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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경동 宋竟東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 있음. umokin@hanmail.net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
스무살 때 광부가 되고 싶어
을지로5가 인력소개소를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었다
가방에는 낡은 옷 몇벌이 전부
갈 곳 없는 나를 땅속에 묻고
이번 생은 베렸다고
이 생을 빨리 지나쳐버리고 싶었다
소개료 3만원을 내고 나니
2만원이 남았다
근처 여인숙 방에 낯선 이 여섯명이 들어갔다
내일 새벽이면 봉고차가 온다는데
2만원을 꼭 손에 쥐고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우다 희뿌염한 새벽
슬며시 길을 나섰다
인쇄골목 24시간 구멍가게에서 선 채로
막 삶아낸 달걀 세개에 소주 한병을
콜콜콜 따라 마셨다
그 달걀맛이 아직도 짭짤하게 입안을 돈다
너무 쉽게 살아도 안되지만
너무 어렵게 살아도 안된다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2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
여인숙 건물 지하
옛날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
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을 다니며
한달에 10만원을 받던 달방을 얻어 썼다
같이 방을 쓰던 친구의 부업은
일 다녀온 밤마다
달방에 세든 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타짜였다
한번에 3만원 이상 따지 말 것
한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
한 곳에 석달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
그가 가끔 사주는 5천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다
밤새워 때전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성공하라고
진정으로 부럽다고 했다
떠나가던 날, 고백을 하는데
결핵 환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떠난 날
처음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
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걸었다
내게는 결핵보다 더 무섭게 폐를 송송 뚫는
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 잘 지내라고
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