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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이지 張怡志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안국동울음상점』이 있음. poem-k@hanmail.net
독신
1
두 못난이 시인이 대포도 한잔 안 걸치고
뗑깡도 부리지 않고 명륜동 길을 함께 걷다가
이제는 각자의 생활로 헤어질 시간.
그는 사람이 들어 있는 집으로 간다.
꽃다발이 없으면 취한 척을 하더라도…….
수척한 그가 몸 가벼이 골목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는 이제 애아범이 되려는데…….
나는 그 장면을 머리에 좀 담아두고
무슨 생각 비슷한 것을 하였다.
2
평북 사람 오상원 영감님은
아이는 길을 잃어도 집에 돌아갈 수 있지만
어른은 한번 길을 잃으면 영영 집에 갈 수 없다고
어느 소설엔가 쓰셨는데 말이지……,
냉전시대의 말씀인지도 모르지만
냉전시대도 아닌데 아직 그 말씀은 살아 있다.
내 나이 서른여섯.
운명의 흰 뱀이 그 주박을 풀고
길 밖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가진 것도 없이 겸허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습지만.
가진 것도 없이 무언가 잃어버린,
잃어버린 것을 확인하는 길 위의 시간.
안부
텔레비전에
떠들썩한 자살사건이 나오면
어김없이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2년인가 3년 만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부엌에 가면
냉장고 옆.
울기 좋은 구석에 앉아
냉장고 문을 열면
피안의 빛.
냉동실에 머리를 넣고
북극의 어떤 별에게 수신자부담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잘 있다고, 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언가 김치 냄새 같은 것이,
김치 냄새는 아니고,
아무튼 무언가
냄새가 없었습니다.
울다가
운 끝자리에 한참,
앉아 있다가
냉장고 옆에서 발톱을 깎았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