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별기고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저서로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1. 적공과 전환: 세월호 이후

 

2013년체제 만들기’ 기획이 실패로 끝난 이후, 나는 시국에 관한 발언을 되도록 자제해왔다.1) 성찰할 것이 너무 많고 국민 앞에 나설 면목도 없었으며 ‘2013년체제’ 대신에 무엇을 내놓을지도 막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16일의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나도 가만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세월호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공감에 찬 상황에서, 이전처럼 생각하고 발언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전처럼 침묵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2013년체제 만들기’를 대체할 구호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체가 낡은 사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요한 구호는 때가 되면 나올 터이고 그것을 반드시 내가 내놓아야 할 까닭도 없다. 우선은 세월호사건이 촉발한 우리 사회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월호 이후’로의 전환을 이룩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되지 싶다.

실제로 사건 이후 우리는 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공감과 결의만으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말로는 다 바꾸겠다면서 종전처럼 누리고 사는 삶을 전혀 바꿀 뜻이 없는 이들이 사회의 온갖 요처에서 버티고 있는데다가, 그들을 비판하고 심판하자는 야권의 정치인과 지식인도 여전히 ‘세월호 이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일쑤이다. 그러한 양쪽에 다 실망한 국민도 대책없이 분노하거나 쉽사리 체념하면서 더러는 세월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솔깃해지기조차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2012년에 그러했듯이 한국사회에 아직도 시대가 요구하는 큰 전환을 이룩할 적공(積功)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나름의 공덕과 공력이 그나마 쌓였기에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되고 자력을 갖춘 사회가 되었겠지만, 또 한차례 큰 전환을 이룩해야 할 판국을 맞아 더 크게 적공할 필요가 절실하다. 아니, 적공과 전환이 결코 둘이 아니다. 적공하는 만큼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며 전환해가는 과정 자체가 적공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세월호사건의 최대 교훈은 제때에 전환을 이루지 못할 경우 나라가 어떤 혼란과 난경에 빠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지속된 교착상태가 그 단적인 예다. 철저한 진실규명은 성찰의 기본이고 새 출발의 전제인데, 이 첫걸음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은 염치없는 버티기를 일삼았고 야당은 ‘세월호 이후’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전에 하던 방식대로’ 밀고 당기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고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런 가운데 사회는 ‘대통합’과 더욱더 멀어지고 공론의 질은 전에 없이 저열해졌다. 식민지와 독재 시대를 통해 권력에 굴종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멸시하는 습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면을 부인할 수 없는데 요즘처럼 그 점이 실감되는 때도 드문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이 문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진실규명과 대책마련의 소임을 게을리하는 방식일 수 있다. 모두가 죄인인 면이 없지 않다 해도, 위정자로서의 잘잘못부터 밝힐 책임, 적어도 진실을 밝히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지도자와 정치권의 특별한 책임을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저들이 그들 나름으로 쌓은 공력과 술수를 다해 훼방을 놓는다면 국민이 아무리 잘난들 어쩌겠는가!

동시에 다음 순간, ‘정녕 잘난 국민이라면 애당초 이런 정치가 가능했겠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도 외면할 수 없다. 이는 ‘그러니까 다음 선거에서는 지도자를 잘 뽑아야지’ 하는 다짐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은 선거로 뽑은 정치인의 책임을 제대로 묻되, 책임추궁을 해낼 넓은 의미의 정치활동에 각자가 일상적으로 정진하는 훨씬 어려운 적공을 요한다.2)

다음 선거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이곳에서의 적공을 어떻게 할지를 몇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검토하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의제를 상세히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과제들에 접근하는 자세를 주로 생각하고자 한다. 『만들기』에서도 강조했듯이(82면) 민주·평화·복지 같은 중요 의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큰 과제인지를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시에 공간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전세계를 생각하면서, 시간상으로는 단기·중기·장기 차원의 과제를 식별하고 적절히 배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식별’ 못지않게 ‘배합’이 중요하다. 단··장기 과제를 분류해서 단기과제부터 하나씩 수행해가자는 게 아니라 그 완성의 시점이 각기 다름을 인식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최대한의 상승효과를 거둘지를 찾아내는, 그야말로 적공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혼란이 극에 달했으나 어디까지나 혼란이요 교착이지 ‘세월호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는 점이 희망이다.3) 교착과 혼란 자체를 환영할 일은 물론 아니지만, 체념을 거부하고 ‘일상’으로의 편안한 복귀를 거절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4) 그런데도 이렇게 토로하는 소설가 황정은(黃貞殷) 자신을 포함해서 수많은 시민들이 적공과 전환의 작업에 이미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하려는데, 내 경우 2013년체제론에 대한 자기성찰에서 출발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2. 2013년체제론에 대한 성찰

 

2013년체제 만들기의 취지

20132월은 새 대통령이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때였다. 이 시기를 앞두고 단순한 정부교대 또는 정권교체에 만족하지 않고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에 맞먹는 대전환을 촉구한 것은 많은 국민이 공감한 바였다. 야당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2013년체제’를 직접 거론했고, 여당 후보도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는 시대교체’를 약속하면서 당선되었다. 물론 당선인 자신의 체질로 보나 그 지지세력의 성격으로나 ‘시대교체’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적었다.5) 그러나 의도적 기만책이든 자기최면이든 국민의 여망이 있기에 나온 약속이었고, 지금 우리는 시대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국민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체험학습 하는 중이다.

2013년체제론은 87년체제를 극복하려는 기획이지만 어디까지나 87년체제의 성과를 딛고 넘어서자는 것이었다.6) 따라서 항쟁을 통해 한국사회가 확보한 선거공간을 활용하는 일이 당연했고, 6월항쟁 때처럼 길거리 싸움을 주요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희망2013’이라는 구호에 선거를 의식한 ‘승리2012’라는 표어가 붙어 다닌 것도 그 때문인데, 동시에 ‘희망2013’을 향한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승리2012’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4월 총선의 결정적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나는 범야권의 총선승리가 대선승리의 전제조건임을 명시하기도 했다(『만들기』 제4장 제4절, 85~87면).

불행히도 그 진단은 적중했다. 총선에서 진 야권이 대선에서도 패한 것이다. 패인의 구체적인 분석은 전문가들에게 맡길 일이나, 한마디로 ‘희망2013’을 향한 적공이 부족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2013년체제론에는 87년체제가 1961년 이래의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뒤에도 독재시대와 여전히 공유한 53년체제(정전협정체제이자 분단체제)라는 토대를 변화시켜야만 87년체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중요하게 포함되었지만(『만들기』 79~80면, 162~64면), ‘2013년체제’를 구호로 채용한 인사들조차 그 점을 간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분단시대의 역사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현실진단에서 남한사회를 기본 분석단위로 삼는 습성을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나아가 분단체제조차 최종적인 분석단위는 아니고 세계체제 위주로 사고하는 학문적 전환을 요구했기에, 단기간에 널리 공유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만들기』와 그 후속작업의 문제점들

2013년체제론이 너무 발본적인 성찰을 요구해서 공유되기 힘들었다고만 말한다면 남 탓이나 하는 꼴이 될 터이다. 실제로는 『만들기』뿐 아니라 이후의 자기교정 시도에서조차 논자 스스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기획의 실패에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거승리에 집착해서는 선거조차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만들기』가 거듭 강조한 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자 자신도 그런 집착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2013년체제론의 핵심개념에 해당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만들기』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는데(81면에 딱 한번 언급됐음), 이는 선거의 해 2012년에 책을 내면서 일부러 선택한 방식이기도 했다. “‘변혁’과 ‘중도’라는 얼핏 상충되는 개념들의 결합”7)이 한반도 특유의 현실에 대한 공부심을 촉발하는 화두일지언정 선거구호로서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집착의 다른 면일 테지만, 시대적 전환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어리석음도 보였다. 단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朴元淳) 후보가 당선된 데에 지나치게 고무되어 한나라당(후에 새누리당)의 박근혜(朴槿惠)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휘할 위력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만들기』 63~64면 참조). 정치의 문외한으로서 틀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주는 분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외한이니까 입 다물고 ‘본전’을 챙길 권리는 있지만 공개적 발언이 틀렸을 때 책임이 따르는 점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더 중요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막강한 수구·보수동맹에 대한 인식이 충분치 못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변혁적 중도주의’를 선거구호로 채택하지는 않더라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 화두를 들고 씨름하도록 하는 일은 중요했다.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해서는 뒤에 더 논하겠지만, 그것이 말하는 ‘변혁’ 곧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이를 위한 ‘중도’ 곧 폭넓은 개혁세력을 형성하는 일이 바로 ‘희망2013’의 요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승리2012’의 전제조건으로 떠오른 연합정치 문제를 올바로 풀어나가는 지침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2012년 총선에서의 야권 선거연대는 이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선거 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공천경선 시비와 분당 사태를 통해 ‘주사파와 손잡은 묻지 마 연대’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총선 당시에는 통합진보당이 특정 정파 일변도의 당도 아니었거니와,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는 2012년 총선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 때처럼 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변혁적 중도주의 같은 연합정치의 철학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모든 정당·정파의 통합 또는 연합과 그에 미달하는 수준의 전술적 연대를 구별해줄 분명한 원칙이 없었고, 한결 당당하고 효율적인 연합정치를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총선 패배를 겪은 뒤에야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를 재개했다.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라는 글이 그것인데, 이는 총선에 지면 대선도 지리라는 자신의 예측을 어떻게든 뒤집어보려는 발버둥이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지만, 글 자체의 문제점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시의성 문제다. 2012년초의 시점에서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가 선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일리가 있었다면 대선을 코앞에 두고는 더욱이나 너무 늦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절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몇가지 생각마무리를 대신하여’의 경우다. 물론 안철수씨가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시점이고 더욱이나 출마 뒤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한 전망이나 대안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령 『〔안철수의〕 생각』이 매우 훌륭한 ‘문서파일’이라 해도 어떤 성능의 ‘실행파일’이 딸렸는지는 문서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실행파일을 돌려봐야 알 수 있다”(33면)라는 지적은 ‘평론가적’ 발언으로 무난할지언정 실천 차원에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하기는 이미 그 시점에서 안철수씨의 능력에 대해 엄혹한 평가를 내리면서 그의 출마 자체를 반대한 일각의 반응이 더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또한 ‘평론가적’ 발언으로서의 날카로움을 자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안철수의 출마를 통해 비로소 ‘박근혜 대세론’이 한풀 꺾이고 종국에 야당 단일후보가 48% 득표율이나마 올리는 길이 열린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2014년의 대혼란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나라인가’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온 것이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물음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에서 좁은 의미의 ‘나라’, 곧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준 행태에다가 세월호 이후에도 잇따라 터진 안전사고와 당국의 변함없는 무능·무책임으로 그 질문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를 계기로 국가가 도대체 무엇이며 국가주의의 폐단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수행하는 것도 필요한 적공의 일부다. 그러나 국가 또는 국가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단순논리로 치닫는다면 실다운 적공이 아닌 관념의 유희로 빠질 위험이 크다. 매사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 타령’도 마찬가지다. 국가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있으며 현시점에서 그러한 것들이 온전한 통일국가의 부재라든가 자유주의보다 더 낡은 ‘봉건적’ 요소8) 따위와 어떻게 결합해서 작용하고 있는가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곧 세월호’라는 등식도 안이한 단순화다. 물론 대한민국이 세월호를 얼마나 닮았는가에 대한 처절한 인식은 긴요하다. 예컨대 소설가 박민규(朴珉奎)가 우리의 처지를 ‘내릴 수 없는 배’를 탄 공동운명으로 규정하면서 세월호와의 닮은 꼴들을 지적한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일본이 삼십육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군정을 통해 배의 평형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맡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벨로스터 밸브의 한쪽을 아예 비웠다. 평행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이 기울기는//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한 것이었다. (…)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그리고 어느 날//마치 이 배를 닮은 한척의 배가 침몰했다.”9)

작가의 이런 통찰에 공감할수록 우리는 두 선박의 닮음과 다름을 한층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이 나라가 원래 어떤 나라이고 어떤 역사를 전개해왔는가, 그나마 좀 나아진 게 이건가, 아니면 이보다는 나았는데 어느 시기부터 더 나빠져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등을 따져야 한다. 그러한 인식을 위해 일단 87년 이후로 국한해서 종전의 대전환 시도로 어떤 것이 있었고 어떤 궤적을 보여주었는지를 검토해보자.

 

1987년 이후 전환의 시도들

박민규의 말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는 하지만, 그나마 큰 폭의 수리를 하고 전환을 이룩한 것은 19876월항쟁을 통해서였다. 앞선 4·19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고 5·18항쟁이 유혈진압을 당한 데 비해 이때의 전환은 ‘87년체제’라 불릴 정도로 지속성을 갖고 정착했다.

어쩌면 대전환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뒤의 첫 선거에서 제5공화국의 핵심인사였던 노태우(盧泰愚) 후보가 당선되었고 다음 대선에서는 3당합당을 통해 여권에 합류한 김영삼(金泳三) 후보가 선출되었음에도 87년체제가 출범하고 진행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들 대통령의 개인적 체질이나 그 지지세력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두 정권 모두 87년이 이룩한 대전환의 물결을 타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상당부분 수행했던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김대중(金大中)과 노무현(盧武鉉)의 ‘민주정부’만이 민주화를 수행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나쁜 의미의 ‘진영논리’다. 나아가, 노태우·김영삼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시대’와 이명박(李明博) 이래로 민주당정권 10년을 부정하는 선을 넘어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 쓰는 ‘반동(〓역행)의 시대’를 식별할 기준을 스스로 내던져버리는 오류이기도 하다.

1998년 김대중정부 탄생에 이르러 87년의 민심이 요구했던 대전환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시기를 한국 신자유주의의 출범기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당시로는 IMF(국제통화기금)관리를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였고 그 과정에서 IMF가 요구하는 각종 조치들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김대중정부가 수용한 IMF 요구에는 관치금융의 개혁처럼 실제로 필요한 구자유주의적 개혁도 포함되었음을 간과하는 논리다. 실은 그렇게 하고도 한국사회의 ‘봉건적’ 이권경제를 청산하는 데 미흡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오히려 가중된 면도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주된 타격목표인 사회복지가 한국에서는 그나마 확대된 것이 이때였다. 물론 최소한의 복지는 신자유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김대중정부의 복지확대는 신자유주의에 맞춘 ‘최소한’이라기보다 박정희(朴正熙)시대에 시작한 몇가지 초보적 조치 외에 워낙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출발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지 싶다.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의 논의에서 곧잘 간과되는 또 한가지는 김대중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와 연결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2008년의 경제위기에 대응한 방식과 너무도 대조적인데, 김대중정부는 동독멸망 이후 김영삼정부 아래서 부풀었던 흡수통일의 헛꿈을 접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엶으로써 공안통치의 명분과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10) 이로써 87년체제의 성립과 더불어 흔들리던 분단체제는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내다볼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

하지만 87년체제를 넘어서는 대전환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또한 분명하다. 원래 분단체제는 남북관계뿐 아니라 남북 각기의 내부조건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등이 맞물린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에 그 모든 방면에서 진전이 (문자 그대로 동시적일 필요는 없지만) 종합적으로 이루어지 않고서는 극복 단계로 들어설 수 없다. 그런데 6·15 이후 미국의 부시행정부 등장으로 남북관계에 발목이 잡혔고 국내에서도 DJP연합의 붕괴 등 수구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전진을 계속했고 이에 따라 수구·보수동맹의 응집력이 약화되는 면도 엿보였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이른바 4대부문(기업·금융·노동·공공) 개혁이 추진되었는데 집권세력이 이들 개혁을 좀더 내실있게 마무리할 공력을 갖추었더라면 87년체제 극복에 한결 근접했을 것이다.

이렇듯 고르지 못한 개혁성과와 구시대 정치의 폐습에 물든 집권세력의 부패사건 등으로 민주화세력의 재집권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87년체제의 동력을 그런대로 보존하고 확대한 실적이 있었고 시대전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뜨거웠기에 ‘참여정부’의 탄생이 가능했다. (물론 노무현 후보의 담대한 개인기도 한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3김시대를 청산하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새 정부의 의제들은 대부분 김대중정부에 비해 발본적인 성격이었다. 다만 적공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한참 부족함이 드러났고,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2006년 지방선거 참패가 상징하듯 소기의 대전환에 실패하고 말았다.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은 이때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선거참패의 뿌리는 대통령 자신에 의한 여당분열 등에서 이미 심어졌고, 2005년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과 9·19공동성명을 성사시킨 외교성과로 마련된 동력은 ‘대연정’ 제의라는 엉뚱한 몸짓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는 97년 금융위기 이래로 빈곤을 벗어나본 일이 없는 서민층과 그동안 정권밖에는 잃은 것이 없었던 기득권세력 간에 일종의 ‘국민연대’가 형성되었고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다. 이로써 87년체제의 말기적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지만, “이명박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이런 혼란을 처음으로 일으켰다는 것이 아니라,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이명박씨의 약속이 애당초 실현성도 없고 시대정신에도 어긋나는 발상이었던데다가, 실제로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을 더욱 연장하고 그 혼란상을 ‘재앙’ 수준으로 확대했다는 점”(『만들기』 51면)이다.

국민은 그런 양면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한편으로 MB정부 이후의 진정한 전환을 갈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적공 부족의 야권을 신임하기보다 공력이 더 있어 보이고 실제로 선거운동 능력이 탁월한 여당 후보의 시대교체 약속을 선호하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결국 이것이 또 한차례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을 더욱 연장하고 그 혼란상을 ‘재앙’ 수준으로 확대”하는 오판이었고 ‘눈먼 자들의 국가’를 지속시킨 ‘눈먼’ 선택이었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명백해지는 것 같다.

 

결손국가: 간추린 역사

이제 87년 이전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는 대한민국이 원래 어떤 나라였으며 지금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되새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분단체제론에 따르면 대한민국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그렇지만) 분단되지 않은 나라들과 달리 분단체제라는 중간항의 매개를 거쳐서야 근대세계의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에 참여하는 변칙적인 단위다. 여기에 결손국가라는 용어를 쓰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비()애국(내지 종북) 행위라고 분개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에 어느정도 보편화된 인식이었다.11) 아니, 지금도 대한민국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지켜지지 않는(따라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선에 중대한 공백이 있는) 결손상태를 겪고 있다(『만들기』, 제7장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분단체제」 144~45면).

결손국가불량국가는 별개의 개념이다. 결손가정이 반드시 불량가정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내가 보건대 4·19혁명 이전의 대한민국은 결손국가인 동시에 불량국가였다. 단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독재를 해서가 아니라, 그 정권이 독재정권으로서도 무능하고 지리멸렬한 정권이었으며 이 시기의 대한민국 자체가 국가세입의 큰 부분을 미국원조에 의존하면서 국가운영도 미국 고문관들의 현장개입에 좌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박정희시대에 대한 나의 평가는 좀 다르다.12) 5·16은 민주헌정을 파괴한 군사정변임이 분명하고 박정희는 1972년의 두번째 쿠데타를 통해 이승만보다 훨씬 엄혹한 독재로 치달았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자유당정권에 대한 4·19의 단죄를 5·16이 계승한 면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4·19 이전에 박정희 소장 스스로 반이승만 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군대복귀 약속을 뒤집기는 했지만, 1963년에 헌정이 복원된 상태에서 직접선거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며 선거기간에 ‘색깔공세’를 편 것은 오히려 윤보선(尹潽善) 후보였다. 물론 제3공화국 아래서도 인권탄압과 용공조작 등 불량정치가 자행되었지만, 유신선포 이후와는 다른 수준이었고, 경제발전과 통치체계 정비 등으로 대한민국이 불량국가의 티를 어느정도 벗어난 것은 이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박정희시대 및 박정희 나름의 이러한 업적을 오히려 흐려가면서 박정희와 이승만을 한 묶음으로 찬미하는 경향은 박정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대, 길게 잡아도 이른바 뉴라이트가 대두하던 시기의 특징적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획기적 개량은 물론 6월항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87년체제라는 한결 나아진 사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때도 결손국가의 결손상태에 대한 ‘근본적인 수리’는 행해지지 않았다. 이처럼 개량은 되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체제가 제때에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지 못하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아래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불량국가의 면모가 다시 두드러지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도대체 이것이 나라냐’라는 물음이 퍼진 것은 국민이 이를 실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을 짧게 요약한다면 세마디가 될 것이다. 첫째, 원래 별로 나라답지 못하던 나라를 국민이 피 흘리고 땀 흘려 한결 살 만하게 만들어놨다. 둘째, 그것이 근년에 와서 도로 망가진 면이 많아졌다. 셋째, 그래도 아직 더 망가질 여지가 충분히 있는 나라다.

따라서 이제는 바닥을 쳤다고 안도할 일도 아니고 구제불능이라고 절망할 일도 아닌 것이다.

 

 

4. ‘3대위기’ 재론

 

이명박정부 첫해를 거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 중산층과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3대 위기를 경고했다. 이를 두고 ‘보수정권’에 대한 ‘진보’ 쪽의 파당적 비판이었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이명박정부가 노태우, 김영삼 정부 같은 ‘보수정부’라기보다 87년체제의 큰 흐름을 되돌리는 ‘반동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간파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불행히도 그의 경고는 적중했다. 게다가 이른바 ‘4대강살리기사업’에 의한 전대미문의 국토파괴라는 제4의 위기도 겹쳤다. 박근혜정부에 들어와서 이들 위기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또는 도리어 가중되고 있는지를 냉정히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적공의 일부라 생각된다. 그러한 현실진단과 함께 우리의 대응책에서 단기·중기·장기 과제를 배합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살펴볼까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진영논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박근혜정부 2년차를 통과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진단이다. 공정한 법집행과 국민의 기본권 존중 등 민주주의의 초보적인 원칙마저 날로 훼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중에 누가 더 잘못하고 있느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 5년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 훼손이 한껏 진행된 결과를 딛고 출발했기에 앞선 정부보다 한결 수월하게 반민주적 행태를 자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러한 행태를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그보다는 87년체제가 이룩한 불충분한 민주주의마저 이곳저곳에서 역전되는 현실인데도 어째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한국정치에서 작동하지 못하는가를 살펴봄직하다. 이 구도가 힘을 잃은 지는 오래며, 오히려 야당에 ‘독약’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민주당이 수십년째 신봉해오고 있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신념이자 구호는 민주당에 ‘독약’이 되고 있다. 설사 이런 이분법 구도에서 민주 쪽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민주당을 지지하면 ‘민주’요 반대편을 지지하면 ‘반민주’라는 도식은 시대착오적인 정도를 넘어 속된 말로 ‘찌질’하다고 생각한다.”13)

강준만(康俊晩) 교수 자신도 예의 대립구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구도가 통하는 경우에조차 민주당 지지가 곧 ‘민주’라는 발상은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자기만족적 발상에서 온갖 ‘싸가지 없는’ 행태가 나와서 선거에서의 잇따른 패배를 자초한다는 것이다. 이는 야당 집권전략의 치명적 약점을 찌른 말이다. 다만 예절과 ‘싸가지’의 문제로 접근해서 해결책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강교수도 지적하듯이 싸가지 없는 행태는 상당부분 잘못된 구도에서 파생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잘못된 구도이며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더 정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선거패배에 오히려 기여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 잘못 설정된 구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여당인사들이 곧잘 주장하듯이 우리가 민주화를 벌써 이루었으므로 이제는 오로지 ‘민생’을 챙길 일만 남았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 대 반민주’의 내용이 ‘독재타도 대 독재유지’에서 ‘민주화의 새로운 진전 대 민주주의 퇴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에 해당하는 세력도 과거의 반독재운동가들이나 반독재투쟁 전통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야당들과 동일시할 수 없고, ‘민주’의 방법 또한 훨씬 다양하고 유연하며 ‘싸가지’가 있어야 하게 되었다. ‘민주’의 그러한 재정의와 재편(및 확장)이 없이는 ‘정쟁 대 민생’이라는 기만적 프레임 앞에서 번번이 패퇴하기 마련이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호응을 못 받는 또하나의 이유는 국민이 일체의 ‘편가르기’ 또는 ‘진영논리’에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까닭에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하는 정치인보다 아무런 적공도 전환의지도 없이 ‘사회대통합’, ‘100% 국민통합’ 따위를 호언하는 정치인이 득세하기 일쑤다. 2007년의 이명박 후보가 그랬고 2012년의 박근혜 후보가 그랬으며, 민주세력이 ‘반민주’의 문제를 달리 제기하는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그런 거짓 공약으로 당선되어 사회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이런 경우야말로 단기·중기·장기 과제를 정확히 식별해서 슬기롭게 배합하는 일이 절실한 예다.

먼저, ‘100% 국민통합’은 허상일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다. 아주 장기적인 비전으로는 (대한민국이나 한민족이 아닌) 인류사회의 조화로운 삶, 그런 의미로 100%는 아니지만 꽤 높은 수준의 통합을 꿈꿀 수 있다. 이는 여러가지 여건을 감안한 종합적이고 원대한 설계를 요하는바, 정치인도 자기 나름의 원대한 꿈을 갖고 한국사회의 일정한 사회통합을 제창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존 87년체제, 특히 그 말기국면에서 그것을 당장 실행하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통합은 새로운 대전환을 수반할 중기적 과제로 설정하는 것만이 정직하고 현실적인 길이다. 『만들기』에서 사회통합을 우리 사회의 절실한 현안으로 제기하면서도 본격적 통합은 당장에 실현할 과제라기보다 ‘2013년체제의 숙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것도 그런 뜻이다(73~75면). 하지만 그러다보면 사회통합에 반대하고 권력쟁취에 급급한 싸움꾼으로 몰리는 난관에 부닥친다. 말하자면 일종의 진영대결에서 이겨야 비로소 통합의 숙제를 풀 수 있는데, 그 싸움이 ‘진영논리’에 빠진 싸움이 아니며 추진자들이 “싸우기만 하고 선거에서 이길 생각만 하는 집단이 아니라 통합을 능히 이룩할 세력임을 미리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14)

실제로 우리 사회의 ‘진영’ 문제는 정말 제대로 따져볼 문제다. 오늘날 진영논리가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 진영이랄 것이 없기 때문이라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착각이다. 결손국가이자 분단체제의 일환인 한국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들이 보여주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구도가 성립되기 이전의 상태인 대신에, 분단체제의 수구적 기득권세력이 상당수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마저 포섭해서 막강한 성채를 구축하고 있는 특이한 현실이다. 그 정치적 집결체인 새누리당은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과반수 등 선출직은 물론, 관료와 군부, 검찰과 사법부 등의 비선출 권력기구와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법조계, 학계 등 사회의 유리한 고지를 대부분 선점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이 단순한 국내세력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자본과 직접 연계된 대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심지어 학계처럼 객관적인 진리탐구를 표방하는 영역에서도 미국의 주류 학계와 그들이 전파하는 각종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이는 연구비나 출세기회에 매달려 학자의 양심을 파는 (결코 드물지 않은) 행태와도 또다른 문제로서, 이런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응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적공·전환의 중요한 일부다.

여기서 ‘극우세력’ 문제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구·보수동맹이, 수구세력이 진성 보수주의자들마저 포섭한 거대 카르텔이라고 할 때, ‘수구’는 이념상의 ‘극우’와 구별되어야 한다. 수구세력 대다수는 이념을 초월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골몰한 인사들이지, 극우 이념의 신봉자는 소수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는 극심한 이념대립이 극우분자에 대한 기득권층의 의존도를 높였고, 87년체제의 말기국면에 이르러 수구세력이 색깔공세 말고는 기득권수호의 명분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극우가 ‘장사가 되는’ 세월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에 이념적 극우 이외에 생계형 또는 출세지향형 극우마저 창궐하게 되었다.15)

그렇다면 이에 맞설 진영을 어디서 찾을까?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이 수구·극우·보수 동맹의 거대진영에 맞서 11의 ‘진영대립’을 구성할 만한 다른 진영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저 막강한 성채에 균열이라도 일으키라고 국민이 차려준 진지 몇개가 여기저기 있는 정도다. 그런 지형에서 진지조차 없는 대중이 광장이나 SNS(쏘셜네트워크써비스)에 모여 이따금씩 함성을 지르고 때로는 개인이나 사회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이 마치 자기네도 하나의 진영을 갖춘 듯이 편가르기로 나서서는 국민의 빈축을 사기 십상이며, ‘진영논리를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룩하자’는 기득권진영의 그럴듯한 구호 앞에 깨지기 마련이다. 더 나쁘게 보면, 그나마 진지를 보유한 처지에 안주하여 싸움을 피하거나 건성으로 싸우는 국민배신 행위가 된다. ‘민주당도 기득권화되었다’는 말이 파다한 것도 그 때문인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 이런 비판을 상쇄해줄 최대의 무기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인 것이다. 다만 야당의 ‘기득권화’를 두고 그들이 곧 성채 안으로 들어가 수구세력과 공동지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 또한 착각이다. 어디까지나 성채 언저리의 부차적 기득권집단이요, 그런 집단으로서의 알량한 기득권을 대단한 것인 양 생각하는 딱한 인사들이 너무 흔한 것이다.

1야당 말고도 싸움을 제대로 못해서더러는 싸우지 말아야 할 때와 장소를 골라 싸움을 걺으로써수구세력을 오히려 돕는 사례가 많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노조들이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삶에 무관심한 채 자기네 기득권 지키기 싸움(및 담합)에 열중한다든가, 과격한 단순논리로 무장한 일부 ‘진보정당’ 또는 ‘진보논객’들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수구보수진영의 지배를 오히려 거들어주는 경우가 그런 예일 것이다.16) 다만 이 경우에도 거대한 진영을 갖춘 정통 수구세력과 이들을 동일시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결과적으로 수구적인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적절한 대응이 요구되는데, 이때 수구·보수동맹 외에는 따로 진영이랄 것도 없게 된 분단한국 특유의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요구된다. 과격하고 편협한 진보가 도리어 보수의 헤게모니 연장에 일조하는 사태는 물론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를 각기 표방하는 남북의 지배세력이 대결하는 가운데 내부 지배력을 서로 강화해주는 묘한 공생관계가 작용하는데다 남쪽에서는 진보주의가 북한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분열하면서 각기 단순논리로 치닫는 경향이 발생했다. 곧, 한편으로 북측 정권도 분단체제의 일익이라는 인식이 결여된 채 그들이 표방하는 자주통일노선을 진보의 최고 척도로 보는 ‘민족해방’의 논리가 있는가 하면, 북측의 현실이 같은 분단체제 속에 사는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없이 그 반민주·반민중적 면모를 강조하고 분단 안된 선진국들의 ‘좌파적’ 의제에 몰두하는 또다른 단순논리가 성행한다. 그리하여 둘다 ‘의도와 달리’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을 굳혀주는 ‘수구적’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런 통찰이 거대야당과 군소야당, 진보운동 들의 다양한 자살골을 느긋하게 즐기며 그때그때 유도하기도 하는 진짜 수구진영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흐려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남한 현실의 파악에서 세계적인 시각과 더불어 한반도적 시각이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 싸움에서 단기적 과제와 중기적 과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할 예로 최근 부쩍 눈길을 끄는 개헌문제를 들 수 있다. 87년 헌법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개정하는 일이 87년체제 극복의 중요한 일부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 2016년 총선을 통해 ‘87년체제 이후’로의 전환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확인되었을 때나 실현 가능한 과제로, 지금 상황에서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87년체제 최대의 기득권집단 가운데 하나인 국회의원들끼리 추진하는 개헌이라면 기득권자들의 담합 이상이 되기 어렵다. 현행 헌법 아래서도 가능하고, 헌법개정을 할 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선거제도 개혁은 외면한 채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개헌을 하자는 발상이 바로 그렇다. 그것보다는 승자독식제 완화와 대통령의 임의적 인사권 행사 견제, 국회 개혁, 지방분권 강화 등에서 당장에도 가능한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러면서 한층 민주적인 권력구조를 향한 여러 방안을 공론화하여 2016년 총선 이후에 제대로 된 헌법개정을 한다는 중기적 목표를 세우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17) 반면에 중기적 과제로서의 개헌을 지금 논의하는 것조차 대통령이 방해하는 것 또한 ‘제왕적’(또는 ‘제왕 지망적’) 작태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밖에 안된다.

요약하자면 ‘더 좋은 대의정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작업이 중기적 목표가 되고, 그동안 진행된 민주주의의 역전을 저지하며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낼 기회를 잡는 일이 단기적 목표가 되는 셈이다. 효율적인 싸움을 위해 단기·중기 목표의 식별과 적절한 배합이 필요함을 강조했는데, 덧붙일 점은 장기적 목표를 올바로 설정하고 이를 중·단기 과제와 결합하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상적인 대의민주주의가 최종적인 목표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발본적인 ‘민()의 자치’, 곧 전지구적 차원의 전면적 주민자치를 지향할지를 숙고할 일이다.

이것이 절박한 싸움터에 공연히 원대한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한가한 짓거리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을 최고의 지향점으로 잡느냐에 따라 단기적으로 벌어지는 여러 노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예컨대 지방자치의 실질화를 위한 각종 풀뿌리 운동은 ‘민의 자치’가 이상적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재(補完財)라기보다 인류가 공유할 꿈이라고 할 때 더욱 힘을 얻게 마련이다.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이나 제주도 강정마을의 주민운동도 국가권력에 대한 일부 주민의 과도한 반발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다만 ‘이상적인 대의정치’보다 ‘민의 자치’가 왜 더 바람직한지, 바람직하더라도 어떻게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세계체제 차원의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지 등에 대한 독실한 연마가 뒷받침해야만 한다. 그럴 때 ‘주민참여의 상대적 확대’와 ‘더 나은 대의정치 구현’이라는 중기적 목표와의 한층 착실한 결합도 가능해질 것이다.18)

 

민생의 위기와 ‘민생 프레임’

박근혜 후보가 애시당초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데 비해 민생위기 해결과 ‘경제민주화’는 그의 핵심 선거공약이었다. 그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고한 ‘중산층과 서민경제의 위기’가 이명박시대에 심각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취임 이후 그의 잇따른 공약파기 탓도 있지만, 어쨌든 서민경제가 나아진 조짐은 없고 이명박 식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수출전망을 포함한 한국경제의 전체적 위기를 염려하는 목소리마저 들리게 되었다. 이 경우에도 딱히 박근혜 개인이 이명박보다 더 반민생적이어서라기보다 전환이 이루어질 시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현상유지가 아닌 사태악화가 도래한다는 교훈에 해당할 것이다.

경제와 복지정책의 문외한인 나로서 그 문제들을 자세히 거론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본고의 논지대로 민생의 위기가 다른 위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관됨을 인식하며 장··단기 목표를 배합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지역 및 지구 전체를 동시에 생각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치중하고자 한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포기가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경시와 역행에 밀접히 연관됨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민의와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정부라면 이처럼 공공연하고 일방적으로 경제정책을 바꾸면서 ‘믿거나 말거나’ 식의 둘러대기로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19) 민생의 악화는 남북관계의 위기와도 직결된바, 남북경협과 유라시아대륙으로의 진출이라는 한국경제 고유의 가능성이 대북강경노선(내지 관리능력 부재)에 여전히 막혀 있고 5·24조치의 자해(自害)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한국경제의 현황은 한반도 차원뿐 아니라 동아시아지역, 나아가 세계경제 차원과 직결되어 있다. 세계경제의 파급효과는 정부 당국도 서민경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변호하는 논리로 곧잘 들먹이곤 한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점마저 무시한 채 매사를 정부 책임으로 돌린다든가 경제는 제쳐두고 민주주의만 외쳐대서는 ‘민생을 외면한 정쟁’이라는 역공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어디까지가 세계적 불황 탓이고 어디까지가 예컨대 중국의 성장둔화(또는 기술경쟁력 강화) 탓이며 어디서부터는 그런 세계적·지역적 여건 속에서도 정부와 기업 및 여타 경제주체들이 능히 타개할 수 있는 것조차 못하는 탓인지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나아가 타개를 위한 중기적 전략을 세우면서 장기적으로는 어떤 경제생활, 어떤 지구적 경제를 지향할지를 아울러 연마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경제성장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현존 세계체제에 대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수행이 요구하는 만큼의 적당한 성장, 그런 의미에서 공격적이라기보다 방어적인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야”20)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전문성을 갖춘 분들에 의한 진지한 토론이 있기 바란다. 다만 성장을 위해 전력투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처음부터 ‘적당한 성장’을 겨냥해서 무엇이 되겠느냐는 반론이라면, 정신없이 전력투구만 해대는 것이 장기적으로 허망한 전략일 뿐 아니라 중·단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도 불리함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물질적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서도 발본적이면서 복합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빈부의 양극화는 단기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 등 심각한 민생문제를 낳을 뿐 아니라 내수경제의 둔화 등 경제성장에도 역효과를 내고 각종 사회비용을 증대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같이 비교적 성공적인 경제를 이룩한 지역국가들과 여전히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라면, 중기적으로 한국이 국내정책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세에 순응하는 길을 택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도대체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체제인지, 적어도 일정정도 이상의 빈부격차가 있어야 작동하는 그 체제가 자신의 붕괴를 피할 만한 수준에 빈부격차를 묶어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21) 만약에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대안사회를 지향하고 설계할지 등의 장기적 과제에 마주치게 된다.

길게 봐서 균등사회가 이상(理想)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가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더라도 만족스러운 문명사회가 될 것인가 등은 쉽게 답할 질문이 아니다. 나는 물질적 평등이야말로 온전한 민주주의와 인간 개개인의 자기발전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민중이 스스로 다스리는 대안적 질서 내지 ‘체계’에 대한 경륜”22)이 마련되지 않고는 평등을 위한 싸움이 성공하기 어려움을 역설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이러한 장기 전망과 경륜을 갖는 것이 중·단기적 과제의 수행에도 도움이 됨을 강조하고자 한다. 원대한 장기적 과제로 가는 길의 멀고 복잡함을 인식할수록 중·단기 싸움에서 더 슬기로워질 수 있다. 섣불리 ‘무조건 평등’을 외쳐대거나 일국 차원의 평등사회 실현을 내걸 때 당장에 먹고사는 일이 급한 대중의 외면을 받고 기득권진영의 ‘민생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와 자주, 평화, 통일

이명박정부가 조성한 위기를 박근혜정부가 개선할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볼 만한 대목이 남북관계다. 아직까지는 레토릭의 풍성함에 비해 이룬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상대적으로 잘하던 분야에서 거의 급전직하의 퇴행을 보이고 드디어 5·24조치라는 초헌법적 조치로 노태우정부 이래 20여년의 흐름을 뒤집은 채 나머지 임기 2년반을 허송세월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따라서 후임자가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더 악화시킬 여지도 많지 않고 더이상의 악화는 주변 강대국들도 심려하는 바가 되었다. 약간의 개선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형국이다.

그런데도 아직껏 진전이 없는 것을 정부나 여당은 북측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고, 또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북측 책임론이 여론에 쉽게 먹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남한에서 반민주적 정치가 위세를 떨치면서 유독 남북관계만 획기적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분단체제론의 오랜 주장이다.23)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커녕 제대로 복원이라도 해주기를 기대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낫다. 다만 북한 때리기로 여론지지도를 높이는 방식도 다분히 심드렁해졌고 무엇보다 남북경협이 없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인식이 기득권세력 내부에도 퍼진 만큼 다소간의 개선은 여전히 가능할지 모른다.

이때 국내 민주주의와 별도로민주주의와 결코 무관하진 않지만또하나의 문제가 있다. 남북문제를 국가간의 관계로 다루건 통일을 전제한 특수관계로 접근하건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필요한데, 이 대목에서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보다 더욱 한심한 선택을 한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미국과 2012년으로 합의했던 전시작전권 환수를 이명박정부가 한차례 연기했는데 박근혜정부는 이를 거의 무기한으로 연기하는 새 결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공약파기라는 비난이 이는 건 당연하지만, 공약파기 차원에 국한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좋건 싫건 국가가 있는 한은 주권이 있어야 하고 국가의 주권에는 유사시 자기 군대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핵심적인데, 그러한 군사주권이 회복되기로 예정되었던 것을 국회 및 국민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번복한 것은 6·25전쟁의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준 것보다도 더욱 심각한 주권양도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24) 이제 한국은 남북간 협상테이블이나 6자회담에 나가서도 온전한 당국자로 행위하기 어렵게 되었고, 더 큰 문제는 온전한 행위자가 될 의지조차 없는 군부에 대해 문민정치가 별다른 통제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성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태부족인 실정 또한 분단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알려졌다시피 ‘자주’는 북측 체제의 최대 자랑거리이고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을 당장의 실행목표로 내거는 일부 통일운동세력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요되었기에 분단체제가 본질상 비자주적인 체제인 이상, 한쪽은 자주의 표상인데 다른 쪽은 민족해방을 기다리는 식민지라 보는 것은 분단체제의 복잡성을 간과한 논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 군통수권을 자국 지도자가 보유함은 물론 외국군의 주둔도 없고 외교·군사정책에 대한 타국의 간섭이 잘 안 먹힌다는 점에서 ‘자주노선’을 자랑할 만은 하다. 그러나 자주성의 개념을 넓게 잡아서, “개인이건 집단이건 진실로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남들의 간섭 없이 성취할 수 있는 상태가 자주라고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주민들이야말로 오늘날 (누구의 잘못 때문이든) 매우 심각한 자주성의 제약을 겪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25) 또한 ‘자주통일’은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제1항에 거듭 천명된 원칙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세에 의존한 통일을 하지 말자는 원칙적 선언이요 구체적인 통일방안 합의는 6·15선언 제2항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선언적 조항을 구체적 방안인 듯 내두르는 것은 점진적·단계적인 ‘한반도식 통일’을 추진할 의지나 경륜의 부족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자주성 자체를 ‘친북적’ 의제로 보는 정서마저 낳게 되었다. 하지만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및 통일을 논할 때 빼놓지 못할 주제로 되살려야 할 의제가 자주성이다.

실은 통일문제 자체가 근년의 선거에서 특별한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세력이 그것을 국민의 생활문제와 밀착된 현안으로 제시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26)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선거에서 어떻게 유권자를 설득하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중기적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그렇게 할 때 국민이 통일에 무관심하니 ‘통일’보다 ‘평화’로 승부를 걸자는, 선거전략으로도 ‘도망가는 피칭’에 해당하고 이론적으로도 허술한 주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27)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역시 통일보다 평화다. 단순한 전쟁부재가 아니라 인류가 고르게 화합해서 잘사는 상태로서의 평화이며, 그때는 국가도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는 사라질 터라 ‘국가의 자주성’도 중·단기적 목표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리로 가기 전에 한반도 주민과 한민족은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중기 과제를 먼저 수행해야 한다.28) 이를 위해 당장에 가능한 남북관계 개선작업과 자주·평화 통일과정의 진전을 도모하고 장··단기 과제의 적절한 배합을 이루어내야 함은 물론이다. 『만들기』에서 ‘포용정책2.0’을 제의하는 등 이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논했으므로 본고에서는 줄이기로 한다.

 

 

5. ‘더 기본적인 것들’

 

상식, 교양, 양심, 염치... 그리고 교육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에서도 나는 정치나 경제 문제보다 ‘더 기본적인 것들’에 주목했다.

 

그런데 2013년체제의 설계에는 남북연합이니 복지국가니 동아시아공동체니 하는 거창한 기획보다 훨씬 기본적이고 어쩌면 초보적이랄 수 있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기본이 되는 것들을 되살리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지도적 정치인들이 너무 터무니없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론 정치인이 모두 성인군자가 되라거나 국정운영을 완벽하게 공개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자주 너무 뻔한 거짓말을 한다거나 너무 쉽게 말을 바꿔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고 정상적인 언어생활마저 위협받게 된다.(27면)

크게 보면 이 모든 것이 상식과 교양 및 인간적 염치의 회복이라는 문제로 돌아온다.(31면)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는 그가 적어도 이런 기본, 곧 개인적 정직성과 교양을 어느정도 갖춘 후보라는 이미지가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말바꾸기를 해대는 사태가 잇따랐고, ‘거짓말을 않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거짓말을 일삼는 장사꾼’의 이미지보다 국민기만에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 면마저 있다. 게다가 뻔히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고위공직자들을 곁에 두고 감쌈으로써 힘있는 자는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성질임이 분명하지만,29) 대통령이 어떤 행태를 보이고 그의 치하에서 어떤 사람들이 득세하느냐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을 무자비하게 모욕하고 조롱하는 정치권 안팎의 수많은 행태가 실증하듯이, 요즘처럼 몰염치한 인간들이 자신의 몰염치를 뻔뻔하게 과시하는 시절은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독재시대에는 훨씬 강력한 물리적 타격과 강압이 자행되었지만 그래도 대다수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정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다음 대통령선거를 잘 치르는 일에 지금부터 몰입하는 정치중독증, 선거중독증은 이런 사회풍조를 키우는 요인이 될 뿐이다. 진은영(陳恩英)이 말한 “선거로만 수렴되지 않는 정치적 활동”의 일상화를 포함해서 더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대응을 연마해야 한다. 이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언론이나 시민운동을 생각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교육과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지 싶다.

그중에서도 학교교육은 국가의 막대한 재정투여가 이루어지는 분야고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나라의 장래를 설계함에 있어 포괄적이면서도 정교한 교육구상이 필수적이다. 뛰어난 인재 배출을 최종적으로 좌우하기로는 훌륭한 대학의 존재가 결정적이지만, ‘기본적인 것’을 생각하는 마당인 만큼 초·중등교육을 중심으로 생각해볼까 한다.

그동안 여야가 모두 이렇다 할 비전을 내놓은 바 없는 것이 교육분야이므로 학교교육 정상화의 획기적 방안이 나올 때 선거승리의 중대 변수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2013년체제론에서도 표명했었다(『만들기』 84~85면). 물론 어느 후보도 2012년 선거에서 그런 방안을 내놓지 않았고 교육이 중요 쟁점이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됨으로써 이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조짐이다. 교육영역에서는 유권자가 정치권의 여야대립과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교육이야말로 풀뿌리 민생문제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앞으로 3년여에 걸친 교육감들의 실험과 행적이 교육의제의 정리와 구체화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예컨대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한 여중생들의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는 절규가 일부 교육청에서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내 자식이 밥 좀 덜 먹고 잠 좀 덜 자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꼴을 봐야겠다는 학부모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등교시간 늦추기에 대한 찬반을 이렇게만 정리할 수 있다는 건 아니고, 우리 교육현실에서 학생들의 복지와 다수 학부모들이 대표하는 현행 교육이데올로기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교육감과 교육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 좋은 중앙정부에 좋은 교육부 수장이 나서야 가능한 일, 그리고 온 사회가 힘을 모아서 장기적으로 추구할 일 들을 식별하고 한층 치밀하게 추구하는 작업이 가능해진 형국이다. 2017년 대선에서야말로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명제가 성립할지 모른다.30)

교육현실의 세부적 점검과 의제의 구체화 작업은 경험과 식견을 갖춘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의제설정에서 단기·중기·장기 과제들의 정확한 식별과 적절한 배합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예컨대 전교조와 일부 진보적 교육운동단체가 제시하는 ‘평등교육’의 이념도 상이한 시간대에 맞춰 검증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 단기적 의의는 점점 더 기득권층 위주의 경쟁으로 일그러져가는 교육현실을 반대하는 명분일 텐데, 그 효과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념편중의 떼쓰기라는 반박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번 교육감선거에서 전교조 출신 후보들조차 ‘평등교육’ 대신 ‘혁신교육’을 표방했다.) 중기적으로는 예컨대 핀란드처럼 한국보다 훨씬 평등하면서도 학습 성취도가 높은 교육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될 수 있고 이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 주장이다. 다만 핀란드와 크게 다른 한국의 현실에 맞게 설계된 방안을 내놓는 숙제가 안겨진다.

‘더 기본적인 것’과 교육의 긴밀한 연관은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요즘 부쩍 다시 강조되는 데서도 엿보인다. 인성교육을 빌미로 민주시민교육을 약화시키려는 여당 일각의 움직임은 그들이 생각하는 인성의 수준을 짐작하게 할 뿐이려니와, 참된 인성의 문제가 도덕수업이나 교사에 의한 훈화로 해결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인문학자들이 곧잘 강조하는 인문학 독서도 온전한 답은 아닐 것 같다. 전통적으로 인격완성의 과정에서 인문학 고전의 독서를 가장 중시한 것이 유교지만, 유교에서도 예(禮)와 악()을 더욱 기본으로 보았고 고전학습의 출발이 된 『소학(小學)』을 통해 몸가짐을 바로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내 생각에 현대의 초·중등교육에서는 어린 시절 학교 와서 건강하고 즐겁게 뛰노는 경험이 기초를 이루며, 여기에 학생 각자의 소질과 취향에 맞는 예술교육, 적당한 분량의 노작교육(勞作敎育)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늘려가는 지식교육이 합세하되, 현재처럼 시험점수를 높이는 고정된 지식의 습득보다 인문적 독서가 한층 큰 비중을 갖는 게 옳다.

이만큼만 돼도 우리 사회는 큰 전환을 이루고 ‘기본’을 갖춘 인간들의 삶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특히 결손국가를 보정(補正)하는 분단체제극복 작업이 수반되지 않고 남한에서만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또한 ‘후천성 분단인식결핍증후군’31)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또한 역으로 분단체제극복의 과정 자체가 이런 적공과 전환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완전한 평등사회 속의 평등교육을 목표로 삼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당연한 자세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이 스스로 다스리는 온전한 민주사회에 과연 어떤 위계질서가 허용 또는 소요될지의 문제를 떠나서,32) 적어도 교육의 경우에는 무엇이든 더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덜 잘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수직적 관계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렇게 배우고 가르치는 내용에는, 일체의 물질적 또는 신분적 불평등이 배제된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의 편차를 인지하고 존중하는 습성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점에서 지금 같은 불평등교육이 당연히 극복되어야 하지만 평등 자체를 최선의 장기목표로 삼을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무튼 교육의제의 설정에서도 그런 여러 차원의 검토와 성찰을 거쳤으면 한다.

 

‘돈보다 생명’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큰 울림을 얻은 구호가 ‘돈보다 생명’이다. 여기에는 여러 종류의 욕구가 담겨 있는바, 그중 어느 하나만을 절대화해서는 구호의 호소력이 손상되기 쉽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신체적 생명의 안전이야말로 민주니 복지니 통일이니 하는 것에 앞선 ‘기본’에 해당한다는 깨달음이요 절규다. 이 기본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와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껏 별로 실효성이 감지되지 않는데, 실은 ‘안전’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답도 아니다. 안전사고는 줄일 수 있을지언정 근절되기 힘든 것이려니와, ‘생명’ 또한 아무리 목숨의 보존이 기본이라 해도 ‘모험’을 감내함으로써 생명다워지는 면을 지녔고 때로는 더 큰 뜻이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안전’이 아니라 ‘돈보다 생명’이다. 곧, 무의미한 생명손실을 초래하는 개인 및 기업의 탐욕에 대한 거부다. 그러나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무턱대고 죄악시할 일은 아니며,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온통 ‘신자유주의’로 돌리는 것도 ‘돈보다 생명’의 공감대를 오히려 축소하는 길이다. 세월호참사의 경우 기업가의 탐욕과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금전만능 풍조에 물든 사회의 타락과 책임회피가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뒤이어 공개된 윤일병 사건 등 참혹한 병영사건들이 신자유주의보다 해묵은 군사주의 문화의 소산이며, 세월호 문제를 외면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차라리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상기시키듯이, 신자유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분석할 때 동원할 여러 개념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의 비중이 한층 확연한 안전문제로는 빈번한 노동현장에서의 안전사고와 파업노동자들을 이른바 손배소가압류(손해배상소송에 따른 재산가압류) 따위로 압박하여 자살사건을 야기하는 사태를 들 수 있겠다.33) 또한 의료민영화에 따른 의료비 인상도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그러나 이들 경우에도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 효과적 투쟁이 가능할지는 재고할 일이다. 생명의 손실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안 가리고 참담하지만 근로현실은 정규직 여부에 따라 엄청 다른데, 모든 노동문제를 기업의 탐욕으로만 돌린다거나 비정규직의 근절을 외쳐대서는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의료문제도 현재의 진료관행과 의료체계, 나아가 현대의학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생략한 채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 의료의 공공성이라고 주장해서는 답이 나올 리 없다.

안전과 관련해서 특히 유념할 문제는 당장에 눈에 들어오는 사건사고들 외에, 서서히 임계점을 향해 가다가 한번 터지면 수습이 거의 불가능한 대형참사가 되는 원전사고에 대비하는 문제다. 그동안 원전 당국 및 관련업계가 보여준 무책임과 부정직성, ‘생명보다 돈’ 우선 사상 및 그로 인한 적폐는 사고의 개연성을 착실히 높여가고 있으며, 부산, 울산 등 대도시 인근의 원전 밀집구역에서 한번 사고가 터지면 일본의 후꾸시마 참사가 무색한 대참극이 벌어질 판이다. 이런 원전 문제야말로 단··장기 대책의 배합을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단기적인 일로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 노후 원전의 연장가동 금지, 삼척시처럼 주민반대가 뚜렷한 곳에서의 원전건설 저지 등이 있고, 조금 더 길게는 모든 원전의 신규건설을 포기하고 점차 원자력발전에서 탈피하는 일, 그리고 더욱 장기적으로는 인류사회가 생태친화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과제가 동시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생태친화적인 삶으로의 대전환에 원칙적인 합의라도 해낼 필요가 절실한 것은, 예컨대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재앙은 원전사고보다 더 먼 일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한번 임계점을 넘으면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행동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후변화의 실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알아내면서 앎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때그때 필요한 행동을 하는 지혜의 연마가 요구된다. 아울러 생명의 개념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비록 인간에게는 인간의 목숨이 우선이고 따라서 ‘인간중심적’인 각종 행위가 불가피할 수 있지만, 사람은 또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동운명인 측면이 있으며 실제로 모든 생명체가 동포이고 인간이 무생물의 은덕마저 입고서 생존한다는 사상이 절실해진다. ‘돈보다 생명’이라는 구호는 필경 이런 차원의 생명사상, 생태운동으로까지 전환해야 그 온전한 뜻이 살아날 것이다.

‘돈’의 문제도 결코 단순치 않다. 돈에 대한 욕망이 어디까지가 재화에 대한 생활인의 정당한 욕구고 어디부터가 ‘탐욕’에 해당하는지 구별이 쉽지 않다. 물론 자본의 무한 축적을 기본원리로 가동되는 사회체제는 ‘생명보다 돈’이라는 거꾸로 된 원리를 추구하는 체제임이 분명하지만,34)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 기왕 던져진 사람들은 그 원리를 무시하고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러기에 자본주의 근대세계에 적응하되 극복을 위해 적응하며 극복의 노력이 적응 노력과 합치하는 예의 ‘이중과제’가 긴요해지는 것이다.

 

성차별 철폐와 음양의 조화

앞서 노동현장에 만연된 사고 위험을 언급했지만, 요즘 가장 절박한 신변안전 문제 중 하나는 여성들이 마음놓고 길거리를 걸어다니기조차 힘든 현실이다. 심지어 어린아이와 초등학생마저도 강간과 성적 폭력에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살해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차별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는 동시에35) 성평등 문제의 특이한 성격을 암시하는 사례다. 이럴 때의 안전문제는 기업의 탐욕이나 개인의 물욕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차별의 내용도 다양하다. 성범죄 피해자의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 이외에 노동자에 대한 억압도 여성근로자 차별이 가중되어 이루어진다. 게다가 성과 관련된 차별은 딱히 남녀 양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적 정체성과 지향을 달리하는 여러 개인의 문제가 있고, 이성애자의 경우도 미혼모나 혼외 동거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 사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며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는 많은 연마와 적공을 요한다.

·단기적으로 상당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성평등사회의 실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남녀평등은 계몽주의의 중요한 유산이고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일부를 이루지만, 빈부격차를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는 그 본질상 성별과 인종, 지역 등 각종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전용함으로써 빈부격차를 유지하며 호도하는 체제이기에 자본주의 아래서 성차별주의의 폐기는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있다.36) 나아가 성차별은 자본주의 이전의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기에 계급철폐보다 훨씬 뒤에야 가능한 것이 성평등이라는 주장도 있다.

내가 특별한 연구도 없는 이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더 기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 특히 중요한 대목이라 믿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각종 차별의 철폐는 당연히 추구해야 하지만, 계급 자체의 철폐를 최종목표로 삼는 계급운동과 달리 성평등운동은 성별의 철폐를 목표로 삼을 수 없다. 또한 남녀의 결합 없이 따로 살자는 ‘분리주의’도 여성주의운동 일각을 넘어 보편화될 수 없다. 고등동물의 종족보존 과정에서는 암수의 결합이 필요하며(물론 예외가 있지만), 인간세계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이 경우 더욱 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충분히 배려해야겠지만남녀의 조화로운 관계가 막중한 비중을 차지한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곳의 삶이 그러한 조화로운 관계와 거리가 먼 것이 남녀간 권리의 차이, 또 이로 인한 실력의 차이, 다시 말해 대부분의 경우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 탓임을 인정한다면, 성평등사회의 추구라는 과제가 단기적 현안을 넘어서는 큰 일임이 분명하다. 다만 궁극적인 목표를 ‘성평등’에 둘지 ‘남녀의 조화로운 관계’에 둘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단기 및 중기 과제의 설정과 추진방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성평등을 지상목표로 삼을 때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차이’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기 십상이며, 자신의 성숙과 행복을 위해서도 여성해방에 기여해 마땅한 남자들을 설득하는 데도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녀’보다 ‘음양(陰陽)’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개념을 동원해보면 어떨까 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해온 전통사회가 가부장적 질서였던 것과 별도로, 태극(太極)의 음과 양은 지배·피지배가 없는 상보관계이며, 대체로 양이 승한 것이 남자요 음이 승한 것이 여자이긴 하지만 양쪽 각기 음양 두 면을 다 지녔고 음양의 조화를 통해서만 생명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따라서 성평등 자체보다 음양의 조화가 구현되는 사회를 지향점으로 삼을 때 음양의 조화를 저해하는 성차별에 대한 싸움을 당연히 포함하지만 평등이 해당되지 않는 대목에조차 평등을 고집할 우려가 줄어들며 조화를 증진할 방안을 남녀가 함께 추진할 여지도 넓어질 것이다.

음양조화의 개념을 진지하게 도입하다보면 인간세계를 뛰어넘는 훨씬 큰 문제에 가닿는다. 알다시피 음양(또는 음양오행)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질량과 운동 등 양적 특성 외에 다른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 근대과학의 우주관과 모순된다. 이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근대교육을 받은 많은 지식인들이 여기서 벽에 부딪치곤 하는데, 정작 현대과학의 세계에서는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기계적 우주관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고 ‘세계에 다시 주술을 걸기’(reenchantment of the world)가 요청되고 있다.37) 프리고진 등의 이 개념이 곧바로 동아시아의 음양론을 입증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반면에 ‘복잡계 연구’(complexity studies)라는 그들의 새로운 과학 또한 ‘세계에 다시 주술을 걸기’의 첫걸음에 불과한 만큼 중성적이지만은 않은 시공간이 어떤 특성을 갖고 운행되는지에 대해 추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우주관 자체가 변화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이 모색되고 있는 오늘날, 인간사회에서의 음양조화에 해당하는 남녀관계의 추구가 동아시아적 우주관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노력과 합쳐질 때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인류사적 과제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목전의 성차별 철폐 및 성평등 구현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6. 무엇이 변혁이며 어째서 중도인가

 

결론을 대신하여 변혁적 중도주의에 관해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2009년의 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의 주제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선거의 해에 낸 『2013년체제 만들기』에서 잠복하다시피 했는데, ‘변혁’과 ‘중도’의 일견 모순된 결합이 다수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은 여전히 사실이고 현장의 선수들이 적절한 방도를 찾아야 할 테지만, 우리가 큰 적공, 큰 전환을 꿈꿀수록 전지구적인 원대한 비전과 한국 현장에서 당면한 과제들을 연결하는 실천노선으로서 변혁적 중도주의 말고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변혁’은 딱히 ‘중도’와 묶이지 않더라도 오늘의 한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말이 아니다. 전쟁발발 같은 급격한 변화가 경계의 대상임은 물론, 남북이 공존하는 가운데 남한만이 혁명 내지 변혁을 이룩한다는 주장도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주장을 펼치는 소수세력이 없지 않지만 이는 공상에 가깝고 예의 ‘후천성 분단인식결핍증후군’의 혐의가 짙다.

이렇게 남북한 각기의 내부문제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체제 속에서 작동하고 있고 이 매개항을 빼놓고는 전지구적 구상과 한국인의 현지 실천을 연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분단체제론의 요체이다. 따라서 우리의 적공·전환 과정에서 이러한 한반도체제의 근본적 변화, 곧 남북의 단계적 재통합을 통해 분단체제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작업이 핵심적이기에 ‘변혁’을 표방하는 것이다.38) 그리고 이를 위해 남한 단위의 섣부른 변혁이나 전지구적 차원의 막연한 변혁을 주장하는 단순논리를 벗어날 때 광범위한 중도세력을 확보하는 ‘중도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까? ‘다 좋은 말씀인데 그게 가능할까요?’라는 물음은 내가 토론모임 같은 데서 수없이 마주치는 질문이다. 그럴 때 나는 ‘물론 불가능하지요, 여러분이 그렇게 묻고만 있다면’이라고 답하기도 하지만, 살펴보면 변혁적 중도주의는 절실히 필요할뿐더러 유일하게 가능한 개혁과 통합의 노선이다.

졸고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에서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 것’의 여섯가지 예를 번호까지 붙여가며 열거했는데(『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22~23면), 그런 식으로 이것저것 다 빼고서 무슨 세력을 확보하겠느냐는 반박을 들었다. 있을 법한 오해이기에 해명하자면, 그것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광범위한 세력 확보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진지한 개혁을 이룰 수 없는 기존의 각종 배제의 논리들을 반대하되 각 입장의 합리적 핵심을 살림으로써 개혁세력을 묶어낸다는 통합의 논리였다. 다만 변혁적 중도주의가 이러저러한 것이라는 정의를 정면으로 내세우기보다 무엇이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지를 적시함으로써 각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불교 『중론(中論)』의 변증방식을 시도해본 것이다. 다만 『중론』의 방식에 진정 충실하려면 변혁적 중도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스스로 고정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도록 부정 작업을 계속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여기서는 먼젓글을 안 읽은 독자를 위해 예의 1~6번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약간 부연하고자 한다.

1) 분단체제에 무관심한 개혁주의: 대체로 이런 성향을 지닌 국민이 비록 개혁의 내용이나 추진의지는 천차만별이더라도 전체의 대다수지 싶다. 여기에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상당수도 포함될 테며,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도 다수가 이 범주에 속한다. (물론 특정한 개혁의제를 채택한 활동가가 거기 집중한다고 해서 ‘후천성 분단인식결핍증후군’ 환자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어쨌든 1번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한 만큼이나 자기성찰에 소극적일 수 있는데 변혁적 중도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들을 최대한으로 설득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2)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 한반도의 현실에서 전쟁은 남북 주민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연히 배제되는 노선이다. 그런데 전쟁불사를 외치는 인사들도 대부분 전쟁이 안 일어나리라는 생각들이고 스스로 한국군의 작전권을 행사하며 전쟁을 치를 생각은 더욱이나 없음을 감안하면, 2번을 실제로 추구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봐야 한다.

3) 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노선: 이 부류도 ‘북한혁명’ 또는 ‘북한인민 구출’을 적극 추진하는 강경세력으로부터 북한체제의 변화를 소극적으로 희망하는 사람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후자는 1번과의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도 2번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남한의 개혁을 막는 명분으로나 작용하기 십상이다.39) 하지만 변혁적 중도주의는 2번 또는 3번의 노선에 반대할 뿐, 그 현재 추종 인사들이 노선의 편향성을 자각하고 ‘중도’를 잡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처음부터 접을 일은 아니다.

4) 남한만의 독자적 변혁이나 혁명에 치중하는 노선: 80년대 급진운동의 융성기 이후 계속 영향력이 감소해온 노선이지만, 아직도 추종하는 정파나 정당이 없지 않고 특히 지식인사회의 탁상 변혁주의자들 사이에 인기가 상당하다. 어쨌든 “이는 분단체제의 존재를 무시한 비현실적 급진노선이며, 때로는 수구보수세력의 반북주의에 실질적으로 동조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앞의 글 22면) 반면에 세계체제와 한반도의 남북 모두를 변혁의 대상으로 삼고 계급문제의 중요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분단체제의 변혁을 핵심현안으로 인식만 한다면 중도를 찾을 여지가 있다.

5) 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하는 노선: 이 또한 팔구십년대 운동권에서 성행했고 근년에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었는데, 다만 일제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이 당연한 시대적 요구였고 8·15 이후에도 ‘민족문제’가 엄연한 현안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그 뿌리가 한결 튼실하다. 다만 분단체제 아래 북녘사회가 겪어온 퇴행현상들에 눈을 감고 심지어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일부 세력이40) 진보세력의 연합정당이던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가 진보진영의 분열로 치달으면서 자주와 통일 담론 전체가 약화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러나 ‘후천성 분단인식결핍증후군’과 줄기차게 싸워온 인사들이 온통 한묶음으로 매도당해서는 안되며, 이들이 강조해온 자주성 담론을 분단체제에 대한 원만한 인식에 근거하여 변혁적 중도주의로 수렴하는 노력이 진보정당 안팎에서 이루어지기 바란다.

6) “전지구적 기획과 국지적 실천을 매개하는 분단체제극복운동에 대한 인식”(같은 글 23면)을 결여한 평화운동, 생태주의 등의 경우: 이들도 각양각색이지만 전인류적 과제로서의 명분과 현지실천에 대한 열의를 지녔다면 예의 ‘매개작용’에 대한 인식의 진전을 통해 변혁적 중도주의에 합류 또는 동조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전개를 『중론』에 빗대었지만, 더 속된 어법으로 바꾸면 선다형(選多型) 시험에서 틀린 답을 지워나감으로써 정답을 ‘찍는’ 방식과 흡사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갖가지 극단주의와 분파주의에 시달리면서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활동가일수록 변혁적 중도주의의 취지를 금세 알아차리기도 한다. 정작 어려운 문제는 정답을 ‘찍는’ 일보다 정답에 맞는 중도세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각 분야의 현장 일꾼과 전문가가 연마하고 적공할 문제인데, 여기서는 선거를 좌우하는 정당정치의 현실에 관해 한두가지 단상을 피력하고 넘어갈까 한다.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전환을 막으려는 세력의 힘을 일단 부분적으로나마 꺾어야 하는데, 87년체제 아래 국민의 최대 무기는 6월항쟁으로 쟁취한 선거권이 아닐 수 없다. ‘11표’가 아닌 ‘11표’가 작동하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41) 그렇다면 기존의 야당, 특히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어찌할 것인가. ‘웬만만 하면’ 찍어줄 텐데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찍어줄 마음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이 내게 있을 리 없고, 변혁적 중도주의론이 그런 차원의 물음에 일일이 답을 주는 담론도 아니다. 다만 몇가지 오답을 적시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다. 예컨대 야당의 낮은 지지율을 요즘 젊은 세대의 ‘보수화’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사회풍토의 변화로 젊은 세대가 유달리 개인적 ‘성공’에 집착하고 가정교육에서도 사회적 연대의식이 경시된 면이 없지 않다. 여기다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이 지속되면서 냉소주의가 만연하고 사람들의 심성이 더욱 황폐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의 예외를 빼고는 젊은이들이 기성현실에 대해 지금 이대로 살 만하다고 긍정하거나 정부·여당의 낡은 작태가 웃긴다(또는 그들의 표현으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화된 건 아니지 싶다. 오히려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하다고 보며, 게다가 저들은 앞세대에 비해 훨씬 식견이 넓고 발랄한 기상을 지녔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야당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들이대며 자기 편을 안 들어준다고 보수화 운운한다면 점점 더 외면받는 게 당연하다. 차라리 변화에 대한 저들 자신의 욕구에 맞추는 일을 ‘진보’의 척도로 삼고 그에 걸맞은 정책의제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너무 진보적인 반응을 보여서 나이든 세대의 적당한 견제가 필요해질지 모른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 것’에 대한 설명을 원용한다면, 야당이 1번 노선에 안주하면서 ‘우클릭’을 통해 ‘보수화’된 젊은 유권자를 사로잡으려 해서는 여당과의 비교열세가 더욱 돋보이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혁신을 한답시고 4~6번 중 어느 쪽으로 ‘좌클릭’하는 것도 소수세력에만 매력을 지닐 따름이다. 다수 국민이 그렇겠지만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문자에는 무지하거나 냉담할지언정 1~6번이 모두 안 맞는다는 점만은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없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과도한 혁신을 주문하거나 기대하는 것도 낡은 타성일 수 있다. 제1야당이 자체혁신만 해내면 수구보수진영에 맞설 수 있는 독자적 진영을 이루고 있다는 환상이기 쉽고,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이 곧 ‘민주’의 총본산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일 수도 있다. 제1야당의 혁신은 물론 필요하지만 혁신한다고 수구보수 카르텔을 제압할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단기간에 변혁적 중도주의 정당으로 거듭날 처지도 못 된다. 카르텔의 거대한 성채에 약간의 균열부터 내는 일이 급선무인데, 이를 위해 나서야 할 광범위한 연대세력 중에서 가장 큰 현실정치 단위가 민주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그 몫을 수행할 만큼의 자체정비와 혁신을 해내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변혁적 중도주의 정당(들)의 형성은 일단 선거승리라도 이룬 다음의 일인데,42) 선거승리를 위해서도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지향성을 어느정도 공유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신보다 현실적 힘이 약한 정파나 집단의 목소리라도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인식이 더 투철하다면 경청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남한 단위의 실천노선이 불교적 ‘중도’또는 유교의 ‘중용’같은 한결 고차원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같은 글 제2절 ‘분단체제 속의 마음공부·중도공부’ 참조). 이로써 본고가 동원한 여러 개념 사이에 일종의 순환구조가 성립한다. 곧, 근대세계체제의 변혁을 위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한반도 차원에서 실현하는 일이 분단체제극복 작업이고, 그 한국사회에서의 실천노선이 변혁적 중도주의이며, 이를 위해서는 집단적 실천과 더불어 각 개인의 마음공부·중도공부가 필수적인데, 중도 자체는 근대의 이중과제보다도 한결 높은 차원의 범인류적 표준이기도 하여 다른 여러 차원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점을 지적하는 까닭은 체계의 완결성을 기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다기한 적공·전환의 과제를 시간대와 공간규모에 따라 식별하면서도 결합하는 작업이 오히려 순리에 해당함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

1) 본고는 제96차 세교포럼(2014.9.19. 세교연구소)에서 발제한 내용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포럼에는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와 박성민 MIN컨설팅 대표가 약정토론자로 나왔고, 세교연구소 회원 외에도 김연철, 아오야기 준이찌(靑柳純一), 이기정, 이태호, 정현백 등 여러 분이 참석해서 토론에 동참했다. 그날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3년체제’ 기획을 집중적으로 제시한 나의 저서로는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 2012, 이하 『만들기』)가 있지만 그밖에도 여러 발언을 통해 주장했고,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2011.7~2012.12)라는 시민사회 각계인사모임의 명칭에도 일부 반영되었다.

2) 시인 진은영은 세월호참사 이후 선거에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집권당의 호소가 상당정도 주효한 데 대해, “모든 힘의 관계를 시혜의 관계로 표상하도록 하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순간, 우리는 베푸는 지배자, 약자들이 가여워 눈물 흘리는 인정 많은 권력자를 받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물론 자리의 역전은 가능하다. 가령 우리는 유권자로서 선거기간 동안 우세할 수 있다. 그러나 모처럼 주어진 우세함은 합리적인 선택의 자리가 아니라 베풂을 받았던 자의 반대 표상, 즉 베푸는 자리가 된다”라고 하면서, “거룩한 선거에 정치적 의미를 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선거로만 수렴되지 않는 정치적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선량함 밖으로 나아가 다른 활동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해야 한다”라고 역설한다(진은영 「우리의 염원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420면, 423면).

3) 그 점에서 나는 “비극은 또다른 비극의 시작일 뿐”(이대근 칼럼 「우리는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나」, 경향신문 2014.9.4)이라는 단언이 적공과 전환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속단일 수 있다고 본다.

4)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447면.

5) 박근혜 후보의 당선 직후만 해도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적지 않았다. 『창작과비평』 2013년 봄호 좌담 「2012년과 2013년」의 출연인사들(김용구 백낙청 이상돈 이일영) 사이에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나 자신은 박후보 반대에 나섰던 사람으로서 취임도 하기 전에 부정적 예단을 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정권의 전망에 한두가지 토를 다는 데 그쳤지만(37~38면), 돌이켜보면 당시의 우려가 대부분 현실화된 느낌이다.

6) 87년체제에 관해서는 김종엽 엮음 『87년체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과 새 전망』(창비담론총서 2, 창비 2009) 참조.

7) 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창비 2009), 제7장 「변혁과 중도를 다시 생각할 때」 178면.

8) 예컨대 박창기 『혁신하라 한국경제: 이권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개혁 플랜』(창비 2012), 제12장 「재벌봉건체제론」 참조.

9)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438~39면.

10) 1997년과 2000년의 관계, 그리고 김대중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방식의 차이에 관해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제13장 「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 278~79면 참조.

11) 1948년 정부수립(‘건국’이라 하지 않았음!) 기념행사를 주관한 ‘국민축하준비위원회’의 현상모집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선정된 표어가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었다. 홍석률 「대한민국 60년의 안과 밖, 그리고 정체성」, 『창작과비평』 2008년 봄호 53면(국사편찬위원회 간행 『자료 대한민국사』 7권, 1974, 811~39면을 근거로 제시했음).

12) 이에 관해 졸고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및 백낙청·안병직 대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국민통합적 인식은 가능한가」, 『時代精神』 2010년 봄호 298~301면의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교 참조.

13) 강준만 『싸가지 없는 진보: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인물과사상사 2014, 200면.

14) 졸고 「사회통합,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13.12.27(http://weekly.changbi.com/?p=1609&cat=5).

15) 물론 생계형, 출세지향형은 극좌에도 있다. 지금이 그들의 세상이 아닐 따름이다.

16) “진보, 의도와는 달리 수구반동, 이 사실 모르는 게 비극”,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인터뷰, 오마이뉴스 2014.10.6(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39894) 참조.

17) 이런 주장의 한 예로 김남국 「개헌은 언제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한겨레 2014.11.3) 참조.

18) 굳이 부연한다면 ‘단기’ ‘중기’ ‘장기’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당장에 이룰 수도 있는 과제를 ‘단기’라 부르고 인류 차원의 궁극적 목표를 ‘장기’라 부르면 그 중간의 모든 것이 ‘중기’에 해당하지만, 우리가 수년의 적공으로 이룩할 만한 것들을 ‘중기’로 한정한다면 그 이상의 과제는 여러 다른 차원의 ‘장기’ 과제가 된다.

19) 87년체제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달성에 실패했다는 일부 진보파 논객의 주장은 그러한 유기적 연관성을 놓치고 ‘정쟁보다 민생’이라는 프레임을 도리어 강화하는 면이 있다. 87년체제는 정치적 기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경제의 민주화와 지속적 발전에도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과 일련의 이후 상황전개에서 보듯이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20) 『만들기』 77면. ‘이중과제’에 관해서는 이남주 엮음 『이중과제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창비담론총서 1, 창비 2009) 참조.

21) 이에 대한 찬반논의를 두루 담은 저서로 Immanuel Wallerstein 등 공저 Does Capitalism Have a Future?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및 부정적인 전망을 각도를 달리해 제시한 Wolfgang Streeck, “How Will Capitalism End?”, New Left Review 87 (2014년 5-6월호) 참조.

22) 졸고 「D. H. 로런스의 민주주의론」, 『창작과비평』 2011년 겨울호 408면.

23) 그런데도 이명박정부 초기에 나 자신 대북경협만은 ‘실용주의자답게’ 잘해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일시 품었던 데 대해 자기비판을 한 적이 있다(「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267~68면).

24) 이 점에서도 박근혜정부는 박정희시대보다 차라리 이승만시대를 닮아가는 면모를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록 이승만이 양도한 군사주권을 되찾아오지는 못했으나 그럴 의지가 강했고 수시로 공언하기도 했다. 이런 대조에 대해 김종구 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박정희 키즈’ 군 수뇌부」(한겨레 2014.11.4)가 통렬하다.

25) 졸고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비평사 1994, 19면.

26) 세교포럼에서 김연철 인제대 교수와 권태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대표가 모두 이 점을 지적했다. 특히 김교수는 병역연령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이른바 ‘관심사병’이 병사의 대다수를 차지할 전망이 우세한 한국현실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이 젊은이와 그 부모들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의제임을 설명했는데, 나도 대체로 공감했고 그런 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의제들이 얼마든지 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7) 물론 원론적으로는 평화가 통일보다 보편성이 높은 개념이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에서 평화를 실제로 구현하고자 할 때, ‘통일’을 절대시해서 평화를 위험에 빠뜨려도 안되지만 분단체제극복의 과제를 외면하고 평화에만 골몰해서도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졸고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제10장); 서동만 「6·15시대의 한반도 발전구상」,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219~22면; 유재건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같은 책 288면 및 같은 저자의 「남한의 ‘평화국가’ 만들기는 가능한 의제인가」(『창비주간논평』 2006.8.22) 등 참조.

28) 주18에서 말했듯이 ‘중기’는 상대적 개념이다. 세계체제의 변혁보다 앞선다는 의미로 ‘중기’라고 했지만 87년체제로부터의 전환을 이루면서 국가연합그중에서도 현실성이 있는 ‘낮은 단계의 연합’으로 나가는 작업을 ‘중기’로 설정한다면, 분단체제극복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한층 장기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29) “그리고 그것이 정권교체나 정치권 주도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님은 명백하다. 몇몇 인사들의 무교양과 몰상식 그리고 부도덕에서만 문제가 비롯되었다기보다 국민들 다수의 생명경시 습성과 정의감 부족, 그리고 비뚤어진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이틀에 바로잡힐 일이 아니며,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바꿔나가는 노력을 각자의 삶에서 꾸준히 진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만들기』 31~32면)

30) 이기정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인물과사상사 2011. 같은 저자의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창비 2012)도 일독에 값한다.

31) 이는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Acquired Immunity Deficiency Syndrome, 약칭 AIDS)에 빗대어 내가 지어낸 신조어다. 영어로 한다면 Acquired Division Awareness Deficiency Syndrome, 약칭 ADADS가 되겠다. 졸고 「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271~72면 참조.

32) 주22에 언급한 졸고 「D. H. 로런스의 민주주의론」 참조.

33) “노동자가 돈과 고립에 눌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핵 사고의 전례 없는 죽음이 두렵긴 하지만 일상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도 두렵다.”(하승우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안전 담론」, 『실천문학』 2014년 가을호 98면)

34) 이러한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일이기 쉽다. 물론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이 결국은 단편적이고 한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음을 어쩌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온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 그것을 ‘인간의 가면을 벗어던진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는 있다(졸고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104면). 아무튼 공부거리는 자본주의이고 신자유주의 연구는 그 일환으로 자리매겨져야 한다.

35) 특히 국가의 경제력이나 국민의 교육수준에 비해 한국의 여성지위가 터무니없이 열악하다는 점은 세계경제포럼의 2014년도 세계남녀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Index)에서이것이 무슨 절대적인 척도일 수는 없지만대한민국이 142개국 중 117위에 올랐다는 사실에서도 실감된다(http://reports.weforum.org/global-gender-gap-report-2014/rankings/). 유네스코 교육통계자료에서 한국의 ‘인간개발지수’가 32위인 반면 ‘성별권한척도’는 73위를 기록한 1997년의 시점에서 나는 이런 기형적 사태 역시 분단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다(「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45~52면).

36) 예컨대 이매뉴얼 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또는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 백영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9, 37~42면 ‘민족주의·인종주의·성차별주의의 대두’(Immanuel Wallerstein, Utopistics: Or, Historical Choic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The New Press 1998, 20~25면) 참조. 여성해방도 이중과제론의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한 글로는 김영희 「페미니즘과 근대성」, 이남주 엮음 『이중과제론』 118~37면 참조.

37) 이 문구는 Ilya Prigogine and Isabelle Stengers, Order Out of Chaos: Mans New Dialogue with Nature (Flamingo 1985; 원저는 La nouvelle alliance, Gallimard 1979)에 나왔고, 근대 세계체제의 변혁을 이끌 새로운 학문의 정립을 강조하는 월러스틴이 곧잘 인용하는 표현이다(예컨대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식의 불확실성: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을 찾아서』, 유희석 옮김, 창비 2007, 154면; Immanuel Wallerstein, The Uncertainties of Knowledge, Temple University Press 2004, 125면).

38) ‘변혁적 중도주의’나 ‘중도적 변혁주의’를 별 생각 없이 섞어 쓰기도 하는데, 이는 용어의 생소함 탓이겠지만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나름의 엄밀성을 지닌 하나의 개념임을 놓치게 만드는 일이다. 남한 현실에서의 실천노선으로서 변혁적 중도주의는 변혁주의가 아닌 개혁주의인데, 다만 남한사회의 개혁이 분단체제극복운동이라는 중기적 운동과 연계됨으로써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39)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이런 구상〔2번 또는 3번〕이 일정한 위세를 유지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남북대결을 부추기는 일이 남한 내에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의 변혁은 명분일 뿐, 실질적으로는 분단체제의 변혁과 그에 필요한 남한 내의 개혁을 막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29~30면)

40) 이들에게 ‘종북’의 혐의가 씌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지만, ‘종북’이라는 모호한 표현보다 ‘주체사상파’라는 정확한 개념을 사용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이승환 「이석기사건과 ‘진보의 재구성’ 논의에 부쳐」,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335면).

41) 세교포럼 토론에서 박성민 대표는 수구보수 카르텔의 “가장 약한 고리”가 선거임을 강조하면서, 현재 야당이 인기가 너무 없지만 국민은 “웬만만 하면” 야당을 찍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42) 2013년체제가 성립되더라도 변혁적 중도주의 세력을 총망라한 단일 거대정당이 아니라 기본적인 지향을 공유하는 다수 정당의 존재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같은 글 30~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