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이구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 창비 2014
요즘 동시 마을이 북적이는 까닭은?
오세란 吳世蘭
어린이문학평론가 bookyoh@hanmail.net
김이구(金二求)의 동시(童詩)평론집은 비록 청유형이지만 ‘해묵은 동시를 던져버리자’라는 도발적 제목에 이미 책의 방향과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2007년 발표된 평론 제목이기도 한데, 당시 저자는 이 글에서 ‘동시 마을’에 부족한 네가지 현상을 지적했다. 시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는 감식안이 없고, 비평다운 비평이 없으며, 외부와의 소통이 부재하고, 시적 모험을 모색하는 시가 적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스스로 비평다운 비평, 담론다운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꾸준히 평론을 집필했고, 그 덕분에 조용하던 동시단은 복작거리는 재미난 동네가 되었다.
이 책에는 몇가지 큰 흐름이 교차한다. 먼저, 외부와 소통이 막힌 채 갇혀 있는 동시 흐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동시단의 지형을 넓혀야 한다는 유연한 인식이다. 저자는 동시로 창작영역을 넓힌 안도현(安度眩) 함민복(咸敏復) 최승호(崔勝鎬) 김기택(金基澤) 이기철(李起哲) 등 일반 시인들의 시를 동시의 눈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윤석중(尹石重) 윤동주(尹東柱) 권정생(權正生)의 오랜 동시와 최근 동시세계에 발을 들인 젊은 시인의 작품에 고른 관심을 보인다. 또한 어린이나 청소년이 쓴 시까지 ‘시’의 형태로 창작된 모든 작품을 텍스트로 삼으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말놀이 동시’와 ‘한자 동시’에 대해 2007년 당시 ‘기획동시’라며 그 창작방식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동시단의 시각을 벗어나 “기획 상품이 되어도 좋다“(249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나, ‘서사동시’나 ‘다큐동시’에 대해 주목한 것 역시 유연한 발상이다.
발상이 유연하다면 논점은 과감하다. 2011년, 아동문학의 ‘상투성’ 문제를 제기했던 『창비어린이』 세미나에 대한 관전평 「동시의 상투성, 바로보기와 넘어서기」가 대표적 예다. 세미나에서 발표자 김찬곤(金贊坤)은 시가 상투적이 되는 원인이 창작의 기법보다는 본질에서 벗어난 궤도이탈 때문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아닌 ‘어른의 마음’으로 쓰더라도 그 안에 동심이 있다”라는 이원수(李元壽)·이오덕(李五德)의 동시 본질론, “‘아동의 감정과 생각’을 쓴다고 하면서 동심을 막연하게 ‘아이들의 마음’으로만 여기고 쓰고 있지는 않나 한번 돌아봐야 한다”는 동시단의 원론적 논의를 상기시킨다. 이에 맞서 토론자인 김륭(金隆)은 “동시의 주인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하나 다분히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민다. 또한 “어린이의 인식으로서 다가갈 수 없는 삶의 세계를 포착해서 아이들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줘야 한다”는 창작방법도 제시한다.(184~85면) 이에 대해 저자는 동심에 대한 고민이 도리어 상투적 동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며 ‘동시 창작자’를 앞세운 김륭의 과감한 전략이 애매한 ‘동심론’을 극복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그의 창작방법론이 아직 발상단계임도 날카롭게 지적하여 논점을 구체화시키고자 한다. 저자는 ‘동심’의 문제 역시 전자매체 시대의 어린이, 21세기 탈근대를 사는 아이들을 20세기식의 근대적 기준으로만 보기 힘든 지점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즉 동시의 독자이자 화자인 어린이가 변하고 있기에 이 시대 동심은 이전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듯 열린 시대감각으로 해묵은 것들을 걷어낸 자리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한다.
그러나 과감함과 유연함만 있다면 동시단은 이런저런 말과 글로 넘쳐나되 내실있는 소득을 얻기 힘들었으리라. 저자는 동시의 경계에 대한 유연한 태도와 함께 텍스트를 최우선에 놓고 꼼꼼히 살피는 자세를 견지한다. “최고의 동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고의 시가 돼야 한다. 이는 곧 최고의 동시란 최고의 시라는 뜻이다”(208면)라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제대로 된 시를 고르려는 고집에서 동시단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함량을 높이는 작업이 접목된다. 2010년 창간된 격월간지 『동시마중』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평론집 1부에는 시 한편씩을 골라 동시의 소재, 가락, 발상, 시와 동시의 경계, 고정관념 등 동시 읽기의 핵심 키워드를 짚는다. 특히 시어의 반복에 대해 윤석중과 토론하는 가상 대담은 비슷한 고민에 빠진 독자에게 ‘깨알 같은’ 재미와 공감을 안겨준다.
그리하여 유연한 발상과 날카로운 감식안을 바탕으로 시적 모험에 나선 시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해묵은 동시를 던져버리자’라는 저자의 도발적 발언에 이끌려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정유경(鄭有耕)의 고백처럼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는 비평은 창작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한번에 술술 읽히진 않지만 기존 동시가 가지고 있던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 낯선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김륭의 시를 발견하고, 노숙자, 초경, 생리통 등 불편한 소재를 감싸안은 곽해룡(郭海龍), 김응, 그리고 박성우(朴城佑)의 동시를 가려낸다. 또 동시를 즐기는 경지에 오른 노장 권오삼(權五三)의 시나, 어린이의 내면을 발랄하게, 그러나 섬세하게 그린 젊은 작가 정유경의 시에서 성큼 나아간 개성을 포착한다.
한편 저자는 어린이가 다양한 시, 특히 읽어내기 어려운 시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진전된 시교육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편다. 많은 학생들이 시를 공부하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못한다. 쉽지 않은 시를 자신만의 눈으로 풀어내려면 시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이 묵묵히 쌓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저자가 지적한 ‘해묵은 시’, ‘진부하거나 관습에 묶여 있는 시’가 아니라 반복해 읽어도 여전히 궁금한 구석이 남아 있는 동시가 많이 필요하다.
저자가 언급했듯 동시가 머무는 공간 역시 일종의 ‘생태계’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개체들은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는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연한 발상과 과감한 시각으로 동시 흐름의 새 길을 내고 그 안에서 시가 팔딱팔딱 숨쉴 수 있게 한 생태기록이다. 요즘 동시 마을이 북적이는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동네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