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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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민우 崔旻宇

1975년 제주 출생.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이 있음. daftsounds@gmail.com

 

 

보호색

 

 

<안필성 스튜디오>의 주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다.

“인터뷰도 좋고 다 좋은데요.”

주인이 팔짱을 끼었다.

“확실히 할 건 해야죠. 아버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하나도. 조금도.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압니다. 아는데요.”

나는 막막한 기분으로 말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잡지 이번호 기획이 ‘가업을 잇는 사람들’이거든요. 섭외전화를 드렸을 때……”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못 들으셨다고요.”

“인터뷰라고만 했지. 통화할 때 얘기했잖아요.”

“실은 전화를 다른 분이 하셔서요. 제가 아니라.”

“그래요?”

주인이 투명한 낚싯바늘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른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그쪽은 누구시죠?”

“네?”

“제 앞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고요.”

땜빵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슬기로운 대처일 성싶지는 않았다. 나는 가능한 가장 무난하면서도 권위 있어 보일 법한 단어를 골라 대답했다.

“자유기고가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내 뒤에 서 있던 사진 담당 연하씨가 헛기침을 하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 보였다. 사진관 통유리로 들어오는 초여름 오전의 햇살과 열기가 목 뒤를 건드렸다.

들은 게 다르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말은 이미 다 됐으니 주인과 편안히 얘기 좀 하고 사진 몇장만 찍어오면 된다고 했다. 독특한 빈티지 인테리어, 편안하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풍기며 걸려 있는 흑백사진과 포토샵으로 예쁘게 다듬은 가족사진, 풍성하고 푸근한 턱수염을 기른 덩치 큰 주인, 가업을 잇는다는 것의 보람과 기쁨 등.

“아무튼 어렵겠습니다.”

주인이 결론을 냈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지 말라고 했지. 먼 길 오시느라 수고는 하셨는데, 미안하지만 못해요.”

“저기요.”

사태를 관망하던 연하씨가 끼어들었다. 주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제가 방금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다들 여기가 대를 이어 하는 스튜디오라던데요. 이 자리가 아버님께서 하시던 사진관 바로 길 건너편이라고 하고요.”

“그건 맞아요. 월세가 되는 데가 여기뿐이었거든.”

주인이 인정했다.

“그런데 읽을 거면 잘 보셔야지. 내 입으로 대를 잇느니 그런 말 한 적은 없을걸.”

“왜 사람들이 오해하게 놔두세요?”

“영업에는 도움이 되니까.”

“이건 훨씬 더 도움이 될 텐데요. 말씀드렸지만 저희 기내 잡지예요. 메이저 항공사는 아니지만 국내선 여객기에 배치된다고요. 영어로 번역도 되고. 그럼 외국인도 볼 거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럴 수도 있겠죠,가 아니라 바로 그렇죠.”

주인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젖은 스펀지를 슬쩍 누른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올라왔다.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는 한 층 아래 지하에 있었고, 5평 남짓한 사무실은 빈티지 오디오와 스피커, 필름카메라 등으로 가득했다.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카세트테이프를 한번에 여섯개씩 복사할 수 있는 기계로, 1990년대 중반 길거리에서 리어카에 불법 복제테이프를 쌓아놓고 팔던 시절 사용하던 물건인 듯했다.

“무슨 말인지는 압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마침내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거짓말은 못해요. 여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일궜거든. 아버지한테 렌즈 하나 물려받은 게 없어. 뭐, 굳이 받은 게 있다면 망신이나 면박이나 저주?”

그가 반지를 낀 손으로 머리를 쓸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건 됐어요. 영업에만 지장이 없으면. 하지만 내 입으로 아버지의 대를 잇는다느니, 존경한다느니, 그런 말은 못해요. 그건 제 본질이 아니니까. 본질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모르겠는데요.”

연하씨가 말했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주인이 다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진관은 기본적으로 동네 장사예요. 사람들이 여권사진 한장 찍겠다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과연 올까?”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본질은 못 바꾸는 겁니다. 살면서 하나쯤은 지키는 게 있어야 해요.”

 

급하게 들어온 일이었다. 한밤중에 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자마자 선배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요즘 논다며?”

같이 일하던 기자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잠적했다. 영어번역까지 맡아 하던 재원이었고, 두명이 꾸리던 작은 외주 잡지사에 사장 겸 수석 에디터만 황망한 표정으로 남겨졌다. 업무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쳇바퀴에 뛰어든 햄스터처럼 정신없이 전화를 빙글빙글 돌린 끝에 다른 일은 어찌어찌 막았고 기획기사 인터뷰 하나가 남았다. 전화 걸 사람도 너밖에 안 남았다. 대략 그런 사정이었다.

“정말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안 해.”

이번 경우는 평소가 아니었다. 잡지사의 생명줄을 쥔 고객인 항공사 대표가 경영권 승계 3주년을 맞아 직접 기획기사의 아이디어를 냈다.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대표님께서 기사도 손수 검토하실’ 모양이었다. 평소와 같은 건 예산뿐이었다.

나는 점잖게 거절하려 노력했다. 글 쓰는 일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고, 회사를 그만둔 지도 얼마 안 돼서 어느 쪽이건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았다는, 내가 봐도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선배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발. 못하겠다고 하면 지금 울어버릴 거야. 진짜로.”

“못 보던 새 많이 약해지셨네요.”

“진짜라니까.”

선배의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알겠으니까 좀 참아주세요.”

다음날 아침 지하철 4호선 환승역 통로에서 연하씨를 만났다. 하얀 셔츠에 검정색 진과 스니커즈 차림이었고, 목에는 보라색 초커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우리는 가는 동안 별로 말을 섞지 않았고, 전동차에서 내릴 때도 문 앞에서 서로 먼저 가시라며 어색하게 양보를 했다. 그래도 뜨문뜨문 대화를 나눈 끝에 그녀가 선배의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된 사이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하고 돌아와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연하씨가 편의점 파라솔 그늘 아래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선배는, 아니 왜? 왜 말이 바뀌어? 거기서 본질이 왜 나와? 등의 의문을 표하다가, 난처하네, 아우, 나 참,이라고 논평한 다음 망할 놈,이라는 탄식으로 심경을 정리했다. ‘망할 놈’이 잠적한 기자인지 사진관 주인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떡할까요?”

내가 말했다.

“그러게. 어쩐다.”

“사진관은 빼고 하죠. 이제 와서 알아볼 데도 없고.”

“업체는 바뀌어도 되지만 숫자는 맞춰야 돼. 다섯곳. 반드시.”

“왜요?”

“대표님 말씀에 따르면 자기네 비행기가 언젠가는 5대양을 모두 누벼야 하거든.”

공기가 더워져갔다. 나는 탄산수를 한모금 마셨다. 선배의 사정이 딱하긴 했지만, 이 일에서 내가 잘못을 저지른 건 없었다. 이 시점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 역시 없었다. 내가 부탁받은 건 여기까지였고, 솔직히 말하면 이미 그 이상의 일을 한 기분이었다.

“어떡할까요?”

내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투에 조금 더 담았다. 음식에 소금을 치듯. 선배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끙,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있잖아……”

“저기, 자유기고가님?”

내가 고개를 돌렸다. 연하씨가 파라솔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에디터님이랑 전화하는 거면 잠깐 바꿔주실 수 있어요?”

새까만 눈동자를 둘러싼 부드러운 눈매가 내게 방긋 웃었다. 나는 전화기를 넘긴 뒤 그녀가 선배와 통화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연하씨가 하는 말의 요점은 대를 이어 하는 막국수 가게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도로를 타면 그렇다는 것이고, 차 없이는 기차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전화를 하는 동안 버블헤드 인형처럼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했다.

“네, 아니에요. 방금 알아본 거예요. 제 페이스북 친구가 거기 주인이랑 친해서 지금 말씀 주신대요. 아니에요, 여기서 택시 타면 요금 폭탄 맞아요. 고맙긴요, 저도 일을 해야 돈을 받죠. 기껏 나왔는데 허탕 칠 수는 없잖아요.”

연하씨가 전화기를 돌려주자, 선배가 겨울 코트에서 비상금을 발견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었지? 이왕 하는 김에 힘 좀 써줘. 고료 더 챙겨줄게. 가서 막국수 먹고 차비랑 같이 영수증 가져오면 밥값도 줄게. 마감은 하루 정도 늦어도 되니까. 부탁해!”

 

스마트폰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보았다.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10분이 걸렸다. 철도 사이트에서 확인한 시간표에 따르면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35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녀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별 대화 없이 걸었다. 썬캡을 쓴 할머니가 길 한가운데서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 앞에서 바위에 부딪힌 물살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할머니를 통과하고 난 뒤 그녀의 손에는 알록달록한 전단 한장이 들려 있었고 내 손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뿐이었다.

역에 도착해 표를 끊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신진 정치인이 당내 중진의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모양이었다. 패널로 나온 뚱뚱한 정치평론가가 종이 위에 당내 파벌의 계보를 그려가며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걸 멍하니 보느라 처음에는 연하씨가 말을 거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못 들었어요.”

내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못 들으셨으면.”

“아닙니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뇨,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레슬링이요.”

“네?”

“레슬링. 대학 친구 아빠가 레슬링을 하거든요.”

“네.”

나는 얼떨떨하게 맞장구를 쳤다. 연하씨가 계속 말했다.

“자기 아버지하고요. 그 친구 이름이 마빈인데, 대학 때 친했어요. 아무튼 제 말은, 마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레슬링을 한다는 거죠.”

“할아버지하고요.”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채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네. 마빈네 집안이 햄버거 체인을 하거든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전국 규모는 아니고 미시시피주 한정인데, 그 안에서는 <인앤아웃>도 <파이브 가이즈>도 안 부럽대요. 할아버지가 개척해서 아빠가 사업을 확장했고요. 일을 잘해서 평판으로는 아빠가 할아버지보다 낫다는 얘기도 자주 나오나봐요. 하지만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일이 있을 때 본인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으면 아빠는 늘 할아버지를 찾아간대요. 가서 레슬링 시합을 하는 거죠. 벌거벗고요.”

“벌거벗는다고요?”

“네. 올리브유였나, 몸에 그걸 바르고. 아마 고대 그리스식인가본데, 아무튼 저택에 체육관이 있대요. 굉장하죠? 거기서 경기를 하는 거예요.”

“굉장하네요.”

“그런데 그 시합에서는 무조건 할아버지가 이겨야 한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빈 아빠는 죽일 듯이 달려든대요. 아버지라고, 노인이라고 봐주는 거 없고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전력을 다해 아들을 꺾어야 하는 거죠. 그럼 마빈 아빠는 패배의 충격으로 머리가 맑아지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거예요. 아, 나는 아직 아버지를 넘으려면 멀었구나, 이러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가 하는 말이 정확히 이해가 가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나는 핏줄로 이어진 두 남자가 대저택에 마련된 체육관에서 장어처럼 미끌미끌한 알몸으로 서로를 붙들고 뒤집는 광경을 떠올리려 해보았다. 잘 안 됐다. 경기도 외곽 신도시 기차역의 대합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 그런지 상상력이 기름이 다 떨어진 자동차처럼 털털거리다 이내 멈춰버렸다.

“마빈 말로는 그게 뒤집힌 인정욕구래요.”

연하씨가 말했다.

“아빠는 그런 식으로 할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거죠. 그게 자기가 당신 아들이라는 증거라는 거예요. 아직 할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고 인정을 받는 게. 그래서 죽도록 달려드는 거고요.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할아버지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죠. 본인이 지면 자기가 세운 사업에 타격이 갈 수도 있으니까.”

“재미있네요.”

내가 말했다. 이제 감이 좀 잡혔다.

“사진관 주인한테도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건가요?”

“모르죠. 하지만 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아버지 가게 터 앞에 아버지랑 똑같은 가게를 내는 심리가 뭘까 싶잖아요. 아니면 조금 더 깊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냥 성질이 못돼먹은 거죠.”

나는 웃었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뉴스가 끝나자 치과보험 광고가 나왔다. 나는 작고 모호한 친밀감이 실험실에서 막 생겨난 단세포생물처럼 우리 사이에서 꼬물거리는 걸 느꼈다. 사진관에서 나온 뒤로 내내 예민했던 신경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역사 천장의 일부는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쏟아지는 더운 공기와 에어컨에서 나오는 차가운 공기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동시에 피부에 닿았다. 비어 있던 내 오른쪽 자리에 백팩을 멘 젊은 남자가 털썩 앉았다. 그러자 공기 속에 진하고 신선한 비누 냄새가 번졌다.

“아깐 고마웠어요.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는데.”

내 말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진 거예요. 여기까지 그 고생을 하면서 왔는데. 억울하잖아요.”

 

10분 뒤 우리는 플랫폼으로 내려가 열차를 탔다. 객차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도 상관없을 듯했다. 객차 중간에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놓인 좌석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열차 진행방향에, 나는 오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 막국수 식당 이름이 뭔가요?”

열차가 출발하자 내가 연하씨에게 물었다.

“‘원조 막국수’요. 음. 잠깐만요. 이거 보여드릴게요.”

그녀가 자기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 내게 건넸다.

나는 액정에 뜬 페이스북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그 위를 오간 대화에 따르면 그 막국수집의 조상은 ‘일품 막국수’로, 일대에서 명성을 떨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식들이 각각 ‘원조 막국수’와 ‘진품 막국수’ ‘정통 막국수’를 개업하여 자웅을 겨루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거기에 겸사하여 본처와 후처 자식 사이의 해묵은 갈등도 얽혀 있었다. 그녀의 페이스북 친구는 ‘일품 막국수’를 계승한 집으로 ‘원조 막국수’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동치미 비법을 제대로 물려받은 쪽이 거기라는 게 근거였다.

“사연이 복잡하네요.”

나는 스마트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니까요.”

연하씨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 혹시 기고가님은 이쪽 일 하신 지 오래되셨어요? 인터뷰하고 글 쓰는 일.”

“예전에요. 지금은 아니고. 그동안 회사 다녔거든요.”

“과거형이네요.”

“두달 반 됐어요.”

“그럼 지금은 다른 직장 알아보고 계신가요?”

“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이직이 쉽지 않은 직종이었지만,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이력서를 넣고는 있는데, 요즘은 다 어려워서요.”

“맞아요. 진짜 어렵죠.”

그때 기차가 터널로 들어갔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는 소음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부풀어 오르다가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자 풍선에서 공기가 빠지듯 꺼졌다. 풀과 나무의 산뜻한 녹색과 흙의 짙은 갈색과 도로의 우중충한 검정색이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산과 도로에 거칠게 찍혀 있었다. 커다란 물류창고가 허허벌판에 뜬금없이 서 있었고, 끌로 판 것처럼 깔끔하고 가느다란 길을 따라 납작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저 멀리 거대한 크레인들이 하늘을 향해 차곡차곡 올라가는 아파트 단지를 미분양과 가격 하락에서 지켜내려는 듯 견고하게 둘러싼 모습이 보였다.

“지난주에 면접을 봤어요.”

연하씨가 다시 말했다.

“디자인 쪽 회사였거든요. 제 전공이 그거예요. 돈은 사진으로 벌고 있지만요. 아무튼 면접을 보는데, 제가 미국에서 집안 도움 거의 없이 혼자 일해서 공부하고 왔다니까 면접관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보라는 거예요. 힘들수록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면서요.”

4절까지요?”

“네. 다 못 불렀죠. 당연히. 그러고 나니까 분위기가 좀 묘했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분위기 있잖아요.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는 거죠. 그 전에 일단 애국가를 왜 부르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저는 애국가 어쩌고 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만 하는 얘긴 줄 알았는데, 면접관들은 나보다 서너살 많을까? 그런데도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못하니까 비웃고. 당황스러운 거죠. 어…… 근데 제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죠?”

“마빈이 없으니까요.”

연하씨가 웃었다.

“그런가보다. 근데 이 경우가 좀 심한 편인데, 다른 곳도 느낌이 비슷하거든요. 면접을 계속 보는데, 그때마다 제 표정이 굳어 있는 걸 저도 느껴요.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아니면 제가 너무 변했거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친했던 사람도, 처음 만난 사람도요. 샤워기 핸들로 온수 온도 맞출 때 잘 안 돼서 쩔쩔매잖아요. 딱 그 기분이에요. 실은 아까도 사진관에서 그랬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려요. 그렇게까지 뾰족하게 굴 건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그건 잘하신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고요. 아무튼 처음에는 오랜만에 귀국해서 적응이 안 돼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정말 그 이유만일까 싶거든요. 이걸 뭐라고 하지…… 그러니까, 각자 다른 곳을 보면서 딴소리를 하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우연히 말이 통하고 있는 그런 상황 같다는 거예요. 언제든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거죠.”

나는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연하씨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배부른 소리라는 건 알아요. 친구들은 제가 좀 맞춰가야 한대요.”

“아니에요.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몇시간 전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할 소리가 아닌데도, 돌이 경사를 따라 굴러가듯 저절로 입이 열렸다.

“제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주로 면대면 업무였어요. 사람 상대하는. 아시겠지만 별의별 사람이 많잖아요. 이해관계가 걸리면 더 그렇고. 그러다보니 일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도 받고 회의감도 드는 거예요. 과연 계속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러다가 그…… 심리적으로 좀 어려운 일이 생긴 거죠.”

“직장 우울증?”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거였나봐요.”

“그렇군요.”

“네. 그냥 버텼어야 하는 게 맞았나 싶기도 한데.”

“아니에요. 잘 생각하신 것 같아요. 사람이 먼저잖아요.”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요.”

나는 ‘고맙고요’를 쐐기 삼아 말을 멈췄다. 여기서 더 나아가다가 자칫하면 쓸데없는 얘기까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하는 바람에 상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거나, 그 때문에 직장에서 왕따에 가까운 대우를 받던 중 업무상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퇴사했다거나, 사실 그 사고는 조금만 신경 썼으면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달아나고 싶어서 일부러 손을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거나. 그런 얘기들.

그뒤로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속마음을 지나치게 드러낸 사람들답게 말없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지나 역 대합실로 올라가는 동안 연하씨가 <원조 막국수>에 전화를 걸었다.

“버스가 있긴 한데 택시가 낫대요.”

전화를 끊고 나서 연하씨가 말했다.

“얼마나 걸린다던가요?”

“한 15분 정도? 방파제 따라서 가다보면 낚시도구들 파는 가게가 쭉 늘어선 거리가 나오는데, 바로 거기래요. 어쨌든 택시기사들은 들으면 다 안다고…… 아, 잠깐만요.”

연하씨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응. 아니, 지금 취재 나왔어. 무슨 말을 안 해. 내가 오늘 나간다고 했잖아. 응?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분명히……”

연하씨의 옆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녀는 나를 흘끗 보더니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잠깐만요. 그런 다음 내게 고개를 까딱한 뒤 걸음을 빨리했다.

나는 그녀가 역사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대합실 의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세금 낭비와 전시행정의 전형이라 할 건물이었다. 으리으리하고 번쩍였으며, 누군지 모르는 위인의 동상처럼 공허했다. 하루 이용객을 손발로 꼽아도 될 것 같았다. 상가 공간은 역에서 직접 운영하는 편의점 하나를 빼고는 죄다 비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역시 이용자가 없었다. 탈취제 냄새가 났고, 맨 구석 좌변기 칸이 닫혀 있었다. 나는 볼일을 보고 손을 씻은 다음 온풍기로 손을 말렸다. 화장실은 여전히 조용했고, 닫혀 있는 좌변기 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만 나오세요.”

침묵. 나는 다시 말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걸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좌변기 칸 문이 열리면서 <안필성 스튜디오>의 주인이 걸어 나와 내 앞에 섰다.

우리는 가만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느 병원의 어떤 의사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병원에 뛰어난 의사였다. 거기에 살도 찌웠고, 풍성하고 푸근한 턱수염까지 길렀다. 언뜻 봐서는, 아니 자세히 봐도 회사가 오랫동안 찾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나 역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쳐다보면서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메스로 조율하고 턱수염으로 파묻은 얼굴 뒤편의 진짜 얼굴이 내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떠오르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물론 본명이 안필성이 아닌 <안필성 스튜디오> 주인은 나를 즉시 알아봤을 터였다. 그러니 당장 어떻게든 아무 말이라도 해서 쫓아내는 게 급선무였을 것이다.

“정말입니다. 걱정하실 거 없어요.”

“무슨 걱정을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네.”

주인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대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나는 잠자코 선 채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주인의 말투는 공격적이었지만 자세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어깨는 축 처져서 경계심을 느낄 수 없었고, 텅 빈 두 손은 끈에 매달린 야구공처럼 무방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물론 뒷주머니에 뭘 집어넣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면대면 업무는 스트레스가 많다. 이런 식으로.

“안 믿어도 할 수 없지만 말이죠.”

나는 말했다.

“저는 진짜로 인터뷰를 하러 간 거였어요. 당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그 인터뷰. 가업을 잇는 사람들. 나라고 당신 알아봤을 때 무척 반갑고 그랬을까요?”

화장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주인이 입을 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관없다는 듯 계속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왜 애초에 인터뷰 같은 걸 하겠다고 했나 생각을 해 봤단 말이지요. 들킬 게 빤한데 어떻게든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이유가 뭘까. 아가미로 숨 쉬고 사는 데 만족해야 하는데. 왜겠어. 괜찮지 않을까 싶은 거지. 바깥 공기가 그립고. 맘 놓고 햇볕을 쬐어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고. 혹시 헤밍웨이 읽어봤습니까?”

“아뇨.”

“읽어보세요. 그 사람 소설 중에 마피아가 자길 죽일 걸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권투선수가 나오는 얘기가 있어. 지친 거지. 갈 데도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고. 누워 있다 죽으나 도망가다 죽으나 제 팔자가 다를 게 없는 것 같거든. 오늘 아침에 당신 얼굴을 보고 그 소설이 생각났어요. 그 마음이 뭔지 진짜 잘 알겠더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인은 그 권투선수처럼 누워 있는 대신 내 뒤를 밟았다. 그렇게 당할 생각은 아직 없다는 뜻일 테다. 그는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자세한 속셈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주인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체격도 튼튼했다.

“저는 퇴직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인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제 회사하고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아무 관계도 없어요.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요. 저도 지금 사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을 보면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니까. 그러니 여기서 그냥 조용히 헤어집시다. 회사에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해요. 침대에 계속 누워 있을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겠지만.”

주인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퇴직이라.”

“이젠 그만하고 싶어서요.”

“그만한다,라.”

주인이 다시 내 말을 따라 했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거죠? 날 만난 오늘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뭐, 잘해보시오. 행운을 빕니다. 진심으로.”

주인의 눈에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빛이 떠올랐다. 사파리에서 미모사를 씹어 먹는 기린의 표정처럼 속을 알 수가 없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할 말이 없었고, 합의가 이뤄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싶은 욕구를 있는 힘껏 억누르고 있다는 티조차도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화장실을 나갔다.

 

“차였어요.”

택시에서 내리자 연하씨가 말했다.

우리는 보도블록이 군데군데 깨진 인도에 서 있었다. 낚시도구를 판매하는 단층 건물과 참돔이 수면에서 역동적으로 뛰어오르는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을 내건 횟집, 편의점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그 건물들 뒤로는 방파제가, 방파제 뒤로는 바다가 자리했다. 소금기가 어려 있는 바람이 불었다. 파란 하늘을 새파랗게 받아치는 잔잔한 수면 위로 자잘한 포말이 누빔선처럼 띄엄띄엄 나타났다 사라졌다.

“네?”

“차였다고요.”

그녀가 좀더 똑똑히 말했다.

“오늘 정말 재수 더럽게…… 다이내믹한 하루네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거지 같은 놈.”

“그러게요.”

“그러니까요.”

우리는 길 건너에 있는 간판을 바라보았다. 폭격기가 표적으로 써도 좋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입간판에 새까만 추사체로 ‘원조 막국수’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씌어 있었다. 가게 건물은 작고 소박했지만, 널찍한 주차장 한편에 야외 천막을 쳐놓고 그 아래 플라스틱 의자와 탁자를 쭉 늘어놓아 손님맞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종업원들이 양손에 쟁반을 들고 바쁘게 건물의 안과 밖을 오가고 있었고, 주차장은 중대형 승용차로 빽빽했으며, 옹기 항아리로 만든 재떨이 주위에서는 손님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은 인터뷰 힘들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럴 것 같죠?”

“이왕 이렇게 된 거 밥부터 먹죠.”

“저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저 간판 글씨 되게 식욕 당기게 써놨다.”

우리는 주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창가 자리에 앉아 막국수 두그릇을 시켰다. 주문을 하고 나서 눈을 서너번 깜박이고 나자 종업원이 국수를 우리 앞에 놓고 갔다. 국수는 훌륭했다. 슬러시에 가까운 동치미는 시원했고,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에서는 구수한 향이 올라왔다. ‘진품’과 ‘정통’도 먹어보면서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하씨는 조금 전 실연당한 사람답지 않게 참기름도 뿌리고 겨자도 풀면서 맛나게 국수를 먹었다. 아니면 실연당한 사람답게 식사로 마음을 달래는 중이거나.

“그 레슬링 이야기 있잖아요.”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네.”

“인정욕구건 뭐건, 마빈네 집안이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텐데요. 할아버지가 계속 정정할 수는 없을 거니까요.”

“그건 그렇죠.”

연하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마 그렇게 되기 전에 아빠가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지 않을까요? 그런 다음에 이번에는 본인이 아들을 레슬링으로 꺾는 거죠. 그렇게 집안의 전통이 이어지는 거예요.”

“마빈이 고민이 많겠네요.”

“아닐 거예요. 형들이 맹훈련 중일 거니까.”

“형들이 있어요?”

“게다가 걔는 다른 꿈이 있거든요. 평일 낮에 맨해튼 펜트하우스에 앉아 샤또 마고를 병째로 마시면서 세상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한탄하는 거.”

“미국 부자들은 자식들 검소하게 키운다던데요.”

“다른 부자들은 모르겠고, 걔네 집은 그렇더라고요. 레슬링 집안답죠.”

“안됐네요.”

“다들 자기가 될 수 없는 것만 골라서 꿈을 꾸는 거 같아요.”

인터뷰는 세시가 넘어 손님이 뜸해지고 나서야 시작되었다. <원조 막국수>
의 주인은 수더분한 인상에 팔뚝이 유난히 굵은 중년 남자로, 내가 읽은 페이스북 메시지에 따르면 후처와의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었다. 대를 잇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버지가 물려준 비법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내가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버지가 특별히 자기에게 물려주거나 가르쳐준 비법 같은 건 없고, 자기도 그런 걸 물어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입맛이란 세월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라 계속 개량을 해야 하고, 전수받는 비법 같은 건 중요하거나 본질적인 게 아니라면서. 그런 다음 자기가 그래도 아버지에게 배운 게 있다면 매일 아침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가게 문을 여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해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존경할 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고, 사실 그 자세야말로 장사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가르침이라 생각한다고 차분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