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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섭씨 2도’와 인류의 미래

기술낙관론을 비판하며

 

 

안병옥 安秉玉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저서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큰 적공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공저) 등이 있음. ahnbo21@hanmail.net

 

 

1. 기후낙관주의의 세 갈래

 

나라 안팎에서 전개되는 기후변화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낙관주의와 마주치게 된다. 그중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것은 ‘의심을 파는 상인들’로 불리는 기후회의론자들의 시각이다.1) 미국의 하트랜드연구소(Heartland Institute)와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 등 회의론 확산에 앞장서온 우파 싱크탱크들은 최근 ‘기후낙관론자’로 변신했다. 이들은 더이상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이들은 지구온난화 효과는 음성적 피드백(negative feedback)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에 지구 기후는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더워지면 식물 생산성이 증가해 농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지구온난화의 편익은 부정적인 영향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후는 늘 변화해왔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역사적 상대주의이다. 이 흐름은 오늘날의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류 기후담론에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럼 점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기후회의론과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끔찍한 재앙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가 일정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며, ‘정상(正常)’적인 기후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세 중기의 온난기에 그린란드는 녹색 초목으로 뒤덮였고, 덴마크에서는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이때 바이킹들은 그린란드로 건너가 식민지 건설과 함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바이킹과 그린란드의 사례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수준을 상대화하려는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인류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는 한랭기가 아니라 온난기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된다.2)

세번째는 기후변화는 기술혁신을 통해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는 기술낙관론이다. 기술낙관론은 기후변화를 포함해 인류가 직면한 모든 도전은 기술진보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자유시장 환경결정론자인 줄리언 싸이먼( Julian Simon)이다. 1994년 그는 “현재 우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인구를 먹이고 입히고 그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할 기술을 도서관에 가지고 있다”라고 장담했다. 최근에는 인류가 빅데이터, 모바일 앱, 해커톤(hackathon)3), 사물인터넷, 지구공학 등을 잘 활용하면 기후변화에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4)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에 실린 이필렬(李必烈) 교수의 「기후변화, 인공지능 그리고 자본주의」(이하 「기후변화」)는 매우 논쟁적인 글이다. ‘빠리협약’(2015년 빠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보다 훨씬 아래로, 가능하다면 섭씨 1.5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에 합의)2도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에서 출발하면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은 늦어도 21세기 후반에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지구기온 상승도 멈출 것”(158면)이라는 일종의 기술낙관론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리협약이 내건 목표는 “2045년경까지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제로가 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을 것”(143면)이라고 단언한다.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을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적응을 위해 회복력을 높여가면 인류는 2100년까지 기후변화로 닥칠 재난을 파국까지는 겪지 않고 넘길 수 있을 것”(159면)이라는 주장도 편다. 흥미로운 것은 ‘급변하는 세계, 적응 못하는 기후총회’라는 2절 소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논의에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20여차례 열린 기후총회에서 금세기 100년 동안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 불신의 근거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기온상승을 받아들이고 회복력을 높이기만 하면 파국은 면할 수 있는 것일까. 기후변화 논의에 대한 불신은 기후과학에 대한 정보부족, 그리고 과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생긴 것은 아닐까.

 

 

2. 섭씨 2도 목표와 배출 시나리오

 

섭씨 2도는 1992UN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래 국제정치 무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일 것이다. 20151212일 빠리협약이 타결되기 전까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목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66% 이상의 확률로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070% 줄이고 늦어도 21세기 말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해야 한다.5)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산림 등의 흡수량이 비슷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말하는데, 화석연료의 거의 완전한 퇴출이 이루어져야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빠리협약에는 이보다 더 강력한 목표가 담겼다. 21세기 말까지 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보다 ‘훨씬’ 아래로 억제하고, 가능하면 1.5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1.5도 목표의 채택은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를 포기해야 할 위험에 처한 군소 도서(島嶼)국가들이 오랫동안 ‘윤리적인 방어선’으로 강력하게 요구해왔던 사항이다. 군소 도서국가들의 처지에서 2도 목표는 지도상에서 자신들의 소멸을 기정사실화하는 잔인한 목표로 받아들여졌다. 빠리총회에서는 1.5도 목표의 채택에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대세는 일찌감치 기울어 있었다. 과거에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주저하던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회의 초반부터 군소 도서국가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1.5도 목표 채택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도 목표와 1.5도 목표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화석연료에서 탈피해야 하는 시기가 달라진다. 프란치스꼬 교황과 독일 메르켈(A. Merkel) 총리의 기후변화 자문역을 맡았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한스 요아힘 셸른후버(Hans Joachim Schellnhuber) 교수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퇴출시기가 2050년께로 당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좀더 구체적인 분석도 있다. 2014년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이하 IPCC) 3실무그룹 제5차 평가보고서와 유엔환경계획(UNEP)의 ‘2014년 배출량 간극 보고서’(The Emissions Gap Report 2014)를 분석한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7095% 줄이고, 206080년에는 배출량이 제로가 되어야 하며, 그 이후에는 마이너스 배출을 실현해야 한다.6) 여기에서 마이너스 배출은 대기로부터 제거되는 이산화탄소 양이 탄소배출원이 내뿜는 양보다 더 많은 상태를 뜻한다. 빠리협약은 IPCC로 하여금 섭씨 1.5도 상승 억제를 목표로 설정했을 때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분석한 특별보고서를 2018년까지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다.

「기후변화」는 “온실가스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배출된다면 1.5도 목표 도달은 5년 후 이미 불가능해”지며, “2도 목표도 2045년경까지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제로가 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을 것”(143면)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인용한 것은 독일 과학정치재단의 올리버 게덴(Oliver Geden)이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과 독일 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7) 게덴은 이미 2013년에 2도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8) 그런데 그의 글은 기후변화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응이 있었다면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제목의 책을 써 유명해진 덴마크의 통계학자 비욘 롬보그(Bjorn Lomborg)가 이듬해 같은 제목의 글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기고한 것이 전부다.9) 게덴의 주장이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그가 기후모델 전문가가 아니라 기후정책 전문가이며,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거친 학술논문이 아닌 언론 기고문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10)

그런데 2도 목표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특정 연구자의 기고문과 인터뷰 내용에 의존하거나 “기후변화를 거시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지적하는 바”(144면)라고 뭉뚱그려 말할 것이 아니라 관련 논의를 좀더 폭넓게 다루었어야 한다. IPCC1990년부터 5~7년 간격으로 발간하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추세 및 원인 규명,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 대응전략에 관한 과학정보를 제공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보고서마다 핵심 주제와 메시지가 다르다는 점이다. 1990년에 발간된 제1차 보고서의 초점은 “지구가 더워진다”였고, 1995년 제2차 보고서의 핵심 주제는 “인간의 책임이다”였다. 2001년과 2007년에 나온 제3,4차 보고서가 “감축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면, 2014년 제5차 보고서의 결론은 “감축 가능하다”였다. 2도 목표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논지는 IPCC5차 보고서의 결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3. ‘부담의 공유’ 대 ‘기회의 공유’

 

게덴이나 롬보그의 언론 기고문과 달리 『네이처』 201410월호에 논평 형식으로 게재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자들의 논문은 기후변화 전문가들 사이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1) 두쪽 분량의 짤막한 이 논문은 “잘못 설정된 목표는 정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라며, 2도 상승 억제라는 단일 목표를 폐기하는 대신 이산화탄소 농도, 바다에 저장된 열에너지 양, 북극 기온 등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스트레스를 잘 나타내는 복수의 새로운 지표를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논문 저자들이 보기에 미래의 기후전망에 지금 사용되고 있는 기후모델들은 국가들 간의 협력이 즉각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든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의 광범위한 적용 등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처럼 무모한 가정은 2도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 기후변화 적응의 긴급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논문은 발표되자마자 많은 반론에 직면했다.12) IPCC5차 보고서는 2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네가지 조건을 언급하면서 2도, 심지어 1.5도 목표의 달성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여기에서 네가지 조건은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 저탄소 또는 무탄소 에너지 이용 확대, 산림 등 탄소흡수원 파괴 억제, 생활양식과 행동의 변화이다. 보고서가 내린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온실가스 감축비용은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의 0.040.14%로 세계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감축 노력을 늦출수록 감축비용은 늘어나고 실패할 확률은 증가한다. 또한 2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전력생산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데, 인류는 이미 이러한 변화에 필요한 기술과 재정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정치적 의지의 부족’ 때문이지 기술이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IPCC5차 보고서의 시각에서 보면 앞의 『네이처』 논문은 정치적 무기력과 2도 목표의 기술적·경제적 실행 불가능성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후변화 논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의 ‘동반 편익’(co-benefits)에 주목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반 편익은 기후변화 대응이 보건, 고용, 복지, 경제, 생태계 등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이다. 과거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경제에 부담만 주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개별 국가들이 이 부담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 결정하는 ‘부담 공유’(burden sharing)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회 공유’(opportunity sharing)가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당선소식이 날아든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2)가 폐막된 후 “미국이 참여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자기이익(self-interest)이 지구온난화에 맞서는 투쟁을 유지시킬 것”으로 전망했다.13)

비슷한 시기에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보고서도 동반 편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14) 이 보고서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을 때와 지금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을 경우의 편익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는 깜짝 놀랄 만하다. 첫째, 2040년경부터 독일, 일본, 미국 등 주요 경제국은 기후변화에 따른 손실로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시달릴 것이다. 1.5도 시나리오는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 1.5도 상승을 억제할 경우 2050년 세계총생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약 10%(12조 달러) 상승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편익은 중국을 포함한 개별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이용을 빠르게 확대하면 2030년경에는 에너지 부문에서 일자리가 68%가량 늘어날 것이다. 일자리 증가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상이 되면 산호초의 99%가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1.5도 목표를 달성하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산호초의 10% 이상을 구할 수 있다. 다섯째, 그린란드 빙상(氷床)이 모두 녹으면 해수면은 7미터 이상 상승할 것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1.6도 올라가면 빙상의 감소는 비가역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1.5도 목표는 세계 주요 연안도시들의 침수를 막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4. 과학과 정치의 기후 임계점 다루기

 

2도 목표, 더 나아가 1.5도 목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2도와 1.5도는 위험평가를 통해 설정된 기후변화의 임계점(tipping point)이다. 기후변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갑작스런 파국이 찾아올 수 있다. 문턱을 넘어서면 되돌아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후가 안정을 되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수천년 또는 수만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임계점 아래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지구 구성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같은 맥락에서 2도 목표는 지구온난화의 양성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달성되어야 한다. 양성적 피드백은 작은 변화가 약간 더 큰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다시 더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식으로 변화가 점점 더 가속되는 양상을 말한다.

북극과 남극을 비롯해 전세계의 빙하와 만년설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새하얀 눈과 얼음이 덮여 있을 때에는 지표면에 도달한 햇빛의 반사율(albedo)이 높아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에너지가 지표면에 흡수된다. 하지만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오르면서 얼음과 눈이 녹아 거무스름한 땅과 푸른 바다가 드러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더 많은 햇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주위의 얼음과 눈을 더 빠른 속도로 녹이게 되는 것이다.15)

시베리아를 비롯한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 permafrost)에는 1.331.58조톤에 달하는 유기탄소가 매장되어 있다.16) 온난화로 지표면이 녹으면 풀이 자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다. 문제는 지표면 바로 아래 지층에 갇혀 있던 메탄이 대기로 방출될 경우이다. 메탄은 지금도 조금씩 방출되고 있는데,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방출되는 양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지금처럼 기온이 상승하면 금세기 내에 메탄 매장량의 10퍼센트 정도가 대기로 방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메탄은 대기 중 체류시간이 짧지만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보다 스무배 이상 강력한 기체다.

바다에서도 예상 밖의 변화에 맞닥뜨릴 수 있다. 우리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40만개가 폭발했을 때와 맞먹는 에너지를 매일 대기로 방출하고 있다.17) 이처럼 막대한 에너지가 대기로 유입되고 있음에도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바다 덕분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으로 방출되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바다가 흡수하는 것으로 본다. 문제는 바다 수온이 증가하면서 열에너지 흡수 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계속 상승하면 바다가 열에너지 흡수를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표적인 사례 외에도 지역 차원에서 급격한 기후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임계점은 다수 존재한다. 기후모델을 활용한 최근의 연구는 지구상에 41개의 기후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대부분 바다, 해빙(海氷), 적설(積雪), 영구동토층, 아마존 열대우림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지 정확한 예측이 어렵지만 2도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기후변화시대에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한계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을 받아들이자’는 제안은,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증폭되는 지구온난화의 ‘양성적 피드백’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후변화」는 국제사회가 “20년 이상 지속해온 협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이 목표를 고집하고”(144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기후담론의 형성 과정에서 정립된 과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기후담론에서 2도 상승 억제는 ‘목표’이면서 동시에 과학적 ‘사실’이자 ‘의무’이다. 2도 목표는 과학연구의 결과물이지만, 정량적인 성격의 과학언어만으로는 정확한 해석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을 생각해보자. 운전자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 되면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0.05%는 이 농도를 초과하면 자동적으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는 의미로 설정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수치를 넘게 되면 교통사고를 유발할 확률이 매우 커진다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합리성이다. 기후변화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2도 목표는 파국이 올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무조건적인 ‘정언명령’이 아니라, 위험의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인식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정책결정자들에게 복잡한 기후과학의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그럴 만한 시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후과학에 내재된 복잡성 탓이 더 크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다양한 현상을 종합할 수 있는 지표를 선택하게 된다. ‘지구 평균기온’은 기후변화의 임계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선수로 과학자들이 ‘합의(선발)’한 결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기후시스템과 기후모델에는 적지 않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불확실성은 기후변화의 고유한 속성이다. 미래의 기후를 백퍼센트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기후 거버넌스에는 과학적 근거와 정치적 합의 둘 다 필요한 것이다. 2도 목표가 ‘과학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197개 당사국이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정치적 목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인구와 인공지능: 세이렌의 유혹

 

「기후변화」는 지면의 3분의 2가량을 장기 인구전망과 태양에너지·디지털시대 기술에 할애한다. 그 이유는 “태양에너지와 디지털기술의 발달, 효율적인 에너지 이용, 인구의 변화로 온실가스 배출은 늦어도 21세기 후반에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지구기온 상승도 멈출 것이다”라는 글의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와 기술이 미래의 기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그전에 지적해둘 것이 있다. 기후 시나리오들이 “현재 진행 중인 급속한 기술발달과 인구변화를 별반 고려하지 않는”(158면)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IPCC4차 보고서에 적용된 시나리오는 SRES(Special Report on Emission Scenarios)다. SRES는 인구통계적·경제적·기술적 변화 요인을 반영하는데, 예상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4개의 시나리오(A1, A2, B1, B2)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A1 시나리오는 세계경제의 매우 급속한 성장, 21세기 중반에 도달하는 인구 정점, 더 효율적인 기술의 급속한 도입 등을 가정한다. 반면 A2 시나리오는 인구증가율이 높고 경제성장과 기술변화는 느린 매우 이질적인 세계를 기술하고 있다.18)

「기후변화」는 인구증가율과 합계출산율 감소 경향 등을 열거한 다음 “2100년부터 인구가 90억~100억에서 정체되거나 지속적으로 감소하리라는 예측은 기후변화 예측보다 오히려 더 신뢰할 만하다”라며, “기후변화 논의에도 장기적인 인구변화 전망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148면)고 주장한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 인구가 경제 및 기술과 함께 중요한 변수로 취급되어왔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따라서 인구변화가 탄소배출과 자원이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쟁점으로 다뤄져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기후와 지구생태계에 가하고 있는 압력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14년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 연구진은 인구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를 모델에 적용해 인구변화의 영향력을 분석했다. 이들이 사용한 시나리오에는 가족계획 같은 온건한 접근만이 아니라, 한 가족당 아이 한명의 출산만 허용하는 엄격한 법적 규제를 적용하거나 식량부족과 자연재해 등으로 수십억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매우 극단적인 가정도 포함돼 있다. 분석결과는 인구가 미래의 지구환경에 결정적인 변수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의 경우에만 인구변수가 탄소배출과 자원이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19)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인구는 언젠가는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구변화는 미래의 기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인구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원 및 에너지의 이용방식, 경제구조, 사회조직의 전면적인 변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가 인구변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태양에너지와 디지털기술이다. “새 시대에는 모든 에너지가 태양에너지에 기초한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부터 얻어지고, 이 에너지를 이용한 생산, 통신, 수송, 서비스는 모두 디지털기술에 의해 지배될 것”(149~50면)이라는 주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기저장기술과 결합한 태양광발전, 전기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3D프린팅 기술의 확산이 이전의 정보통신혁명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점에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시대의 기술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지와 별개로 기후변화시대의 메시아가 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다행히 제4차 산업혁명은 불평등의 심화, 노동의 종말 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장 생태적인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자율주행자동차들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재활용에 필요한 쓰레기 선별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우고, 전력 송전과 배전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해낼 것이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진보가 위기탈출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William S. Jevons)의 말처럼, 효율이 증가하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도리어 소비가 증가할 수도 있다. 과거 수백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해 지구에 가하는 환경 부하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술의 쓰임새, 더 나아가 기술발전의 방향과 속도는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새로운 기술변화가 나타날 때 그 기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여 생산 및 생활 방식에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구가 감소하고 기술이 발전하길 기다리기보다 자원 및 에너지의 이용방식과 경제 및 사회 구조의 혁신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집에 불이 났을 때는 불부터 꺼야 한다. 소방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불길을 잡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바가지든 양동이든 집어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물을 끼얹어야 한다. 더구나 불타는 지구는 텅 빈 집이 아니다. 그 속에 아직 사람들이 갇혀 있다면 불 끄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달려오고 있는 소방차가 화재진압에 충분할 정도의 인력과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더더욱 우리 세대에 허용된 골든타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바다의 님프인 세이렌들은 배가 지나갈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에는 듣는 자를 더할 나위 없이 매혹시키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랫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깊은 바다로 뛰어들려는 불가항력적인 충동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탄 배는 지금 세이렌이 살고 있는 해변을 지나는 중이다. 무사히 통과하려면 오디세우스처럼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어야 한다. 인구감소와 기술진보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삶의 방식을 전환하지 않는 한, 인류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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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omi Oreskes and Erik Conway, Merchants of Doubt: How a Handful of Scientists Obscured the Truth on Issues from Tobacco Smoke to Global Warming, Bloomsbury Press 2011; 국내 번역본으로 『의혹을 팝니다』, 유강은 옮김, 미지북스 2012.

2) 볼프강 베링어 『기후의 문화사』, 안병옥·이은선 옮김, 공감in 2010.

3)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 24~48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마라톤을 하듯 쉬지 않고 아이디어와 생각을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을 거쳐 시제품(prototype)을 만들어내는 이벤트 또는 경연을 의미.

4) Lyndsey Gilpin, “10 ways technology is fighting climate change,” TechRepublic 2014.8.6.

5)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5차 보고서(IPCC AR5 WGIII chapter 6 section 3.1.3), 2014.

6) Joeri Rogelj, Michiel Schaeffer and Bill Hare, “Timetables for zero emissions and 2015 emissions reductions: State of the Science for the ADP agreement,” Climate Analytics Briefing Papers 2015.

7) Oliver Geden, “Paris climate deal: the trouble with targetism,” The Guardian 2015.12.14; Axel Bojanowski, “Alle Staaten sollten auf null CO2-Emissionen kommen,” Spiegel Online 2016.7.5.

8) Oliver Geden, “Its Time to Give Up the 2 Degree Target,” Spiegel Online 2013.6.7.

9) Bjorn Lomborg, “Its Time to Give Up the 2 Degree Target,” Forbes 2014.10.24.

10) 게덴은 최근 기후변화 대응목표를 지구 평균기온에서 ‘순 제로 배출’(net zero emissions)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Oliver Geden, “An actionable climate target,” Nature Geoscience 9 (2016), 340~42면.

11) David G. Victor and Charles F. Kennel, “Climate policy: Ditch theC warming goal,” Nature 514 (2014), 30~31면.

12) 즉각적인 반론은 Stefan Rahmstorf, “Limiting global warming toCwhy Victor and Kennel are wrong+update,” RealClimate 2014.10.1; Joe Romm, “2°C Or NotC: Why We Must Not Ditch Scientific Reality In Climate Policy,” ThinkProgress 2014.10.1 참조.

13)Climate change in the era of Trump,” The Economist 2016.11.26.

14) UNDP, “Pursuing the 1.5°C Limit: Benefits & Opportunities,” 2016 Low Carbon Monitor.

15) Kristina Pistone, Ian Eisenman, and V. Ramanathan, “Observational determination of albedo decrease caused by vanishing Arctic sea ic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111, no. 9 (2014), 3322~26면.

16) E. A. G. Schuur et al., “Climate change and the permafrost carbon feedback,” Nature 520 (2015), 171~79.

17) Joe Romm, “Earths Rate Of Global Warming Is 400,000 Hiroshima Bombs A Day,” ThinkProgress 2013.12.22.

18) SRESIPCC 제5차 보고서에서 인간의 활동이 대기에 미치는 복사량으로 온실가스 농도를 정하는 대표농도경로(RCP) 시나리오로 대체되었다.

19) Corey J. A. Bradshaw and Barry W. Brook, “Human population reduction is not a quick fix for environmental problem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 111, no. 46 (2014), 16610~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