, 그냥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새삼 우리는 그런 걸 담아두지 않는 사이구나, 싶었다. 나는 그것으로 우재와 나를 설명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충분하진 않지만 어떤 여백 같은 것이 있어서 무엇이라도 채울 수 있었다. 무엇을 채우든 어울릴 것이고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처럼 우재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라면 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대신 우재는 몇해 전, 산에서 큰 비를 만나 조난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돌들이 굴러서 민가를 덮쳤는데 사람들도 많이 다쳤다고, 하마터면 우리 둘 다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에 아무 가로수나 가리키며 “저런 게 비탈 한 가운데 넘어져 있었어. 그렇지? 무서웠지?” 우재가 물어서 나는 그렇다고, 네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거기 대피소에 있을 때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그랬잖아 그게 기억난다, 하고 말했다. 그가 우재를 보면서 웃었다. 우재도 웃었고 나도 한참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쪽이 나온 영화 봤어요. 우재가 보여줬어요.”

나는 연기가 좋았다, 괜찮은 영화더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그는 쑥스러워하더니 고맙다고 말했다. 여전히 집에 가고 싶고 고된 것은 변하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좋았다. 낯선 사람과 많이 친해졌다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도 그랬던 것 같다. 이후로 나를 의식해서였는지 촬영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실수가 많았다. 우재가 과하다, 너무 연기한다, “갑자기 왜 그래? 그러지 마” 하면서 그를 여러번 지적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고, 정확히는 그 사람이 무엇을 볼 때 어떻게 보는지, 지금은 괜찮은 건가? 눈이 아주 멀지는 않았구나, 같은 것을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당장 심각한 일이 생길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그날의 일정에 대해서 떠올리다보면,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 어느 순간부터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가게 문을 열어두면 몹시 추웠다. 그럼에도 실내 공기가 너무 탁해서 열어둔 채로 두었다. 다만 언제 누가 그러기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 내 어깨에 외투를 걸쳐놓았는데 그건 또 누구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졸아버렸던 것이다. 너무 춥다, 생각하고 깼는데 깨고 나서는 민망하고 미안해서 문턱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먼 시간이었다. 주변의 상가들은 모두 닫혀 있고 어두웠는데 그 식당만은 환했다. 가게 앞으로 드물게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러다 불이 켜져 있고 문이 열려 있으니까 들어오기도 했다. “장사 안합니까?” 묻고, “제목이 뭐예요?” 구경하면서 성가시게 굴었다. 다른 사람들은 바빠 보이니까 그걸 다 나한테만 물었다. 출입문에서 내가 가장 가까웠다. 그때마다 나는 네, 뭐, 그렇죠,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같은 대답만 했다.

한번은 자전거를 끌고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와서 이것저것 질문했다. 술냄새가 났는데 몸을 내 쪽으로 바짝 붙여서 가게 안을 기웃거렸으나 상대해주지 않았다. 아주 무시한 건 아니고 전처럼 네, 뭐, 저도 잘 몰라요, 대답하는데도 계속 가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찍은 걸 확인한 뒤 구도를 고쳐 다시 찍고, 누가 나를 저렇게 찍으면 기분 나쁘겠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찍었다. 그런데도 나는 딱히 그걸 말리거나 하지는 않다가 “근데 이런 거 왜 하나?” 아저씨가 물어서 우재의 카메라를 가리켰다.

“저기 죄송한데요. 이게 지금 다 들리거든요.”

아저씨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나를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좁힌 것이 펴지며 가볍게 웃었는데 그 표정이 묘했다. 그러고는 “같잖네.” 한마디를 붙이고 자전거를 몰아 자리를 떠나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란 겨우 이런 것들뿐이다.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5

그로부터 두어달이 지난 뒤에 우재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했는데 무얼 두고 그런 소릴 하는지 나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우재는 우재대로 바쁘고 나도 무언가 분주해서 두어달 정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싶었으나 그걸로 서운하다거나 섭섭해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우재도 그랬을 텐데 그게 우리에게 더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우재는 공모전 결과가 좋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네.”

우재가 계속 미안해해서 나는 괜찮다, 신경 쓰지 말아라, 하는데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어디냐? 술 마실래? 내가 물어도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 어렵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실은 그것 때문에 전화했다고 고백했다. 장례식이었고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얼마 뒤에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우재는 이미 전화로 했던 말을 또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입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파일이 손상된 것 같다, 보내놓고 다시 확인해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담당자가 고지식한 사람이라 전혀 말이 안 통하더라, 했다. 나는 우재가 그것으로 내게 자꾸 미안해하는 것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실은 다른 문제가 더 컸던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혹여 사운드가 멀쩡하고 담당자가 유연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촬영 당시에 줄곧 내가 의심하고 있던 그 이유 때문에 결국 결과는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그대로 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에 우재가 보여줬던 그 영화로 돌려 말했는데 그게 우재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나는 우재가 연출한 영화를 주변에 자주 들려주고 다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진부하지 않아? 묻고 돌아오는 답을 들었다. 내 친구이긴 하지만 솔직히 너무 별로지 않아? 물으면 그때마다 나와 비슷한 의견이었고 그걸 우재에게 전해주었다. 우재는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으나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뭐가 그렇게 별로였나, 물었는데 진짜로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랄까, 네 영화는 너무 착해. 일부러 만들어진 것 같아. 작위적이라고. 그렇게 애쓰지 좀 마. 그러고도 더 길고 많은 말이 필요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 하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재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든 걸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재에게 필요한 조언이었다. 우재는 말이 없고 나도 하던 말을 계속할 수 없어서 어색해졌다. 그러다 우재는 다른 화제를 끌어들였다. 그 영화의 주인공에 대해, 식당에서 소주 마시던 연기를 하던 그 후배가 당한 교통사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토바이가 도로에서 미끄러진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교차로였고 신호를 받아 주행하던 트럭이 바닥에 넘어진 사람을 보지 못했던 것이 더 큰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하는 우재의 말을 들으며 그렇다면 제대로 보상은 받을 수는 있나, 같은 게 나는 가장 걱정되었다. 그러나 우재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했다. 그 후배가 병을 진단받은 직후 마련한 현실적인 대책은 눈을 감은 채 거실을 돌아다닌 거라고 했다. 익숙하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여기서부터 차근차근 적응해두자, 다음에는 더 복잡하고 낯선 곳에서 연습하자,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게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어머니에게 들켜서 무안했다고 했다.

“자기를 빤히 보더래. 아무 말도 없이 가만 보다가 갑자기 화를 내더래. 그러고는 이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깐 졸기라도 하면 어머니가 세게 때리면서 그러는 거야. 그것 좀 제발 그만할 수 없니? 너는 왜 가족이라고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니? 그러면서 우는 거야. 견딜 수 없었던 거겠지. 그런 상황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자기 아들의 미래인데, 정작 본인은 인정할 수 없었던 거야.”

 

한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까지 우재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우재가 전화로 먼저 그 사고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그 남자가 죽은 줄 알았다. 우재가 잘못 말한 게 아니라 우재는 분명히 그 후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나는 식당 남자가 죽은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오해와는 상관없이 우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의도가 분명했다. 실은 자기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텐데 그러니까 네 영화는 너무 착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렇게 말해서 이게 얼마나 진짜인지에 대해 변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의미가 있고 그래서 좋은 영화다. 우재는 아마 그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도 그랬으나 여전히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게 좋은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런데도 나는 말했고 그것으로 우재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말이 더 영화 같다, 현실적이면서 좋다, 네 영화가 부족한 게 바로 그거다, 적어도 그렇게 말할 때까지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그 사람 일은 정말 안됐네, 좋은 사람이었는데 불쌍하다, 말하자 우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그래?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착하다, 좋다, 그런 건 일종의 상태 아니냐? 그랬다가 안 그러기도 하는 거 아니냐? 그냥 너나 나 같은 사람이잖아. 그애가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원래 질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죽으면 너는 뭐라고 말할 건데?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왜 다들 무책임하게 좋았다고만 해? 불쌍하니까, 씨발 존나 불쌍하니까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거야, 뭐야? 그럼 좋은 사람 이외의 그애는 다 어디로 가는데? 어떻게 좋은 게 그애의 전부야? 왜 함부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어라 할 말이 많았으나 하지 않았다. 그때의 우재가 너무 비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우재가 화를 내고 있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보다 먼저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 유치해 보일 테니까 다른 이유를 들어 나를 공격한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틀렸다고, 내가 영화에 대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화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우재와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전화로 한번 연락한 적은 있었으나 이후로 아무 노력도 없이 멀어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여전히 우재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은 모두 우재를 위한 것이었다.

 

 

6

우재의 후배에 대해 무언가 쓰자고 마음먹은 뒤로 나는 그날의 일들을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면 기억나는 것들이 생겼는데 그때마다 잊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기보다는 원래 없던 거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더 자주 들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런 말이나 행동들은 없었고 그때의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사고는 심각했으나 나와는 먼 사고였다. 그랬으므로 식당 남자와 우재의 후배 중 누구라도 상관없던 게 아니었나. 만약 그게 우재였더라면 달랐을까. 그랬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걸 쓰게 되었을까.

얼마 전 나는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갔다. 주인 남자를 만나 무얼 쓰려고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같은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쓸 만한 이야기라거나 소재가 좋다, 같은 말들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죽었다’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사고가 있었다’라고 말하며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부분을 아주 의식하고 있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우재로부터 그 일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왜 그랬는지 한참 동안 그게 당신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당신 이름으로 된 SNS를 찾아보고 그걸 읽고 그랬는데도 사고와 관련된 말은 하나도 없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아니라 당신 가족이나 애인이 그걸 대신 올려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처럼 당신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구나, 그런 식으로 당신을 그리워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고 고백했다.

나는 남자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마음대로 자기를 그렇게 만드느냐고, 도대체 어떻게 생각했던 거냐고,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그랬던 것 아니냐. 그러나 그는 내 말에 웃었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에서 웃는 것인지 알 것 같았는데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얼 쓰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고, 이 사람도 나 같네, 나처럼 그걸 쓰고 싶었을 거야,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재가 했던 말도 들려주었다. 우재가 그러더라, 하지 않고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우재의 후배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 한번 보았을 뿐인데 왜 그랬는지 좋은 사람 같고 친절했다, 그런 기억만 남더라, 당신은 어땠나?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나?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왔나? 같은 것들을 물었다.

식당 남자는 되도록 내게 솔직하려고 노력했다. 소식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놀라고 안타깝긴 했으나 그날도 장사를 하고 손님을 받았다,라고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하게 되더라, 같은 말들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가게 쉬는 날에 친구들이랑 종로에서 영화를 봤어요. 끝나고 나오는데 횡단보도 한가운데 리어카가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고 넘어진 사람 다리 같은 게 언뜻 보이더라구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그날은 가까이 가서 얼마나 다쳤나,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오래 구경했어요. 그렇게 기억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애를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건가, 싶어요. 아무래도 그랬겠구나, 나는 현장에 없었지만 상황이 이랬겠네. 아니면, 또다른 일도 있었는데 가게 정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멀리서 누가 나를 부르는 거예요. 밤이고 뭔가 무섭기도 해서 그냥 가려는데 그 사람이 달려오면서 나를 계속 부르더라구요. 그래서 올 때까지 멈춰서 기다렸어요. 가까이에서 보니까 낯이 익더라구요. 가끔 우리 가게에 오던 손님이었는데 그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나를 알고 있다고, 당신도 나 알지 않느냐, 부르는데 왜 그냥 가려고 하느냐, 그러더니 아플 정도는 아니고 등을 세게 치더니 가버렸어요. 많이 취했네, 생각했는데 어딘가 그 말이 신기하더라구요. 이름도 모르고 그냥 오다가다 보는 손님일 뿐이잖아요. 그 사람이 나를 안다고 말하는 게 이상했어요. 그리고 가만히 서서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는데 거기가 거기였어요. 그 사고 난 자리요.”

남자의 말을 듣다보면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말을 듣고 싶어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이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걱정 때문에 불안해졌다. 이 사람이라면 불쌍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자주 조바심이 나기도 하는데 어떻게 이 이야기가 끝나게 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안 좋으면 어떡해. 그리고 그런 사고가 없었더라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쓸 수 있었을까, 그걸 쓰려고 했을까, 그게 좋은 이야기라고 여겼을까, 무엇보다 그때의 일들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을 묻게 된다.

 

식당 남자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하는지 어딜 갔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같은 사소한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에는 남자에게서 우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좋은 일이 있다고 했는데 정작 우재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것으로 우리가 아주 멀어졌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우재와는 누구보다 통하는 게 많았다. 여름이나 연휴가 사나흘씩 끼어 있는 날에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식성이 비슷하고 구경하고 싶어하는 게 맞아서 편했는데 둘 다 딱히 고집스러운 취향이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다. 실은 그게 어디였든 편했을 거였다. 아니라면 우재가 나를 많이 참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도 우재에게 전화해서 뭐 하냐, 묻는다면 전처럼 다시 만나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랬다면 근래 내가 무얼 하려는지, 무얼 쓰고 이게 어떤 의미인지 다 말했을 텐데.

“같잖네.”

우재는 아마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 그걸 다시 웃기게 말해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 우리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우재와 나는 함께 조난당한 적이 있었다. 비가 줄곧 내려서 대피소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는데 나가더라도 잠깐 바람이나 쐬려고 문턱에 앉았다가 몽땅 젖은 채로 도로 들어와야 했다. 문틀이 헐거워 출입문이 바람에 덜컹거렸다. 그런 곳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 그치길 기다렸다. 닭백숙이나 산채나물에 밥과 고추장을 비빈 게 먹고 싶었는데 진짜로 그렇다고 소리 내어 발음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뭐라고? 우재가 물었다. 문 밖으로 빗소리 바람소리가 너무 컸다. 우재도 비슷한 마음으로 그랬는지 살구가 먹고 싶다, 말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게 살고 싶다, 그러고 싶다, 하고 들려서 이상하게 진지한 것이 나를 웃겼다.

그날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산을 면하고 있던 마을에는 피해가 컸다고 들었다. 낙석이 농가로 굴러들어 잘 자란 고추 같은 것들을 넘어뜨려놓았다. 흙더미가 쏟아져 집 한쪽이 무너졌고 거기 깔린 사람도 있었다. 우재와 나는 정작 가까운 곳에 있을 때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가 서울로 돌아와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뉴스를 본 것은 우재뿐이었고 우재가 내게 말해주었을 때 전혀 몰랐네, 정말 위험했다 우리, 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무사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별일 없던 거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만약 무리하게 대피소를 벗어나려 했다면 진짜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우재가 후배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겪지 않은 사고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우재 너는 가장 위험에 처한 게 우리였던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너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그게 모두 네가 겪은 것처럼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왜 함부로 좋은 사람 만들어?” 우재가 화를 냈을 때, 누가 더 잘못 기억하는 거냐고, 너도 나랑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 무엇보다 나는 이 부분을 지적했어야 했다.

우리가 이렇게나 닮았다.

한번쯤 말해주고 싶은데 그걸 들어줄 우재가 지금 옆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