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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의 문학, 이제 어디로
창비를 둘러싼 표절과 문학권력론 성찰
한 내부인의 시각
염종선 廉鍾善
출판편집자. 창비 편집이사. yum@changbi.com
1. 표절 논란과 창비의 대응
표절과 문학권력 논쟁이 시작된 지 두 계절이 흘러가고 있다. 초기의 격렬한 분위기는 어느정도 진정된 가운데 새로운 차원의 논의도 진전되고 있다.1) 다만 제기된 문제에 관한 입장들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더 상세하고 깊이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글은 그런 논의를 위한 기본적인 자료이자 창비 내부에서 이 사건을 겪으며 기록해둘 만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밖에서는 잘 모르는 실상을 알고 있는 대신 내부인 나름의 편향도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창비의 첫 보도자료
지난 6월 16일 이응준(李應準) 작가가 신경숙(申京淑) 작가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후, 해당 내용을 부정한 창비의 첫 보도자료(6.17)는 당시 문학출판부 부서장이 법률자문을 받은 내용을 참고하고 문제의 작품들을 검토하여 작성한 후 대표이사의 승인하에 발표된 것이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지만, 보도자료 발표 전에 그 문안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 편집인 및 편집주간과 편집위원, 그리고 다른 단행본 부문의 간부들은 보지 못했다. 문학 단행본과 관련한 일상적인 업무였다면 통상적인 결재계통을 따라 이루어진 일이므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이런 중요한 일이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발표된 것은 큰 문제였다. 당시 언론사의 취재가 빗발침에 따라 다급한 면도 있었고, 마침 편집주간이 연구년으로 해외에 체류하고 있던 점도 공교로웠지만, 변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담당자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듯이 중요 저자에 대한 출판사의 과잉보호 의지가 작용한 면도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인적 평론이라면 몰라도 의혹에 대응하는 보도자료로서는 부적절한 비평적 언급이 포함된데다, 출판사가 섣불리 판정을 하려 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최초의 잘못된 대응에 대해 다음날 발표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6.18) 중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것이란 바로 이 점을 말한다.1)
사건의 초기 국면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창비라는 ‘백낙청(白樂晴) 일인체제’의 조직에서 어떻게 그런 중요한 입장이 백 편집인의 검토나 재가 없이 발표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그러했다. 이는 오히려 창비가 어느 한 사람의 뜻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창비 내부의 분권화된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게 문제였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선 단행본 편집국의 조직을 개편했고 향후에도 관련 체제를 정비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조직원 일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말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글을 쓰는 필자 본인부터 단행본 편집부문의 핵심간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창비의 편집인부터 편집위원진, 간부진을 비롯한 모든 성원 또한 뼈아프게 자성하고 있다.
그 내용의 적실성은 후에 더 논의하겠지만, ‘문학권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창비로서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그간 조직이 은연중 타성에 젖어들어 대중과 소통하기보다는 먼저 단정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고압적 자세 혹은 상업주의적 경향에 침윤된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작가의 인터뷰와 ‘신경숙 신화론’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신경숙 작가는 경향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2) 작가는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해당 문장들의 결과적 표절을 인정하고 독자에게 사과했으며, 문제의 단편 「전설」을 자신의 작품목록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창비도 그에 따라 해당 작품이 실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고정지하고 시중 서점의 도서를 모두 회수했다.
그런 중에도 작가의 태도가 모호하다며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표절 시비는 ‘문학권력론’과 ‘신경숙 신화론’으로 번졌다. 평론가 정문순은 관련 토론회 발제문 중 한절의 제목을 “신경숙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로 붙이고 신경숙을 상습표절을 저지르는 ‘괴물’로, ‘문학소녀’급 소설가로 묘사한다. “진영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무력해진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되고 소진됐지만 실력이 달리는 신씨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상습적인 표절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3) 그런데 ‘문학소녀급 소설가’니 ‘괴물’이니 하는 말은 비평을 넘어 고발이라고 하기에도 도가 지나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주장과 더불어 신경숙 문학은 신화라는 인식이 인터넷언론을 비롯한 여러 매체로 확산되었다.
물론 비판자들이 모두 신경숙 문학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길영(吳吉泳)은 신경숙 문학이 문단권력에 의해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을 포함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4) 권성우(權晟右)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경숙 문학을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5)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무관하게 표절을 문제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저마다 편차를 보이긴 하지만, 초기의 일반적 분위기는 대개 가장 극단적인 평가에 의해 견인되었다. 신경숙 문학은 문학권력이 만들어놓은 허상에 불과하며 한국문학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언론기사들은 취재와 분석보다는 극단적인 평가들과 즉각적인 대중의 반응을 싣는 데 몰두했다. 이는 이후 소설가 박민규(朴玟奎)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 사건에서도 여전히 감지되는데, 작가의 본의는 물론 실제 발언과도 다르게 언론은 박민규가 “표절 시인”을 했다고 자의적으로 기사화했다.
신경숙 사태의 초기 국면에서 창비는 단답형 양자택일을 요구받았고 다른 어떠한 답변도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동시에 ‘문학권력’으로 낙인 찍혔다. 대표이사 사과문에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실천하지 못한 것도 당시 분위기로는 창비가 나서서는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비가 그런 점까지 허심탄회하게 밝히면서 대중을 설득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찌 됐든 공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잘못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창비의 입장과 반론들
백영서(白永瑞) 편집주간은 『창비』 2015년 가을호 ‘책머리에’에서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외부의 반응은 우선 ‘창비가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라거나 ‘결과가 중요하지 의도성은 중요하지 않다’ 등으로 대개 부정적이었다.
김명인(金明仁)은 “〔창비 머리말의〕 ‘문자적 유사성’은 있으나 베끼기는 아니라는 주장은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강일우 사장 명의의 두번째 발언보다 오히려 퇴보한 입장”6)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창비』 머리말의 정확한 표현은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명인의 글에서는 “의도적”이란 말이 빠지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도 생략되면서 ‘베끼기는 아니다’라는, 즉 창비가 표절 그 자체마저 부인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당시 언론의 논조도 그랬고 많은 대중도 그렇게 생각했다.
백낙청 편집인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신경숙의 해당 대목이 의식적인 베껴쓰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정확한 진실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두어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신경숙의 변호인을 자임한 윤지관씨도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문장들이 미시마 유끼오의 「우국」을 표절한 혐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창비』 가을호, 357면)고 했는데, 그 점마저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은 창비사의 1차 보도자료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고 회사 대표가 곧바로 사과했습니다. 둘째로, 그렇다고 그것이 일부러 베껴쓰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문학관, 창작관에는 원론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더구나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문학에 어쨌든 (항상 좋은 작품만 써낸 건 아니지만)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는 결코 합류할 수 없습니다.”7)
이렇게 창비가 계간지 머리말이나 편집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표절 그 자체를 부정했다는 세간의 평은 사실과 다르다. 그런데도 대개의 비판자들과 언론이 창비의 입장을 ‘유사성은 있으나 표절은 아니다’라고 해석한 것은 창비의 입장에 ‘표절이다’라는 명시적인 진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동네』 2015년 가을호 머리말에는 그런 표현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문학동네는 표절을 인정했고, 창비는 부인했다고 본 것이다.8)
의도성 논쟁에 관하여
작가와 마찬가지로 결과적 표절은 인정하면서도, 창비가 ‘의도성’에 대해 강조한 것은 초기부터 표절의 의도성을 질타하는 입장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에 따라 작가의 작품 전체가 부정되다시피 했으며 그처럼 부도덕하고 부실한 작가를 두둔하는 창비의 부도덕성에 대한 규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 이제 눈을 감고, 내가 말하는 장면을 각자의 머릿속에 그려보자. (…) 신경숙은 자신이 청탁을 받아 쓰고 있는 중인 단편소설 「전설」의 원고에 「우국」의 그 한 부분을 거의 그대로 옮겨 타이핑한다”라는 ‘상상’으로 시작하는 이응준의 고발문부터 그러하지만, 정문순 이명원 등은 신경숙이 매우 의식적이며 고의적으로 표절을 하는 작가라고 단정했다.9) 작가의 (결코 가볍지 않은) 실수나 부주의, 무의식적인 도용 등 여러 가능성이 있는데도10)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베껴쓰기로 단정하여 단죄하는 일은 일방적인 것이고, 창비는 그 점에 대해 반문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해당 작품의 표절 판정을 넘어서 차용과 변용 같은 여러 창작기법까지도 모두 뭉뚱그려 ‘표절’이라고 단정하는 당시의 강력한 인식 프레임이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역으로 창비가 타락한 문학권력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예술창작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억압하는 데 일조했을 수도 있다. 양식있는 비평이라면 작가나 출판사의 태도를 비판하더라도 이런 편향에 대해서는 마땅히 지적했어야 한다고 본다.11)
의도성 논쟁에 관한 또다른 차원의 비판은 우리가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주장과, 드러난 객관적 ‘결과’가 중요하지 작가의 주관적 ‘의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표절과 문학권력론 일반에 관해 비교적 객관적 입장을 가진 장은수의 발언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창비 입장에 대해 타인의 의도성을 알 수 있는 것은 ‘관심법’이라고 비판한다. “저는 창비에서 자신의 주장을 빌미 삼을 때 타인의 의도를 짐작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너희와 달리 타인의 의도(양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충 이런 입장인데, 이는 전형적인 관심법이죠. (…) 그 표절의 의도성을 우리는 알고 너희는 모른다는 시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길영 선생의 말처럼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어떤 문학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게 현대비평의 출발점임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무리수로 보입니다.”12)
장은수의 지적대로 ‘관심법’을 써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오히려 창비는 마치 ‘관심법’을 쓴 듯이 작가가 의도적 베껴쓰기를 했다고 단정하는 이들의 입장에 반대한 것이지, 작가의 의도성이 없음을 ‘관심법’으로 확인한 뒤 표절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장은수의 비판은 창비를 겨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이응준 정문순 이명원 같은 비판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13)
한발 물러서서, 결과를 보았을 때 의도성이 없고서야 그렇게 똑같은 문장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비판을 살펴보더라도, 어떤 바보천치가 의도적으로 다른 문학작품을 그렇게 똑같이 베껴쓰겠느냐는 의문이 가능하다. 비판자들은 신경숙이 「딸기밭」에서도 남의 문장을 대놓고 가져다 쓰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문학작품에 다른 장르인 수기, 생활글, 기타 일차자료를 차용하는 일은 흔했고 그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일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들을 문학작품의 질료나 소재 정도로 여긴 탓일 테다. 지나간 일이라고 이런 행동이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경숙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인, 사과하고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출처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자기 소설을 쓰면서 다른 작가의 소설, 그것도 유명작가의 소설을 문단째로 거의 동일하게 베껴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며,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의식적으로 저지를 동기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베껴썼다는 단정은 지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표절에서는 작가의 의도성 여부가 핵심이 아니고 결과가 중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아마 비판론자 중에서도 일부를 제외한 많은 비평가들과 독자대중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작가와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에는 결과 못지않게 그 의도성이나 작가와 출판사의 태도가 규탄받았고, 논자에 따라서는 최근까지도 ‘윤리문제’가 기본이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여하튼 결과가 중요하다는 입장은 작가의 고의성이 있든 없든, 신경숙 문학 전체가 어떤 평가를 받든지와 무관하게 「전설」의 해당 부분은 표절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이미 작가가 인정했음은 물론이고 창비도 거듭 인정하는 바이다. 이에 대한 창비의 입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한 점은 불가피한 고육책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창비가 ‘표절’이란 용어를 피하면서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하는 데 반대한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신경숙 문학은 물론이요 한국문학 전체가 휩쓸려 들어가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에 대해서만은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만약 당시에 그 문제를 그냥 표절로 인정해버리고 손을 털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수많은 여타 사례들이 손쉽게 표절로 규정되어버렸을 것이다. 신경숙 문학뿐 아니라 한국문학의 다른 많은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서 당시 창비의 그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는 겸허하게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2. 문학권력론과 창비
15년 전의 사건에서 비화한 문학권력론
표절 사태가 문학권력 문제로 비화한 것은 15년 전의 문제제기가 문학권력의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은폐되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당시에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었다면 「전설」에 대한 지금의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권력이 그 문제를 은폐했다는 주장은 석연치 않다. 당시 표절이라는 문제는 비평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고 보는 것이 좀더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정문순은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의 평론에서 신경숙의 「전설」에 「우국」과 “10여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가 있다고 말했지만,14) 2015년의 이응준과 달리 그 대목을 인용하지 않았고 전체 평론에서도 잠깐 언급하고 말았을 뿐이다.15) 그 평론을 읽지 못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읽은 사람조차도 그냥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도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았다. 왜 그들도 이 대목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언론은 왜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은 것을 3대 문학출판사의 권력이 작용한 결과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고 손쉬운 해석이 아닐까.16)
혹자는 당시에는 없었던 SNS의 파급력 때문에 과거에는 묻혔던 문제가 터져나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더해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문제의식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커진 점, 갑을사회라고 불릴 만큼 불평등이 구조화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강력한 반감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도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의 하나로서 문학출판계의 권력문제가 거론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다.
문학권력이란 무엇인가
한겨레 최재봉(崔在鳳) 기자는 “문학권력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국문단을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집단이 있으며 이들이 작품 발표와 책 출간, 작품에 대한 평가, 문학상 운영 등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학권력은 강고한 카르텔을 이룬 채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침묵으로 대응하거나 더 나쁘게는 비판자에게 이런저런 불이익을 선사한다. 신경숙을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조선일보를 3대 문학출판사와 함께 문학권력의 일부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17)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정의라면 한겨레를 비롯해 각종 문학상과 신춘문예를 운영하는 신문사들과 관련 출판사, 그리고 거의 매주 출간작에 대한 선택과 배제, 평가를 하는 문학기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간 공격의 화살은 오로지 3대 문학출판사로 집중되었다.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수개월간 비판자들의 발언이나 언론이 쏟아낸 기사에서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나 성찰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최재봉 기자는 칼럼을 통해 “언론 스스로가 문학권력으로 행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권력의 암묵적 조력자 노릇을 한 적은 없었던가. ‘권력’과 ‘상업’의 눈치를 보느라 언론 본연의 비판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던가”18)라며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 자성은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과연 언론들이 ‘비판 기능’을 저버린 정도의 책임만 가지고 있을까. 2000년 정문순의 「전설」에 대한 문제제기가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음은 앞서도 말했지만, 신경숙의 표절을 은폐하고 방조한 것은 오로지 3대 출판사이고 언론은 그들 출판사 때문에 눈뜬 장님에 불과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3대 출판사의 유체이탈 화법을 비난하는 기사는 많았지만, 정작 정문순도 제기한 언론의 책임에 대해서 왜 대개의 언론은 그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았을까.
출판사와 언론사 중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쉽게 규정해버린 ‘문학권력’이란 말이 만악의 근원이 될 만큼 실체가 분명하고 객관적이냐는 것이다. 소설가 장강명(張康明)은 ‘문단권력’이란 말은 중립적이지도 않고 한계도 명확한 용어라며, “현재 한국문학계의 실패는 구체적인 출판사, 평론가, 어떤 제도와 절차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넓고 내면화된 어떤 질서의 문제”19)라고 말한다. 이번 사태의 주요한 비판자인 『실천문학』 편집위원 서영인(徐榮裀)도 “‘문학권력’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 행위자의 주체성만이 은연중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상징권력을 만들어내는 문학장의 구조, 그리고 거기에서 통용되는 하비투스(habitus)에 대한 분석, 무엇보다 시스템 전체에 연루되어 게임에 참여하는 능동적/수동적 행위자 전체를 함께 바라보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학권력’이라는 용어는 필요한 논의의 여러 국면을 생략할 우려가 있다”20)라고 말한다. 문제를 좀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한국 비평의 병폐
한겨레의 사설에서는 “분명히 나쁜 작품인데도 좋은 작품인 것처럼 포장한다면 그것은 비평의 이름으로 독자를 속이는 것이다. 쓴소리는 빼놓고 좋은 말만 늘어놓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도 비평이라 부를 수 없다. (…) 3대 문예지가 이런 식으로 자기 매체에 싣는 작품 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 결국 독자로 하여금 문학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21)라고 ‘문학권력’을 비판했다.
이것은 크게 보아 한국 비평계에 만연된 병폐에 가깝고, 창비 나름으로 늘상 비판해온 바이기도 하다. 최원식(崔元植)은 “비평의 핵은 뭐라고 해도 비판이다. 젊은 비평에 두드러지듯이 작가에 대해 자소(自小)하는, 비판이 실종된 평론이 범람한다. 평론가가 작가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책 읽은 자랑이나 늘어놓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요령부득의 글쓰기를 능사로 삼는다면 이 또한 자소와 짝한 자대(自大)”22)라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된 ‘젊은 비평’에서 비판이 왜소화되는 것은 최근 대학에서의 연구와 평가방식, 글쓰기 풍토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외의 비평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비평적 엄밀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무엇 때문일까.
황현산(黃鉉産)은 일간지 인터뷰에서 문단권력 문제에 대해 “‘권력’이니 ‘담합’이니보다는 한국사회 특유의 ‘안면’과 ‘관계’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23) 몇년 전의 글이지만, 한국문학의 번역에 앞장서고 있는 안선재(安善財) 수사도 같은 맥락의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면에서는 한국 작가들이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효과적인 대화가 성숙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서 혜택을 보지 못하는 탓도 있다. 서평 형식으로 (때로는 맹렬하게) 표현되는 문학비평은 국제적인 문학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모든 작가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자기에게 너그러운 것이다. 사려 깊고 도전적인 비평 없이 어떤 작가가 기량을 연마하고 약점을 고치고 성숙한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 있겠는가? ‘체면’과 ‘명성’이 핵심 고려사항인 한국 같은 문화에서 정직한 비평은 자주 거부된다. 이건 큰일이다.”24)
비평이 아니라 해설에 치우치고 마는 평론, 작품의 진면목은 안 보이고 이론만 난무하는 평론, 쓴소리를 피하고 좋은 말로 얼버무리는 평론에 어떤 ‘권력’적 동기가 전혀 없으리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본질인지는 더 깊이 캐볼 일이다.
문학권력의 기제: 공모전과 문예지, 편집위원
문학권력의 작동방식으로는 대형 출판사들이 주관하는 공모전과 문예지 등이 거론된다. 가을호 계간지들에서 공모전에 대해 가장 급진적인 비판을 하는 이는 소설가 손아람이다. 특히 과거의 ‘추천제가 세습제도였다면, 지금의 공모전은 계급제도’라는 비판은 신랄하다. 공모전을 통과하지 못한 작가는 작가로 대접받지 못하고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공모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는 소수이고, 이 때문에 문학판은 소수의 대형 출판사가 장악하여 이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모전이 문학시장의 공정성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주장이다.25)
공모전은 하나의 문학적 경쟁체제일 뿐이다. 공모전 제도가 없다면 작가들이 일반투고를 통해서 더 많이 책을 낼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현 상황은 대형 출판사의 공모전이 화제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당선작이 나온다고 그 때문에 다른 우수한 작품들이 사장되거나 독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와 문예지가 엉터리 당선작을 대대적으로 밀어준다고 독자들에게 먹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모전이 문제라면 손아람이 지적한 대형 출판사뿐 아니라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제 성격의 문학상도 문제일 텐데, 이 역시 당선작에 대한 비평적 후광과 광고가 따라붙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엉터리 작품을 엉터리 비평으로 상찬해서 독자를 속이는 행위는 성공할 수 없다.
문예지와 편집위원제에 대해 말하자면, 평론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문예지를 만들고 단행본 문학출판에도 관여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예지는 대개 그 자체만으로는 적자 구조이므로 단행본 출판과 분리되면 지속가능성을 갖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만약 문예지와 단행본 출판을 조직적·재정적으로 엄격히 분리한다면 문예지가 살아남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문예지와 단행본 출판이 한몸 같은 자기동일성의 운영원리로 작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문학 3사의 문예지와 단행본 출간구조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창비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창비는 문예지 기획·편집과 단행본 출간이 각기 다른 구조로 이루어진다. 계간지 『창비』는 편집인, 편집주간을 비롯한 편집위원들의 ‘계간지 편집회의’와 계간지출판 실무팀을 통해 기획과 청탁, 편집이 진행된다. 이에 비해 단행본 출간은 편집주간(단행본과 계간지 업무를 겸하는 유일한 직책)과 대표이사, 각 출판국 국장과 부서장들, 즉 내부 에디터들이 진행하는 ‘단행본 편집회의’에서 결정된다. 여기에 문학단행본 부문에는 각종 투고작을 검토하여 채택 또는 반려 의견을 제시하는 시소위원회와 소설소위원회가 있다. 이들 소위원회에서 추천된 작품들이 앞의 단행본 편집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는 것이다. 소위원회 위원과 계간지 편집위원이 중복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소위원회는 계간지 편집회의와 독립적인 별도의 기구이며 위원들은 임기제로 활동한다. 계간지와 단행본의 책임주체가 다르므로 한 기구에서 다른 기구로 의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는 구조이다.
창비의 편집위원진
계간 『창비』 편집위원회와 관련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문학편집위원들이 특정 대학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많은 유력한 문예지들에서 그런 현상이 있다보니 나옴직한 오해다. 그러나 해외에서 공부한 백낙청 편집인 외의 『창비』 편집위원 중 문학전공자 9인은 수도권 소재 6개 대학 출신으로 출신대학별 편중도가 매우 낮으며, 그들이 교수나 강사로 교편을 잡고 있는 곳도 수도권과 지방 7~8개 대학으로 전국에 골고루 산재해 있다. 『창비』 편집위원은 상임과 비상임직으로 나뉘며 임기제를 통해 상임과 비상임의 임무교대가 이루어진다.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더불어 계간지의 기획과 평가작업을 수행하되, 전자가 좀더 집중적으로 편집업무를 담당하는 체제이다.
『창비』의 문학분야 편집위원들은 창비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의 심사 외에 언론사나 제3의 기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과 신춘문예, 문학기금의 심사에는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26) 그리고 그밖의 사회문화적 기관의 위원직으로 참여하는 정도도 낮은 편이다. 일반의 통념과는 다르게, 『창비』 편집위원진은 문단에서 영향력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사회의 언론·문화계에서는 여전히 주류가 아니다. 세칭 명문대 국문과나 문창과와의 연계도 취약한 편이다. 그러니 어떤 카르텔을 형성해서 지분 나눠먹기를 하거나 담합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창비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문학권력론이 제기되면서 언론기사와 기고문 등을 통해 창비의 소유구조가 공개되고, 그에 관한 비판도 잇따랐다. 정문순은 “지면을 통해 틈만 나면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 경제체제를 모색하자던 창비가 실은 백낙청과 그의 가족인 대주주의 사적 소유물이나 다름없는 ‘주식회사 창비’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 뜨고 기만당했던 현실이다”27)라고 말한다.
창비의 지분구조는 백낙청 31.07%, 김윤수 18.8%, 한지현 7.8%, 고세현 7.1%, 염홍경(염무웅) 5% 등으로 되어 있다. 백낙청이 1대 주주이지만 친족의 지분을 합쳐도 50%에 훨씬 미달하거니와, 창비가 ‘주식회사’라는 점과 백낙청이 대주주라는 점 때문에 창비가 ‘사적 소유물’이고 또 대중이 ‘기만당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창비가 입으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화신으로서 위선을 저질렀다는 얘기인데, 창비는 손쉽게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낭만적 이론들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었을뿐더러, 한국의 현실에서 출판기업이 주식회사이면 안된다거나 대주주라는 존재가 있으면 안된다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비판자의 말대로라면 대주주가 없는 주식회사이거나 주식회사가 아닌 조합 형태 말고는 모두 문제가 있는 구조가 된다. 그러나 진보와 사회정의를 표방하는 단체들로 한정해보더라도 소유구조 그 자체가 조직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현실에서 익히 보아왔다. 기업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창비의 공공성이 약화되었다는 구체적인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비판이 근본주의에 경도된 것이라면 생산적인 논의가 되기 어렵다. 공공성을 담보하고 강화해나가는 과제는 계속 추진될 것이다.
창비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주주의 ‘오너 경영’을 해오지 않았다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창비는 창간 초기와 백낙청이 해직교수이던 시절을 빼고는 불안정한 집단경영체제로 유지되다가 1999년부터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그 최초의 경영자가 고세현(高世鉉) 사장으로, 그는 창비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 후임이 2012년 취임한 현 강일우(姜日宇) 사장인데, 그 역시 편집국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간부직을 지내고 영업부문 책임자를 거쳐 대표이사가 된 경우다. 한국의 많은 기업처럼 출판계에서도 창업자의 2세가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만, 창비는 그와는 다른 경로를 밟아왔다.
창비는 이번 사태에서 문학동네가 대표와 제1기 편집위원 사퇴라는 조치를 취한 것과 비교되면서 인적 쇄신에 대해 아무런 책임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아왔다. 창비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지만, 내년(2016년) 계간 『창비』 창간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올해 말에 백낙청 편집인의 퇴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2015년 5월)을 통해서였지만, 창비 내부적으로는 이미 2014년에 공식회의에서 발표되었고, 2015년 초에 ‘50주년 준비팀’을 꾸려서 후속대책 논의를 본격화했다. 자체적으로 편집인과 편집주간을 포함해 인적 쇄신과 개편 준비를 진행하는 도중에 표절사태가 불거졌고 외부에서는 창비의 책임있는 인사들의 퇴진을 압박하는 요구가 일었다. 좀더 시간을 갖고 쇄신의 노력을 지켜봐달라는 뜻을 밝혔지만 많은 비판자들과 언론은 즉각적인 조치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노력과 결과일 것이다.
창비의 상업주의 비판에 대하여
3대 문학권력 중에서도 문학과지성사는 매출 규모상 상업주의라는 비판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였고 문학동네와 창비가 주요 비판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학동네는 원래 출발부터가 ‘상업적’이었으므로 논외로 하고 창비의 상업화가 가장 큰 문제라는 시각들이 적지 않았다.28)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창비는 1990년대 이후 대형 베스트셀러의 출간 같은 몇차례의 계기를 통해 상업적으로도 성과를 거두며 외형이 커졌고, 또 그 과정에서 상업주의적인 모습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비가 상업주의에 투항하여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 상업주의라고 한다면 장사를 잘하거나 열심히 한다는 것을 넘어서 자기 활동의 대부분을 상업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물질적 성공을 최상의 가치로 둔다는 것일 테다.
무엇보다 상업주의라는 혐의를 받는 것은 창비의 문학출판에 관해서일 듯하다.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문학권력’ 논쟁에서도 창비는 은희경 장편 『마이너리그』를 출간하고 홍보했다는 이유로 정체성의 상실과 상업주의라는 공격을 받았다. 작가가 축적해온 문학적 성취를 생각할 때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진영논리였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믿었다. 오길영은 최근의 사태에 대해 “창비에 대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실망감은 물적 기반과 ‘상업주의’ 사이의 줄타기에서 창비가 후자로 기울었다는 의심에서 나온다. 신씨에 대한 창비의 이해할 수 없는 옹호도 그로부터 나온다”29)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일까.
그 자신 창비에 몸담은 바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 창비에 고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시영(李時英) 시인은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창비의 ‘상업주의’를 비판하지만 나는 창비가 문학과지성사보다는 낫지만 왕년의 김영사나 민음사만큼 ‘영리 추구’에 능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 말리는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판기업에게 ‘상업’을 포기하라는 일부 논객의 주장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다. 조앤 롤링이나 하루끼를 수입하기 위해 몇십억을 갖다바치는 것은 상업주의지만, 우리의 ‘좋은 문학작품’을 생산하여 이를 널리 팔아 다수 독자와 기쁨을 향유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30)라고 말한다.
작가 띄워주기와 주례사 비평
창비가 비평의 공정성을 저버리고 작가 띄워주기나 주례사 비평을 통해 상업주의에 투항했다는 생각은 얼마나 진실일까.
창비가 신경숙의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간의 계간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좋은 작가라도 좋은 작품이 있고 좋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창비는 신경숙의 일부 작품에 대해서 고평해왔다. 『풍금이 있던 자리』나 「모여 있는 불빛」 『외딴방』은 고평하고 『엄마를 부탁해』도 일부 비판하면서도 고평한 편이지만, 『깊은 슬픔』 『리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같은 작품에는 후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계간지에 실리는 기고자들의 평론이나 서평이 모두 편집위원진의 문학적 평가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공지영의 『도가니』,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성석제의 『투명인간』,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최근 수년간의 예를 보더라도 모두 창비에서 출간된 작품들이고 판매도 성공적이었지만, 작품에 따라 문학적 평가는 칭찬 일색이 아니다. 창비 비평의 문제라면 엉터리 작품을 과도하게 상찬한 것이라기보다는 거칠게 말해서 창비의 담론에 잘 부합하는 몇몇 작가들에 비평적 조명이 편중된 점일지도 모른다. 주례사 비평이라기보다는 담론중심적 비평이 문제라면 문제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평적 잣대가 너무 강해서 다양한 작가들을 더 많이 조명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듣는 게 현실이다. 상업주의 혐의를 받은 지난 20년의 기간에서 계간지에 매호 작가를 선정하여 집중 조명하는 ‘작가조명’ 코너가 생겨난 것이 겨우 2011년의 일이다. 게다가 거기서 다룬 작가들에 대해 주례사 비평을 한 것도 아니다. 상업성과 무관하게 창비가 매우 중시하고 계속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창비가 정말 상업주의에 투항하고 돈에 눈이 어두웠다면, 이번 사태에서도 재빨리 ‘꼬리 자르기’를 하고 다른 행보를 취했을 것이다. 그것이 기회비용을 줄이고 브랜드 가치의 손상을 막는 경제적인 행동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권력 관련 연구논문에 대하여
최근 카이스트의 한 연구진은 「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일부 일간지에서 이에 관해 보도한 바 있다.31)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1년간 소설을 대상으로 3대 문예지와 출간물을 분석했더니 “연구자들은 ‘자사를 통해 등단한 작가를 편애하고 밀어준다는 주장은 『창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는 상대적으로 자사가 발굴한 작가들을 최대한 소개하고 홍보했다’고 결론내렸다. 물론 이것이 역량 미달의 작가를 ‘부당하게’ 조명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한국일보)라고 한다.
3대 출판사에 관한 내용이 섞여 있어서 일괄적으로 말하기 곤란하지만, 창비에 국한한다면 자사 출신 작가라고 편파적으로 밀어준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논문은 “3대 계간지 중복 ‘주도작가’ 총 26명”32)의 명단을 밝히고 이들이 3대 계간지에 작품을 게재하거나 비평적으로 언급되고 단행본 출판을 한 현황을 적고 있는데, 문예지들에서 당대의 주요 작가들에 발표지면을 주고 비평적으로 언급한 것이 왜 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상업적 동기에서 엉터리 작품들을 밀어주었다면 문제이겠지만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양적인 분석방법의 한계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3대 계간지 모두에 중복된 주도작가가 26명이나 된다는 것은 그만큼 소설 분야만큼은 3대 계간지가 획일화되었음을 의미한다”33)라는 단언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지난 21년간 얼마만큼의 모집단 수 중에서 26명 정도면 ‘획일화’를 확정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인가.34)
단행본 출판과 관련해서도 창비가 그 기간에 출간한 소설집과 장편소설의 작가 수는 102명인데, 앞의 “3대 계간지 중복 ‘주도작가’ 총 26명”을 빼면 76명의 다른 작가들 책을 낸 셈이다.35) 출간 시집이나 평론집까지 계산해본다면 결과는 더욱 확연해질 것이다. 이 정도면 창비가 정체성을 상실하고 다른 ‘진영’에 투항했다는 세간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또한 “연구진은 3대 계간지의 ‘작가 공유’에 관해 분석하며 ‘1994년 이후 3대 계간지와 출판사에서 게재·호명·출간된 작가와 작품의 성격이 상당히 획일화되었으며, 따라서 각 계간지의 고유한 색깔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경향신문)라고 한다. 그런데 예컨대 창비와 문지가 지향하는 바는 70~80년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히 다르며 주목하는 작가들의 편차도 크다. 연구에서도 창비와 문지 사이의 상관관계는 매우 낮다고 밝혀져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창비와 문지의 중간지점 쯤에 문학동네가 위치함으로써, 창비-문학동네가 공유하고 문학동네-문지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한데,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싸잡아서 3대 계간지의 “고유한 색깔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만약 이 연구를 『현대문학』 『문학사상』 『자음과 모음』 『세계의 문학』 『21세기문학』 『문예중앙』 등의 문예지를 대상으로 했다면 비평적으로 언급되거나 작품이 게재된 작가의 빈도가 과연 얼마나 다르게 나왔을까. 문학권력론이 이른바 메이저 출판사가 가진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라면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판은 좀더 정확하고 설득력있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창비와 문학권력
창비는 강제 폐간에 따른 8년의 공백기까지 포함한다면 50년간 문예지를 발행해왔고 1974년 이래 많은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한국문단에서 일정한 영향력도 갖게 되었다. 문학상도 운영하며 공모전도 시행한다. 투고작에 대한 선별을 하고 원고청탁권과 편집권도 행사하고 있다. 다만 계간 『창비』는 ‘종합지성지를 겸하는 문학지’이기 때문에 원고를 실을 수 있는 작가는 1년에 시인 소설가 합쳐서 60명 남짓이다. 그런데 작가단체에 등록되어 있는 시인 소설가만 해도 수천명에 달한다. 원로, 중견, 신진작가를 안배하여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만에 한번 청탁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선택과 배제는 운명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그런 면도 있다.
『창비』는 한국의 계간 문예지 중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가 있고, 문학적·사회적 발언권도 제법 가지고 있다. 출판을 통해 일정한 물적 기반도 쌓았다. 그런 의미라면 창비는 문학권력이 틀림없다. 부패한 권력은 해체되어야 하지만, 모든 권력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제대로 사용하느냐일 것이다. 창비가 문학장에서 가진 권력은 그간 사회적 요구를 읽어내며 나름대로 옳다고 믿는 방향을 제시해오고 그것에 독자들이 호응하여 이루어진 결과인데, 그 힘을 2000년대 이후 특히 한국문학에서 비평적으로 제대로 행사해왔는지, 그리하여 그만큼의 결실을 맺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창비의 문학적 입장이 종래의 진영논리는 벗어난 것이되 그 독자성에 대한 탐구와 전파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시영은 “지령 600호가 넘는 『현대문학』이 그 영원할 것 같던 ‘문단권력’을 유지한 것은 불과 55년부터 65년까지에 불과했다. ‘창비’ ‘문지’ 등 4·19세대의 전면적 등장으로 그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쇠락해갔다”36)고 권력의 역사성에 대해 적었다. 창비는 반공보수 일색의 척박한 한국문단 지형을 바꾸어놓았고 군사독재의 억압적 통치를 거슬러 90년대에 진입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거쳐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맞으며 분단 한반도의 변혁을 위한 지적인 작업에 임해왔다. 그러나 역사의 격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화적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권력이라면 더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창비가 안고 있는 성찰의 과제는 크고 엄중하다.
50년 역사의 창비는 지금 과거와는 또다른 모습을 지닌 파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 몇개월간 애정을 가지고 창비를 지켜본 많은 분들이 깊이 상심하고 실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쓰디쓴 비판의 말과 안타까운 마음을 깊이 새기며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함께 겪어온 이 어려운 시기는 창비뿐 아니라 한국문학에 있어서도 값있는 고난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것이 구구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떠올리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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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예지 2015년 가을호에서 논의가 있은 후 최근 주목할 글은 황정아 「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본질이라면」(창비주간논평 2015.10.7), 김종엽 「표절과 자비의 원칙」(한겨레 2015.10.8), 최재봉 「표절에 관한 이해와 오해」(한겨레 2015.10.9) 등이 있다.
2) 「신경숙 인터뷰: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 경향신문 2015.6.23.
3) 정문순 「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을 깔아주었나」, 문화연대 외 주최 <신경숙 표절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2015.7.15) 자료집 6면.
4) “저는 앞으로의 논의는 신씨(더불어 90년대 이후 문학 전체)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엄정한 재평가작업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이 그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씨가 문단권력에 의해 ‘과대평가’된 전형적인 예라고 봅니다.”(오길영의 답글, 김남일 페이스북 2015.9.2) 페이스북은 사적인 발언의 공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번 국면에서는 각종 언론매체에서 주요하게 인용되면서 공론장의 기능을 했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도 페이스북의 발언을 다수 인용한다.
5) “페북에서 저는 ‘이 글로 신경숙 작가의 수작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당연히 표절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6월 16일 신경숙 사태 첫날의 댓글에서 적었지요. 다른 댓글에도 언급했지만 신경숙의 『외딴방』은 뛰어난 작품이며 참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배드민턴 치는 여자들」을 비롯한 몇몇 단편 역시 문학적 가치가 높은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엄마를 부탁해』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억할 만한 대중소설이라고 봅니다.”(권성우 페이스북 2015.9.2)
6) 김명인 페이스북 2015.8.25. ‘문자적 유사성’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창비가 해괴한 신조어를 만들어서 표절을 비호한다고 비판했다. ‘문자적 유사성’은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를 다룰 때 사용하는 법률용어인 ‘문언적 유사성’ ‘비문언적 유사성’ 같은 말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 쓴 것이지 사태를 호도하기 위해 새로 창조해낸 말은 아니다. 글로 나타난 표현이 유사하면 ‘문언적 유사성’이고, 글이 아니라 다른 표현양식상의 유사관계가 있으면 ‘비문언적 유사성’으로 볼 수 있다. 「전설」의 해당 문장들은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문자적 유사성’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를 면밀히 분석해서 표절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나 지금이나 문학작품에서 합의된 표절의 기준이 없었던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지만, 상식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그 ‘문자적 유사성’의 정도는 표절로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7) 백낙청 페이스북 2015.8.31.
8) 표절에 관해서 창비와 문학동네의 입장이 별 차이 없다고 한 언론기사는 국민일보 김남중 칼럼 「창비 생각」(2015.9.4)이 거의 유일한 듯하다. 이 칼럼은 사태의 후속조치에 대한 창비의 태도를 문제 삼지만, 표절에 관해서는 비교적 정확히 보고 있다.
9) 이응준,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허핑턴포스트 2015.6.16); 정문순, “표절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고요,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표절을 했다는 식의 자기변명이나 두둔도 저는 굉장히 불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고요. 이번에 문제가 된 신씨 표절건 「전설」이라는 단편소설은 일본 작가의 「우국」이라는 소설을 그냥 대놓고 베낀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에 대해서 못 믿겠다는 생각입니다.”(YTN 인터뷰, 2015.6.27); 이명원, “한두 문장이 아니라 거의 한 문단 전체를 직접인용에 가깝게 약간 변용한 후 표절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의식적인 표절’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토론회 발표문, 2015.6.23)
10)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도 글 쓰는 사람들이 어떤 문장을 메모해놓았다가 나중에 그것이 다른 데서 따온 글인지 모르고 자기 글로 착각하는 일은 흔한 경험이다. 이번 표절 사태에 매우 비판적인 작가 김곰치는 이런 경험을 밝힌 바 있다. “책의 어느 여백에 아래와 같은 글귀가 있었다. 내 글씨로 된 글이다. 내가 쓴 것인가, 어디서 옮긴 것인가. 출처가 나와 있지 않았다. 내 글 같았다. (…) 하여튼 사진으로 찍어 냉큼 자랑하려다 (…) 검색어를 넣어 검색을 했다. 메모는 노신의 어느 글에서 옛날의 대학생 내가 발췌한 것이었다. ‘휴, 큰일 날 뻔했군.’”(김곰치 페이스북 2015.10.16)
11)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최재봉 칼럼 「표절에 관한 이해와 오해」는 늦은 감은 있지만 적절한 글이다.
12) 장은수 페이스북 2015.8.29.
13) 어떤 논자는 창비가 문제의 초점을 흐리거나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 표절인지 아닌지로 문제를 치환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을 고발할 때 많건 적건 작가의 의도성에 비판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진 면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표절 문제는 이내 심리적 의도보다는 텍스트 수준의 표절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김진석 「창비스러움에 대하여」, 허핑턴포스트 2015.10.26) 그런데 평론가 윤지관 말고 어떤 비판자도 그런 ‘고발의 윤리’를 지적한 바 없다(윤지관 「문학에서 표절이란 무엇인가」 다산포럼 2015.7.14; 「문학의 법정과 비판의 윤리」, 『창작과비평』 2015년 가을호; 「신경숙 표절 논란의 오해와 진실」 다산포럼 2015.9.8 등 참조). 신경숙 문학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름을 드러낸 비판자들은 있지만, 의도성의 단정에 대해 지적한 비판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초점’은 이동한 것이 아니라 겹쳐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14) 정문순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신경숙의 「딸기밭」」,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
15) 정문순은 “신경숙 표절을 거론한 글을 처음 발표할 당시에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신혼부부의 성(性)을 표절의 증거물로 차마 내밀 수 없었다”고 한다. 「환멸에서 몰락까지, 나는 시대의 증언자가 돼야 하나」, 『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 144면.
16) 이런 생각은 『문학과사회』 2015년 가을호 좌담에서도 발견된다. 김영찬, “신경숙의 표절문제가 그동안 묻혀왔던 것은 항간에서 표절을 의도적으로 눈감아주거나 묵인하는 어떤 문학권력의 침묵의 카르텔과 비호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 그게 어떤 권력의 ‘의도’ 때문이라고 보는 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그게 집중적인 비평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분위기도 있었다”(396~97면). 소영현, “1990년대에 표절 논의가 과연 비평계 내부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덮였던 것인가. 문학권력들이 그 부분을 억지로 잠재운 것인가 묻고 싶다. 당시에 비평가들에게 그 문제가 심각한 충격으로 와 닿지 않았고, 이제 장의 변화에 따라 문제제기가 필요한 범주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401면)
17) 최재봉 「3대 출판사 강고한 카르텔…한국문학의 ‘검은 그림자’」, 한겨레 2015.6.22. 이번 국면에서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3대 문학출판사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였지만, 해외문학까지도 포함한 문학출판사로서의 판권 경쟁이나 자본력, 역대 간행 실적으로는 민음사도 빼놓기 어렵다.
18) 최재봉 「문학기자가 쓰는 반성문」, 한겨레 2015.8.17.
19) 「좌담: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 『문학동네』 2015년 가을호 73면.
20) 서영인 「한국문학의 독점구조와 대중적 소통감각의 상실」, 『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 154~55면.
21) 한겨레 사설 「‘신경숙 파문’을 넘어 문학 풍토의 쇄신을 바란다」 2015.9.2.
22) 최원식 「우리 시대 비평의 몫?」, 『문학동네』 2015 가을호 52면.
23) 최재봉 「3대 출판사 강고한 카르텔…한국문학의 ‘검은 그림자’」, 한겨레 2015.6.22.
24) 안선재 「외국독자들은 한국문학을 어떻게 읽을까」, 창비주간논평 2007.5.14.
25) 『문학동네』 2015년 가을호, 앞의 좌담 74, 91면.
26) 문학권력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일간지 신춘문예와 각종 문학상 심사진의 인적 구성을 포함한 실증적인 연구가 필수적일 것이다. 참고로 2015년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시·소설 본심 심사자들 중에서 이른바 3대 문예지 편집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27) 정문순 「환멸에서 몰락까지, 나는 시대의 증언자가 돼야 하나」, 『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 149면.
28) 『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 문학기자 좌담 「문단 외부에서 본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논쟁」 중 권영미 기자의 발언(110면)과 김명인의 페이스북 발언 등 다수 비판자들의 입장이다.
29) 오길영 페이스북 2015.8.25.
30) 이시영 페이스북 2015.9.1.
31)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전봉관·이원재·김병준 「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 한국현대소설학회 학술대회 <해방 70년, 한국 현대소설> 발표자료(2015.10.31). 이 논문은 최초의 정량적·통계적 분석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연구자들 스스로 밝혔듯이 연구대상이 소설가에 한정되고 비평가들은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에 더해 작가의 양대 축의 하나인 시인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점, 양적인 분석 못지않게 중요한 질적인 분석이 없었던 것은 다른 연구의 보완을 요한다. 이 논문을 다룬 언론기사는 「‘문동 작가?’ 숫자로 확인된 문학권력의 실체」, 한국일보 2015.10.28; 「통계로 본 ‘문학권력’ 논문, “문예지 ‘정실주의’는 향우회와 같아”」, 경향신문 2015.10.28.
32) 앞의 논문 19면.
33) 같은 글 8면.
34) 논문에서는 이 기간 중 3대 문예지에 작품을 ‘게재’하거나 비평, 서평, 인터뷰 등을 통해 ‘호명’된 소설가를 ‘인정작가’로 부르며 그 수를 403명으로 집계하고, 3대 문예지에 ‘게재’ 및 ‘호명’되고 3대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를 ‘주도작가’라고 부르며 그 수를 171명으로 집계했다(6면, 28면). 그런데 논문에 제시된 것 외에도 수많은 모집단을 상정할 수 있으며 26명이란 수가 문예지의 획일화를 증명해줄 만큼 많은지는 그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35) 이 가운데 창비에서 책을 내고 문학동네 혹은 문지 어느 한곳에서라도 중복해서 책을 낸 작가 24명을 제외해도 52명의 작가가 남는다. 이 수도 적지 않거니와, 과연 다른 곳에서는 책을 내지 않고 한 출판사에서만 출간하는 작가가 몇명이냐를 따져 그것을 작가나 출판사의 ‘정체성’의 척도로 여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36) 이시영 페이스북 201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