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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마르쉐와 동네 서점

 

 

김유경 金裕景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편집자 nightwhale@changbi.com

 

 

문화평-김유경_fmt일요일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갔다. 언젠가 들은 ‘마르쉐’(marché, 장터라는 뜻의 프랑스어. 표기법상으로는 ‘마르셰’가 옳음)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마르쉐는 ‘도시형 농부시장’을 콘셉트로 한 직거래 장터로,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이라든지 손수 만든 잼이나 빵 같은 식료품, 향초나 앞치마 같은 수공예품을 한달에 두번 대학로나 명동 같은 서울의 인구밀집지역에서 판매한다. 종류만 놓고 보면 평범한 물건들이다. 비슷하게 친환경적이면서 더 맛있거나 더 싼 것을 어딘가에서 더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과 차비를 들여 구태여 이곳을 찾는다. 물건의 품질과 서비스가 온갖 좋은 것에 길들여진 소비자를 만족시킬 만큼 뛰어나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곳에서 팔린다는 사실 자체가 물건 하나하나를 조금씩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오이와 청귤, 바질페스토 한병을 손에 들었다.

마르쉐의 ‘특별함’은 수요자보다 공급자,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욕구가 한발 먼저라는 데서 비롯하는 듯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저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브랜드명을 내걸고, 적게는 한두가지, 많아도 보통 다섯가지가 넘지 않는 가장 자신있는 물건을 판매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뚜렷하게 알린다. 자기가 생산한 물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누군가는 그 물건을 구입해 남다른 소비를 했다는 만족을 얻는다. 일종의 예술품이나 사치품을 거래할 때 오고 가는 욕구가 이 장터를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쉐뿐 아니다. 지금 우리는 천연효모 빵집, DIY 목공방, 1인 출판사 등 상품의 생산에서 판매까지 한사람이 책임지고, 자기만의 색을 강조한 소규모 업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체인점 빵집, 외국계 가구매장, 대규모 종합출판사가 주도하는 거대산업의 ‘대안’ 혹은 ‘틈새’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음악이나 영화를 통해 먼저 접했던 인디문화가 다른 생활영역에서 변주된 것 같기도 하다. 작은 것이 큰 것과 공존하는 가운데, 소품종 소량생산과 다품종 대량생산이 주는 만족을 골고루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일단 좋은 일이다.

요즘 특히나 떠오르고 있는 것은 동네 서점이다. 지난해 11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한해가 지난 지금까지 출판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출판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 눈여겨봐왔다. 동네 서점의 활황 여부는 이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숨어 있던’ 동네 서점들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지난 8월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백창화·김병록, 남해의봄날 2015)가 출간되어 동네 서점의 존재감을 톡톡히 알렸고, 9월에는 전국의 동네 서점 현황을 담은 구글지도가 인터넷에서 퍼져나갔다. 이후 일간지나 잡지에서는 특색있는 동네 서점을 다룬 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동네 서점은 출판업계의 관심사와는 또다른 방향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는 1980년대 사회과학서점의 붐이나 1990년대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늘어나던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같은 ‘동네 서점’으로 묶이고는 있지만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지역주민의 후원과 지지를 받으며 사랑방 역할을 해온 서점들과 최근 1,2년 사이에 생겨난 몇몇 서점은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거칠게 말하면 사회과학서점, 어린이책 전문서점, 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은 모두 독서운동의 차원 안에 존재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든 서점 운영자의 기호와 재량에 따른 것이든 이른바 ‘양서’를 알리고 보급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독서인구를 늘리자는 캠페인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구글지도에 새겨진 100여곳 가운데 절반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또 그중에서도 절반이 마포-서대문-종로에 자리를 잡은 동네 서점의 풍경은 그런 독서운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에 적힌 다음 문장이 그 일면을 말해주는 것 같다. “땡스북스의 스테디셀러 중에는 내가 읽은 책이 별로 없고, 북바이북의 스테디셀러 중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점이다.” 언급된 두 서점은 모두 서울 마포에 위치하며 각각 디자인책 전문점, 책과 맥주를 같이 파는 트렌디한 가게다. 여기에 북바이북 운영자의 인터뷰 기사(『조선비즈』 2015.6.20)를 덧붙이면 앞뒤가 좀더 분명해진다. “나는 사실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콘텐츠를 좋아한다. 음악 콘텐츠, 요리 콘텐츠 등등. 콘텐츠라는 분야에 좀 흥미있는 분들이 하면 좋을 것 같다. 단순히 북카페, 책이 있어서 좋다, 하는 사람은 운영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책’이 핵심이 아닐지 모른다. 책은 워크숍이나 인문강좌, 독서모임 같은 여러 활동을 매개하고, 운영자가 자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로 선택되지만, 그런 매체가 반드시 ‘책’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전의 독서운동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책 읽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생활개혁의 지향을 가졌다면, 지금 동네 서점의 한 축을 이루는 일부 공간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함을 찾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마르쉐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동네 서점이 대도시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에 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그 비일상적인 성격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마르쉐와 동네 서점은 젊은 층의 소비문화로 한때를 장식하는 유행인 것일까? 혹은 ‘자기 것’을 하며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삶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보다 조금 먼저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난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니까, 다른 사회니까 아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