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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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陸昊洙

한국외대 영어과 4학년. 1991년생.

yookhosoo@hanmail.net

 

 

 

해변의 커튼콜

 

 

살점 없는 십자가를 왜 바다에 던지나

 

먹다 만 빵을 바다에 던지면 새들이 뛰어들어 헤엄쳤다

부끄럼도 없이

아름답게

 

파도는 내가 버린 얼굴들이었으므로

나의 해변은 항상 모래성보다 먼저 폐허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처럼

내게 맞지 않는 신발들만 밀려왔다

 

썰물, 모래 위엔 두마리의 물고기

젖은 이불을 덮어주면 끝없이 불어나며 파닥였다

집에 돌아와도 파닥파닥, 끝나지 않는 커튼콜

 

짠바람 먹은 베개 밑에 칼을 묻고

아무도 아이를 배지 않는 이불을 덮었다

잠을 깨지 않는 얼굴들 일흔명을 일곱번씩

집에서 몰아냈다

일흔번째, 일흔의 일흔번째에도 파도가 왔다

 

그러다 내가 먼저 잠이 드는 날이면

모르는 사람 잠에서 깨어 해변에 나무를 심었다

잠든 내 머리를 빗기면

조용히 나무가 자라고

나무에 새긴 이름들

산모의 튼 살처럼 갈라질 때까지도

짝짝짝 끝나지 않는

 

커튼콜; 신이 떠날 때 우리에게 그림자라는 뿔이 돋아났다

 

나를 집어 바다에 던지면 검은 개들이 따라 뛰어들었다

용서도 없이

아름답게

 

바다 위 부표를 볼 때면 젖니가 흔들렸다

구름은 바다의 끝자리에서 뛰어내려 선분이 되었다

멀어지는 뒤통수처럼 하늘이 돌아눕고 있었다

 

커튼콜, 내가 살아난 이유를 오래 설명하기로 했다

 

 

 

파종

 

 

그들이 신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라

불리게 하려 하심이라 (사 61:3)

 

사월의 눈. 땅에 닿기까지 절박만으로 살아남는다. 고양이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오늘 아침에도 할머니에게 나쁜 꿈을 자랑했겠지. 눈을 뭉쳐 죽은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던 계절이 지나고, 두 팔로 아무것도 짚을 수 없는 땅속에서도 씨앗은 위와 아래를 기억하겠지. 사형집행인의 딸들은 밧줄의 매듭짓는 법을 아버지에게는 묻지 않겠지. 개가 짖지 않더라도 전화벨은 울리고, 아버지는 밥도 먹지 않고 달력 뒷면에 서명을 연습하겠지. 딸들은 엄마가 왜 매번 할머니의 밥에 손톱을 흘릴까 궁금해하겠지. 밥그릇을 내오다 엉덩방아 찧은 뒤로는 딸들의 목뒤로 나무가 자라겠지. 딸들은 가끔 무섭고, 자꾸 뒤로 넘어지고, 할머니는 키가 크려고 그런다 말해주겠지. 딸들은 부모 대신 고개를 숙이고 걷겠지. 나무는 자꾸 자라겠지. 저녁엔 한방에 모여 서로의 나무가 예쁘다 말해주겠지. 밤새 거울 앞에서 묶었다 풀었다 반복하겠지. 마지막 저녁식사 뒤의 모든 아침. 주저앉은 자리를 기억하는 눈이 다 녹으면 이제 딸들은 산에 가지 않겠다 말하겠지. 그럴 때면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겠지. 나무가 다 자란 소녀들이 죽어 누운 자리에 산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딸들이 모두 알게 되더라도, 어느 해변에 불이 켜지고 눈 내리는 사월이라도

 

 

 

나는 방을 감추는 사람입니다

 

 

문 앞에서 자꾸 죽지 마

 

밖에 나서지 못하고 불 꺼진 식탁에 앉아

콩 조림을 세었다

콩알만큼의 어둠을 방 안에 심었다

 

더 나빠져야지 내일은

조금도 비켜가지 말아야지

 

입술에 돋은 보풀을 뜯다가

빨래 세제를 삼키는 남자와

변기통에 새를 토하는 감옥에 대하여

 

창밖은 매일 저녁

철문 내리는 소리

 

오지 않을 수 있다

 

상한 반찬을 두고 고민하다

별모양 꽃모양

사료를 먹었다

심장모양 뼈다귀모양이 먹음직해 보였다

식탁에서 쫓겨나 내 발을 핥는 개의 체온이

두렵고 자랑스러운 날들

 

오지 않을 수 있다

 

불을 지피기 위해 몸에 너무 오래 머물렀구나

내가 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개에게 쫓겼구나

툭, 툭,

부드럽게 부러지는 성냥들

 

창밖은 매일 아침

철문 올라가는 소리

 

문 앞에 죽어 있던 몸들은

밤사이 누군가 제 집으로 물고 갔다

집을 집에 두고

가까스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오지 않을 수 있다

 

어디로 자꾸 사라지는 거니 문 앞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깬 유리병을 대신 치우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 뻔했다

 

 

 

시 | 심사평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아침은 차고 맑았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기대하며 응모작들을 읽는 일처럼.

 

이들을 읽으며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시를 고급 말부림으로만 생각하는 번다한 말들의 나열과 내적 필연성이 설득되지 않는 산문투의 언어가 여전히 시로 오해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해서 상대적으로 응집, 긴장, 함축, 생략, 도약의 미덕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8인의 작품 「겹」 외 4편, 「야영단」 외 4편, 「오로라를 걷는 방」 외 4편, 「백사장」 외 4편, 「달거리마다 얼어붙는 밤이 온다 낮과 같은 거리는 얼마나 가까이 있나」 외 4편, 「청첩장」 외 4편, 「전지」 외 4편, 「해변의 커튼콜」 외 4편을 본심에 올려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본심에 오른 8인의 작품들을 다시 돌려가며 읽은 결과 선자들의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3인의 작품은 「오로라를 걷는 방」 외 4편, 「백사장」 외 4편, 「해변의 커튼콜」 외 4편이었다.

 

「오로라를 걷는 방」 외 4편은 상상한 것을 언어로 빚어내는 능력과 그 능력을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오히려 그 능수능란함이 시를 눌러버리는 것이 단점으로 보였다. 정작 전하고 싶었던 시적 메시지는 화려한 수사나 묘사가 그려낸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 너머에 시적 진경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앞으로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백사장」 외 4편은 자신이 느낀 시적 풍경을 간일한 언어로 안정되고 단정하게 꾸릴 줄 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그러나 군더더기 없이 안정된 언어로 자신의 시적 세계를 이끌어가는 장점이, 참신하고 패기있게 자신만의 세계를 깨나가는 조금 미숙하더라도 낯선 실험정신을 보고 싶었던 우리들에게 끝까지 손을 잡아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해변의 커튼콜」 외 4편은 사물(대상)이 갖고 있는 뉘앙스를 건져내는 데 탁월한 감각이 있고, 언어를 다루는 자신만의 단련법을 익히기 위한 고민의 흔적과 노력한 시간이 엿보였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 모두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무엇보다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있다는 점과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절망 가운데서도 “더 나빠져야지 내일은/조금도 비켜가지 말아야지”라거나 “내가 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개에게 쫓겼구나” 같은 역설적이고 반성적 성찰 등 당선작으로 뽑고 싶은 장점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내가 살아난 이유를 오래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성우 안현미 유종인

 

 

 

시 | 당선소감

 

‘내가 쓴 시는 아름다워서는 안 된다.’ ‘내가 만든 지옥은 지옥이어서는 안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서 일년이 지났다. 여러번 꿈속에서 시를 쓰고, 꿈에서도 실패했다. 꿈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꿈에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얼마 전 꿈에선 내가 쓴 최선의 시를 보았다. 그 시를 읽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긴 꿈이니깐 이 문장을 밖으로 훔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에 문장을 옮기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잠에서 깨어나려, 잠에서 완전히 깨지는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그 노트도 꿈속의 것이었다. 내가 전기장판 위보다 광장을 더 사랑했더라면, 그 문장을 꺼내올 수 있었을 텐데.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이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라는데, 아직도 나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엄살이 많다. 형편없다.

 

가장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육목사님께 감사드린다. 당신이 최악의 인간이 되어주어 나는 평생 다른 누구도 당신보다 더 혐오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살아 있다면 죽은 듯이 사시라. 내일 죽더라도 나는 당신 상주 아니니 연락 마시오. 사랑하는 동생 다은아, 유년의 지옥을 맨발로 함께 걸어 나와주어 고마워. 다은아, 나 시인이 된다면, 우리가 살아난 이유에 대해 오래 설명하겠다. 엄마, 나 어릴 적 우리 집 앞에 갓난아이가 버려져 있던 일 기억합니다. 엄마, 나 시인이 된다면, 엄마가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처럼, 이름 없이 맨몸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문을 짓겠습니다.

 

시모임 일곱시의 문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외대 문학회 선후배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저는 한시간 두시간 비명만으로 가득한 음성파일을 음악이라고 우기고 있었겠지요. 시와, 시인의 자세에 대해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께서 해주신 말씀들 늘 마음에 두고 의심하며 비춰보겠습니다. 시 이야기를 하며 여러 밤을 새운 친구들, 감사한 이름 마음속에 여러번 쓸게요. 우리 계속 함께 시 써요.

 

몇년 뒤, 오늘의 치기 어린 소감문이 부끄러워 이불을 걷어찰 수 있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제가 가진 곁을 모두 시에 내어주고 백지 앞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겠습니다.

육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