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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근대극복의 실학연구란 무엇인가
학인(學人) 임형택, 그 배움의 궤적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토오꾜오대학 명예교수. 저서로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양반』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등이 있음. miyajimah@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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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임형택(林熒澤) 교수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40년 전인 1974~5년쯤이라고 기억한다. 그 당시 조선후기의 농업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우성(李佑成)·임형택 공저 『李朝漢文短篇集(上)』(일조각 1973)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보면서 조선후기 사회상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자료가 있다는 것에 놀랐는데,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그후 직접 임교수를 뵐 기회가 없다가 2002년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처음 만났다. 학술원의 선생님들이 마련해준 환영의 자리에 임교수도 참석해 계시는 것을 보고 다시 놀랐다. 위의 책을 보고는 특별한 근거도 없이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은 다섯살밖에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어서였다. 이런 개인적인 회고를 여기서 말한 이유는 그만큼 임교수가 오랫동안 연구활동을 해오셨구나 하는 감회가 깊기 때문이다.
그런 임교수가 또 놀랍게도 올해 들어서 두권의 책을 상재했다. 그 책의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창비 편집부에서 받았는데, 명예롭기도 했지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기도 했다. 특히 임교수의 주된 연구영역인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적임자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문학연구자라면 누군가가 별도로 서평을 할 터, 역사연구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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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간행된 두권의 책이란 『21세기에 실학을 읽는다』(한길사 2014)와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창비 2014)이다. 이 책들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2000년 이후에 발표된 논고를 모은 것으로, 2000년에 간행된 『실사구시의 한국학』(창작과비평사)의 속편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실사구시의 한국학』이 말하자면 20세기 패러다임의 결산인 데 대해 이번의 책들은 21세기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탐구의 소산이다.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21세기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개념은 ‘신실학(新實學)’과 ‘동아시아’이며 이 두 개념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각각 한권의 책으로 엮어낸 셈이다.
먼저 저자의 주장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간략하게 짚으면서 저자의 연구가 갖고 있는 특징과 의미를 정리한 다음에 몇가지 논의되어야 할 문제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제시하겠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1970년대 이후의 실학연구를 이끌어온 중심적인 연구자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21세기에 와서 신실학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거의 유일한 학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21세기의 신실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20세기 실학연구를 세 단계로 나누어서 파악하는데, 제1단계가 20세기초 근대계몽기, 제2단계가 1930년대의 조선학운동 시기, 그리고 제3단계가 1960~70년대의 내재적 발전론을 바탕으로 한 실학연구의 시기이다. 실학연구는 제3단계에 와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었다.
1960~70년대는 서구편향의 근대화론이 대세를 주도한 시대였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주의 사관의 청산을 의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의식의 저변에서 서구편향의 근대화론에 저항했음이 물론이다. 하지만 근대화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못했다. ‘근대’를 이상적인 목표점으로 상정한 발전론을 추종하였던 셈이다. 해방 이후 실학연구에 있어 선편을 잡았던 고(故) 천관우(千寬宇) 선생은 “그것(실학)은 근대적 지향의식과 민족의식의 두 척도를 아울러 충족시키는 경우가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고 실학의 척도를 근대지향과 민족의식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렇듯 실학을 중요시한 그 의식 속에는 근대주의와 민족주의가 동거하고 있었다.(『21세기에 실학을 읽는다』 17~18면)
20세기 실학연구에 대한 이런 반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21세기의 연구방향은 당연히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곳에서 찾아지게 된다. 그중 근대주의 비판 문제에 관한 저자의 입장은 근대극복을 21세기의 세계사적인 과제로 인식한 위에 근대극복의 방법으로서 근대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라 근대에 저항하는 비판적 극복론이다.
근대를 일면 소화하고, 일면 수정하고, 일면 부정해서, 근대극복이란 목표를 계기적으로 수준 높게 달성하자는 것이 그(비판적 극복론—인용자) 사상적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서면 서구 주도의 근대가 성취한 물질적·정신적 가치를 인류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며, 동양의 학술사상의 전통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같은 태도를 지키고자 한다. 그런데 서구 주도의 근대세계, 근대문명이 안고 있는 병폐를 수술하고 다른 어떤 생도(生道)를 모색하는 것이 요청되는데 그러자면 아무래도 동양의 학술 사상으로 진지한 관심이 돌아오게 된다. 이 입장에서는 실학의 의미가 각별히 중시될 것이다.(같은 책 32면)
근대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입장, 그때 동양의 학술사상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맞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문제와 실학의 의미를 각별하게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검토하겠다.
또다른 문제인 민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지적하는 21세기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개념이 동아시아다. 동아시아란 개념은 민족주의적인 연구방법인 일국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된 방법이다.
나의 머릿속에 지역 개념이 뚜렷하게 들어오기는 지난 세기말 이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을 눈앞에 보면서부터다. 글로벌한 환경에 주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도로서 지역적 인식을 착안하였던 터인데, 일국주의적 편향과 세계주의적 편향을 해소하려면 시야를 동아시아적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6면)
즉 저자에게 동아시아는 일국과 세계 사이에 있는 하나의 지역으로서 인식되어 있는바, 그러면 동아시아를 하나의 의미있는 지역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해답이 다름 아닌 동아시아 실학이다. 이렇게 해서 실학과 동아시아라는 두 책의 주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구도이다. 두 책에는 위와 같은 입장에서 집필된 서른세편의 논문과 부론 하나가 수록되어 있다. 각 논문 하나하나에도 중요한 견해와 제언, 그리고 더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여기서는 두 책을 포함해 저자의 연구가 갖고 있는 의미와 특징을 지적한 다음에 약간의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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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교수의 50년에 가까운 연구활동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영역의 광범함일 것이다. 학문분야로 말하면 문학과 역사, 사상, 문화 등 인문학의 모든 부문을 포함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삼국시대부터 해방 후까지를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문인학자의 면모를 오늘날 보여주는 드문 존재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 글의 부제를 ‘학인 임형택’이라고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임교수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학문에 뜻을 가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고전학자의 삶·학문·세계, 그 확장과 심화의 도정」이라는 인터뷰가 흥미롭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 엮음 『사회인문학과의 대화』, 에코리브르 2013).
이렇게 넓은 연구영역을 가지면서도 학문의 길을 오래도록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실학이라는 연구의 기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것이 임교수의 두번째 특징이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했지만 1960년대 이래의 실학연구를 주도해온 연구자 중에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실학을 연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저자는 신실학이라는 입장에서 실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실학사상에는 아직도 발굴될 만한 내용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학이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저자의 문헌 발굴에 대한 남다른 노력과 젊은 연구자와의 대화, 그리고 새로운 연구동향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에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저자의 열린 자세를 세번째 특징으로 지적하고 싶다. 저자의 문헌 발굴과 공개의 궤적은 『우리 고전을 찾아서: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뿌리』(한길사 2007)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데, 그 밑바탕에는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와 열린 인간성이 있어 보인다. 나도 임교수와 십년 정도 같은 직장의 동료로 지내면서 같이 식사할 때(물론 술을 마실 때도), 여행할 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받았던가! 그 젊은 열정이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임교수의 연구자로서의 특징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육에 대한 큰 관심이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간행된 저자의 몇몇 책에는 교육론에 관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전문적인 학술서로서는 보기 드문 현상인데, 저자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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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저자의 연구에 대해 몇가지 의문점과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신실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인데, 이 용어 자체가 애매하다. 신실학이라고 할 때 그것이 이전의 실학과 다른 새로운 실학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실학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연구라는 의미인지 헷갈린다. 또한 전자의 경우 이전의 실학연구에서는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도 포함한다는 의미로 ‘신’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대상은 같지만 지금까지 별로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을 주목하려 한다는 뜻인지 애매한 느낌이다. 아마도 저자는 실학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연구로서 신실학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에도 그 범위는 역시 애매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점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연구가 근대주의적·민족주의적 편향성을 갖고 있음을 비판하고 21세기에는 근대극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이 왜 실학이어야 하는지라는 물음이다. 실학이 연구자의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거기에 근대지향적인 내용이 존재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지향이 아니라 근대극복을 과제로 삼을 때 연구대상이 실학에 한정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부분이 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정약용(丁若鏞)이라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지금까지는 그의 근대지향적인 측면을 밝히려고 했지만, 이제부터 그의 사상 속에서 근대를 비판한 측면 혹은 근대를 비판하려고 할 때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측면을 주목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새롭게 그려진 정약용을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가?
내재적 발전론이 한창이던 시기에 재일한국인 연구자 고(故) 안병태(安秉珆)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방법을 부조(浮彫)적인 방법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부조적 방법이란 전체에서 일부분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즉 내재적 발전론은 사회의 전체 구조를 도외시한 채 일부의 발전적인 부분만 주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 그 비판의 핵심이었다. 내재적 발전론이나 실학연구가 갖고 있던 이러한 문제점을 저자의 신실학 연구 역시 면키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를 비판해서 그것을 극복할 방향을 찾으려고 하는 저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그럴 때 연구대상으로서는 실학만이 아니라 성리학, 위정척사사상, 동학을 비롯한 종교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번째 의문점으로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 실학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다. 실학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를 갖는데, 좁은 의미로서도 연구자에 따라서는 성리학이야말로 실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실학은 17~19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학풍, 사상경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시간과 장소를 한정한 고유명사이다. 그런데 17~19세기의 새로운 학풍, 사상경향을 실학이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것은 한국에 고유한 현상으로서,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은 의미로 실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소수파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국에서 기원한 실학이라는 역사적인 개념이 동아시아 전체에 파급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은 일본 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자학(일본에서는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에 대한 관심의 고양이다. 일본에서는 주자학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낮은 편이었다. 그것은 주자학이 봉건적이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사상이며, 그래서 주자학을 극복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자학을 비판한 오규우 소라이(荻生徂徠)의 사상에서 일본의 자생적인 근대의 맹아를 찾으려고 했던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연구, 더 시대를 올라가면 유교를 철저하게 비판해서 문명개화를 주장했던 후꾸자와 유끼찌(福澤諭吉) 등 주자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일본사상사 연구에 있어서 주자학 바람이라고 할 만한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의 중심은 토꾸가와(德川) 시대 사상사에 있어서 주자학의 존재와 그 의미를 새롭게 보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현상이다. 마루야마의 이해로는 토꾸가와시대 초기부터 지배사상으로 이어져온 주자학이 소라이의 등장에 의해 철저하게 비판된 결과 그 사상적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는데, 기실은 주자학이 사회적·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는 사실, 그 계기가 된 것은 1790년에 실시된 ‘관정 이학의 금(寬政異學之禁)’으로, 그후 막부나 다이묘(大名)들이 만든 학교에서 주자학 이외의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사실, 소라이학에서 주자학으로 전신(轉身)하는 유학자가 대량으로 나타났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주자학이 정학(正學)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 이유는 이렇듯 여러가지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으로 청나라에서 수입된 대량의 유학서적의 영향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자학이 보급되면서 무사들의 정치의식이 고조되고 정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공론이 형성되기 시작해서 그것이 명치(明治)유신을 일으키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그러한 주장은 박훈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민음사 2014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전의 통설적인 이해와는 반대로, 소라이학에서 주자학으로, 그리고 주자학이 명치유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최근의 주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러한 연구가 많은 찬동을 얻게 되었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마루야마 같은 이해가 거의 그 기반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주자학에 대한 관심은 토꾸가와 시대 연구만이 아니라 명치유신 이후의 시기에 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명치유신 이후의 대표적인 계몽단체로 알려진 메이로꾸샤(明六社)에 참가한 사람들의 다수가 유학, 주자학을 바탕으로 서구의 근대사상을 수용했다는 사실, 이때 유학자인데도 서양사상을 수용했다가 아니라 유학자였기 때문에 서양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는 주장, 명치유신을 유교적 이상주의의 추구라는 시각에서 보려고 하는 연구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가 나오게 된 것이다.
주지하듯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실학연구는 마루야마의 연구를 강하게 의식하면서 시작되었다. 마루야마가 소라이에게서 근대의 맹아를 찾으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학사상 속에서 근대의 맹아를 탐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마루야마의 학설이 많은 비판을 받게 되고 주자학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 중인 상황을 한국 학계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일본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현상이며 여러가지로 음미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실학이라는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일본 학계의 관심이 향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면 중국은 어떤가? 중국에서는 최근 유학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되면서, 특히 사회적인 통합을 위해 유학의 유산을 활용하려는 자세가 눈에 띈다. 이러한 현상 역시 여러가지로 검토되어야겠지만, 유학에 대한 비판보다도 유학을 재해석하고 현재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인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에서는 지금 주자학이나 유학 자체를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그런 상황에서 실학이 설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교수가 주장하는 근대비판, 근대극복의 노력이 동아시아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출발을 신실학이라는 개념으로 잡는 데는 회의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생각하는 단서도 임교수의 연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지금까지 임교수의 연구 중 실학과 관련된 논문은 많이 읽었지만 문학사 관계의 논문은 거의 접하지 못했다. 이 서평을 쓰게 되면서 처음으로 그것들(물론 일부에 불과하지만)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문학사 관련 논문을 보면서 실학에 관한 연구와의 차이라고 할까, 무언가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 차이란 무엇일까?
임교수의 문학사 연구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된 『李朝漢文短篇集』이 상징하듯 이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았던 장르나 작품, 작가를 발굴해서 학계에 소개하는 것과 함께 그 문학사적 의미를 탐구한 연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朝鮮後期)閭巷文學叢書 1』(여강출판사 1986)의 해제를 비롯해 「18,9세기 ‘이야기꾼’과 소설의 발달」(『한국학논집』 2집, 1975) 「『조선개국록』연구: 민간적 상상의 역사소설」(『민족문학사연구』 5호, 1994) 「야담의 근대적 변모: 일제하에서 야담전통의 계승양상」(『한국한문학연구』 19권, 1996) 「『동패낙송(東稗洛誦)』 연구: 야담의 기록화 과정과 한문단편의 성립」(『한국한문학연구』 23권, 1999)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문들은 사대부가 아닌 사람들의 문학활동이나 민간에서 유포되는 이야기를 사대부가 기록해 남긴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를 가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들 연구에서 사용된 자료 역시 저자의 노력으로 발굴된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며 저자의 안력이 얼마나 높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사 연구와 실학연구의 관계가 저자에게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지가 불분명한 것 같다. 나로서는 이러한 문학사 연구가 한국문학사의 특징을 해명하는 데 소중한 성과로서, 앞으로 크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데, 저자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다음과 같은 19세기 문학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19세기 문학사를 주제로 한 논문에서 19세기에 전통문학이 최고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최고점으로부터 하강곡선을 그리는 과정에서 내용의 변질·속화가 진행된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19세기에 생긴 희작화(戱作化) 경향과 그 대표적인 존재로서 김삿갓을 거론하면서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희작은 구형식을 역으로 이용해서 웃음을 유발하고 색다른 흥미를 느끼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 자체가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구형식을 해체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현상이며, 새로운 문학의 길을 스스로 열고 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희작을 기생적 성격이므로 숙주(宿主)를 살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자신도 사망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진단한 바 있다. 희작화를 통해서 볼 때 19세기는 새로운 문학사의 단계로 진출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19세기 문학사가 제기한 문제점들」, 『국어국문학』 149호, 2008, 20면)
문학작품의 평가에 문외한인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만 이러한 평가는 무언가 쉽게 납득이 안 가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다른 데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서사한시의 세계는 ‘서사적 상황의 발전’의 신국면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는 예민하지 못했다. 이조 후기의 사회에 있어서 체제 모순의 심화와 그 가운데서 발생한 역동적·진취적 움직임들은, 서사한시의 형식에 담기기보다는 야담-한문단편에 다채롭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서사한시의 현실주의적 성과는 한문단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의 자각적 의식이 오히려 현실을 직접 호흡하는 서민대중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이조시대 서사시 1』 총설, 창작과비평사 1992; 개정판, 창비 2013, 49면
김삿갓의 희작화를 비판한 척도와 야담을 높이 평가하는 척도가 같은 것인지, 저자의 가르침을 받고 싶은 부분이다. 한국문학의 특징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지배적인 문학·문화에 대한 거절과 저항을 담은 야담, ‘이야기꾼’, 해학(諧謔)과 희작, 춘향 등등 풍부한 유산에 한국문학의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사의 이해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사상사 연구에 있어서도 유학이나 실학 밖에서 이루어진 사상적 영위(예를 들어 종교사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러한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사상이나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 연구의 분야에서는 내재적 발전론이 많은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틀을 모색하는 와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학사 연구에 있어서도 근대를 극복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문체계, 기본적인 개념까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상 임교수의 두 책이 간행된 것을 계기로 방언(放言)을 거듭했다. 적지 않은 오해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앞으로 의미있는 토론을 하기 위한 망언이었다고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저자의 연구를 비판하는 데 다름 아닌 저자의 연구를 이용한다는 묘한 꼴이 되었지만, 그만큼 저자의 연구가 넓고 깊은 것임을 새삼스럽게 통감했다. 그야말로 가공할 연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