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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홍콩사회에서 ‘우산운동’을 사고한다
후이 보겅 許寶強
홍콩 영남(嶺南)대 문화연구학과 교수. 저서로 『냉소주의와의 이별: 홍콩 자유주의의 위기』(告別犬儒: 香港自由主義的危機) 『부를 제한할 것인가, 가난함을 구제할 것인가: 부유함 속의 빈곤』(限富扶貧: 富裕中的貧乏) 등이 있음. 최근 홍콩의 우산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다수의 평론을 발표함.
중국대륙 정권 및 국가주의에 친화적인 일부 여론은 홍콩의 점령운동을 최근 몇년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색깔혁명’과 나란히 논하며, ‘우산혁명’1)이 정권탈취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한 점령운동이 외세에 의해 조종당한 이른바 ‘역외정치’〔離岸政治〕라고 지탄하는데, 본토사회의 보호를 목표로 하는 우산운동이 실제로는 외세를 강화시킴으로써 홍콩과 중국의 이익을 손상시킨다는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이같은 여론은 노골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실정치에 기초하여, 물질적 이익 외의 요구와 가치를 억압함으로써 점령운동에 참여하는 홍콩 민중의 주체성을 박탈하고자 시도한다.
이처럼 국가주의적 시각으로 민중운동을 단순화하는 데 방점을 둔 현실정치론은 홍콩 민중이 관심을 두고 대면하고 있는 진정한 문제들, 예를 들어 심각한 빈부격차 등과 관련해 베이징 정권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은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정권의 성격에 대한 특정한 판단을 기초로 한다. 즉 중공이 사회주의 전통을 어느정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홍콩 자본주의 착취세력을 제약하여 견제하려 한다는 것이다.2)
그러나 이같은 논리는 지난 30여년간 중공정권과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국가주의적 시각하에 민중의 생활에서 비롯된 천차만별한 요구와 문화적 가치를 은폐하고 그 주체적 위치를 박탈함으로써, 국가정권이 정의 내린 협소하고도 노골적인 정치·경제적 이익에 대한 고려에 민중을 복종시키려 한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시기를 거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이 자본주의로부터 예외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일부분인가? 내 생각은 비교적 후자 쪽에 가깝다. 물론 먼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사실 새롭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라 명명된 자본주의의 운용방식은 1930년대에 이미 출현했으며, 그에 대해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1957)은 매우 명료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늘날의 정치·경제구조는 1930년대 빈부양극화의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 즉 ‘방임’과 ‘불간섭’ ‘자유시장’ 같은 공허한 수사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에도, 부와 권력이 고도로 독점 및 집중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는 도리어 감소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란 새롭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일종의 대중영합적인 정치적 조작으로, 자유무역이나 사유화 같은 각종 공허한 기표를 이용해 부의 집중과 권력의 독점을 가져오는 과정이다.3)
그리고 이같은 과정은 문화적 기획을 포함한다. 즉 신자유주의는 또한 사회적 가치를 개조하고 번역하는 문화적 기획으로서, ‘참됨(眞)’(사실/논리)과 ‘선함(善)’(도덕/윤리)을 제거하고, 그것을 협소하고 공리적인 경제이익과 현실정치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이해할 때, 당대 중국사회의 생활은 매우 명확하고도 순수한 신자유주의 논리로 향한다. 만약 홍콩의 우산운동이 일종의 항중(抗中)운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저항하는 것은 바로 중공의 정치·문화적 간섭으로, 특히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작년 8월 31일 홍콩의 정치개혁 틀을 정한 후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항중은 ‘참됨’과 ‘선함’을 단일한 공리적 가치로 대체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문화기획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권탈취, 역외정치 같은 현실정치의 개념을 사용하여 우산운동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비민주적 정권과 제도적 폭력을 미화하는 효과를 낳을 뿐 아니라, 민중 주체의 능동성과 다원적 요구를 도외시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현실정치론을 고취하는 자가 말하는 대로 “공격대상을 만들어놓는” 식의, “뇌세포를 소모하지 않으려는 (…) 도식적인 이해”4)뿐으로, 우리가 미래를 탐색하고 출구를 모색하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방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정권탈취식의 ‘혁명’ ‘역외정치’ ‘외세’ 등의 개념을 사용해 수십만 홍콩 민중이 참여한 사회운동을 해석 및 규정하는 것은 니체가 말한 “네가 사악하므로 나는 선량하다”라는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즉 그것은 타인(혹은 외세와 같은 적)의 행위를 반면가치로 삼아 자신의 올바름과 정의로움을 드러낼 뿐, 자신이 원하는 바가 대체 무엇이며 또한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 이같은 니체적인 의미에서의 노예의 도덕이 추구하는 바는 종종 외재적인 금전과 권력, 혹은 타인의 인정일 뿐이며(일례로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5)은 이번 우산운동 과정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정치실적을 쌓고, 중공정부의 지지를 얻는 데 집중했다), 또한 이로써 행동과 인생의 목표를 정한다. 이같은 “네가 사악하므로 나는 선량하다”는 이해방식으로는 그 많은 홍콩 민중이 어떠한 정신으로 풍찬노숙하면서 체포와 구타의 위협을 무릅쓰고 최루탄과 후추 스프레이에 맞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에서 나는 우산운동에 참여했던 교육 종사자의 시점에서, 국가주의 현실정치론이 등한시하고 있는 민중 주체를 다시 이 운동의 중심적 위치에 돌려놓고자 한다. 한편 국가주의 현실정치론의 중국 및 홍콩의 정치·경제 분석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논하고자 한다.6)
초심을 잊지 말자
“초심을 잊지 말자”는 70여일간 진행된 점령운동의 핵심구호로서, 일차적으로는 ‘진정한 보통선거’에 대한 추구를 잊지 말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진정한 보통선거에 도달해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번 운동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른바 정권탈취식의 혁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민주적 회귀’ 운동이 이루지 못했던 ‘식민성 제거’ 사업을 민주적 보통선거를 통해 완성하려는 것으로, 다시 말해 홍콩인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제도를 건립하여 식민 이전의 생활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7) 또한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자아”가 “자신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는” 주체가 되어(이 때문에 「드넓은 바다와 끝없는 하늘」(海闊天空)8)가 항쟁 주제가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불복종의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시민추천제와 정치개혁 재검토는 정치적 수단과 과정으로, 그 목표는 홍콩의 각종 위기를 진지하게 대면하고 해결하여 모두가 더욱 살기 좋은 사회의 비전을 그리는 것이다.
현재 홍콩이 직면한 위기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의 빈부 양극화, 생계만을 추구하는 발전주의,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로 향하는 추세이다. 위기에는 또한 환경오염, 지속 불가능한 식품 및 생태 환경, 그리고 도덕과 인성의 타락, 즉 협소한 물질적·경제적 가치로 ‘참됨’과 ‘선함’을 제거(혹은 대체)하려는 문화적 기획과 사회개조가 포함된다. 이러한 각종 위기를 조성하고 그 깊숙이 우리를 떨어뜨린 역사적·현재적 원인은 한마디로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홍콩의 식민적 성격(특히 정치관료 및 경찰 고위층에게서 드러난)이 중국 사회주의 전통의 자본주의 발전기획과 결합한 것으로, 이를 통해 승자독식, 양극화, 나르시시즘적 냉소주의, 대중영합적 이질공포증(mixophobia) 등의 사회문화 상태를 조성함으로써 인간을 단지 생존만을 위해 일하는 동물로 만들려 한다.
십여만 홍콩 민중이 우산운동에 참여한 것은 이상의 각종 위기와 생활상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할 것이다. 그 목표는 공공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풍족한 생활만을 중시하는 노예적 잠재력에 저항하는 것이며, 그 이념은 ‘점령·항중·민주’(점령의 방식과 항중의 자세로 민주를 추구함)이다. 이같은 목표와 이념에서 우리는 홍콩 민중이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권리와 의지, 행동을 포기하지 않으며, 단순히 생존의 보장만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점령운동 과정과 진압 이후, 중국과 홍콩 정권의 친(親)체제파9)가 계속해서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타인의 생계를 방해한다” “안정적인 번영과 상향적 사회이동〔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단념하라” 등의 상투어를 반복하는 것은 교묘한 어법을 이용한 정치적 책략일 뿐이다. 그뿐 아니라 더욱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학생과 청년 및 기타 민중의 관심과 우려를 도외시하며, 젊은이들의 욕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초조함, 그리고 참됨(거짓말에 대한 염오), 선함(윤리·도덕), 아름다움(예술적 창의성)에 대한 진지한 견지와 끈기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정권의 친제제파는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존재로서, 반복해서 동일한 (낮은) 수준의 착오를 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양지(良知)와 상식의 혁명
이번 민주운동을 외세에 조종당해 정권을 탈취하려는 혁명으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운동은 정권을 바꿀 의지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것은 운동과정에서 일상생활 속의 습관과 상식을 흔들고, 나아가 깨부수고자 한다. 만약 정말로 이 운동을 혁명이라 일컫고자 한다면, 그것은 단지 ‘상식’과 ‘양지’의 혁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동요시키고 전복하고자 하는 대상은 ‘생계지상주의’라는 단일한 가치, 관례만을 따르는 형식주의, 청소년에 대해 주류사회가 품고 있는 오해와 신화, 그리고 정치적 이해와 상상이다.
2014년 12월 11일 깜종(金鐘) 점령운동이 진압될 때 최전선의 분리대 앞을 지키고 있던 것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It’s just the beginning)라는 표어였다. 이처럼 우산운동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펼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작되었는가? 어떠한 낡음이 사라지고, 어떠한 새로움이 왔는가? 70여일에 걸쳐 진행된 점령운동은 체제의 높은 벽을 허물지 못했지만, 진부하고 교묘한 수많은 언어를 성공적으로 약화시켰다. 또한 신시대를 위해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세우는 데 돌파구를 마련했으며, 상식의 혁명을 시작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바로 낡은 사회적 관계, 문화적 가치, 그리고 제도적 구조와 철저히 결별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식의 혁명이란 바로 기존의 낡은 규범과 관습을 뿌리뽑고, 새로운 시야와 세계인식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의 건설은 결코 단번에 성공할 수 없으며, 상식의 혁명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라는 구호는 바로 이처럼 기나긴 혁명의 과정을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혁명은 정권교체보다는 정치적 상식을 개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을 인용해 프랑스혁명의 심원한 영향은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것이 아니라, 교육을 보급하고, 민주·자유·평등 등의 개념과 가치가 정치적인 상식이 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10) 홍콩의 경우에도 현재 가장 몰염치한 정당 역시 ‘민주’적인 홍콩 건설을 자임하며, 특권을 독점해 이익을 얻는 대기업 또한 ‘자유’라는 이름이 붙은 정당을 지지해야 하고,11) 높직이 민중과 동떨어져 있는 식민정권도 ‘평등기회위원회’12)를 설립했다.
마찬가지 이치로, 실패로 평가된 많은 혁명, 예를 들어 1968년 세계학생운동은 새로운 페미니즘 세대를 낳았을 뿐 아니라 그후 30여년간 미국사회에서 반전(反戰)이 상식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심지어 9·11사태 이후의 소위 반테러리즘 역시 68년의 영향하에 있어서, 아무리 호전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먼저 국내의 반전 목소리를 최대한 방지하고 억압해야 한다. 그것은 전쟁의 승패보다도 중요하다.13)
우산혁명이 맞서고 있는 것은 민주·평등·자유·법치 등의 개념을 왜곡하고 정치적 상식을 개조하려는 베이징 및 홍콩특별행정구 정권의 시도이다. 이들 정권은 전심전력으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며 백색테러를 조장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기고 희망을 앗아간다. 이로써 인류의 상상력을 훼손, 약화시키고 꿈과 희망을 말살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위의 ‘정치적 상식’을 부단히 주입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같은 강제된 상식을 거부하는 것, 나아가 철저히 폐기하는 것이 근본적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우산혁명은 또한 양지(양심)를 일깨웠다. 양지는 법률이나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기준에 따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잣대는 세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법률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행하는 도덕적 기준이 폭력을 반대한다면, 법에 따라 집행하고 관습에 따르는 것이 별다른 논쟁을 낳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대중이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는 것을 용인하고, 심지어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을 좌시할 때 양심은 무엇에 근거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양심이 공공성에 기초할 것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양심(양지)은 공공의 대화를 통해서 타인의 위치나 처지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가능한 한 다수의 상이한 입장을 이해하여 자신의 사유와 행동의 판단기준으로 삼을 때 세워질 수 있다. 이 점에서 홍콩 경무처장 창 와이홍(曾偉雄)의 논법, 즉 “경찰이 법에 따라 엄격하게 집행한다면, 모두가 걱정하는 바의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14)라는 발언은 사실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 경찰이 오로지 엄격하게 법에 따라 처리하거나 상부 지시만 집행하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상명하복의 목소리만 듣고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어 장차 다른 위치와 입장에 있는 요구와 염원을 도외시하고,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고 이해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기꺼이 잊고 싶은”, 양심에 위배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다시는 타인과 자아가 친밀한 방식으로 공존할 수 없게 된다.
학생과 민중이 점령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권력자와 특권층에 편향되어 민심을 무시하는 정치적 입장을 취한 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큰 이유는 정부와 경찰이 비양심적이라는 데 있다. 한 홍콩 공무원은 노란색 리본(점령을 지지하는 행동의 표시)을 매고 출근하면서 다음과 같이 직언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 입장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이다. (…) 나는 단지 출근할 뿐이지, 양심은 있다. 내가 정부에서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부의 방식에 동의해야 하는 건 아니다.”15) 또한 내 수업을 듣는 매우 온건한 학생들은 경찰이 80여발이 넘는 최루탄으로 평화시위 중이던 학생과 민중을 제압하고 경찰봉을 사용해 무력으로 현장을 철거하는 것을 목도하고서 그 즉각 현장에 달려나갔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바로 친구 간의 도의(道義)이자 참됨과 선함을 향하는 양지였다.
학습과 사유의 결여는 양지와 상식의 혁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산운동의 발단은 작년 9월 22일 대학생과 중학생이 제기한 “수업은 거부하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罷課不罷學)라는 선언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수업거부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비민주적인 정치개혁에 대한 강렬한 반응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수업거부는 단지 교실에서의 수업을 정상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끌고 나왔을 뿐이다. 그곳에서 나온 이후 학생들이 사회운영에서 습관이 되어버린 무사유의 상태를 진정으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은 아직 미지수이다. 반면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진지하게 공부함으로써 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부한 탁상공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늘날처럼 학습과 사유가 결여되어 문제와 위기가 부단히 누적되는 시대에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은 수업거부보다 훨씬 급진적인 것이며, 동시에 양지와 상식의 혁명이 시작되는 전제이다.
수업은 거부하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
대학생 ‘수업거부 선언’16)은 학생이 교실에서 나와 사회운동에 뛰어들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어서 1500여명의 중학생이 수업거부에 동참했는데, 이때 학민사조(學民思潮)17)에 의해 제출된 수업거부 선언이 매우 흥미롭다. 그것은 수업거부의 원인을 긍정형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수업거부가 ‘무엇이 아닌지’를 설명한다. “수업거부는 게으름을 피우려는 무단결석이 아니다. 수업거부는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거부는 제멋대로 장난치는 게 아니다. 수업거부는 범죄가 아니다.” 그리고 선언의 결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말한다. “우리가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여기서 수업거부 선언이 어떠한 비판에 대한 응답인지 알 수 있다. 기존의 보수 우익정권과 재벌, 중공 친화적인 체제파 정당은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함으로써 납세자의 돈을 낭비한다고 지탄하고, 심지어 그것이 범법행위와 같다며 암흑가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빗댄다. 그들은 또한 제보전화를 개설해 교육당국의 개입을 요구함으로써, 학생들의 수업거부가 일어나는 학교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홍콩의 전임 교육국장은 학생들을 다음과 같이 야유했다. “파업은 희생이 아니다. 퇴학이야말로 희생이다.”
정권과 대자본가 외에 배외적이고 현실정치적인 홍콩의 우익 정치세력 역시 학생들의 수업거부가 “살상력이 없고 비현실적이며 형식주의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더욱이 그들은 “수업은 거부하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표현방식 자체를 비웃는다. “수업은 하지 않아도 공부는 계속한다고 하는데, 그럼 다음번에 선착장 노동자가 파업할 때 ‘파업은 하지만 일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파업은 하지만 생산은 계속하는 것이다. (…) 수업을 거부한다면 본래 공부를 할 수 없는 법이고, 공부를 계속한다고 해도 수업을 빼먹고 강좌를 들으러 가는 것뿐이다.”18)
심지어 일부 좌익 사회운동가 역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사회민주연선(社會民主連線) 소속 입법회 의원 렁 콕홍(梁國雄)19) 역시 학련이 ‘수업은 거부하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는 이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며, “수업거부가 어떻게 공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20)
수업거부 예고 이후 나온 이상의 비판에 대해 학생들이 수업거부 선언에서 보인 대응방식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수업은 거부하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는 주장의 급진적 잠재력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토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당대 홍콩사회의 맥락에서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은 ‘수업거부’보다 더욱 급진적인 것이다. 따라서 운동의 핵심은 ‘수업거부’가 아니라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현재 홍콩사회의 가장 큰 위기는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대중매체의 고위층 모두가 학습과 사유를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적지 않은 민중과 학생들도 학습의 의지와 능력을 상실해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열린 자세로 낯설고 신선한 사물을 수용하고 그것에 호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며, 진부하고 뒤떨어진 편견과 습관에 얽매여 잘못을 교정할 능력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제기하는 것은 가장 철저하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꾀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급진적인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과 한나 아렌트가 한목소리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민중이 점차 사유와 학습의 습관을 잃고 진부한 어구와 명령에 복종하는 것에 안주할 때 사회는 쉽게 전체주의로 향하게 된다.21) 홍콩의 식민적 습성이 중국식 정치의 통치와 결합되고 정권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더욱 강력하게 불공평하고 불의한 정책을 추진하는 때, 무사유와 무학습이 초래할 결과는 매우 걱정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교육업무를 어떻게 제대로 해낼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나는 본래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는 교육업무를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산혁명의 세례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지난 두어달 동안 많은 학생과 청년이 각종 방식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들은 사회에 대한 인식을 나름대로 확장하고, 협소하고 단일한 가치관념을 개혁 혹은 약화시켰으며, 활동을 조직하고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능력을 키웠다. 민중은 점령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발적으로 각종 질서를 세우고 지켰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청결을 유지하고 음식을 분배했으며 의료품을 준비했다. 또한 자습구역을 설치해 자발적으로 보충학습을 했고, 스크린이 설치된 이동교실을 만들었으며, 무대에서 연설을 하고 그룹 토론에 참여했다. 일부 학생들은 괄목할 성과를 보여서, 우리처럼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수들은 과거와 현재 강의실에서 3~4년간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지난 70여일의 광장에서의 영향만큼 효과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물론 학생과 청년들은 우산운동 때문에 간혹 공부의 좋은 기회를 놓쳤을 수 있고, 일부는 더욱 큰 댓가를 치렀을 수 있다. 하지만 배움이라는 것은 본디 착오 속에서 배태되는 것 아닌가. 청년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른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교육자의 시선으로는, 자신이 영원히 올바르며 절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야말로 구제불능이며 학습과 사유를 결여하고 있다. 어른들 중 일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 대중매체의 고위층이 바로 그 예이다.
근본으로 돌아가고, 미래로 나아가자
초심을 잊지 않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시대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사상과 사유를 보호하고 활성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우산운동을 어떻게 계속해갈지에 대한 토론을 심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시 한번 점령할 것인가, 아니면 ‘도처에서 꽃피울 것인가’(遍地開花)?22) ‘지역공동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走入社區)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장기간의 비협조운동과 시민항쟁은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다시 한번 ‘점령’을 한다면, 그것은 본토의 공간과 민중의 시간을 되찾아 개인 하나하나가 사고하고 학습함으로써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종사하게 하는 것일 터이다(이것은 ‘점령’의 영어낱말인 ‘occupation’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역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기’란 다양한 공동체에 존재하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가치를 개조함으로써 학습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비협조운동과 시민항쟁을 도처에 꽃피우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친구들이 명령에만 복종하는, 학습과 사유를 결여한 상태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교육 종사자라면 미래를 탈환하려는 청년들의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할 것이다. 다만 선배도 모르고 후배에도 관심이 없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만이 청년들의 함성이 두려워서 불만을 품고, 심지어 ‘이민’을 고려할 것이다. 미래는 본래 젊은이와 그 후대의 것이다. 나처럼 좀더 나이든 교육 종사자의 경우, 그들이 미래를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학습과 사유의 장애물을 허물어서, 잘못을 바로잡는 가운데 더욱 순조롭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초심을 잃지 않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과정 속에서 학습과 실천은 동일하게 중요하다.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비판적 언술을 생산하는 것 외에도, 사회운동의 과정에서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학습이 다시 한번 사회운동과 지식인의 중심이 될 때 전망이 바로 서고 운동의 목표와 실천이 연결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가치를 협소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문화 기획에 더욱 근본적이고 효과적으로 저항함으로써 상식과 양심의 혁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번역 | 송가배(宋嘉俳)・서울대 중문과 박사수료 gabaesong@gmail.com
* 이 글의 원제는 「在缺學無思的社會脈絡下思考香港的‘雨傘運動’」으로, 본지의 청탁에 응해 필자가 보내온 원고를 완역한 것이다. 원문의 각주 외에도 한국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곳에 역주를 달았다. © 許寶強 2014 / 한국어판 ©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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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8월 31일 중국의 제12회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상무위원회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보통선거 문제 및 2016년 입법회 구성방법에 대한 결정(초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치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친중국 인사만으로 후보를 제한하는 것으로, 홍콩 각계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후추 스프레이를 우산으로 막으면서 ‘우산혁명’ 혹은 ‘우산운동’이라는 명칭이 탄생했으며 가두점령과 수업거부 및 동맹휴교로 확산되었다—옮긴이.
2) http://beyondnewsnet.com/20141224-hk-localization.
3) 許寶強 「民粹政治與犬儒文化—為香港 「新自由主義」 「埋單」」, 『人間思想』 第六期,台北:人間出版社 2014, 81~100면.
4) 앞의 기사.
5) 2012년 7월 1일 임기를 시작한 제5대 행정장관 렁 춘잉(梁振英)—옮긴이.
6) 許寶強 「千萬不要忘記階級分析—本土主義的政治經濟根源」, 『思想香港』 第二期 2013(http://media.wix.com/ugd/46d502_8361d61f57c4414a9a584cb7dd586681.pdf).
7) 1982년 홍콩반환을 놓고 중국과 영국의 협상이 진행되자 홍콩중문대 및 홍콩대 학생들은 ‘민족으로의 회귀’에는 찬성하되 홍콩에서 민주주의가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이것이 ‘민주회귀파(民主回歸派)’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번 점령운동을 계기로 지난 30여년간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을 정리 및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표적으로 홍콩중문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초이 지겅(蔡子強)은 홍콩중문대 학생으로서 1980년대 민주주의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민주회귀파의 이상이 이미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이상의 내용은 蔡子強 「路走到這裏分手: 民主回歸派的落幕」(http://www.pentoy.hk, 2014.9.4) 참고—옮긴이.
8) 홍콩 록밴드 Beyond의 대표곡(1993)으로, 자유로운 일생을 소망하는 내용임—옮긴이.
9) 현재 홍콩의 정당은 크게 친체제파(체제파)와 범민주파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반대세력에 의해 각각 ‘보황당(保皇黨)’과 ‘반대파’로 불린다. 체제파는 홍콩특별행정구 정부 체제와 중공정부를 지지하며 민주홍콩건설협진연맹(민건련), 자유당, 신민당, 홍콩경제민생연맹 등으로 구성된다. 범민주파는 민주주의, 행정장관 및 입법회 위원의 보통선거를 지지한다. 온건파인 민주당, 홍콩민주민생협진회, 공민당, 그리고 급진파인 사회민주연선, 인민역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옮긴이.
10) David Graeber, The Democracy Project: A History, a Crisis, a Movement, New York: Spiegel&Grau 2013.
11) 각각 현재 홍콩의 최대 정당인 민주홍콩건설협진연맹(민건련)과 자유당을 가리킨다. 민건련은 베이징 정부에 친화적인 인사들을 중심으로 창립되었으며, 자유당은 ‘본토’ 자본가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최저임금 및 노동시간 제한 등을 반대한다—옮긴이.
12) 홍콩정부 관할하의 독립된 법정기구로서, 1996년 설립된 후 주로 차별반대 및 평등기회 촉진을 도모해오고 있다—옮긴이.
13) David Graeber, 앞의 책.
14) 『852郵報』 2014.7.10.
15) 『明報』 2014.10.7.
16) 홍콩대학생연합대학학계 파업선언(香港專上學生聯會大專學界罷課誓言). 홍콩대학생연합(학련)은 1958년 설립된 홍콩 최대의 학생조직으로, 8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옮긴이.
17) 1990년대 이후 출생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홍콩의 학생조직으로, 2011년 설립되었으며 이듬해 홍콩정부의 국민교육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옮긴이.
18) http://www.vjmedia.com.hk/articles/2014/09/22/85902.
19) “양제(兩制)가 일국(一國)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정치인. “애국심은 긴 머리카락처럼 항구하게 불변해야 한다”며 긴 머리를 고수해서 ‘장발(長髮)’이라고도 불린다—옮긴이.
20) http://sanpoyan.journalism.hkbu.edu.hk/?p=1288.
21) Zygmunt Bauman, Liquid Modernity (2012), Zygmunt Bauman and Leonidas Donskis, Moral Blindness: The Loss of Sensitivity in Liquid Modernity (2013), Cambridge, UK/Malden, MA: Polity Press.
22) ‘遍地開花’는 점령운동 과정에서 빈번히 등장한 표현으로, 운동의 확산을 주장하는 것임과 동시에 실제로 2014년 9월말 이후 쫑완, 깜종, 몽콕, 침사추이 등의 지역으로 점령이 확산되었던 상황을 묘사한다. 한편 거센 반(反)점령운동 및 부정적인 여론의 압력을 받아 ‘포스트 점령운동’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 말은 점령이 아닌 다른 운동방법, 가령 지역공동체 운동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柯衍健 「民意下滑, “雨傘運動”應遍地開花, 非固守自封」(http://www.pentoy.hk/, 2014.11.17.) 참고—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