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2007년 『완득이』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이 있음.

 

 

 

청소

 

 

첫째 날. 냉장고 깊숙이 자리잡은 음식은 그대로 한달이고 일년을 넘기기 십상이다. 자리도둑 애물단지. 저 꿀단지에 담근 깻잎 장아찌는 족히 삼년은 됐으리라. 손대지 않은 밑반찬과 물 빠지기 시작한 나물도 여럿. 이것이 그녀의 냉장고 속 사정이었다. 버리자. 탐색을 마친 그녀가 바닥에 깔 신문지를 찾았다. 그러다 곧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끊은 지가 언젠가. 오래전 회사에서 태블릿PC를 지급받으면서 종이신문과의 인연을 끝냈다. 원할 때 원하는 기사를 볼 수 있었고, 따로 모아 버려야 할 일도 없었으며, 매달 통장에서 돈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종이 버리는 날, 밖에 내놓으라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하고 출근했다가, 퇴근 뒤 그대로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다시 나가버리고 싶었다. 나도 집에 오면 쉬고 싶다. 서글펐다. 그쯤은 너희가 해도 되잖니. 신문 끊고 그런 일이 없어져 다행이기는 하나 막 쓸 종이로 신문만한 것도 없었다. 뉴스가 아닌 잡다한 일로 신문을 찾는 것이 안타깝긴 해도 사실이 그랬다. 그녀가 주방 바닥에 신문 대신 종이타월을 넓게 깔았다. 기름 닦을 때도 반으로 잘라 썼지만 이날은 쭉쭉 펼쳤다. 근검절약. 그것의 성질이 화려하지 못한 까닭에, 그런 행동은 종종 초라함이나 궁색이라는 말로 돌아왔다. 빈병으로 껌이라도 얻을 수 있던 시절, 누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껌을 씹지 마. 하찮은 절약이 대단한 보상으로 이어진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저 습관이 몸에 밴 것은 아마도 그녀 아버지의 영향이 컸으리라. 두루마리 휴지가 이미 보편화됐을 때에도 그녀의 집 화장실에는 손바닥만하게 자른 신문이 노끈에 꿰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만드는 모습도 싫었고, 화장실에 새로 채울 때마다 하는 소리도 싫었다. 똥 쌀 때만 쓰자. 그걸 그때 말고 또 언제 써요? 그러나 그보다 황망한 것은 각종 병으로 만든 꽂이들이었다. 화장실에 놓인 신문은 여타 집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으나 꽂이는 그녀의 집이 유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명주실로 긴 심지를 만들어놓았다가 꽂이가 필요하면 그것으로 병을 잘랐다. 심지에 석유를 묻혀 병의 적당한 높이에 감고 불을 붙였다. 불붙은 심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탁! 치면 그 부분이 턱 잘라졌다. 자못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집 안의 연필꽂이 수저통 동전통 따위가 전부 정종병 소주병 우유병이니 절로 반감이 생겼다. 그 때문에 그녀 자신은 그러지 않겠노라 수없이 다짐했건만 돌아보면 뭔가를 모으고 자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떨쳐내는 의식처럼 툭툭 손을 털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종이타월에 간장 마늘 깻잎 등속의 장아찌들부터 꺼냈다. 간은 잘됐는지 곰팡이 하나 오르지 않았다. 둘레가 투명하게 마른 마가린, 물과 기름이 분리된 마요네즈, 이런 것은 집주인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쓸모가 바닥날 때까지 이어지기 힘든 까닭이다. 그녀는 냉장고 문 열림 경고를 무시하고 내용물을 꺼냈다. 삐익 삐익. 계속된 소리에 그녀의 아들이 나와 퉁을 주고 들어갔다. 썩을 놈. 그녀가 검정 비닐봉지에 버릴 음식물을 모았다. 냉장고 밖으로 나오며 쓰레기로 전락한 반찬들. 갑자기 더럽게 느껴졌다. 허기사 배 속에 들어간다고 별수 있나, 나오면 똥이지. 중얼중얼 하나둘 비워내니 개수대에 빈 찬통이 가득했다. 그녀는 그것들 먼저 씻어 식탁에 쌓아두고 냉장고 선반을 뽑았다. 영문 모를 찐득찐득한 진액이 달라붙어 있었다. 선반 레일을 닦을 때도 여지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역시 아들이 나왔다. 뭐 해? 청소하잖아, 자식아! 그녀가 냉장실 문을 텅 닫고 냉동실을 열었다. 봉지 봉지 얼린 것들이 흉하게 쌓였다. 씻어둔 찬통으로 옮길까 하고 돌아보니 낡기도 낡았지만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다 버리자. 그녀가 작심한 듯 챙겨둔 음식물과 찬통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들고 나온 것들을 수거함에 넣고 곧장 마트로 향했다. 미련퉁이. 홈쇼핑에서 세트로 저렴하게 팔 때 미리 사둘 것이지, 하고 자신을 탓했다. 망설이고 후회하고, 망설이고 후회하고, 때려죽여도 못 고칠 고질병이었다. 이제 그만하자. 망설였다면 망설인 이유가 있겠지. 몇천원 더 비싸면 몇천원 더 주고 사면 됐다. 그녀는 미련 없이 같은 브랜드의 찬통을 용도별로 골랐다. 각각 열개씩, 모두 삼십개. 주방에 펼쳐놓으니 이게 또 냉장고에 다 들어갈까 걱정이었다. 밑바닥에 붙은 스티커도 문제였다. 무슨 지랄이라고 가격 스티커를 이따위로 붙였나. 손톱으로 긁다가 안 되면 침도 바르며 열심일 때 그녀의 아들이 나왔다. 뭐야? 지저분해서 새로 샀어. 쓸데없는 데다 돈을 써. 녀석의 방으로 달려가 진정 쓸데없는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주면 어떨까.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런 씨름의 허망함을 알고 있다. 큰애가 스물넷, 작은애가 스물셋. 아이들이 그 나이가 될 동안 그녀가 겨우 터득한 것은 그들의 말에 토를 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되로 주고 말로 받고 종국에는 뭘 모르는 사람으로 몰렸다. 그러니까 엄마는,으로 끝나는 결론. 지쳤다. 그녀가 냉동실을 비웠다. 꽝꽝 언 것들이어서 손보기도 까다로웠다. 조금씩 덜어 지퍼백에 얼린 사골국물들은 우겨 넣은 상태로 얼어서 떼어내기도 힘들었다. 푹 고은 정성까지 얼어버렸나. 누가 해동해서 먹지도 않고, 버리려니 일만 많았다. 그녀가 사골국물들을 설거지통에 넣고 뜨거운 물을 틀었다. 눈에 띄면 사다가 얼려둔 떡들은 왜 그리 많은지. 백설기 송편 인절미 가래떡 등속이 온갖 전들과 함께 엉켜 있었다. 일년 명절은 나겠네. 그녀가 허탈하게 웃으며 그것들을 모두 버렸다. 새우젓과 조개젓도 버리기로 했다. 이제 이것들은 양념으로 쓰이지 않을 것이다. 톳으로 산 김과 생선들 역시 버렸다. 그러다보니 새 찬통에 넣어 냉장고로 다시 들어간 것이 별로 없었다. 잔멸치 약간, 콩 조금. 그것들 또한 이제 손댈 리 없겠지만, 그래도 냉장고니까 뭘 좀 넣어야겠기에, 가장 깔끔한 것으로 정했을 뿐이다. 이제 냉장고가 텅 비었다. 깨끗하네. 넋 놓고 속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경고음이 울렸다. 그녀가 문을 닫았다. 이제 음식물쓰레기만 한번 더 버리고 오면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날 잡은 대청소가 아니니 그만하면 됐다.

 

둘째 날. 그녀가 싱크대 곳곳을 살폈다. 위쪽 선반에는 잘 쓰지 않는 그릇과 접시가 쌓여 있었다. 뭐가 하나씩 깨져 짝이 맞지 않아 급할 때 아니면 쓸 일이 없었다. 급한 일이라는 것이 대개 갑자기 손님이 왔을 경우인데, 아이들 사춘기 때부터는 발길이 점점 줄더니 스무살 무렵부터는 뚝 끊겼다. 아이들 머리가 크니 눈치가 보인 모양이었다. 실은 그녀도 그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집에 바깥양반이 없으니 불쑥불쑥 찾아와도 마음 편했던 모양인데, 휴일마저 쉬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래도 혹시 또 모르니 하고 쌓아둔 것도 있고, 아까워서 정들어서 버리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그릇들은 사용할 당시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특히 유리 재질인 코렐 식기 세트는 단아한 꽃무늬와는 달리 거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연년생인 두 아이의 사춘기를 함께 겪었다. 깨지지 않는 유리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식탁에서 밥공기가 깨졌고 개수대에서 접시가 깨졌다. 제아무리 단단해도 누군가의 분노는 견뎌내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그것들과 정을 떼야 했다. 그녀가 그릇들을 쓰레기봉지에 차곡차곡 넣고 으 한번 들었다 놓았다. 무겁네. 무거워. 너무 무겁다. 그녀가 한숨처럼 되뇌고 다시 싱크대 선반을 살폈다. 찧은 마늘을 사 먹은 지가 언제부터인데 여직 마늘 절구가 있나. 심지어 돌절구였다. 그것을 먼저 버린 그릇들 위에 올리고 쓰레기봉지 손잡이를 묶었다. 20리터짜리임에도 번쩍 들지 못하고 질질 끌어 현관 신발장에 기대어놓았다. 싱크대를 닦는 것도 일이었다. 무슨 요리를 그리 요란하게 했기에 저 꼭대기까지 기름때가 끼었을까. 찐득한 기름때가 수세미에 달라붙었다. 그때 그제야 일어난 그녀의 딸이 나왔다. 뭐 해? 청소. 일은? 그만뒀어. 왜? 왜일까. 직장에서 잘리지 않은 것이 신기한 세상에서 스스로 그만둔 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누구도 그녀를 견제하지 않아 가능했다. 그녀는 성과를 위해 눈에 띄게 앞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늘 이선의 조력자를 자처했다. 연륜 많은 조력자가 뒤를 받쳐준다는 것은 여러모로 든든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한결같아 입사 초기에는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뒤로는 오히려 과욕이 없다는 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아서 일이 틀어지면 우선 그녀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로 답하고 곧장 돌아섰다. 결과에 칭얼칭얼 징징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런 건 니들 부모한테 해. 그녀는 며칠 전에 사직서를 냈다. 이제 그만하자, 결심했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딸에게 왜?라는 질문을 받았다. 딱히 진지한 대답을 원치 않은 질문이었으므로 그녀는 그냥,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거기 있던 것들 다 치웠어? 버렸어. 왜? 쓰지도 않고, 집도 좁고. 그런 거 버린다고 집이 넓어져? 이사 가자. 그럼 니가 십억만 벌어와, 하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딸은 벌건 대낮에 모닝커피를 타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억이나 조는 체감되지 않는 숫자였다. 그 때문에 수십억 수조 횡령 사건은 가십거리로 취급했다. 그러나 단위가 몇천만원으로 떨어지면 씨발씨발 쌍욕을 했다. 갖고 싶은 현물 자동차쯤에 이입한 것이다. 과거에 그녀가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한 적이 있는데, 대도(大盜)라는 말 때문이었다. 당시 막대한 사기횡령 사건으로 세간의 화제가 된 한 남자가 있었다. 의사 교수 회사원 일용직노동자 대학생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금융 피라미드에 걸려들었다. 연루 정황이 포착된 정재계 인사도 상당수였으나 그들은 극구 부인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뉴스는 연일 그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냈고, 그는 결국 도피 중인 타국에서 체포됐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편에 섰다. 작은 도둑은 족쳐도 큰 도둑은 놔두는 거다. 오히려 빼앗은 그보다 빼앗긴 사람들을 비하하는데, 순간 그녀가 아버지!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도 비현실적인 숫자에 무감했을지 모른다. 그 돈이면 전 국민이 전기를 공짜로 쓸 수도 있어요. 전기를 왜 공짜로 써? 도둑놈 새끼들. 그녀 아버지에게 전기요금은 현실의 돈이었고, 그가 역정 내는 도둑은 전기를 몰래 쓰다 걸린 건넌방 자취생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품인지라 막상 마주치면, 밥은 잘돼? 묻고는 돌아서서 분노의 가위질로 화장실 신문 뭉치를 만들었다. 먼저 말하면 내가 뺏냐?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그녀는 청소를 마무리하고 사용한 행주들을 냄비에 모았다. 삶을 생각이었다. 삶고 삶아 이미 닳아버린 행주들. 이 미련한 미련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녀가 작심한 듯 물기를 꼭 짜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새 행주를 꺼냈다. 좋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현관에 모아둔 쓰레기가 가득했다. 쓰레기봉지 두개와 분리수거 용품을 담은 봉지 두개. 혼자서는 다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일단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아들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딸을 불렀다. 딸이 나왔다. 왜? 쓰레기 버리러 가자. 쟤는 뭐 하고? 대답이 없네. 딸이 풀어 헤친 머리를 하나로 획 묶으며 나왔다. 쓰레기봉지는 무거우니까 손잡이 묶은 데 잡아. 그러나 딸은 얇은 보조끈 묶은 데를 잡고 나갔다. 딸이 잡은 끈이 죽 늘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뚝 끊어지고 말았다. 일층에서 올라타려던 남자가 놀라고, 뒤에서 지켜보던 그녀도 놀랐지만, 딸은 짜증이 먼저였다. 아 씨! 그녀가 얼른 밖으로 꺼냈다. 다행히 봉지가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 여기를 들라고. 딸이 다시 들고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쓰레기가 너무 무거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었다. 반쯤 갔을 때 딸은 분리수거함 앞에 서 있었다. 와서 좀 들어줬으면.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서 있는 모습에서 짜증만 느꼈을 뿐이다. 들어봐서 알잖니. 얼마나 무거운지. 당연 저는 농담이었을 테지만, 언젠가 그녀에게 연약한 척,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것이 너무 깊게 박혔다. 아마 생수 2리터짜리 여섯개 묶음을 옮길 때였을 것이다. 느닷없이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가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에도 태연하게 저런 농담을 했다. 농담하며 대신 들어줬으면 곧 잊었을 테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녀는 겨우 쓰레기장에 도착해 딸이 먼저 내려놓은 쓰레기봉지 옆에 자신이 들고 온 쓰레기봉지를 툭 내려놓았다.

 

셋째 날. 이날은 베란다였다. 베란다 창고 앞으로 쌓인 짐이 많았다. 선반 삼아 내놓은 원목 탁자가 오히려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그녀는 탁자에 올려둔 김치냉장고 전용 김치통들부터 한쪽으로 치웠다. 김치냉장고 위아래를 김치만으로 꽉 채운 적이 없었다. 가전제품은 용량이 큰 것을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조언에 덜컥 큰 놈을 선택했지만, 세 사람이 먹는 김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위쪽은 아예 생수와 음료수 전용 칸으로 바뀌어 김치냉장고라는 말이 무색했다. 그녀가 상판 유리부터 들고 나가 신발장에 기대어놓았다. 다음으로 탁자를 빼냈는데, 뭐가 탁자에 밀려 쏟아지고 그녀의 발에 치이고 걸리고,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먼지는 왜 그리 쌓였나. 풀썩풀썩 난리도 아니었다. 그거 한다고 죽니? 누가 언제 무슨 일로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 친척 혹은 직장 상사였을 것이다.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성격상 속으로 한 대꾸였을 테고 찜찜한 억울함이 여전히 남았다.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을까. 모른다. 홧김에 발에 닿은 뭔가를 걷어차고 탁자를 현관 앞으로 가져갔을 뿐이다. 다시 돌아온 그녀가 난장판이 된 베란다를 살폈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공구통이었다. 손잡이가 짧은 망치는 제법 묵직해서 당장 뭐라도 박아보고 싶었다. 필요 때마다 사서 모아둔 드라이버와 접착제가 거실장에 있는데, 그런 것을 포함한 공구통이 이미 베란다에 있었다. 그리고 너저분한 잡동사니들. 이게 다 뭐야. 그녀는 남의 집 살림 구경하듯 보며 치우며 정리했다. 보니 기억난 아이들 인라인스케이트, 바구니처럼 푹 꺼진 축구공, 봐도 기억나지 않는 부삽 등등. 이것들을 다시 쓸까. 안 쓴다. 결론 내린 그녀가 죄다 쓰레기봉지에 넣었다. 커피메이커와 녹즙기는 최대한 분리했다. 더이상 살림이 아니었다. 한때는 향 좋은 커피도 내려 마셨고, 색 고운 녹즙도 짜서 먹었지만, 말 그대로 한때였다. 만들기도 귀찮고 먹기도 귀찮고 뒤에 나오는 설거지는 일만 되고. 주방은 좁아지고 눈에 띄면 속 터지고. 베란다에 내놓을 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어. 차라리 그때 버렸으면 이렇게 몰아서 버리는 수고는 덜었을 텐데. 그 와중에 겨우 쓰레기 신세를 모면한 것은, 작은 전기난로와 김치냉장고 전용 김치통, 각종 세제가 든 상자와 우산 몇개였다. 그녀가 그것들을 옆으로 치우고 드디어 창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시커먼 짐이 그녀 쪽으로 쏟아졌다. 뭐야! 놀란 그녀가 일단 손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오래된 옥돌매트였다. 그것도 한때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한 일년 썼더니 매트 속 돌이 천을 뚫고 나왔다. 위에 패드를 깔고 자도 튀어나온 돌이 불편했다. 그래도 온돌방처럼 뜨끈한 기운이 그리울 때가 있어 버리지 않고 창고에 넣어두었다. 무겁기는 또 얼마나 무거운가. 괜히 돌매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발 앞으로 쏟아진 매트를 질질 끌어 현관에 내다놓았다. 그녀가 다시 창고 앞에 섰다. 전골냄비는 왜 저리 고이 모셨나. 그리고 찬통들! 과거에 무엇을 얼마나 쌓아두고 먹었기에 저 지경일까. 시뻘건 플라스틱 찬통과 둥근 스테인리스 찬통들이 벽을 타고 가지런히 쌓였다. 버리자. 그녀가 찬통들을 모조리 빼냈다. 찬통들과 매트만 빼내어도 창고 한쪽이 넉넉했다. 그녀는 그곳에 남은 물건들을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베란다가 말끔하게 텅 비었다. 여태 쓰레기만 안고 살았네. 그녀가 수도꼭지에 청소용 호스를 꽂고 물을 틀었다. 물살에 밀린 먼지가 물과 함께 고였다. 싹싹 쓸어내고 몇개 안 되는 화분에 물도 뿌려줬다. 끝. 이제 현관에 모아둔 쓰레기들만 버리면 됐다. 그녀가 지갑을 챙겨 현관으로 나갔다. 전날은 딸이 수고했으니 이날은 아들을 불렀다. 그녀가 아들, 하고 부르니, 그녀의 아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왜? 쓰레기 버리러 가자. 지금? 그래. 누나는? 제발 좀 그만해. 숨이 턱 막혔다. 누나는 어제 버렸어. 아들이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그녀가 옥돌매트 가방과 시뻘건 찬통들을 들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아들이 탁자를 아파트 복도로 빼내고 상판 유리를 덮었다. 그 위에 스테인리스 찬통들도 올렸다. 갈 수 있겠어? 갈 수 있어. 아들은 찬통 네개를 탑처럼 쌓고도 잘 걸었다. 저런 재주가 있었네. 그녀가 옥돌매트를 질질 끌며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바로 아래층에서 한 소년이 올라탔다. 그녀의 짐으로 안이 좁았다. 미안해요. 일층에 도착하니 소년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섰다. 먼저 내리세요. 고마워요. 그녀의 아들이 탁자를 들고 먼저 나갔는데, 그는 탁자를 들고도 아파트 현관 계단을 턱턱턱 내려가 곧장 경비실로 걸어갔다. 기운도 좋지. 그녀가 옥돌매트를 질질 끌며 뒤를 따랐다. 한 손으로 든 찬통 세개가 걸을 때마다 흔들렸다. 버리는 것이 왜 이리 힘든가. 그녀는 찬통들을 분리수거하고, 옥돌매트와 탁자는 돈을 지불하고 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아들이 물었다. 버릴 것들을 왜 샀느냐고. 왜 샀을까. 스테인리스 찬통은 생각났다. 나박김치처럼 물 많은 김치는 스테인리스에 넣으면 더 시원했다. 김치냉장고를 사기 전까지는 그렇게 썼었다. 이제 기억나네. 그녀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그냥. 이젠 다 됐지? 현관에 쓰레기봉지들 남았잖아. 뭘 그렇게 버리는 거야! 쓰레기. 아들이 성큼성큼 아파트 복도를 걸어갔다. 피곤했다.

 

넷째 날.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던 그녀가 거실 창 앞에 섰다. 검지로 창을 스윽 문지르니 끝에 먼지가 묻어났다. 닦은 지 오래됐구나. 그래서 이날은 창과 문을 닦기로 했다. 그녀가 수건장에서 개중 낡은 것 세장을 추렸다. 그것들을 가위로 반씩 잘랐다. 걸레로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평생 습관 어디 가겠나. 낡으면 낡은 대로 쓰다가 물기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 잘라서 걸레로 썼다. 여기저기서 받은 기념 수건이 장에 쌓여도 낡은 것을 버리지 못했다. 누구의 개업 선물로 받은 수건은 이미 그가 폐업을 했음에도 여전히 새것이다. 작작 좀 하자. 그게 언제였나.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녀로서는 어려울 게 없었으므로 선뜻 동참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실천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만 안 쓰는 것인지 온갖 일회용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나도 써야겠다. 그녀가 나가서 일회용 물걸레를 잔뜩 사 왔다. 물티슈처럼 한장씩 빼 쓰는 것이다. 천연항균포함 99.9%.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늘 나머지 0.1%에서 발생했다. 그녀는 거실 창부터 닦았다. 집 안에서 가장 큰 창이지만 한여름에도 활짝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앞동과의 간격이 너무 좁았다. 오래전에 그녀가 직접 앞동 복도에 서서 이쪽을 지켜보기도 했다. 낮도 낮이지만 불 밝히는 밤에는 거실 안쪽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사는 거 매한가지니 누구는 발톱을 깎았고, 누구네는 모여서 TV를 보고, 누구네는 어린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감출 것 없는 일상이지만 막상 누가 본다 생각하면 어쩐지 민망하다. 그러니 거실 창을 마음껏 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먼저 닦은 걸레를 내려놓고 새 걸레를 빼냈다. 걸레를 막 빼면 물이 흥건해서 높은 곳을 닦을 때는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계속 떨어질 것이고, 얼굴도 99.9% 소독되겠지, 마치고 한번에 씻자, 생각으로 그냥 버텼다. 그 집 여자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는 문틀을 보면 안다. 그 말은 또 누가 했었나. 저 말이 귀에 붙은 뒤로는 문틀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구석에 먼지라도 끼면 핀셋으로 긁어 완벽하게 하얀 문틀을 유지했다. 방바닥보다 문틀이 더 깨끗한 집. 그녀의 집은 그랬다. 거실 창 다음은 안방 창이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 때문에 창문을 열어도 저 밖이 아닌 빨래가 보였다. 가끔 널어놓은 빨래를 멍하니 보곤 했는데, 그리 넋 놓고 볼 만한 풍경이 아님에도 왜 자꾸 그러는지 그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면 그러고 있었다. 창을 닦고 돌아서는데 안방 한쪽을 꽉 채운 하얀 하이글로시 붙박이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장롱을 바꿀 때, 마침 붙박이장이 유행이었고 공간 활용이 좋아 보여 큰맘 먹고 설치했다. 아쉬운 것은 한번 설치하면 빼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차라리 키 큰 장롱으로 할 것을. 한짝이라도 옮기거나 빼내려면 사람을 불러 해체해야 했다. 방의 집기나 가구가 붙박이장 위주로 놓인 까닭이다. 너도 좀 닦아야겠다. 그래도 장롱 역할은 듬직하게 해준 놈이었다. 됐다. 그만하면 네 할 일은 다한 거야. 쓰다듬듯 찬찬히 닦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격려하듯 장을 톡톡 두드리고 걸레를 챙겼다. 이제 방문들만 남았다. 작은 키 탓에 식탁 의자를 함께 들고 다녔다. 그녀가 의자에 올라서서 딸의 방문을 닦을 때, 딸이 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문 닦아. 깜짝 놀랐네. 나도 놀랐다. 딸이 문을 닫았다. 아들의 방문도 닦았다. 아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뭐 해? 문 닦아. 요즘 무슨 일 있어? 없어, 닫아.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어떤 것을 채워야 저런 말을 듣지 않을까. 차라리 음식 배달책자와 카드를 넣어둘 것을. 그랬다면 정성껏 만들어 쓰레기통만 배부르게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배고파. 시켜 먹어. 치킨 시킨다. 그녀는 온 집 안의 문과 창을 닦는 데 사용한 걸레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땀으로 몸이 끈적끈적했다. 씻어야지. 그녀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안방에서 나오니 그녀의 딸도 나왔다. 뭐 시켰냐? 양념하고 치즈 뿌린 거. 나 그거 안 먹어. 주문하기 전에 말해야지. 물어봤어? 새거 시켜? 됐어.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했다. 튀긴 닭에 뭘 바르든 한번 먹고 지나가는 데 큰 문제없는 음식 아닌가. 그러나 두 미식가에게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무엇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걸레를 너무 만졌더니 목에 소독약이 99.9퍼센트 찬 것 같았다. 목을 깨끗하게 헹구고 그만 자고 싶었다.

 

다섯째 날. 이날은 화장실이었다. 먼저 쓰레기통을 비우고 새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녀도 누가 싹 비운 쓰레기통에 첫 휴지를 버리고 싶었다. 쌓인 휴지로 뚜껑이 벽으로 밀려날 지경이 되어도 비우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제발 나의 하루를 26시간으로 늘려주십시오. 두시간만, 제발 단 두시간만 더. 한때는 그런 기도를 달고 살았다. 아마 그녀의 아들이 고등학생 때였나보다. 그녀의 다리 부종이 유독 심한 날이었다. 쿠션을 높여 다리를 올리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 모습이 짐짓 한가로워 보였을까. 아들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자? 아니. 화장실 쓰레기통 비워야 해. 그녀가 기분 상하거나 민망하지 않도록 조심한 말투였다. 힘들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진심과 배려마저 느껴져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선한 고용자의 일꾼을 향한 배려. 날 고용했니? 자조했을 뿐이다. 그녀도 누군가 말끔하게 닦아놓은 세면대에서 첫 양치질을 하고 싶었다. 세면대는 늘 더럽고 하수구 망에는 머리카락이 쌓였다. 그럼에도 서로 아니라 하고, 아니니 치울 이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집에 숨어 사는 칠칠치 못한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화장실 천장을 닦는 일도 고역이었다. 의자에 올라서면 낮은 천장에 머리가 닿고, 그냥 까치발로 서면 간당간당 손이 닿았다. 문 쪽 천장 벽지가 살짝 벌어졌고 근처에 곰팡이가 피었다. 까치발로 서니 얼마 못 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얼굴로 곰팡이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들다, 푸념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푸념이 누구의 도움으로 이어진 적이 없었다. 힘들면 쉬었다가 해. 밖이든 안이든 끝내 그녀가 할 일이었다. 천장 다음은 바닥이었다. 먼저 샤워기 물로 애벌 청소를 했다. 바지를 걷어 올려도 젖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빨리 마치고 벗어야지. 그녀가 표백제 섞은 세제를 솔에 묻혀 타일 사이를 문질렀다. 그렇게 닦아야 깨끗함이 오래갔다. 그때, 그녀의 아들이 화장실로 왔다. 똥 마려. 급해? 급해. 그녀가 대충 변기 쪽에 물을 뿌리고 나왔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들어가. 곧 화장실에서 게임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 걸리겠군. 그녀는 주방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녀의 아들은 그녀가 깜빡 잠든 사이에 나왔다. 자? 아니. 일하다 맥이 끊겨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작은 환풍기가 미처 냄새를 다 뽑아내지 못한 탓에 구역질도 났다. 뭘 먹었기에…… 그녀는 서둘러 바닥 타일 청소를 마무리하고, 변기에 물을 촤악 끼얹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 화장실 청소 뒤에 뭔가를 더 할 생각이었으나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날은 여기까지였다. 씻자. 그녀가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여섯째 날. 그녀가 붙박이장과 마주 섰다. 장을 정리하고 그 참에 신발장도 손볼 생각이었다. 먼저 장롱으로 쓰는 붙박이장. 입지 않는 옷가지와 쓰지 않는 이불들을 꺼냈다. 옷은 의류수거함에 넣으면 되지만, 이불은 100리터짜리 대형 쓰레기봉지에 넣어야 했다. 사람도 들어가겠네, 생각하며 그녀가 솜이불과 차렵이불을 구겨 넣었다. 위를 묶을 때는 베개 솜이 벌떡벌떡 일어나 무진 애를 먹었다. 누가 좀 눌러줬으면. 그녀는 집에 청년이 둘이나 있어도 쉽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들의 구시렁이 중증 이명처럼 울렸다. 부피만큼 무게도 상당했다. 질질 끌고 현관까지 나가는데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망할, 버리는 것도 일이네. 장에서 빼낸 옷가지와 가방들도 이불 쓰레기 옆에 쌓아두었다. 수북했다. 어디 산에서 활활 태웠으면. 그녀는 이제 신발을 정리했다. 마침 회사 근처에 수선집이 있어 굽이 닳거나 코가 휘어진 구두는 없었다. 상한 구두는 출근 때 맡기고 퇴근 때 찾으면 됐다. 그러나 그것도 꽤 오래전 일이 돼버렸다. 이때쯤에는 굽 없는 단화만 신었으므로 굽 갈 일이 없었다. 그녀의 구두굽은 7센티미터에서 5센티미터로, 그다음은 3센티미터로 낮아졌다. 그것은 높은 구두의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날부터 자신의 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똑 똑 똑 똑. 느리고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는 소리. 괴로웠다. 그때부터 소리 나지 않는 고무굽 구두를 신었다. 그런 것들은 대개 굽이 낮았으며, 그중 단화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제 소리를 염려하며 구두를 신을 필요가 없다. 그녀가 쓰레기봉지에 차곡차곡 구두들을 버렸다. 신발 다음은 가방이었다. 그중에는 명품 토트백도 있었다. 회사에서 집에서 하도 지랄 맞은 일을 겪어 사는 거 뭐 있나, 나도 명품 가방이나 들어보자, 하고 산 것이다. 억하심정을 가방으로 풀었으니 정이 들 리 없었다. 그녀는 토트백을 돌돌 말아 크기를 줄였다. 밑창이 길고 딱딱해 20리터 쓰레기봉지 주둥이까지 불쑥 솟았다. 묶을 때 애 좀 먹겠군, 하고 그녀가 다른 가방을 들었다. 엄마! 등 뒤에서 그녀의 딸이 소리쳤다. 그거 나 달라니까 왜 버려? 짝퉁이었어. 백화점에서 샀다며. 그냥 한 말이지. 어쩐지 폼이 안 나더라. 폼. 말 한마디에 명품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꺼내 사실은 진품이었다고 해볼까. 그녀가 피식 웃으며 쓰레기봉지를 묶었다. 나온 김에 이것 좀 버리고 오자. 쟤는? 하…… 그녀가 말없이 이불 쓰레기를 챙겼다. 그녀의 딸이 신발과 가방 쓰레기를 들고 앞장섰다. 빠른 걸음으로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겨우 복도 중간쯤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불 쓰레기가 너무 무거워 아래가 터지지 않도록 조금씩 끌며 걸었으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의 딸이 말했다. 옛날 이불 다 버리는 거지? 응. 그럼 새로 사겠네? 사는 김에 가방도 진퉁으로 하나씩 사자. 그녀는 농담이려니 웃어넘겼다. 설마 일을 그만뒀다는 엄마에게, 몇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가방을 진심으로 사자고 했을라고. 요즘 백화점 거의 풀로 세일이야. 그녀가 딸을 보았다. 진심이었던 거니? 내가 그렇게 키웠니? 그녀가 주먹 쥐듯 쓰레기봉지를 꽉 움켜잡았다. 아니, 자식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랐다. 핑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키운다는 오만을 일찌감치 버렸다. 명상처럼 되뇌고 되뇌었다. 조언이라는 말로 토 달지 말고, 예의라는 가르침으로 지적하지 말며, 경청하고 바라만 볼 것. 그럼에도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은 기꺼이 짊어질 것. 그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며느리 고행보다 훨씬 길었다. 생명 다하고 무덤으로 들어가도 끝나지 않는다. 자식들의 행동 여부에 따라 살아생전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끊임없이 회자되는 까닭이다. 제발 잘 살아라. 내가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만, 훗날 네 엄마가 누구였냐 따지는 세간의 세치 혀에 부관참시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불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웠다. 밝은 대낮에 눈은 왜 그리 침침한지. 그녀가 이불쓰레기를 들고 가는 동안, 그녀의 딸은 벌써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고 있었다. 얼른 와. 집으로 돌아온 딸이 신발을 벗었다. 그러나 그녀는 벗을 수가 없었다. 현관에는 아까 미처 들지 못했던 옷가지가 수북했다. 으. 옷도 무겁네. 딸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겨우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한번 더 다녀오면 되지 뭐어. 평평한 길이 고갯길처럼 힘드네에. 그녀가 중얼중얼 뇌까렸다. 나이가 부르는 한탄가. 그녀가 긴 복도를 지나갔다.

 

일곱째 날. 그동안 마음먹은 청소를 모두 마친 그녀가 개운한 단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에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둔 양지머리고기도 딱 좋게 해동됐다. 불린 미역에 양지머리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았다. 미리 사둔 새 쌀로 밥을 올리고 잘 익은 총각김치도 예쁜 접시에 담았다. 밥이 뜸들 때쯤 미역국도 불을 줄였다. 국도 뜸이 들어야 맛있다. 그녀가 먹어본 중 가장 맛있던 미역국은 언젠가 딸이 끓여준 것이다. 즉석국이었지만 생일국이라고 내준 그것이 얼마나 맛있던지. 아이의 정성은 그만하면 됐다. 그녀의 아들이 초등학생 때 만들어준 십자수 열쇠고리도 늘 지니고 다녔다. 지갑에 매달면 닳아버릴까봐 지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녀가 죽은 어머니 옷장에 쌓였던 새 옷과 양말 등속을 보며 공감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식들이 준 것은 포장을 뜯지 않고 보기만 해도 입은 것처럼 따뜻하고 든든하다. 이날 그녀는 꼭 만 49세가 되었다. 어머니만큼의 세월을 견딘다면 그녀의 옷장에도 자식들의 선물이 그만큼 쌓일지 모른다. 아마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낳았을 때 먹었고, 자신이 태어난 이날 어머니가 먹었을 미역국을 먹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은 깨우지 않았다. 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잠이었다. 있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필요해서 있어야 하는 사람. 그녀는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몰랐다.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지고 싶었던 엄마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와 그들은 취향이 너무 달랐다. 이상 높은 그들에게 그녀는 지나치게 하찮은 엄마였다. 하찮은 엄마였으므로 하찮게 사용했다. 그것은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디서든 자신을 사용하도록 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남이 자신을 필요하게 만들라고, 그렇게 배우고 자라 다르게 사는 법을 몰랐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내 필요는 무시하나요? 더는 못하겠습니다. 나는 태어나기를 미련하게 태어나서 요령껏 모습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푹 끓인 미역국에 찰기 좋은 흰밥을 말아 먹고, 잘 익은 총각김치를 아삭 베었다. 맛있게 먹고 가야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봐요,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꼭 한번 아비 노릇을 하려거든 그 모습 죽을 때까지 감추시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생부로서의 유일한 아비 노릇입니다.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한 그릇을 원래의 자리에 두었다. 밥을 먹고 바로 양치질을 하니 미역국이 살짝 올라왔다. 그래도 꾹 참았다. 샤워를 하고 옷도 정갈하게 차려입었다. 구두도 미리 깨끗하게 닦아두었다. 구두를 신자 그녀의 아들이 나왔다. 엄마 어디 가? 응. 나 만원만 주고 가. 그녀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아들에게 건넸다. 아들은 그녀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집을 나갔다.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긴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