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本籍)

혼자 느끼는 이것을

내 본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넌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너의 본적으로 가서 찾을 수 있니?)

전입신고할 때마다

한번 찾아가보고 싶던 본적처럼

어젯밤 몰래 다녀온 문장처럼

본적은 테두리가 사라진

내 입술 속에 서식한다

(나는 언제나 내 말 속에서 태어난 본적을 살해하고 싶다)

어느날 아무도 몰래

자신의 본적을 다녀온 사람은

그 문장을 다시는 찾아가지 않는다

(이미 당신은 몰래 내 본적을 외우고 있을지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내 문장

아직까지 본적을 모르고 있는 너의 문장

(당신들의 뜬 눈이 여기에 서식하고 있어)

내가 느끼는 이 본적이 사라지도록

나는 무구한 필흔(筆痕)을 남길 것이다

(혹시 누군가 자기 본적을 내 것과 바꾸어 살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대의 본적을 모르니

아직 그대를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대의 본적을 몰래 다녀왔으니

아직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본적을 따라 여기까지 흘러온 얼굴을 어떤 말이라 부르기에 민망하다)

혼자 사는 본적을 본 적이 없으니

네 본적만으로 살아갈 날이 너에게도 없으리라는 거

그게 자꾸 사랑으로 보인다는 거

(나는 늘 그곳이 내 좆보다 차갑다)

쓰러지신 뒤 자신의 본적을 더이상 기억하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고

구청에 와서 수화기 너머로 자꾸 본적을 불러달라고 짜증을 내는 나는

본적을 자꾸 이상한 곳으로 불러주시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신고는 해야 한다

나는 그 아이를 아직 본 적이 없으나

미운 오리새끼 말고, 오리털

오리털 날린다 오리털 파카

밤에 몰래 집안의 이불을 모두 내다버려본 적 있다

나무의자 위에 빨간 오리털

매 맞고 삼켜본 책받침 조각

딸꾹질이 된다

내 피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보일까요?

저수지 수문(水門)을 닫으려는 어른의 손가락을 잡고 묻는 아이

돌덩이를 발등에 올려놓고 선까지 뛰어가는 놀이

네가 진다면……

벌칙은 네 손목을 끌고 가도록 해줄게

아무도 모르게 내 성대모사를 해줄래?

누군가 우리집을 처음 찾아왔을 때

네 집은 엄청 큰 바위 같구나……

우리집은 개미들이 엄청 많아

모두 검고 가는 허리를 가졌지

찰랑찰랑 숲속의 오리털

댐의 깨진 금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 사람

바위에 벗어놓은 오리털 파카

고등학교 때까지 몰래 주워 입었지

대신 평생 그 사람 성대모사를 해주었어

‘저녁을 잃을 뻔했다!’

딸꾹질처럼 수면에 떠오른 사내

삐져나온 오리털처럼

떠가는 미운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