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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시대 전환의 징후를 읽는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평화발전의 이념인가

 

 

원 톄진 溫鐵軍

중국 런민(人民)대 지속가능발전고등연구원 교수, 시난(西南)대 향촌건설학원집행원장.

 

황 더싱 黃德興

시난대 향촌건설학원 특임연구원, 콩 링난(南)대 콴퐁홍콩문화연구발전부 연구원.

 

* 이 글은 원제 「一带一路和全球货币-地缘政治版块重组」를 옮긴 것으로, 중국 국가사회과학기금중요프로젝트(中國國家社科基金重大项目)의 ‘국가 종합 안전기초로서의 향촌자치의 구조와 메카니즘 연구’(作为国家综合安全基础的乡村治理结构与机制研究)에 속한 부속과제 “지구화 과정 속의 국가안보: 국제적 비교”의 단계적 연구 성과물이다(과제번호 14ZDA064).

 

 

지난 일년 세계정세는 급변했다. 그 규모의 광대함이나 영향력의 깊이로 보건대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와해 이래 최대의 변화다. 이에 목전의 거대한 변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 ‘일로’를 통칭하는 중국의 새 국가전략)는 중국 내부의 과잉 생산력과 새롭게 출현한 금융이익을 처리하기 위한 외부공간을 개척하려는 전략이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생산과잉이 낳은 위기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지난 세기 30년대의 교훈을 깊이 숙려하여,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평화발전의 사상을 제출했다. 그러나 출현과 동시에 ‘일대일로’는 19세기말에서 2차대전 사이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과 유사한 국면을 보이고 있다.

 

 

1. 육상권력과 해상권력의 결합인 ‘일대일로’와 해양패권

 

주지하듯, 역사적으로 한·(漢唐) 이래 중국의 대 서방무역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대륙에서 이슬람세계의 부상을 촉진하는 작용을 해왔다. 이슬람세계는 통상 루트를 따라 세력범위를 확장해갔는데, 장기간의 무역적자로 은() 위기를 맞은 유럽은 이슬람세계를 에두르는 동방무역노선을 개척함으로써 결국 해양강국이 되었다. 에스빠냐,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해양강국이 되었고 그 마지막 주자가 미국이었다.

만약 ‘일대(一帶)’만을 제기했다면 그저 전통적인 육상권력 전략에 머물렀을 것이다. 반면 ‘일대일로’는 광활한 대륙의 종심(縱深)에 기반하되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변경에서 하위(sub) 해양권력을 개척하는 전략이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이는 결코 새로운 게 아니다.

19세기말 20세기초, 후발 제국주의 패권국이었던 독일(프로이센)은 기본적으로 육상국가였다. 영국, 프랑스 같은 해양대국에 맞서 통일된 도이치제국이 가장 먼저 착수한 프로젝트가 바로 황실해군의 창설이었다. 이는 육상강국인 러시아의 뾰뜨르(Pyotr) 대제가 서쪽으로 천도하고 해변의 늪지대에 상뜨뻬쩨르부르그를 건설하여 해양강국의 건설을 꿈꿨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뾰뜨르 대제는 원대한 계획을 품었지만 사치하지 않았다. 그는 상뜨뻬쩨르부르그 여름궁전에 집을 하나 짓고 거기에 ‘나의 즐거움’(mon plaisi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트해가 바라보이는 그 집은 소박한 인테리어에 오늘날 흔한 귀족 별장보다 규모가 작았다. 그의 즐거움은 바로 그 집 앞 발트해가 보이는 곳에 앉아 육상권력과 해상권력의 결합을 통해 유럽의 일류국가가 되는 러시아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단 한차례의 의미있는 승리만을 거뒀을 뿐이다. 백여년 후인 1905년 러일전쟁에서 후발주자인 일본 해군에 패하여 태평양으로 가는 통로를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뾰뜨르의 후계자는 점점 호사를 부렸다. 훗날 알렉산드르 2세만이 다소 큰 뜻을 품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 패권의 꿈을 이어받은 것은 소련 공산당이었다.

독일 역시 같은 전략의 노선을 걷고자 했다. 1차대전의 진정한 원인은 독일이 부설한 베를린-바그다드 철도였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철로가 가동되면 독일은 서아시아와 무역로를 트고 위로는 광활한 중앙아시아 대륙, 아래로는 페르시아만으로 이어져 영국, 프랑스가 장악한 수에즈 운하를 피해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열게 된다. 19세기 영국의 맥킨더(H. J. Mackinder)는 ‘세계섬’(world island) 개념1)을 제기하여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수송로와 무역을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세계섬 연안의 해상수송을 고려해야 한다. 육상권력은 해상권력에 상대적인 이념일 뿐이다. 진정으로 해상권력에 도전하려면 육상권력에 연결된 해상수송 밴드와 대륙의 종심을 결합시켜야 한다.

 

독일이 오스만제국과 헝가리제국을 관통하여 베를린과 바그다드를 연결하고 아래로는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하기 위해 구상했던 철로. (출처: www.archaeoplan.com/Div01.htm)

독일이 오스만제국과 헝가리제국을 관통하여 베를린과 바그다드를 연결하고 아래로는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하기 위해 구상했던 철로. (출처: www.archaeoplan.com/Div01.htm)

 

영국은 이중전략을 썼다. 독일과 베를린-바그다드 철로에 관한 협력협정을 맺는 한편, 독일로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페르시아의 중남부에 대한 영국-페르시아 회사의 독점권을 인정받으려 했다.2) 그런데 순식간에 1차대전이 발발했다. 물론 1차대전은 독일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1차대전 발발의 도화선은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시해로 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이었다. 독일은 나름대로 주판알을 굴려보고 참전한 것이다. 당시 중동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세력권이었고 또 오스만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맹우였다. 베를린-바그다드 철도는 두 몰락한 제국의 세력권을 관통하는 것이었다. 얼마 안 있어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표적으로 삼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우수한 후발국인 독일이 세계 식민지 쟁탈에 가담하면서 가는 곳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발에 걸리적거리게 된 탓이다.

원래 중동엔 이익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석유가 발견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20세기초부터 석유는 세계 산업과 군사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당시의 주요 산유국인 미국이 일약 세계 제일의 산업에너지 생산국으로 도약했고 영국의 세력권에 있던 페르시아가 그 뒤를 이었다. 만약 독일이 바그다드와 연결되어 중동의 석유자원을 얻게 된다면, 분명 차세대 유럽강국의 지위는 독일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한편으로는 독일을 억누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스만제국에 대한 아랍인의 저항을 책동하여,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전기적 인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훗날 영국은 이라크의 페르시아만 진입로를 차단하기 위해 쿠웨이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19세기말 유럽 열강의 패권쟁탈전은 20세기말의 지정학에까지 줄곧 영향을 미쳐왔다. 1919년 체결한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은 독일의 베를린-바그다드 철로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은 독일과 일본의 제국의 꿈을 분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해상패권에 복무하는 두개의 산업강국을 구축했다.

현재 세계에 대륙형 대국이라 할 만한 곳은 미국, 러시아, 중국뿐이다. 중국은 해상권력으로 육상권력을 포위하는 미국의 책략을 돌파하기 위해 ‘일대일로’를 제기했다. 중국으로서는 내륙 실크로드에만 신경 쓸 수는 없다. 내륙 실크로드는 러시아의 세력권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럽 콤플렉스를 지닌 러시아에 동방은 언제나 전략적으로 부차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몇년 전 유가가 크게 올라 시절이 좋았을 때 중국의 실크로드 제창에 시큰둥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전략적 중심은 줄곧 유럽을 향했다. 한동안 내걸었던 슬로건 ‘유라시아 무역지구’는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구소련 구성원 국가와 유럽을 러시아 주도로 통합하겠다는 것이었다. 터놓고 말해, 중국은 문 밖에서 기다려라, 중앙아시아에는 네가 나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개입이 시작되고 유럽과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 미국의 조종으로 유가까지 하락하자, 뿌찐(V. Putin)은 동방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된 것이다. 심각한 재정악화의 상황에서 러시아는 심지어 중국에 신무기를 연구·개발하자는 제안까지 하면서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시늉까지 했다. 그러나 유럽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러시아의 마음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러시아와의 이해관계가 아무리 밀접해도 중국으로서는 내륙 실크로드에 올인할 수 없다.

미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피동적인 처지가 되었다. 이를 두고 오바마(B. Obama) 외교의 미숙함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당히 성숙한 미국의 외교 시스템에 대통령 개인의 수완이 좌우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이번에 미국은 너무 많은 곳에 불을 질렀다. 전선이 너무 길어졌다. 태평양과 유럽 두곳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각각 고립시키려다보니 몸이 두쪽이라도 모라자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미국이 과했다. 우익 파시스트 세력의 정변을 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킴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최후의 방어벽을 치려고 했던 것인데, 그 바람에 호랑이가 담장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결국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회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독립을 책동했다. 지난 일년간 미국은 온 정력을 러시아에 쏟아부었고, 게다가 이슬람(ISIS,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 문제까지 처리해야 했다. 그런 사정으로 대 중국 공세가 눈에 띄게 약해짐으로써 중국에 숨 돌릴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뿌찐을 압박하고 유가를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중국의 인플레이션 부담이 경감되었다. 이는 미국이 양쪽을 동시에 신경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속전속결로 한쪽을 끝내고 나머지 한쪽에 다시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방심할 수 없다. 미국이 이를 계기로 전략을 바꾸어 대 중국 압박을 강화한다면? 예를 들어, 미국은 겉으로는 동아시아 역내 충돌을 도발하고,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곳에서는 중국 내부의 자본이익집단(집권세력 안팎을 포함하여)과 결탁하여 미래 중국 발전정책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미국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의 적지 않은 재정관료들은 전지구 중앙은행으로서 미국의 굳건한 위치를 깨끗이 인정하고, 미국 주도의 지구질서를 수호할 것을 표명하고 있다.)

미국 역시 ‘일대일로’에 의거하여 외교전략을 조정할 것이다. 일례로 이란이야말로 중국 ‘일대일로’ 제안의 중요한 고리이다. 미국이 이란과 핵문제 타결을 이뤄내면,3) 역내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균형을 고려하여 정책 조정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 미국으로서는 지정학적 이익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친미보수권위주의 정권 앞에 자유민주주의 문명의 기치를 한번 흔들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면 알아서 움직이게 하는 것, 지난 백년 이래 미국의 외교는 늘 이런 식이었다.

 

 

2. 아세안의 복잡성과 중국의 신(新)해상 생명선

 

얼마 전 세상을 뜬 리 콴유(李光耀)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는 매우 흥미롭다. 그렇게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국제적으로 중요한 정치가가 나올 수 있었던 주요 원인으로, 리 콴유 개인의 정치적 지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역시 싱가포르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를 빼놓을 수 없다. 싱가포르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세운 나라다. 영국이 택한 곳이니 지리적·전략적으로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싱가포르가 가로막고 있는 믈라카해협의 후두부는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대륙의 해상통로를 장악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동시에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에너지산업의 생명선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자신의 생존법을 명확히 알고 있다. 바로 서방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리 콴유를 떠받드는 이유는 그가 굳건한 냉전전사로서 공산주의가 역내에 퍼지는 것을 온힘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덩 샤오핑(鄧小平) 이래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이 리 콴유와 친분관계를 유지해왔고, 또 리 콴유가 제창한 ‘아시아적 가치’(권위주의 정치+고효율 정부+국유기업주의)가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부합한다 한들, 싱가포르는 결코 중국의 맹우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리 콴유는 오바마가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힘껏 종용했다. 입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군항을 열어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역내 미군 배치를 돕기까지 했다. 이것이 싱가포르의 생존의 길인 한, 중국은 싱가포르에 환상을 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은 믈라카를 통하지 않고 중국 서남부로부터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다른 운수통로를 열고자 하는 것이다. 태국에서 쌀과 고속철도를 교환하거나 미얀마에 투자를 하려 할 때도 항상 미국과 맞붙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중국에 또 하나의 가능한 선택은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를 경유하여 인도양으로 가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스리랑카에 세계적 수준의 항구를 만들어 인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세안은 중국이 제창한 해상 실크로드의 기점이다. 복잡한 지역이자 일본 다음으로 미국 영향력이 가장 뿌리깊은 곳이기도 하다.

 

 

3. 포스트 브레튼우즈 체제

 

중국의 브릭스개발은행(NDB)+브릭스위기대응기금(CRA),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실크로드기금, 여기에 상하이협력조직개발은행. 객관적으로 보건대 2차대전 이래 미국 주도의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항하는 별도의 시스템이 가동되려는 참이다. 중국은 대영제국 특혜무역체제와 미국 브레튼우즈 달러체제 이래, 세번째로 전지구적 금융무역체제를 주도할 능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물론 이 새로운 체제가 브레튼우즈 달러체제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대항 국면을 구축하는 정도일 것이다. 미국은 19세기말 제1산업생산국이 된 이래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도 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금융주도국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AIIB 등이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상호 보완 및 협력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앞으로 십년 이내, 중국 내부에 큰 동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위안화가 중요한 국제통화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중대 사안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위안화가 20년 후인들 달러의 위치에 도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20년 이내 지구상에 파국적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주요 자원이 고갈되거나 한다면 또 모를 일이다.) 산업자본주의 단계에서 특정 화폐의 역량은 그 나라 정부와 민간조직의 사회적 생산력 및 창조력에 기초한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 단계로 가면 화폐 신뢰도의 근간은 국가의 정치권력에서 나온다. 이로 보건대, 국제적 신용화폐로서 미국 달러의 힘이 주로 그 방대한 군사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군비지출은 전지구 군비의 40퍼센트를 상회한다. 다음으로 군비지출이 많은 열개 국가를 합친 것보다 많다. (최근 군사원칙을 조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두개의 대양에서 동시에 두개의 전쟁을 치를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강대한 군사력에 힘입어 수백년간 주변 지역의 자원과 노예노동의 초과잉여를 착취했던 로마제국과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핵심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투기장, 경기장, 목욕탕 같은 부패한 사치문화를 수출하고 대량의 사치품을 수입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인쇄비라는 최소 자본으로 찍어낸 달러를 세계 각지의 자원과 교환함으로써, 자국민의 높은 소비수준과 전세계가 자유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떠받드는 현대사회의 생활수준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로마에 비해 미국은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2차대전 이래 미국은 줄곧 지구적 고부가가치의 발상지였다. 미 달러 가치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는 미국 자본의 부가가치 창조력이다. 중국이 전지구적으로 부가가치 창조의 발상지가 되지 않는 한, 위안화는 달러는 고사하고 유로화에 도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순론 원리에 따르면, 장래에 위안화가 달러를 능가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나날이 허구화되는 미국 금융체제 자체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미국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인가이다.

지난 십여년 간 중국은 자본수출국이었다. 그러나 큰 그림이 없는 탓에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고 벽에 부딪혔다(리비아와 수단, 그리고 멕시코 고속철도와 스리랑카 항만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바로 AIIB같은 정치적 금융조직의 지원과 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대한 자본수출국임에도 중국에는 뒤를 받쳐주는 금융동맹국이 하나도 없었다. 브릭스개발은행과 AIIB 바로 중국의 자본수출을 받쳐주는 다국적 제도인 것이다.

미국의 곤경은 몇년 전 미국 화폐이익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아시아통화동맹의 출현을 막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으로 회귀하는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일본 우익세력의 부활을 부추겨 중국을 고립시키는 태평양동맹권을 형성한 데서 이미 드러났다.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미국이 제창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지속적인 미국 달러의 호수(dollar lake)로서 태평양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그 주요한 원인은 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TPP 담판이 농산품시장 개방 및 지적재산권 면에서 동맹국의 불만을 샀기 때문이다.) 반면 TPP에 대응하여 중국이 제기한 AIIB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광활한 진영을 구축했다. 그 이유는 TPP의 역내 관세인하가 가져온 한계이익이 사실상 인프라 수출 및 그에 따른 금융서비스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견컨대, AIIB의 탄생으로 인해 미국은 TPP 담판을 가속화하되, 원칙과 전략 면에서 다소간의 수정을 가할 것이다.

본래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TPP를 가동했다. 그러나 그 결과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중요한 국제금융조직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딸리아, 스위스 등 유럽 맹우들이 AIIB 참가를 선언하자 오마바는 긴급 국가안전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이 AIIB의 성립을 국가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AIIB 전후 미국이 주재해온 지구적 금융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맹우들이 브레튼우즈 달러체제라는 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단일패권에 대한 피로가 완연해지면서 배표 한장을 보험 삼아 더 산 것이다. 하물며, ‘일대일로’가 지나가는 곳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왕년 제국의 전통적인 세력권이 아닌가. 중국이 AIIB로 모두가 이익을 나눌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익동맹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유럽에서 가장 먼저 AIIB 참가를 결정한 것은 스위스였다. 중국과의 비밀담판에서 공표를 미루기로 한 탓에 영국이 최초로 AIIB 참가를 선언한 유럽국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와 룩셈부르크처럼 전통적으로 국제조직에 좀처럼 참가하지 않는 두 금융국까지 AIIB에 가세하게 된 상황은 분명 브레튼우즈 달러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를 브레튼우즈 달러체제의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4)라 부른다. 미국과 미국 주도 동맹조직 사이에 이익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브레튼우즈체제는 미국의 과잉 생산품과 자본을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서로 이익이 들어맞았다. 1971년 달러와 금 태환이 중지되면서 시작된 미국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은 유럽 금융집단의 이익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 미국의 금융이익이 유럽의 부채위기를 낳으면서 쌍방의 이익에 근원적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 IMF와 세계은행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 역시 미국이 거부권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는 일 없는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조직은 새로운 지구적 정세의 새로운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지구적 금융협력조직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중국 주도의 AIIB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각국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중국도 미국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2013년 캐나다은행, 잉글랜드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스위스국립은행(SNB), 일본은행 등 여섯개 중앙은행의 유동성 호환 동맹은 구미의 대규모 유동성 위기의 재발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예방책일 뿐이다. 지금의 글로벌 정세는 적극적인 행동을 원한다. 미국 자본의 이익이 주도하는 IMF와 세계은행(그리고 그 분점인 아시아개발은행)은 지구적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정세를 따라가기엔 너무 경직되었다.

중국은 이 새로운 정세 속에서 새로운 지구적 금융연맹을 건설할 수 있을까? 이제 막 금융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한, 산더미 같은 내부 문제에 직면한 전환기의 산업대국으로서, 분명 이는 미증유의 거대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4. 서구 동맹관계의 재편?

 

이번 AIIB 창립에 직면하여 미국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곤혹은 2차대전 이후 구축된 동맹전선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맹우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도 압력을 받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막차에 올라탔다. 결과적으로 이참에 군사기지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일본과 애초부터 별 관심이 없던 캐나다만 남았다. 친미동맹에 최초의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미국 동맹국 상황은 어떠한가? 무엇보다 러시아 문제에서 미국의 태도가 너무 강경했다. 우크라이나가 정전협정에 조인한 뒤, 미국은 발트해 연안에서 장시간의 군사훈련을 시행했고 훈련이 끝난 뒤에도 무기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언제든 개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미국은 화해의 전제조건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반환할 것을 고집했다.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유럽의 맹우, 특히 독일이 미국의 이런 강경책에 동의할까? 독일은 국가이익 차원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물론 미국도 정말로 러시아와 전쟁상태에 돌입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각개 블록에서 미국이 벌이는 지역정치는 기본적으로 분할통치이다. 역내 주요 세력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고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만약 유럽과 러시아가 결맹하여 하나의 강대한 유-러시아(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를 결성한다면,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도발하여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적대국면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유럽정책은 유럽의 이익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AIIB에 관해 유럽 각국이 공개적으로 미국과 결렬한 것도 이들이 미국의 유럽정책에 일정정도 불만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름 그대로 미국 해상권력의 부속기관이다. 나토의 이익은 EU의 이익과 앞으로도 계속 일치할 수 있을까?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원래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의 중요 성원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AIIB에 참가했다. 미국에 불신임표를 던진 셈이다. 일본만이 군비확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미국의 가장 충실한 맹우임을 자처했다. 한국의 경쟁상대는 줄곧 일본이었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인구, 군사, 산업능력 모든 면에서 일본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중요한 무역 동반자가 중국이다. 중·FTA도 이미 체결되었다. 심지어 장래 통일의 문제에서 한국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지원을 요한다. 반면 미국은 사실상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아시아에 안정된 삼국 정립(鼎立) 국면이 형성되어, 한국이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과연 한국이 핵무기를 포기하려 할까? 궁극적으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독립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정책도 한국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말하긴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처럼 자본과잉의 문제에 직면한 일본 역시 인프라 산업의 수출을 갈구하고 있다. 일본 국내의 자본집단은 일본이 AIIB에 가입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사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을 설립하여 아시아 금융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도 결국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역내 매년 8천억 달러의 수요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개발은행이 내놓는 금액은 135억 달러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환경과 인권에 대한 높은 기준 때문이라지만 사실상 미국의 정책에 맞추기 때문이다. 우익세력은 여전히 미국의 배후를 지킬 것을 고집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일본 자본의 이익과 일치할지 의문이다.

세계의 이익집단이 다양화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국 내부의 모순도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이 그 틈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더 큰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 20년 중국은 말이 좋아 도광양회(韜光養晦)지 사실상 조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았다. 세()가 사람보다 강하면 웅크려 은신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앞으로 십년, 중국 외교는 적극적인 사고와 전략을 요청받고 있다.

 

 

5. ‘일대일로’의 이념적 결핍과 사회정의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미국이 수출한 것은 냉전적 지정학이 조종하는 발전이데올로기였다. 세계은행 주도의 발전주의가 개발도상국의 높은 부채위기로 인해 파산하자,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로 제도를 개혁하라는 외교담론을 추동했다. 특히 걸프전 이 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전파는 미국 지역정치 이데올로기의 기조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십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결과적으로 끝없는 지역충돌을 일으켰다. 수십만의 인명피해와 수백만의 난민을 발생시켰을 뿐 아니라 알카에다와 ISIS 등 미국과 서방세계의 숨통을 조이는 조직을 제 손으로 육성했다. ‘채찍+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의 외교 이데올로기는 슬그머니 ‘채찍+안보’로 전환되는 중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역충돌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미국 군사력의 대량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대일로’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평화발전이다. 인프라를 착실히 구축하여 경제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충돌을 점진적으로 감소시켜 평화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평화발전’이 ‘채찍+안보’보다 이치상으로 더 합당함은 말할 것도 없다. 빈곤과 불공평은 극단주의의 온상이다. 물론 인프라 건설 수출이라는 발전주의 역시 지역 내 각종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다. ‘평화발전’ 담론의 맹점은 중국 내부 모순의 굴절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AIIB가 환경과 원주민의 생태 시스템을 파괴한 세계은행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인프라 건설이 중국의 자원수출에만 유리할 뿐 아니라 각 지역의 조건에 부합하는 포용성과 지속발전 가능성을 동반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해야 AIIB와 실크로드기금이 IMF와 세계은행이라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몇년 중국은 인프라 건설 수출이 현지의 실물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담론으로서의 ‘인프라 발전’은 아직 앙상하다. 미국의 ‘자유민주’에 이념적으로 도전하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일대일로’는 제도권 내의 경쟁이다. 그런 만큼 그 성패여부는 핵심가치를 둘러싼 담론적 경쟁력에 달려 있다. 중국은 기필코 자생적인 사회정의 담론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하여 1980년대 이래 전지구적으로 지배적 지위를 구축해온 자유민주주의 담론과 그 확장을 기반으로 제도개혁을 추동해온 소프트파워에 맞서야 한다.

내부적으로 보면 도시화로 과잉생산을 흡수해온 중국은 향토문화와 자원환경을 홀시하고 있다. 30년의 발전주의가 가져온 빈부격차, 환경파괴, 부정부패, 도덕윤리의 붕괴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 앞에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프라발전주의’라는 담론이 과연 해외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생태문명의 발전은 오직 사회의 다원적 포용성과 지속 가능한 발전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 ‘조화사회(和諧社會)’의 건설 역시 사회 재부(財富)의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자생적인 사회정의 담론이 결핍된 상태에서 인프라발전주의를 내세우는 한 중국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할 수 없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이 추진하는 ‘향촌건설’ ‘사회충돌완화기제’ 프로젝트 역시 고도의 사상훈련을 요한다. 우리의 지식생산이 외부로 수출 가능한 동방(혹은 향토사회)식 사회정의 담론으로 승화될 때, ‘일대일로’는 비로소 지구적 의미를 획득한 전략적 담론이 될 것이다.

청말(淸末) 이래 민족의 자립과 자강을 추구해온 지난 백년의 역사 속에서 향토사회는 국가통치에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전통사회의 내부적 통치기제의 파괴는 소농(小農)의 파산, 향촌의 피폐화를 낳았고 엄중한 사회갈등 내지 농민혁명을 폭발시켰다. 청 정부의 붕괴로부터 1949년 중화민국의 패망까지 중국 역사에는 농민을 주체로 한 폭력혁명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는 향토사회의 내부화 기제를 통해 향촌경제와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향촌 내부의 안정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신중국 건설 이래 산업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향촌은 ‘노동력의 저수지’ 역할을 했다. 국가는 삼농(三農, 농업·농촌·농민)이라는 저장고를 통해 경제 연착륙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중국이 60여년의 현대화 장정을 중단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향토사회가 상당히 강력한 내부화 기제를 통해 외부 위험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계가 생산한 문화다양성 때문이다. 이같은 동방적 시스템의 우수성은 그동안 좀처럼 인식되지 못했지만 기층의 실험을 통해 조금씩 경험으로 귀납되고 있다. 이론 방면에서 서구 정치경제학에 의거한 연구성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중국 혹은 동방의 역사에서 탁월한 지속 가능성을 입증받은 농촌의 다원적 발전 경험이다. 그 핵심을 우리는 ‘농가이성(農戶)+촌락이성(村社)’으로 귀납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자원자산공유제가 결정하는 수익분배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의 제도적 비교우위는 외부의 문제를 내부화하여 처리한다는 것 외에도, 생태사회화라는 효율적 기제를 파생시킴으로써 양극화를 방지한다는 데 있다.

동방의 농업사회는 수리관개·화재방지 등 공공의 수요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자원의 경계단위로서 지역사회의 집단이성(群體)이다. 적어도 씨족을 단위로 한 촌락의 공공이익을 중시하는 이 집단이성은 서양처럼 개체 이익의 최대화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수천년간 천차만별한 자연계의 다양성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온 동방의 농업사회는 상보상생(相補相生)의 전통을 함양해왔다. 그 수천년을 자생적으로 좌우해온 것은 ‘다신교’에서 파생된 다원적 생태문명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동방의 정치경제학을 제기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일대일로’ 그 자체는 영혼이 없다. 한층 깊고 두터운 사회정의의 사상과 문화적 내용으로 그것을 채워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민족과 다원적 문명을 지닌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지역 충돌이 발생할 때, ‘일대일로’는 문화적 대화 능력을 결한 앙상한 구호가 되고 말 것이다. 과잉생산과 금융재부만 있고 두터운 사회정의의 이념과 풍요로운 문화다양성의 비전이 결여되었다면, 그래서 자국 안에서도 생태문명의 전략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또 진정한 의미에서 자생적인 ‘조화사회’를 건설하지도 못한다면, 중국은 도대체 무슨 염치로 동방부흥과 화평굴기(和平崛起)를 논하며 하물며 세계를 바꿀 실천의 수출을 거론할 터인가.

‘일대일로’의 성패는 담론권력에 달려 있다. 지금 중국에 절실한 것은 내면적 수양과 진중한 행동거지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번역 | 백지운(白池雲)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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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킨더는 지구를 유럽·아시아·아프리카로 구성된 세계섬(world island), 영국·일본으로 구성된 해안섬(offshore islands), 북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로 구성된 벽도(outlying islands) 세 구역으로 분류하고,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한다고 주장했다옮긴이.

2)Jeff Reed, “Following the Tracks to WarBritain, Germany & the Berlin-Baghdad Railway” (http://oilpro.com/post/4759/following-the-tracks-to-war-britain-germany--the-berlin-baghdad-railway).

3) 이 글은 미국 등 주요 6개국-이란 핵협상 타결(2015.7.14)이 이뤄지기 전에 집필되었다옮긴이.

4)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행 국제금융 시스템의 모순. 1960년대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전 예일대 교수가 제기했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