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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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24인 신작시선
 

김승희 金勝凞

1952년 광주 출생.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등이 있음. sophiak@sogang.ac.kr

 

 

 

하늘은 공평하게

 

 

하늘은 공평하게

슬리퍼를 끌고 나온 노인에게도

아장아장 걷다가 모래밭에 엎어지는 아가에게도

정장 양복을 차려입고 생명보험을 팔러 다니는 영업사원에게도

아기를 잃어버리고

젖몸살이 난 퉁퉁 불은 젖을 짜고 있는

탐스러운 젊은 엄마의 곡선의 유방 위에도

박사과정 학생의 무거운 가방 속으로도

노점상 아주머니의 산처럼 쌓인 과일 위에도

정신이 혼미한 할머니의 혈관 주사액 주머니 속으로도

하늘은 공평하게 하늘을 골고루 나누어주신다

 

누구의 하늘인가?

누구의 파란 하늘인가?

난 하늘이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나누어주시는 것이 좋다

하늘은 누구의 것이 아니어서 더 좋다

내 것이 될 수 없어서 더더욱 좋다

 

시간은 떨어지는 칼과 같아서

나 하늘나라 갈 때도

저 산 위에 꼭 저대로 저 하늘 걸어놓고

하얀 신경의 흉터 하나도 남기지 않고, 걷어가리,

두고 가리,

놓고 가리, 저 파란 하늘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