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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돈 끼호떼』와 함께한 망명
아리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
소설가, 미국 듀크대학 교수. 아르헨띠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칠레에 정착해 집필활동을 시작했으며, 삐노체뜨의 쿠데타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국내 번역 출간된 저서로 장편소설 『체 게바라의 빙산』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희곡집 『죽음과 소녀』,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등이 있다.
*이 글의 원제는 “ In Exile With ‘Don Quixote’”이며, 필자가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지에 발표한 글이다.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것이다. From The New York Times, 2016.10.7 ⓒ 2016 The New York Times. All rights reserved. Used by permission and protected by the Copyright Laws of the United States. The printing, copying, redistribution, or retransmission of this Content without express written permission is prohibited. / 한국어판 © 창비 2016
사춘기 이후 라 만차의 기사 돈 끼호떼(Don Quixote) 이야기를 수도 없이 읽었지만, 미겔 데 세르반떼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 서거 400주기를 맞아 나도 모르게 머리에 떠오르고 선뜻 기억하고픈 경험이 하나 있다. 그것은 1973년 10월, 쌀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민주정부가 군부 쿠데타로 전복된 후 나처럼 칠레 싼띠아고 소재 아르헨띠나 대사관으로 망명을 요청하러 들어간 괴로운 처지의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칵테일 파티장으로 설계된 몇개의 방에 머잖아 망명객이 될 천여명이 들어차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크게 소리 내어 『돈 끼호떼』를 함께 읽고 있는 서른명가량의 난민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 퍼진 암울함을 문학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치료법 같은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얼마 안 되어 나는 책을 읽던 이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도 많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여러 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후 우리 나라로 왔고 장기간 구금되었으며 고문과 추방을 겪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가공할 만한 시련을 겪은 희생자였으면서도 모질고 황량한 세상에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발휘한 세르반떼스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진정 세르반떼스의 삶을 결정한 것은 1575년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포로로 잡혀 알제리 지하감옥에서 보낸 5년간의 쓰라린 경험이었다.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용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그가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곳, 이슬람과 서구의 경계에서였고,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모든 자산 가운데 자유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임을 발견한 것 또한 그곳이었다. 그의 가족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몸값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다가 탈옥을 시도할 때마다 처형될 위험에 처했고, 또 동료 노예들이 학대받고 칼에 찔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르반떼스는 족쇄 없는 삶을 애타게 갈망했다. 하지만 일단 스페인으로 돌아오자 자신을 전쟁터로 내몬 이들로부터 괄시당하게 된 이 팔 잃은 퇴역군인은 우리가 우리 육신에 닥치는 불운을 치유하지는 못할지언정 우리 영혼이 그 슬픔에 반응하는 방식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돈 끼호떼』는 그런 깨달음에서 태어났다. 세르반떼스가 1권 서문에서 그의 “한가하신 독자들”에게 썼듯이, 이 소설은 “지상의 모든 불편이 도사리고 있고 온갖 구슬픈 소리가 모여 있는 감옥에서 수태되었다”. 그 감옥이 쎄비야에 있든 까스뜨로 델 리오1)에 있든 간에 이렇게 거듭 투옥되는 일을 겪다보니 그는 알제리에서 겪은 고난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그가 결국 해결한 딜레마가 무엇인지 정면으로 직시할 수 있었다. 그 딜레마란 바로 쓰라린 절망 앞에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가느냐는 선택이었다. 그 결과물은 창조성의 한계를 밀어붙여 이전의 전통과 관습을 모조리 뒤엎어버린 한권의 책이었다. 자신을 내치고 검열했던 썩어빠진 스페인을 원망하며 비난을 퍼붓는 대신, 세르반떼스는 다면적인 동시에 한껏 익살맞고 반어적인 최고의 걸작을 창조함으로써 소설 장르가 이후 보여주게 될 일체의 자유분방한 실험들의 초석을 닦았다.
세르반떼스는 우리 모두 끊임없이 역사에 추월당하는 미치광이임을,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죽어야 할 운명인 육신의 사슬에 매여 우리가 품은 이상에 의해 조롱당할 수도 영광을 맛볼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는 애매모호한 근대적 상황이라는 광대한 심리적·사회적 영토를 발견했던 것이다. 우리는 엄혹하고도 완강한 현실에 사로잡힌 포로인 동시에, 연방 치고 들어오는 그 현실의 공격을 뛰어넘을 한결같은 능력 또한 축복처럼 지닌 존재이다.
1973년, 우리를 경기장과 지하실로, 결국에는 공동묘지로 이송할 태세를 갖춘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대사관 건물을 떠나지 못한 채 『돈 끼호떼』를 읽던 당시의 우리에게 그 소설은 절절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끊임없이 찬양하고 실천하는 그 정신은 우리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 『돈 끼호떼』 2부의 한 구절2)에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싼초 빤사3)는 변덕쟁이 공작에 의해 어떤 가공의 섬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비천한 신분의 이 시종은 그와 그의 주인을 놀리던 귀족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자애로운 통치자임이 드러난다. 어느날 밤 순찰을 돌던 싼초 빤사는 순경을 보자마자 대번에 내뺀 한 소년과 마주친다. 소년은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았고 가짜 총독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어 재우라는 형을 내린다. 잡힌 소년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기를 사슬에 묶어둘 수는 있을지언정 자게 만들 권력을 지닌 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깨어 있건 아니건 그건 전적으로 자기 뜻이지 그 누구의 명령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소년의 당당한 모습에 싼초는 깨닫는 바가 있어 그를 풀어준다.
이것이 바로 늘 내 기억에 맴도는 에피소드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것은 오늘의 절박한 인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세르반떼스의 핵심적 메시지가 거기에 담겨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세르반떼스처럼 걸핏하면 투옥되지도 않거니와 아르헨띠나 대사관에 들어갔던 혁명가들처럼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에 연금당하는 상황에 처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몽유병환자가 나락으로 걸어가듯 점점 더 통제 불능상태로 되어가는 이 행성에 버려져 폭력과 불평등, 탐욕과 어리석음, 불관용과 외국인혐오의 시대에 억류된 듯 살고 있다.
세르반떼스는 사백년 전에 죽었지만 아직도 싼초 빤사가 윽박질렀던 그 소년의 지혜로운 전언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야 할 그 지혜의 말을, 우리 자신이 원치 않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억지로 잠자게 할 힘이 없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곤경에 처해 멍하니 넋이 빠진 우리 인류가 머지않아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번역: 강미숙(姜美淑)/인제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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