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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종연 金鍾延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부 1학년. 1991년생.
rlawhddus2@hanmail.net
리사이클
새벽에 부음을 들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의사는 죽은 지 백년이 넘은 환자의 예를 들면서 자신이 죽었다고 믿게 되는 것도 하나의 증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지 백년이 지났지만 이렇게도 살아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영원히 사는 것은 증상입니다만 저는 제 손으로 시신을 몇번이나 수습한 적이 있습니다 운명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깊은 퇴폐의 밤을 보내도 범해지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무언가 저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창부가 아이를 생각하다 절정을 맞게 되는 것처럼 다 잃고 조금 구하는 일입니다 사랑 없이도 저를 흔드는 비밀은 거의 다 보고 나서야 재방송인 걸 깨닫게 되는 판타지입니다 여자는 이미 낳아버린 아이를 안고 자주 저울에 올라갑니다
백년 후의 제가 누워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체념할 수도 있는 인생이 아직도 몸을 쓸어주고 갑니다 이 새벽의 몰락과 부흥을 동시에 바라면서 하룻밤 만에 부활하고 이틀을 기다린 여자가 되어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작이지 않는구나 백년 전에 죽은 아이가 백년 후의 거짓말 때문에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해방촌
해방 이후—전쟁놀이 하는 아이들
멀쩡한 다리를 절어대면서 나 잠깐 죽고 다시 태어날게 죽는 척을 하고는 금방 일어나 작대기를 휘둘러대는 병신 같은 놀이…… 재미있어 보인다
늙은이들은 벤치에 앉아 취해간다 술과 담배가 중독은 아니었지 나는 무엇에든 중독되었을 것이다 늙은 부인과 헤어지기만 하면 누구와도 사귈 수 있는 양
중성화한 개처럼 짖어대는 저 늙은이들처럼
나는 요즘 오래 키운 개가 성욕이 없어서 걱정이다
근황이랄 건 어머니가 늙었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늙었다
전장에서의 사랑이란 그렇듯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 아플수록 외로워지고 싶어지는 이곳이 병동이라면 응급실도 중환자실도 없이 환자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미리 다쳐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늙은이들은 자식을 욕해도 자식의 자식은 사랑하고 다른 늙은이에게 자랑하다 싸움을 하고
전쟁은 모르지만 전쟁영화는 알아서 어머니 티브이 좀 보세요 우리 집이 날아가고 있네요 이건 정말…… 진짜 같구나
우리 집이 날아가면 어디로 가야 하나 집과 함께 날아가겠지
친구의 이를 날리고 돌아와 복수를 배웠다 이 없이 웃는 게 못생겨서 몇대 더 때리고 싶었지만 두들기다보면 안다 멈추면 내가 맞는다 사랑……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 수 있나 고백하려 산 꽃한테 고백이나 받게 되겠지
사랑해요 그냥 나와 결혼해줘요 청혼을 기대하는 여자의 뺨을 속으로 몇번이나 후려갈기면서 비관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필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오래전에 죽은 사람 같고
오년 전에 죽은 할머니와 십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애미야 국이 짜구나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처럼
귀신이 되는 건 무엇인가 죽는 순간의 모습으로 귀신이 된다면 이제 죽어도 나쁘지 않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 귀신들 사이에서
자꾸 내가 떠나거나 죽는 꿈을 꾼다는 어린 친구를 위로해주고 동시에 떠날 생각을 하면서 점점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휴전이 길어 전쟁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해 질 때까지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내일 다시 하자 약속하고 돌아가는 길 너희는 약속이 없어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런데 너는 왜 돌아가지 않고
죽었다 살아나면 아픈 곳은 사라진다네 친구여
프렌치스쿨
고장 난 변기 때문에 아침마다 학교로 뛰어가면서 나는 배웠다
물 대신 김빠진 맥주를 마시면서 악마처럼 시커멓게 부화한 계란을 보면서
계란을 잘 품으면 닭이 되고 닭이 되면 계란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텐데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가며 시답잖은 시를 시라고 써대며
배웠다 혁명과 역사와 그 뒤안길에서 걸어 나오는 친구의 슬픈 얼굴에서
사랑하지 않아도 닮아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자주 열변을 토했지만
토해도 나오는 건 술과 안주 건더기들 아까워서 눈물이 난다
작은 자취방에 들어와 라면을 끓여 그대로 싱크대에 다 쏟아버리며
이것이 반항이다 자랑스럽게 킥킥거리고 다음 날이면 기억이 안 나고
배수구에서 면발을 하나하나 건져내면서 쥐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귀여운 쥐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 매일 찾아오는 쥐
자고 일어나면 구석구석 귀엽게 똥을 싸놓고 우리는 똥을 참으며 학교로 뛰어가고
강의실에 앉아 배웠다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천번쯤 들으면 이상해지는 말
판서하는 교수님의 뒷모습은 정말 교수님처럼 생겨서 나도 정말 등 돌리고 싶었네
낮에는 학교에 밤에는 술집에 모여 랭보처럼 손을 휘저으며
아모-흐 파띠! 운명을 사랑하라! 프랑스인이라도 된 듯이 소리치는 동안
나는 자주 도망쳤다 그 광란의 현장이 프랑스혁명이라도 되는 양
죽은 선배들이 남기고 간 캠퍼스의 낭만 때문에 그렇다고 낭만주의는 아니고
우리는 그만 심심해져서 혼자 집에 들어가 강도가 든 척을 하거나
방범창을 뜯어 창문을 넘어다니면서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해내면서
배웠다 사랑은 없고 낭만만 가득하도록 쥐와 함께 잠들면서
나이 많은 형들의 성숙한 연애를 결혼하는 누나들의 불안한 표정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것만 남았는가 다들 집으로 돌아간 건 아닌데
모두가 지겹게 엄살떨던 시절이 아프지도 않게 사라지고 있다
시 | 심사평
수사의 과잉이 사물과 현실을 왜소하게 한다. 문장들은 매끄러우나 빈혈을 앓고 있고, 이미지는 넘치나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삶과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보단 장황한 요설과 실험실에서 배양된 듯한 인위적인 표현들이 서로를 감염시키며 유사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인 예심 인상을 교감하며 심사진은 각 3편씩을 뽑아 모두 9편을 본심에서 논의하였다. 이 가운데 6편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먼저 「다정한 중력」 외 4편의 응모자는 형식적 완결미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고, 드물게 현실적 발화를 하고 있는 「시대의 인문학」 외 4편의 응모자는 언어 미감에 대한 예각화가 요청되었다. 「vintage」 외 4편의 응모자는 「팝콘」 같은 뛰어난 작품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안타까웠다. 각별히, 투고할 때 작품의 배열순서도 유념하길 바란다. 나머지 「올바른 독서 습관 기르기」 외 4편의 응모자는 소박한 질감의 언어에 뜻밖의 경이로움을 담을 줄 아는 장기가 있었다. 자신의 개성에 좀더 집중한다면 성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최종에 남은 작품은 「레코더」 외 4편과 「리사이클」 외 4편이었다. 「레코더」 외 4편은 세련된 감각과 날렵한 솜씨 속에 여백을 다루는 힘이 돋보였다. 이 응모자는 무엇보다 상황을 연출할 줄 알고, 시적 부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행과 행 사이의 비약이 모호하다는 점, ‘혼잣말이 울리는 형식으로’나 ‘약속이 유전되는 형식’ 같은 유사한 구문 남발이 흠이었다. 이에 비해 「리사이클」 외 4편은 체험에 충실하면서도 자기만의 호흡으로 시적 직관이 살아 있는 표현들을 쓰는 힘이 있었고, 다듬어지기보단 응원을 얻어야 할 어떤 열기를 아이러니한 화법으로 구체적 삶 속에 착근시킬 줄 알았다. 비문들이 문제적으로 다가왔으나 가능성의 영토 속에선 그마저 생산적인 리듬에 봉사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전혀 다른 두 개성 앞에서 팽팽한 장고에 들어간 심사진은 결국 「리사이클」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당선자에겐 축하를, 낙선자에겐 응원을 보낸다. 선에 들지 못한 분들 가운데도 정진하면 진경을 펼쳐나갈 수 있는 동량들이 없지 않았음을 따로 기억해두고자 한다.
손택수 이영광 조용미
시 | 당선소감
죽으려고 쓰는 게 시는 아닙니다만 올해에는 살아보려고 시를 썼습니다. 그렇기에 제 시는 모두 질문이었습니다. 동시에 모든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손을 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 질문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한번이라도 손을 들어본 아이들은 압니다. 손을 드는 순간 느껴지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 그것들을 견디다 조용히 손을 내리면 불리고 마는 이름, 질문은 사라지고 망연히 하게 되는 대답…… 오랫동안 질문을 곱씹다보면 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매력적인 오답들이었습니다. 믿고 싶을 땐 믿고 믿고 싶지 않을 땐 믿지 않으면 그만인 그것들이 제 종교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손을 들고 있습니다. 후회는 있지만 어떤 회개도 고해도 없습니다. 저는 손을 들고 손 든 것을 후회합니다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참담하고 쉽게 잊혀지는 한해였습니다. 저는 안산에 삽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렇게나 살아남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또 동시에 잊어버리려고도 해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배가 침몰하던 지난 꿈을 결국 떠올려버리고 모든 슬픔의 원흉이 되어보기도 했지만 꿈에서 깬 몸이 너무나 살아 있었습니다. 아프게도 아프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추한 건 여전히 그대로고 모두에게 눈길이 가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면 아직은 아름다운 것과 살고 싶습니다. 여전히 살아남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시를 써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껏 저를 버려둔 분들에게 크나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긴 밤과 짧은 낮을 견뎌온 서울예대의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삶의 반 정도를 함께 지냈다 느낍니다. 그리고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는 나의 다른 친구들. 너희가 나를 매번 구해주고 있다. 자랑스러운 안양예고의 선생님들과 서울예대의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자주 생각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저의 불모지에 모지가 되어주신 현대시의 선생님들께 큰절을 올립니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롯이 혼자 가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대산청소년문학상에 세번 투고해 세번 떨어졌습니다. 진작에 상을 주고 싶었지만 이 수상이 더욱 아름답기 위해 가슴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8년 동안이나 참아주신 존경하는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대산문화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김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