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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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卜孝根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등이 있음. bokhg62@hanmail.net

 

 

 

 

 

지독한 벌이다

 

이중으로 된 창문 사이에

벌 한마리 이틀을 살고 있다

 

떠나온 곳도 돌아갈 곳도 눈앞에

닿을 듯 눈이 부셔서

 

문 속에서 문을 찾는

 

—당신 알아서 해

싸우다가 아내가 나가버렸을 때처럼

무슨 벌이 이리 지독할까

 

혼자 싸워야 하는 싸움엔 스스로가 적이다

문으로 이루어진 무문관(無門關)

 

모든 문은 관을 닮았다

 

 

 

업다

 

 

모과나무에 호박이 열렸다

길 잘못 든 호박덩굴이 키 큰 모과나무를 타고 올랐다

 

까칠까칠한 호박덩굴이 감아 올라와도

모과나무는 동그란 호박 한덩이 제 자식인 듯 업고 섰다

 

미안한 듯 호박은 그것도 꽃이라고 호박꽃 피워 등처럼 내걸었다

모과나무 그늘이 모처럼 환하다

 

가시나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칡덤불이 아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두런두런 들려오는데

 

기름한 모과 열매가 호박 흉내를 내는지 모과는 모가 닳아서

모과에 모가 없다

 

호박엔 모과향도 스며 있겠다

 

나를 업었던 이

내가 업었던 이를 떠올려보는 저물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