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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20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임국영 林國榮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indra885@naver.com

 

 

볼셰비키가 왔다

 

 

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선뜻 실내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나 역시 그들을 들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성은 남자 셋 여자 하나였다. 그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는 흠잡을 데 없는 스킨헤드였다. 스킨헤드는 스칸디나비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텁석부리였으며 키가 작은 편이었으나 몸이 단단해 보였다. 또다른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30대를 넘길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다. 먹칠한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성하고 둥근 머리모양이었던 것이다. 특히 앞머리는 코를 덮을 지경이었다. 마지막 남자는 밝은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고 왼쪽 귀에 짐승의 이빨 같은, 새끼손가락만한 까만색 피어스를 달고 있었다. 앳된 얼굴로 미루어봤을 때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눈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라면, 바가지는 바지가, 오렌지는 재킷이 유광 가죽 재질이었고 둘 다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여자는 평범한 대학생 같은 외모였다. 머리 모양도 옷매무새도 말끔했으나 실은 이 무리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이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쇳조각끼리 짧고 경쾌하게 부딪는 소리,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니 이를테면이 아니라 그냥 탬버린 소리가, 탬버린이 아니고서는 날 수 없는 소리가 그녀의 가방에서부터 들렸던 것이다. 그들은 조문을 왔다기보다는 무대를 찾아온 듯했다. 기어코 그들은 신발을 벗었다.

어떻게 오셨느냐는 말을 어떻게 꺼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냐고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킨헤드가 자신들을 오빠의 지인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먼저 빈소로 들어갔다. 오빠는 불쾌한 일을 겪은 듯한 표정이었다. 양 볼이 불만으로 부풀어 있었고 눈빛은 사나웠다. 고등학생일 때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풋풋함도 버르장머리도 없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지친 기색도 없이 영정사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관 뚜껑을 열고 오빠에게 뺨따귀를 올릴 것 같은 기세였다.

스킨헤드와 그 무리가 짐을 내려두고 영정사진 앞에 섰다. 스킨헤드가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오늘 보았던 그 어떤 조문객보다도 침통해 보였다. 그들이 오빠에게 절을 했다. 오렌지는 옆사람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렸는데 절을 몇번 해야 하는지 몰라서 세배를 할 뻔한 모양이었다. 절을 마치고 그들은 우리와 마주 섰다. 나와 엄마는 크리스천이었으므로 묵례를 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절을 했다. 절을 한번 하고 난 뒤 오렌지가 다시 몸을 숙이려는 것을 바가지가 막았다.

비어 있는 식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바꿔 말하자면 아무 식탁 앞에 그들을 앉혔다. 늦은 시각이었다. 가까운 친척이라곤 외삼촌과 이모, 이모부뿐이었는데 모두 방에서 자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 음식을 부렸고 그들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육개장을 퍼먹었다. 그들 곁에 머물기도 빈소로 돌아가기도 싫었으므로 출입구 근처로 가 조문객 명부를 적는 탁자 앞에 앉았다.

오빠의 부고는 충격적이었고 아직까지도 충격적이기만 했다. 나는 엄마와 달리 울음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슬프다기보다는 울화통이 치밀어서 운 것으로밖엔 안 보였으나 나는 화도 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곤욕이었다. 무슨 기분을 느끼고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홉살이 되던 해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얼마 뒤 집을 나갔다. 말하자면 오빠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게 대략 8년이고 살지 않은 게 8년이란 얘기다. 이쯤이면 남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오빠가 내게 살갑게 굴었던 기억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나와 오빠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만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이상하리만치 인상이 좋지 않았을 따름이다. 내게 오빠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음울하고 히스테릭한 소년이었고 격하게 표현하자면 밥맛 떨어지는 자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막상 부고를 들었을 때의 솔직한 소감이라고 한다면, 맞다, 그런 사람이 내게 있었지,였다. 그렇다고 이런 속내를 내비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심드렁한 기색을 드러낼 만큼 나는 멍청하거나 용감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고 가능하다면 슬퍼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다. 몇번인가 눈물을 머금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애도라기보다는 혼자서 하는 상황극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지경이었다.

통계를 살핀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러한 통계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열일곱은 상복을 입기에 다소 이른 나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설렌 것도 사실이었다. 뭐라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는데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삼촌이 말했다. 유가족은 상을 치르는 3일 동안 씻거나 잠들지 않고 빈소를 지키며 문객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고생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이유는 몸을 피로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몸이 고되면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좁아진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말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 몸까지 괴롭힐 것은 또 뭘까 싶었다. 삼촌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이 장례식은 완전히 아웃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이토록 적어서야 고될 일이고 뭐고 없었다. 멋쩍고 낯 뜨겁게 만들어서 슬픔을 잊으라는 의도라면 또 모를까. 심지어 고인의 지인으로서 찾아온 조문객은 저들이 처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불쑥, 저들이 떠나고 나면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복 입은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것이다.

어느 틈엔가 오렌지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오렌지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마실 것을 꺼내도 되느냐고 어수룩하게 물었다. 내가 꺼내주겠다고 했으나 오렌지가 고사했다. 오렌지는 어전에서 물러나는 환관처럼 멀어졌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와 소주를 꺼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오렌지의 동료들에게 시선을 옮겼고 오렌지를 지켜보던 그들 역시 나를 쳐다봤다. 천적의 동태를 살피는 미어캣 무리 같은 얼굴들이었다.

밥 먹을 때는 잠자코 있던 그들이 술을 꺼내든 순간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왜 아무도 없냐. 연락 누가 돌렸어? 저는 안 했는데요. 너도?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 잘못이다. 내가 했어야 했는데.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틈틈이 내가 연락을 돌렸어야 했어 이 망할 것들아. 우리도 정신없었잖아요. 혁태오빠 얘기 듣고 계속 연습실 짱 박혀서 울고 연습하고 울고 연습하고. 이거 봐요. 눈이 안 떠질 지경이라고요. 알겠으니까 그것 쫌 그만 쓰자. 칸예 웨스트니? 어쩌죠 형. 뭐를. 하, 할 거예요? 기다려봐. 형님들, 누나. 죄송한데 제 생각에 아무래도 이 분위기에서는 오바입니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혁태오빠 유언이잖아.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고 그들과 나의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그들은 급히 시선을 떼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짐바브웨에 도래한 빙하기, 미어캣 대표들이 개최한 비상대책위원회 현장 같은 것이 상상됐다. 한참을 그 자세로 얘기도 나누고 술도 마시던 그들은 바가지로부터 뒤통수를 한대 맞은 오렌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오렌지는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합석하실래요?”

저 뒤에서 오렌지를 향한 탄식이 들려왔다. 나는 오렌지를 올려다봤고 오렌지는 눈동자를 굴렸다. 빈소 쪽을 살핀 뒤 오렌지를 따라 그들 자리에 합류했다. 오렌지는 앉자마자 탬버린에게 팔뚝을 꼬집히고 신음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스킨헤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을 들었는데요? 스킨헤드는 뜸을 들였다. 터울이 많은 여동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얘기는요? 다른 얘기라면…… 스킨헤드가 침묵을 이어나가는 동안 오렌지가 종이컵을 내밀었다. 종이컵 안에는 카푸치노 위에 얹어질 법한 거품이 올라와 있었다. 오렌지가 다른 손에 캔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음료가 맥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렌지는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띠었지만 옆에 있던 탬버린은 편두통이라도 온 듯한 얼굴이었다. 이럴 땐 마셔도 돼요. 오렌지는 그렇게 말했고 이럴 때는 대체 어떨 때인지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으로 잔을 받았다. 오렌지가 건배제의를 하려는 것을 바가지가 막았다. 이상한 오기가 들어 종이컵에 든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불쾌한 맛이었다.

어떻게 알게 된 친구예요? 바가지가 대답했다. 저희가 혁태형이랑 같이 밴드를 하, 허, 했거든요. 밴드요? 네. 무슨 밴드요? 오렌지가 끼어들었다. 락입니다, 락. 그들의 행색을 생각했을 때 전혀 의외일 리는 없었으나 막상 사실을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람 싶었다. 잠자코 눈만 끔뻑이고 있자 그들은 내가 락이 뭔지 모른다고 짐작한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락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기타나 드럼,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들, 고래고래 악 지르는 목소리 같은 이미지뿐이었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설명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음악은 약간… 동두천 스타일이잖아요 오빠. 약간 올드한 게. 올드하다고? 아니지. 매니악한 거지. 전에 누가 우리보고 누메탈이라고 했습니다. 메탈? 왜 우리가 메탈이야? 하드코어지. 핌프 아닌가? 그게 뭐예요? 얘들아, 누메탈은 디제이가 들어가야 누메탈이지 녀석들아. 누가 그래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당사자들마저도 스스로 무슨 얘기를 지껄이는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상한 단어들을 입에 올리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에 어떤 자부심이나 만족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럴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착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들이 하는 음악이 전혀 궁금해지지 않았을 때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이 각설이를 하든 타령을 하든 관심이 없었으므로 장르니 정체성이니 열을 올리는 그들에게 짜증을 퍼부으려고 마음먹은 찰나에 스킨헤드가 논쟁을 끝냈다. 우리는 그로울링을 하는 밴드입니다. 그로울링이 무엇인지 반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쪽을 택하든 그로울링에 대한 긴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걱정과 달리 스킨헤드는 단 한번의 표현으로 그로울링이 무엇인지 설명해냈다.

“우웩.”

이게 그로울링입니다. 그 말에 하마터면, 아니죠, 그건 오바이트죠,라고 답할 뻔했지만 도로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스킨헤드는 묻지도 않았는데 사족을 덧붙였다. 이런 소릴 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목구멍을 무지하게 넓힌 뒤 토한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내면 됩니다. 우웩. 우웨엑.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가 했던 음악은 구역질 같은 거였구나. 어쩜 또 지 같은 걸. 스킨헤드가 그로울링을 멈춘 뒤 나와 그들 사이에 대화가 끊겼다. 오렌지가 내 잔에 맥주를 따르려 했다. 치워요. 오렌지가 물러났다.

“오빠 유언이 뭔데요?”

혁태오빠는요. 한동안 아무도 답을 하지 않은 중에 탬버린이 입을 열었다. 자기가… 잘못됐을 때,라고 말하자마자 별안간 탬버린은 울음을 터트렸다. 오렌지가 휴지를 찾아다 탬버린에게 건넸다. 스킨헤드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바가지는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내가 거추장스러웠다. 혁태형은 자기가 죽으면, 그렇다고 진짜 죽기 직전에 한 말은 아닌데, 어쨌거나 꼭 장례식장에서 들었으면 하는 노래가 있었거든요. 바가지가 탬버린을 대신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요? 바가지는 말주변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떠듬떠듬 무언가를 이해시키려, 혹은 허락을 맡고자 했다. 본론을 꺼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지만 바가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됐다. 듣고 싶은 음악, 기타 두대, 탬버린 하나. 알 만했다. 그들은 정말로 무대를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그들을 고발했고 엄마는 그들을 내쫓았다.

 

 

쉬어야 할 정도로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어쩐지 기운이 바닥나버렸다. 빈소 한편에 준비된 작은 방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오는 바람에 잠에서 깬 삼촌은 엄마랑 있겠다며 방을 나섰다. 나는 삼촌이 내어준 자리에 누웠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인체는 신비하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폰 만질 힘은 꼭 있는 것이다. SNS와 채팅방은 조용했다. 누군가에게 대화를 걸고 싶었지만 누구 말에도 답할 힘이 없었다. 폰으로 게임을 하며 아까 왜 그들 사이에 앉아 대화를 나눴는지 생각했다. 아마도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행사는 내 오빠의 장례이고 나는 고인의 동생이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고인을 생각하고 기려야 한다. 오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알아보고자 노력이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런 맥락에서 오렌지는 내 관심사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혁태형 블로그 있어요.”

빈소에서 내쫓기기 직전 오렌지는 블로그 주소를 하나 알려줬다. 그것을 보면 내가 마음을 바꿔먹기라도 할 것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나 하나 설득한다고 장례식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의도야 어떻든 오렌지가 알려준 대로 블로그에 접속했다. 블로그에 대한 첫인상은 투박하고 검붉다는 것이었다. 카테고리라고는 음악, 영화, 공연, 일상, 이렇게 네가지뿐이었다. 한가지 더 특징적인 것은 닉네임이었다. 돈키혁태라니. 구렸다. 게시물은 별다른 코멘트 없이 영상이나 사진, 노래만 올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어쩌다 가끔 써놓은 말도 짤막했다. 내가 보기엔 다 허세 같았다. 간혹 오빠 사진이 있었지만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머리는 새빨갛게 물들였고 양 귓불에 큼직한 피어스를 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표정뿐이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아닌 척 멋을 부리거나 기타를 멘 채 담배를 피우는 사진까지는 그런대로 참아줄 만했지만 웃통을 벗은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이었다. 상반신에 흉측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문신은 장기(臟器) 모양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에 심장이, 폐와 간 그리고 위와 장이 있을 법한 위치에는 폐와 간 그리고 위와 장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불경한 얘기지만 오빠가 만약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면 의사 선생님들이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절하게 가이드라인을 그려놓은 셈이니까. 아닌가. 오히려 헷갈릴까. 나 역시 내 오빠 돈키혁태씨가 헷갈렸다.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는 오빠가 활동했던 밴드, 그러니까 그 4인조와 오빠가 함께했던 밴드의 이름이 ‘볼셰비키’라는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검색해봤지만 무슨 뜻인지 더 알 수 없게 됐다. 또 하나, 오빠는 볼셰비키의 세컨드 기타리스트로서 나름대로 명성과 인기를 얻었던 모양이었다. 오빠를 찬양하는 무리가 댓글란을 성실하게 채우고 있었다. 오빠에 대한 평가는 요약하자면 대체로 이랬다. 형 멋있어요. 오빠 잘생겼어요. 눈 씻고 찾아봐도 기타를 잘 친다는 얘기는 없었다.

끈질기게 블로그를 탐독한 끝에 미미한 성과를 얻었다. 비교적 길게 써놓은 글귀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족에 관해 짧게나마 언급되는 포스팅이 몇개 있었다.

 

엘피판이 허공에 날아다니는 걸 봤을 때부터 알아봤다 내 인생

아버지는 열받는 일이 있으면 창고에 가서 엘피를 집어 던졌다

소싯적에 음반장사를 했다는데 창고에 재고들이 되게 많았다

나쁘지 않은 영업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 친구들이 가게 지하실에 모여서 대마만 안 피웠어도

그리고 그게 단속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아직까지 우리 집은 음반을 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만취한 아버지가 가끔 내 방에 와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며 틀어달라곤 했다

친구 중에 「호텔 캘리포니아」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땐 이미 암으로 고인이 되신 분이었고

아버지는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분은 이 곡을 너무 좋아하셔서 생전에 캘리포니아 여행을 몇번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래, 캘리포니아를 까는 노래 아니었나?

호텔 캘리포니아든 대니 캘리포니아든 관심 없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난 뒤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누군가가 날 떠올려준다면 멋질 것 같다

 

/

 

Understand the things I say

Dont turn away from me

Cause Ive spent half my life out there

You wouldnt disagree

엄마가 싫었다 취한 아버지랑 나만 두고 걸핏하면 집을 나갔거든

 

 

이것이 전부였다. 어디에도 오빠는 자신이 죽은 뒤에 듣고 싶다던 노래 따위를 적어놓지 않았다. 종종 비밀번호가 걸린 채 내용이 숨겨져 있는 글들이 있었지만 나이와 기일을 제외하고 나는 오빠와 관련된 그 어떤 숫자도 알지 못했다.

 

 

둘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삼촌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조문객이 몰려든 것이었다. 피크타임을 맞은 맛집의 종업원이 이런 기분일까. 이 모든 게 어제 찾아왔던 그들, 볼셰비키 때문이었다. 장내는 그들과 비슷한 행색을 한 무리로 장사진을 이뤘다. 모히칸부터 허리춤에 체인을 두르거나 정장에 징을 박고 온 사람까지, 그야말로 악의 소굴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호상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크게 떠들지는 않았지만 참지 못하고 울음과 욕설을 터트리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정황이었던 이유로 오렌지와 스킨헤드가 점심시간부터 일손을 돕고 있어도 전혀 고맙지 않았다. 엄마는 육개장과 소주를 입에다 들이붓는 면면들을 황망한 얼굴로 살필 따름이었다.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오빠에게 부채감이 들지 않았다는 것 하나였다.

“어제 같은 거 혁태형이 되게 싫어해요.”

“어제요?”

한가한 틈을 노리고 오렌지가 말을 걸어왔다. 관객이 적은 거요. 그렇게 답하고 오렌지는 새로 찾아온 손님들을 맞으러 움직였다. 조문객 대부분이 오렌지와 스킨헤드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이고 나는 고용된 사람처럼 생각됐다. 사람이 많아지자 내가 편하게 머물 자리가 사라졌다. 오렌지 그리고 스킨헤드와 가까운 곳에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점차 늘었다. 둘은 조문객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쑥덕거렸다. 간혹 그 둘이 인상을 썼는데 주로 예쁜 여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스킨헤드가 혀를 찼다.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는데 주변이 부산스러웠기 때문에 들렸을 리가 없었다. 그녀들이 이곳에 오지 말아야 할 그렇고 그런 이유들을 몇가지 떠올렸다가 흩어버렸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새로운 조문객은 없었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도 드물었다. 어느 틈엔가 바가지와 탬버린이 와 있었고 스킨헤드와 오렌지는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여전히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빈소로 가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울거나 영정사진을 노려보고 있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명상에 빠진 것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엄마 어깨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당장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쓸어 만졌고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잠시 후 내 머리 위로 엄마가 머리를 기대는 게 느껴졌다. 반쯤 잠에 취한 기분이 들었을 때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엄마, 엄마 얘기랑 다르던데. 아빠 때문에 오빠가 엇나간 거라며. 근데 엄마. 오빠는 엄마가 싫대.

“엄마.”

엄마는 답이 없었다. 숨소리로 미루어봐서는 잠든 것일지도 몰랐다.

“오빠 생일이 언제야?”

잠이 든 듯한 숨소리 사이로 엄마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몰라 이년아.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눈이 뜨였다. 빈소 입구에서 오렌지가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오렌지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고 나는 엄마에게서 몸을 뺀 뒤 오렌지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오렌지는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밖에는 예상하던 인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혁태는 볼셰비키의 씨드 비셔스 같은 존재였어요.”

스킨헤드는 주차장 옆 화단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두운 곳이라 안색을 제대로 살필 순 없었지만 취기가 많이 올랐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연주를 더럽게 못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스킨헤드는 숨넘어갈 듯 웃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이었기 때문에 따라 웃을 수도 없었다. 오렌지는 스킨헤드 옆에 앉아 잔을 채웠다. 스킨헤드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별안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 고꾸라졌다. 스킨헤드는 스핑크스 같은 자세로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 게 얼마 없는지 게워내는 내용물이라곤 별 볼 일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구역질 소리 하나는 시원했다. 왜 그들이, 오빠가 저런 소리가 나는 음악을 했는지 조금쯤은 알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토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토악질이 끝난 뒤 스킨헤드는 미처 끝내지 못한 웃음을 마저 터트렸다. 진작 알려줄걸. 스킨헤드는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건데.”

이렇게, 목구멍을, 이렇게 좀 토하지 혁태야.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았다. 오빠의 사인은 질식이었다. 만취한 채 위를 향한 자세로 자다가 토사물이 볼케이노처럼 솟구쳤고 몸을 가눌 수 없던 오빠는 그대로 기도가 막힌 것이었다. 참 기막힌 사인이었다. 오렌지가 잔을 건넸다. 치우라고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스킨헤드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제가 옆에 있었어요. 혁태는 저랑 술을 마신 겁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혁태를 발견한 것도 접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들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따라놓은 소주를 들이켰다. 맥주보다는 먹을 만했다. 우리 셋은 잠자코 술을 들이켰다.

 

 

처음엔 빠리꼬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무슨 뜻인데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혁태도 뭔지는 몰랐을 거예요. 무슨 저항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사족을 못 쓰던 놈이라서. 같이 음악한 게 4년인데 밴드 이름은 걔가 다 지었어요. 그다음에 우리가 만든 그룹이, 어디 보자, 파르티잔이었나 사보타주였나. 개인적으로는 마오쩌둥 때가 최고였습니다. 그때 저 혁태형 완전 팬이었습니다. 연주는 더럽게 못했어도. 오빠는 문신을 왜 그렇게 한 거예요? 장기 말입니까? 뻑 가지 않습니까? ……얘가 기타 실력 하나로 서울예대 실음과를 한 방에 들어갔어요. 띨띨해 보여도 연주력은 쓸 만하죠. 원래 신심으로 음악하는 사람들이 잘합니다 형님. 교회 다니세요? 그렇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CCM 밴드 했습니다. 근데 어제 왜 절했어요? 요즘엔 잘 안 나갑니다. ……근데 맥주보다는 소주가 낫네요. 주종이 소주신가봅니다. 혁태도 그나마 소주는 잘 받았는데. 아, 아, 막걸리만 안 먹었어도. ……오빠가 듣고 싶었다는 노래가 무슨 노래예요? 그 노래 말입니까? 이거 말하자면 깁니다. 핑크 플로이드 곡인데요, 다른 노래처럼 실험적이거나 막 이상하지 않고 서정적입니다. 원래 로저 워터스가 이런 곡 잘 안 만드는데 말입니다. 그 곡을 로저 워터스가 만들었어? 데이비드 길모어가 아니라?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핑크 플로이드가 작업 중인 스튜디오에 밴드에서 방출되고 폐인이 된 씨드 배럿이 찾아왔는데 말입니다. ……오빠 뻗었네. ……이 오빠는 베이스랑 작곡하고 나는 드럼이야. 드럼이요? 언니는 탬버린이잖아요. 챙, 챙. ……오빠는 완전 쪼다 새끼였어요. 혁태오빠가 왜? 그냥요. 쪼다가 쪼다죠 뭐. 에이, 왜 그러십니까. 근데 오빠가 뒤에서 엄마 욕하고 다니고 그랬어요? …… 이제 졸업인데 돌아버리겠어. 언제까지 드럼이나 쥐어패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런 게 어딨습니까 누나. 볼셰비키 결성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만두려고 그럽니까. 그럼 어떡해. 혁태오빠도 없는데. 우리끼리라도 잘하면 되지. 저기요, 근데, 울 오빠가 듣고 싶다던 노래 제목이 아까 뭐라 그랬더라? ……야! 야! 죄송합니다 형님. 아니 근데 저 씨발년이 싸가지 없이 굴잖습니까 어제부터. 야! 야! 야!

 

 

“술 깨고 나면 지도 후회할 거야.”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야외 어느 벤치에 탬버린과 함께 앉아 있었다. 오렌지에게 맞은 왼뺨에 손을 대고 우는 중이었다.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어쩐지 서러워졌다. 아픈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때다 싶어서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술에서 깨도 사과하지 말라고 해요. 나한테 사과하지 말라고 해요.

얼마간 탬버린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탬버린이 일방적으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간혹 그렇죠, 힘들겠네요, 그럼요,라고 답했단 것과 통곡하고 있는 탬버린의 등을 두들기는 장면만 어렴풋했다. 챙, 챙. 그리고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았을 때는 실내를 걷는 중이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얼굴이 기분 나쁘게 달아올랐고 눈앞이 좌우 구분 없이 흔들렸다. 빈소에 들어섰을 때가 돼서야 어른들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왼쪽 볼과 눈가가 부은 채 술냄새를 풍기는 미성년 딸내미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빠가 입관할 때라고 알렸고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관에 봉해지는 고인을 유가족이 지켜봐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빈소를 비우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한 사람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내게 이곳에 남으라고 말했다. 엄마는 삼촌과 이모 그리고 이모부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엄마가 내린 판단이 나를 위한 배려에서 비롯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내 다른 쪽 뺨을 때릴 여력이 없었다.

어른들이 자리를 비우자 장내는 절정에 치달아갔다. 술기운이 오른 로커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가벼운 몸싸움이 일어났고 또다른 자리에서는 덩치 큰 남자 서너명이 쓰러져 울고 있었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앉아 눈을 감았다. 그들은 목청이 좋았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현을 퉁기는 듯한 소리가,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니 그냥 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로커들은 소란을 멈추고 누군가의 연주에 맞춰 입을 모아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락에 관해 쥐뿔도 모르지만 그들의 합창이 엉망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정말 언어이긴 한 건지, 우는지 웃는지도 모를 목소리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입관에 참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 표정도 없을 정혁태씨의 시신에게 작별을 고할 자신이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빈소 안으로 들어온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기억하는지 어떤지를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일곱살 때 이후로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영정 앞에 섰다. 그가 절을 하다가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취했기 때문일까. 기울어진 배 안에서 치러지는 의식을 지켜보는 듯했다. 그가 다가오자 나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는 오른손을 머뭇거리며 움직였다. 악수를 청하려던 모양이었는데 마음을 바꾸고 내게 포옹했다. 술냄새가 났다. 누구에게서 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엄마는? 입관 때문에. 그는 뭘 알았다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깔았다. 볼일 다 봤으면 이제 방에서 나갔으면 싶었지만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머물러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왜 왔느냐는 물음이 튀어나왔다. 그는 대답 없이 빈소를 나섰다. 그리고 경건해진 로커들의 무대를 뚫고 구석자리 한곳을 차지했다. 누군가 술판을 벌인 뒤 치우지도 않은 테이블 앞에 앉아 소주잔을 채웠다. 마른안주를 씹으며 그는 넥타이를 풀어 헤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슬퍼 보였지만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 내게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욕지기가 치밀었다. 난생처음 겪는 역겨움이 목구멍을 지나 입 밖을 넘봤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급하게 빈소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떻게든 삼켜내려고 했지만 결국 고개가 밑으로 꺾였다. 목구멍에서 대단한 것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눈이 감겼고 얼굴에 뜨거운 토사물이 튀는 것을 느꼈다. 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 입에서 뿜어지는 낯선 음성이, 크고 낮게 토악질하는 소리가 로커들의 헌정 공연과 섞여서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것들이 사라졌다. 펌프질하듯 몇차례 헛구역질을 했다. 내용물이 다 떨어진 샴푸통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눈을 뜨자 토사물 무더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떤 것은 흔적도 없이 녹았고 어떤 것은 아까 먹은 덩어리 그대로였다. 그런 것들이 뒤섞인 채로 코앞에 부려져 있었다. 상복 소매로 입가와 머리카락을 닦고 몸을 세웠다. 무심결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짜증이 치밀게 만드는 얼굴을 하고 오빠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킨헤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렇게, 목구멍을, 이렇게 좀. 그러게 내 말이. 잘 좀 토하지 병신아.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건데. 엄마는 빈소를 비워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가서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상복 입은 내 모습을, 볼이 부은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쏟아져 있는 나의 토사물을 보면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