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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우석훈 『내릴 수 없는 배』, 웅진지식하우스 2014

세월호에서 부끄럽지 않게 내릴 수 있으려면

 

 

이영수 李英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fallsky77@naver.com

 

 

166-촌평-이영수_fmt교통사고는 대개 운전자의 과실이나 운전미숙 같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지만 사실은 그 사회의 시스템과 결합되면서 양산되는 사회문제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면 화물부문에서는 매년 1200여명의 아까운 목숨이 교통사고로 사라지는데, 구조적인 원인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규제완화 차원에서 화물부문의 영업 면허제를 허가제로 변경했으며 운임도 자율화했다. 그러자 차량대수와 업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화물수요에 비해서 공급 과잉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화주(貨主)는 최저낙찰제를 통해 운임을 책정했고 물량이 주선업체와 운송업체를 거치면서 화물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댓가는 더 줄어들었다. 반면 유류비용이나 차량관리비용은 매년 치솟았으므로 화물노동자는 해가 갈수록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줄이고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과적과 과속을 일삼으면서 교통사고를 유발하게 되었다. 장시간·저임금노동의 사회적인 요인을 과적과 과속으로 해소하려다보니 도로에서 매년 천명이 넘게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해상의 세월호와 같이 육상에서 수학여행 운송을 담당하고 있는 전세버스 또한 화물 쪽과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전세버스도 마찬가지로 규제완화 차원에서 1993년부터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변경되었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영세업체가 난립했다. 그로 인해 연간 대당 수송인원은 1993년 시장자율화 당시 11,106명에서 2012년에는 6050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다. 반면 유류비용과 기타 차량관리비용은 상승했기 때문에 전세버스업의 경영구조는 매우 좋지 않게 되었다. 업체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를 장시간노동으로 내몰았으며 임시직과 무자격 운전자도 서슴없이 고용했다. 더욱이 비용이 소요되는 정비를 최소화하면서 차량의 불량이 만연해졌다. 그 결과, 전세버스의 연간 사고가 2012년 기준으로 13천여건이나 발생했고 70여명이 사망했다. 택시도 장시간·저임금에 의한 무리한 운행으로 연간 23천여건의 사고(2013년 기준)가 발생했고 사상자만 34천여명(157명 사망)에 달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석훈(禹晳熏)의 『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참사가 우리나라 사회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음을 통찰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이명박정부 때부터 시작되어 박근혜정부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반도운하(4대강) 건설과 아라뱃길 조성, 그리고 그에 따른 크루즈산업 활성화 정책이 세월호참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책은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미 경제적 타당성을 잃은 인천-제주 노선 등의 연안노선을 부활시키려고 수학여행을 카페리(car ferry)로 이용하도록 교육청, 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 등이 주도하면서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에 타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문제는 정부가 카페리산업의 활성화에만 역점을 두었을 뿐 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명박정부는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령(船齡)제한을 기존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림으로써 일본에서 퇴역한 배를 싼값에 살 수 있도록 해 업체의 수익성을 보장했다. 엔진검사 규정도 완화되었으며 배에 대한 안전검사는 이미 정부기관이 아니라 민간조직인 해운조합이 맡고 있었다. 결국 수익 극대화에만 골몰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부의 책임방기와 결합하면서 세월호참사는 점점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세월호 침몰 뒤 3~4시간 안의 골든타임 때 왜 제대로 된 구조가 이뤄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는 우선 노무현정부 시절에 설치되었던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이명박정부 때 폐지되면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붕괴했다는 점을 제시한다. 관료조직은 보수적이며 기본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므로 재난을 제대로 수습하려면 최고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NSC 같은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에 해경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물론 해경과 수색을 담당했던 구호업체 언딘의 유착문제에서도 나타났듯이 관료사회의 부패도 한몫을 했다). 저자는 또한 청해진해운 직원에 대한 재난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감과 숙련도가 떨어지는 비정규직이 배를 운행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어떤 상황이든 초동대처가 중요한데 청해진해운은 2013년에 교육훈련비로 고작 541천원만 지불했을 정도로 재난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애사심과 책임감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에게 재난발생시 승객을 다 대피시키고 마지막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남겨진 것은 세월호참사의 원인규명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이다. 저자는 정부가 연안해운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시장활성화 정책을 폐기해야 할 뿐 아니라, 안전을 전적으로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민간업체에 우리의 안위를 맡길 수 없으므로 연안해운업체를 공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조원 정도면 연안해운업체들의 자산을 인수해 공영제를 시행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도 카페리를 비롯해서 대중교통 전반을 공적으로 통제하거나 직접 정부가 운영하고 있다. 물론 시내버스처럼 준공영제로 운영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운영비용 면에서는 공영제와 준공영제가 큰 차이가 없으므로 공영제로 운영을 하는 것이 확실히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사고원인의 논리적 규명과 대안도 귀담아들을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잊지 않으려는 저자의 눈물과 노력이 책 전반에 퍼져 있어서 가슴에 많이 와닿았다. 정말로 저자의 주장들이 제대로 실현되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 부끄럽지 않게 세월호에서 내려올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