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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은 趙銀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생의 빛살』 등이 있음. jo7204429@hanmail.net
나란히
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길
치자꽃 향기 바늘로 선다
딸의 곧은 다리가 젖어 있다
긴 목선이 밤새
누구의 욕정을 휘저었던 것일까
타국에서 잠 못 드는 새벽
호텔 밖으로 나온 나는
젊은 육체의 관능을 느낀다
벌은 꿀을 향해 날고
관능은 낙석 같은 길을 낸다
관능도 꿀도 오래 붙잡지 못할
어린 딸은 대차 보이고 뾰족하고
엄마는 바늘귀처럼 어둡다
움찔하던 엄마의 눈이
눈앞의 것을 움켜쥔다 미끄러지며
딸을 바짝 당긴다
딸의 눈빛이 어둠을 관통한다
날이 선 손을 잡고
둘은 좁은 길로 들어선다
길을 꺾을 때
대충 동여맨 딸의 머리카락이
밝아오는 하늘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