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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구본권 『로봇 시대, 인간의 일』, 어크로스 2015

기술에 사로잡히지 않는 미래를 위하여

 

 

전치형 全致亨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cjeon@kaist.edu

 
 

로봇시대 인간의 일로봇은 미래시제의 기술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미래사회 핵심기술’ 같은 목록에 로봇이 단골로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기술이 미래시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기술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과정과 맥락보다 앞으로 도달할 단계에 대한 전망과 기대가 더 많이 주목받는다는 뜻이다. 로봇이라 불리는 기계들이 등장한 지 이미 수십년이 지났지만 로봇은 아직도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기술로 여겨진다. 이는 로봇 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사업가, 정책설계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로봇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개발을 지원해야 할 이유가 계속 새롭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로봇의 미래중심적 성격은 로봇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언론인, 논평가, 연구자의 일을 어렵게 만든다. 로봇에 대해 무엇인가 지적하고 토론하려 하면 “그 문제는 앞으로 기술이 더 발달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답이 돌아오곤 하기 때문이다. 즉 로봇을 현재시제로 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겨레 기자이자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인 구본권(具本權)이 쓴 『로봇 시대, 인간의 일: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는 현재와 미래 시제 양쪽을 오가면서 인간사회에서 로봇이 할 일과 ‘로봇 시대’에 인간이 할 일 사이의 균형 또는 간극을 탐색한다. 저자는 “바야흐로 ‘로봇 시대’가 개막되었다”라고 선언하면서도 그 시대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저자가 제시하는 풍부한 사례로부터 몇가지 구도를 추출해볼 수 있다. IBM이나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체스, 퀴즈, 바둑 등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기는 것(대결),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 높은 폭스콘 공장 같은 곳에 사람을 빼고 로봇을 집어넣는 것(대체),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이 로봇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는 것(친밀), 도로, 전쟁터, 재난현장 등에서 사람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를 로봇의 판단과 행동에 맡기는 것(위임) 등이 로봇 시대에 인간과 로봇이 맺게 될 관계의 양상이다. 어떤 일들은 이미 논란 속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고, 어떤 것들은 미래의 희망 혹은 공포로 존재한다.

현재와 미래의 로봇 시대를 오가는 가운데 이 책은 자기계발서처럼 읽힐 때도 있고 사회비평서처럼 읽힐 때도 있다. 전자의 입장을 취할 때 저자는 로봇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내야 할 조건으로 설정하고,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의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할까”(12면)라고 묻는다. ‘일자리의 경제학’이라는 장에서 이 질문을 가장 심각하게 다루는 저자는 우선 로봇 시대에 부응하는 “현명한 직업관”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모든 직업이 자동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평생직업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쉼 없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사회변화를 학습하는 사람, 더 나아가 “주위에서 함께 일하고 싶도록 덕성과 신뢰를 갖춘 사람”이 로봇 시대의 일자리 경쟁에서 살아남을 인간형으로 제시된다(153~54면).

많은 이들이 자기계발을 통한 로봇 시대의 생존비결을 적극적으로 찾고 따르는 것은 우리가 로봇이라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디로 휩쓸려 갈지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다. 저자도 로봇 시대를 인간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 규정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견줄 만한 때는 유사 이래 없었다”라는, ‘디지털 시대’ 혹은 ‘인터넷 시대’의 담론은 로봇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11면). “생각하는 기계인 로봇에게 인간의 지적 기능을 본격적으로 위임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지식과 판단을 고유 능력으로 활용해온 인간이 역사상 처음 직면하는 상황”(13면)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전례 없는 위기’ 담론이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과연 합당한 것인지는 더 검토해야 하겠지만, 이럴 때 항상 강조되는 변화의 급박함이 로봇에 대해 차분하게 토론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은 우선 지적할 필요가 있다. 로봇이 빼앗지 못할 일, 여전히 인간이 잘할 수 있을 일을 빨리 찾아내고 거기에 몸과 마음을 맞추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변화를 누가 왜 만들어내는지 질문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같은 질문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 책을 로봇 시대 적응법을 가르쳐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로봇 시대의 구성원리를 캐묻고 그 함의를 진단하는 사회비평서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는 30년 후에 로봇 때문에 사라질 직업의 목록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100만 마리의 동물을 관리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공장에 로봇을 투입하겠다는 대만 홍하이정밀공업 회장의 2012년 발언의 의미를 토론해야 한다(145면). 또 30년 후쯤 인간의 몸과 마음을 똑같이 닮은 로봇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을 놓고 논쟁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얀 물범 모양의 로봇 ‘파로’를 도입한 조치의 효과와 적절성을 따지는 일이다. 이 책은 미래시제로 존재하는 로봇기술의 속성 탓에 항상 나중의 일로 유예되어온 중요한 사회적·정치적·윤리적 질문들을 현재 시점으로 당겨올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제공한다.

로봇 시대에 꼭 필요한 ‘인간의 일’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자기계발 노력만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비판과 개입이다. ‘앞으로 로봇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로봇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디자인되고 사용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로봇을 가지고, 또는 로봇 없이도,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논의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이같은 비판적 개입이 쉽지 않은 데는 “기술의 진보는 생명체의 진화처럼 선택이 불가능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기술관도 한몫을 하고 있다(240면). 로봇기술의 발달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 흐름을 바꾸거나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듯이, 로봇기술도 누군가 선택하고 실행한 결과이다. 바로 그 의도와 과정을 분석하는 일에 이 책에서처럼 윤리학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인류학 철학 언어학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로봇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경쟁력 중 하나로 제시하는 인간의 호기심은 로봇 시대 자체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