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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남주 趙南柱
1978년 서울 출생. 2011년 문학동네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등이 있음. chnmjoo@daum.net
가출
아버지가 가출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나는 순간 가출을 출가로 착각했다.
“응? 아버지 절에도 안 다니잖아.”
—가출하셨다고. 가, 출. 집을 나갔단 말이다.
차라리 출가했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일흔둘. 치매 등 정신질환은 없다. 일곱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아버지. 그렇지만 엄마가 숟가락과 젓가락과 마실 물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아야 식탁에 와 앉는 아버지.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 장례 이외에는 한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삼남매가 태어나던 날도 출근했다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며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자동이체도 하지 않고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출을 했단다.
뭐? 뭐라고?라고 열번쯤 되묻다가 다음 역에서 일단 내렸다. 하필 사람들이 몰리는 환승역이었다. 환승통로를 향해 질주하는 무리 사이에 끼어 한참을 떠밀려가다 겨우 빠져나왔을 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차가운 캔커피를 뽑아 들고 플랫폼 구석의 빈 의자에 앉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왜 가출을 해? 언제?”
—실은 한달이 다 돼간다.
“뭐? 근데 왜 이제까지 말을 안 했어?”
—금방 들어올 줄 알았지. 자식들한테도 남세스럽다. 이 나이에 이게 무슨 망신이니?
“가출 확실해? 납치나 실종 뭐 그런 거 아니고?”
—편지 써놓고 나갔어.
중학교 때 나도 편지를 써놓고 가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친구네서 몰래 술을 마시다 걸려서 엄마에게 죽도록 맞은 다음 날이었다. 내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는 참을 수 없으니 이제 나를 찾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를 장황하게 썼던 것 같다. 일단 학교를 마치고 친구네 집에서 놀았다. 하지만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친구 언니가 눈치를 줘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갔는데 마침 아무도 없기에 그냥 가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책상에 두고 나갔던 편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메고 구두를 들고 내 방 옷장 속에 들어가 숨었다. 그대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옷장에서 나와 구두를 든 채로 마루에 나가 밥상 앞에 앉았다.
“구두 현관에 놓고 와라. 가방도 내려놓고.”
엄마는 태연히 말했고 나도 순순히 구두와 가방을 내려놓고 밥을 먹었다. 오빠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평소처럼 옷을 갈아입고 TV를 보다가 잤다. 아버지도 혹시 옷장 안에 있는 게 아닐까. 낡은 구두를 들고 옷장 속에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한달씩이나. 다리가 많이 저릴 텐데.
—여보세요? 듣고 있어? 경찰에 신고할까?
“가출도 신고를 받아주나? 내가 한번 알아볼게. 오빠들은 알고?”
—그게…… 얘기 좀 해주라.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입이 안 떨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아, 아버지, 차라리 출가를 하시지. 속세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내려놓고 종교에 귀의했다면 아버지를 잠시 원망하고 오래 안쓰러워하고 말았을 텐데.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오빠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했다. 큰오빠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알았다며 지금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작은오빠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길길이 날뛰더니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니 내일 모이자고 했다. 오빠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했다. 집에 가려면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해가지고. 본가에 도착하면 아홉시, 두시간 정도 엄마에게 설명을 듣고 대책회의를 한다 치면 열한시, 다시 내 집에 도착하면 열두시 반, 씻고 어쩌고 하면 한시 반. 아,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해가지고!
골목 입구에서부터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 집에서 이렇게 늦게 저녁밥을 먹나 했는데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 잡채를 하고 고등어를 굽고 호박전까지 부쳤다. 큰오빠 내외와 작은오빠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식탁에 내 수저를 놓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얼른 손 씻고 와서 밥부터 먹어.”
지금 밥이 넘어가느냐고 물으려는데 작은오빠가 엄마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한그릇 더 달라고 했다. 나도 별수 없이 식탁 앞에 앉았다. 머리로는 정말 밥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혀 아래로 침이 돌았다.
우리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청국장을 좋아했다. 엄마는 총각김치를 송송 썰어 아삭하게 씹히도록 하고 간 돼지고기와 으깬 두부를 넣어 아주 걸쭉하게 청국장찌개를 끓인다. 마지막으로 큰이모가 담가주는 집된장을 한숟갈 푹 퍼 넣으면 짭짤하고 구수한 맛이 살아나는데 아버지는 그 맛있는 청국장찌개를 너무 싫어했다. 쿰쿰한 냄새가 섬유 한올 한올,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도무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야근하시는 날이 청국장찌개를 먹는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신 후 한번도 엄마의 청국장을 먹지 못했다.
찌개를 숟갈 가득 퍼서 밥에 슥슥 비볐다. 매끄럽고 뜨거운 밥알은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훌렁훌렁 넘어갔고 배 속이 뜨끈해지며 머리에서 땀이 났다. 청국장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잡채는 이미 다 식었는데도 당면이 불어 끊어지지 않고 혀에 착착 감겼다. 분명 나도 같은 김치를 가져다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본가에서 먹는 김치가 더 맛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다 먹고 나니 이미 열시가 넘었다.
밥을 먹을 때는 명절을 맞아 모인 것처럼 화기애애했는데 거실에 둘러앉으니 침울해졌다. 올케언니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커피를 타오겠다며 주방 쪽으로 가자 작은오빠가 낮은 목소리로 큰오빠를 나무랐다.
“형은 무슨 좋은 일이라고 형수를 여기까지 데려와?”
“우리 가족 일인데 형수도 알아야지. 넌 그럼 제수씨한테 얘기도 안 하고 왔냐?”
“당연하지. 오늘 결혼기념일이라 오랜만에 둘이 외식 좀 하려고 준이 처가에 보내놨는데. 준이 엄마 지금 혼자 술 마시고 있으니까 얼른 얘기 끝내. 나 빨리 가야 돼.”
“그런 놈이 밥을 두그릇이나 먹냐?”
오빠들을 진정시키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는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달 17일에, 그러니까 나 계모임 있던 날. 나갔다 왔더니 냉장고에 쪽지가 붙어 있더라고.”
엄마는 엉덩이를 붙인 채 뭉그적뭉그적 TV장으로 가 서랍을 열고 쪽지를 꺼내왔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 저축은행 160만원은 가져간다. 미안하다.’
큰오빠가 뺏듯이 쪽지를 낚아챘다. 작은오빠가 머리를 들이밀며 소리 내 읽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아버지 노망난 거 아니야?”
그때 올케가 커피 다섯잔을 큰 쟁반에 담아 들고 왔다. 작은오빠는 입을 닫았고 큰오빠는 쪽지를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다시 한번 쪽지를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오늘은 오겠지, 내일은 오겠지…… 나 혼자 마음 졸이고 있다가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어쩔까?”
작은오빠가 커피를 한번 호로록 마시고는 대답했다.
“어쩌긴 뭘 어째? 경찰에 신고해야지.”
“실종도 아니고 가출인데 경찰에서 열심히 찾아주겠냐? 쪽지 봐라. 이건 명백히 자의에 의한 가출이야. 그렇다고 아버지가 어디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성인 남자가 가출을 했는데 경찰은 무슨 경찰이야? 차라리 흥신소 알아보는 게 빠르겠다.”
“형은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아버지 나이를 생각해봐. 진짜 갑자기 노망나서 나간 걸 수도 있다고. 우리가 모르는 돈 문제나 원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범죄에 연루된 걸 수도 있어.”
“부정적인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인마. 자꾸 재수 없는 소리 할래?”
오빠들의 말싸움을 끊으려고 내가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어디 연락해볼 데 없어?”
“늬 아버지가 연락하는 사람이 있니. 퇴직한 후로는 매일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던 양반인데. 큰집에는 안부 묻는 척하면서 한번 전화해봤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고. 휴대폰에 너희들 전화번호랑 큰집 번호, 고모 번호밖에 없더라.”
“휴대폰 놓고 나갔어?”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갔어. 팬티 한장 안 들고 나갔다니까. 왜 이번 가을에 산 등산복 있잖아. 등산도 안 하면서 무슨 바람이 불어서 등산복인지 모르겠다고 내가 그랬잖아. 그 등산복 입고 운동화 신고 막내가 사준 녹음기만 들고 나갔어. 보니까 160만원은 전날 찾았더라고.”
작은오빠가 내게 물었다.
“아버지한테 녹음기 사드렸어?”
“녹음기 아니고 엠피스리. 요즘 젊은 사람들 다 귀에 뭐 꽂고 다니는데 뭐 듣는 거냐고 하시더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듣고 라디오도 듣고 그런다고 폰 바꿔드리겠다니까 됐대. 그래서 음악만 들을 수 있는 작은 기계도 있다고 하니까 싼 걸로 하나 사달라대. 트로트 음악 백곡 정도 넣어드렸지.”
“언제?”
“한참 됐어. 서너달?”
“그동안 너한테 따로 연락 온 것도 없고?”
“응. 오빠한테는 있었어?”
“아니. 아버지가 너한테는 유난하시잖아.”
큰오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늦둥이 막내딸이라고 따로 데리고 다니면서 떡볶이도 사주시고 원피스도 사주시고 하여튼 엄청 예뻐하셨지. 막내 독립한다고 했을 때 난리 났던 거 생각난다. 진짜 너 머리 깎이는 줄 알았어. 근데 그런 분이 왜…… 우리 막내 시집은 어떻게 가라고.”
새로 옮긴 직장이 멀다는 핑계로 이년 전 독립을 선언했을 때, 아버지는 세상 무서운 줄도 복잡한 줄도 모르고 철없는 소리 한다고 펄쩍펄쩍 뛰셨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네 보호자다. 내가 우리 딸 지금처럼 티 없이 지켜줄 거야.”
“저도 곧 스물아홉이고 사회생활이 오년차인데 제가 정말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으세요?”
아버지는 내가 티끌 정도가 아니라 움푹움푹 옹이투성이며 스스로 그 옹이들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 가치관과 태도를 문제 삼는 아버지와 매일매일 부딪혔고 감정의 골이 계속 깊어져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내 결혼 자금에 보태려고 모아두었다는 3천만원 통장을 집 구할 때 쓰라며 내밀었다. 대신 이년 후, 그러니까 독립해 살 집의 임대계약 만기가 되면 결혼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어차피 남자친구와 이년 더 돈 벌어서 결혼하자고 얘기가 끝난 상태였고 보증금이 커지면 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으니 나한테는 전혀 나쁠 것 없는 제안이라 냉큼 수락했다.
종종 외롭기도 하고 아무리 1인가구라도 혼자 살림 다 하고 밥 챙겨 먹으며 회사 다니려니 힘들긴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보다는 좋았다. 독립해 살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후딱 지나 봄이면 약속했던 2년이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남자친구를 계속 잘 만났고 아버지는 겨울에 상견례하고 봄에 시집보내면 딱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없다. 정말 시집은 어떻게 가라고. 남자친구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상견례와 결혼식 때 엄마 혼자 나가야 하나. 사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마당에 결혼을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결혼을 안 한다면 부동산 계약을 연장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집 나간 아버지 걱정보다 나 살 걱정 먼저 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고개를 빠르게 흔들어 잡생각들을 털어낸 후 선언하듯 내가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겠다고 말했다. 큰오빠는 경찰에 신고하겠단다.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큰아버지와 고모에게도 알리겠다고 했다. 큰오빠가 작은오빠에게 물었다.
“넌 뭐 할 거야?”
“이렇게 해도 안 되면 그때 내가 사람 붙여서 찾는 거 한번 알아볼게.”
“어떻게 된 게 넌 집안일에 항상 뒷짐이야? 나랑 막내한테만 아버지냐? 너한테도 아버지야. 평생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주셨다고!”
“말은 똑바로 하자. 평생 형이 입던 것만 입고 눈칫밥 먹고 나만 대학 못 나왔어.”
“네가 공부 안 해서 대학 못 간 걸 왜 아버지 탓을 해?”
“막내는 자기가 공부해서 간 거지만 형은 아니잖아. 삼수해서 겨우 삼류대학 간 주제에. 나도 형처럼 삼수 시켜주고 학원비 대줬으면 형보다 좋은 대학 갈 수 있었어.”
오빠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엄마가 소리를 꽥 질렀다.
“환갑 돼서도 싸울래? 내 제사상 앞에서도 싸울래? 나 너희 엄마고 여기서 제일 어른이야. 어떻게 부모 앞에서 이렇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해? 아무도 내 의견 먼저 묻지 않더라. 나 혼자 지내는 거 걱정하지도 않고. 헛키웠다, 헛키웠어. 며느리 보기 부끄럽다!”
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종종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여행지, 외식 메뉴, TV 채널 같은 사소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 신기했다.
소득 없이 1차 회의를 마쳤다. 가파른 골목에 빠듯하게 세워진 오빠들의 차가 무사히 나가는 것을 봐주고 나도 정류장으로 가려는데 엄마가 눈을 찡긋거리며 팔을 잡아끌었다. 혹시나 오빠들에게는 말 못한 중요 정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순순히 엄마를 따라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전자레인지 위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전기요금, 상하수도요금, 도시가스요금, 휴대전화요금…… 각종 공과금의 지로용지들이었다.
“이거 그냥 은행 들고 가면 되는 거야?”
엄마가 왜 한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아버지의 가출 사실을 털어놓았는지 알 것 같았다. 공과금 납부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동안 아버지께 딱 살림에 필요한 금액만 생활비로 받아 썼을 뿐 돈이 얼마나 어디로 나가는지, 또 어디로 모이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는 퇴직한 후 은행을 여유있게 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공과금 내는 날이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은행 업무는 출근하지 않는 엄마에게 맡기지 그랬느냐고 하자 아버지는 아니라고 했다.
“그건 내 일이지. 그러라고 내가 이 집에 있는 건데.”
아버지의 일.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한 일이 또 뭐가 있더라. 두번이나 대입에 실패한 큰오빠가 이제 자신은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해 동생들 학비를 벌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같은 말을 했다. 회사가 어려워 몇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에게도 그랬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 갈 준비를 하는 우리 삼남매를 만류하면서도 말했다. 그건 내 일이다.
이제 이 집에는 평생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맡아온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엄마에게 대신 내주겠다고 하려다가 엄마도 할 줄 알아야겠다 싶어서 방법을 설명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가 창구로 가서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 엄마는 내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 말은 나도 하겠다.”
예상대로 경찰은 단순가출로 처리하고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아버지 사진이 담긴 전단지는 두시간 만에 엄마가 모두 떼어버렸다. 쓸데없이 장난전화만 많이 와서라고 했지만 동네에 소문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날씨만 더 추워졌다.
토요일에 두번째 가족회의를 위해 모였다. 엄마는 이번에도 청국장을 끓이고 갈비를 굽고 도토리묵을 무쳤다. 들깨향이 진하게 풍기는 도토리묵 무침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고 이번에는 내가 두그릇을 먹었다. 큰오빠는 갈비를 너무 열심히 뜯어서 번들거리는 입술로 엄마를 향해 이제 밥 차리지 말라고 말하고는 꺼어어어어억, 길게 트림을 했다.
올케언니들은 모두 일이 있어 오지 못했고, 엄마와 삼남매가 거실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사이 제 아빠들을 따라온 조카 셋이 아버지 방을 차지했다. 뛰지 말란 소리를 숨 쉬듯 듣는 아파트 키드 조카들에게 단독주택인 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세상 제일 신나는 놀이터인 듯했다. 조카들은 책상에서 뛰어내리고,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온갖 서랍을 다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몽땅 끄집어냈다. 막판에는 거울 옆에 걸려 있는 얇은 일력을 한장 한장 뜯어내어 구겨서 뭉친 후 눈싸움하듯 던지고 놀다가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거실까지 튀어나왔다. 엄마가 급히 커피잔을 손으로 가리며 소리쳤다.
“커피 쏟아져, 이 녀석들아. 방에 들어가서 놀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들 요란하게 노나 생각하고 있는데 조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서 오랜만에 노니까 되게 재밌다! 신기한 것도 많아졌어!
내가 독립하자 아버지는 내 방을 자신의 서재로 꾸몄다. 사실 아버지는 책도 별로 없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굳이 책상을 두고 가라고 하셨다. 왼쪽에 5단 책장이 붙은 h자 모양의 책상. 내가 중학교 때부터 쓰던 것이다. 들어갈 오피스텔에 최소한의 가구들은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어 선심 쓰듯 두고 나왔다. 나중에 와서 보니 아버지는 『삼국지』, 『논어』, 기업 총수의 자서전 같은 것들로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전까지 조카들이 오는 날은 내 방 책장의 모든 책이 쏟아져 나오고 화장품 중 최소 하나는 깨지고 서랍이 뒤집어지는 날이었다. 그런데 내 방이 아버지 방이 된 후로 가족들은 열심히 조카들을 단속했다. 특별히 아버지가 방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 방에 귀중품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아버지도 괜찮으니 전처럼 놀게 두라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작은방은 이제 할아버지 방이고 들어가 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미 올해 마지막 날까지 다 뜯겨 묶음고리만 대롱대롱 매달린 일력, 계단 모양으로 책상 위에 쌓인 『삼국지』들, 볼이 발갛게 되어 신나게 뛰어노는 조카들. 나는 한참 아버지 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 방이 낯설었고 보기 좋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큰오빠가 흥신소 얘기를 꺼냈지만 작은오빠가 반대했다.
“안 그래도 내가 알아봤어. 근데 진행비 필요하다면서 계속 돈만 요구하고 일처리도 못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대. 그렇게 돈만 뜯겨도 그 사람들 무서워 싫은 소리도 못한다더라고.”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나도 좀 찜찜하다. 그런 무서운 사람들하고 관련되는 것도 싫고 말이야.”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손 놓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어디서 뭐 하시는지, 막말로 살아 계시기는 한 건지도 모르고 있잖아. 친한 친구가 있으신 것도 아니고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신 것도 아니고 신용카드를 쓰시는 것도 아니고. 실마리가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어.”
잘 쓰시지는 않지만 아버지에게는 신용카드가 있다. 내가 작년에 드린 것이다. 현금을 갖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가끔, 갑자기 친구들을 만나거나 안경을 급하게 다시 맞춰야 하거나 병원에 들를 일이 생겼을 때 신용카드가 아쉬우셨던 모양이다. 요즘은 신용카드 만드는 것도 실적이라고 들었다며 이왕이면 남자친구를 통해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하필 그때 남자친구와 한달 넘도록 냉전 중이었다. 일단 내 카드를 쓰시라고 드렸다. 남자친구 할당량을 채우려고 만들었는데 연회비만 내고 있을 뿐 거의 한번도 쓰지 않은 카드였다.
“다 큰 딸이 주는 용돈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마음껏 쓰진 마시구요. 설마 딸을 신용불량자 만들진 않으실 거죠?”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아버지가 됐다 하시면 나도 농담이었던 듯 웃으며 다시 카드를 지갑에 넣으려고 했다. 아버지의 퇴직 소식을 듣고 오빠들과 내가 돈을 모아 매달 일정 금액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자식에게 손 벌리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노발대발했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그렇다면 굳이 아버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들과 나는 드리지도 못할 용돈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기만 했다.
아버지는 내가 내민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핑크색 바탕에 빨간 하이힐이 그려져 있는 2030 레이디카드. 아버지는 순순히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으며 엄마에게는 말하지 마라, 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농담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만약을 위해 갖고만 다니시는지 거의 사용하시지 않았다. 식당에서 1만 3천원 한번, 3만 4천원 한번. 정형외과에서 2만 3천원. 옷가게에서 4만 천원. 일년이 넘는 동안 아버지가 사용한 카드 내역의 전부이고 가출 이후로는 카드를 쓰시지 않았다.
엄마와 오빠들에게 말하려다 말았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깨뜨리면서 쓰지도 않는 카드에 대해 가족들에게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두번째 가족회의를 마친 다음 날,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web발신 카드승인 4,500원 일시불 12/11 09:11 삼거리식당 누적 4,500원’
잠결에 메시지를 확인하고 처음에는 광고문자인 줄 알았다. 짜증을 내며 휴대폰을 던져놓고 돌아눕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다! 아버지의 카드 사용내역이 내 휴대폰으로 안내된 것이다. 피가 순식간에 머리로 쏠려 눈이 욱신욱신했다.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주소록을 찾다가 급히 취소했다. 침착해야 한다. 아버지는 카드를 쓸 때마다 내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형외과 결제 문자가 왔을 때 어디 다치셨냐고 전화를 드렸더랬다.
“요즘은 결제하면 휴대폰으로 문자가 다 와요. 근데 그게 내 카드라 저한테 오는 거죠.”
“그럼 그동안 계속 문자 받았던 거야? 이거 딸 눈치 보여서 카드도 마음대로 못 긁겠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고는 며칠 만에 또 카드를 사용하셨다. 이번에도 분실이나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삼거리식당에서 4천 5백원짜리 아침밥을 사 먹고 카드로 결제한 아버지. 왜 그러셨을까.
노트북을 켜고 삼거리식당을 검색했다. 칼국수를 팔고 돼지갈비를 팔고 갈치조림을 팔고 닭백숙을 파는 삼거리식당들이 전국에 즐비했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려는데 아무래도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두번, 세번, 네번을 틀렸고 주민번호를 함께 입력하라는 안내가 나왔고 그래도 두번을 더 틀렸고 더이상 틀리면 계정이 잠긴다는 안내가 나왔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더니 일요일이라 분실이나 도난신고만 가능했다.
카드 도난신고를 해버릴까. 그러면 어떻게든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범인 잡듯이 아버지를 찾고 나면 아버지와 내 사이는 어떻게 될까.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경찰에 카드결제 정보를 전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 경찰에서 빠르게 카드결제 상점의 위치를 확인해 출동해줄까. 경찰에 그런 권한이나 능력이 있을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일단 메모지를 꺼내 그동안 내가 써왔던 비밀번호들을 다 적고 입력해본 비밀번호 여섯개를 지웠다. 최근에 새로 만든 번호들도 지웠다. 너무 단순한 것들도 지웠다. 그렇게 주욱 지워가니 남은 번호는 두개 정도였고 고민 끝에 그중 하나를 입력했다. 비밀번호 오류. 계정이 잠겼다. 고객센터 통화 후 다시 시도하란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문자메시지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날 내내 아버지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고 다음날 고객센터와의 지난한 통화 끝에 로그인해서 결제내역을 보니 삼거리식당은 광명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광명에 살았던 적이 없고 아버지의 직장이 광명이었던 적도 없고 친척 중에도 광명 사는 사람은 없다. 전화를 걸어보니 국밥류를 주로 파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4천 5백원짜리 메뉴는 콩나물국밥이며 인근의 재래시장 사람들이 혼자 와서 아침을 사 먹는 경우가 많고 어제 아침에 혼자 콩나물국밥 한그릇을 먹은 남자 손님은 셀 수도 없다고 한다.
다음 문자메시지는 한달 후에 왔다. 홍대 앞 커피 전문점에서 2만 2천원. 토요일 오후였고 나는 광화문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문자를 받고는 순간 멍해졌다. 너무 당황스럽고 이상해서 한참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 커피 전문점은 커피를 주문하면서 결제하는 곳이다. 2만 2천원이라면 한잔이 아니다.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주문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아직 홍대의 커피 전문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자친구의 귀에 “미안, 먼저 갈게”라고 작게 말하고는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상영관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토요일 오후의 도로에는 차가 너무 많았다. 막히지 않을 때는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금화터널을 지날 때 이미 택시에 탄 지 30분이 넘었다. 택시 바닥을 발끝으로 톡톡톡톡 두드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룸미러로 흘끔 보더니 기사님이 약속에 많이 늦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고 불쑥 뱉어놓고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그, 아버님이 치매신가보네? 내가 얼른 갈게요.”
기사님은 그냥 요양원에 보내라고, 괜히 가족들 지치고 병난다고, 그래도 딸이 효녀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였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끅끅 소리를 내며 도착할 때까지 울었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 바로 보이는 바 좌석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각자의 노트북이나 책을 보고 있고 출입문 옆에 앉은 남자 하나만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벽돌로 쌓아올린 계단에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문을 열어야 하는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두 손으로 긴 손잡이를 잡고 기대듯 몸의 무게를 실어 밀고 들어갔다. 주문하려고 줄을 선 서너명 중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목을 있는 대로 빼고 두리번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좌석은 거의 다 찼고 대체로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창가 구석자리에 희끗한 단발머리를 깔끔하게 넘겨 손질한 할머니가 허리를 세우고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털모자를 쓴 어깨가 좁은 남자의 뒷모습.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낮추어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주로 할머니가 이야기하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음악 소리 때문인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대화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샌드위치 포장지와 접시, 포크, 일회용 음료컵 두개. 심장이 몸을 뚫고 나올 것처럼 너무 쿵쾅거려서 나는 오른손으로 왼쪽가슴을 지그시 누르면서 걸었다. 드디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툭 밀었다.
“누구세요?”
돌아본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니 두 사람 모두 아버지보다 열살은 젊어 보였다.
“제가 착각을……”
죄송하다는 말도 못하고 황급히 돌아섰다. 노년 커플에게 다가갈 때보다 더 쿵쾅거리는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며 2층 테이블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얼굴들이 낯설다는 것이 이렇게 큰 공포일 줄은 몰랐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결제문자가 도착한 지 벌써 한시간이 다 되었다. 그사이 남자친구가 전화를 여섯번 했고 메시지를 두개 보냈다. 걱정되니 연락 달라는 내용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다시 한바퀴 둘러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알바생에게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한시간쯤 전에 여기서 2만 2천원을 결제했다고, 혹시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20분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이전 타임 알바생은 이미 집에 갔다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신지 모르지만 CCTV 보고 싶으시면 일단 경찰에 신고하셔야 해요.”
머리가 쨍할 정도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켰다. 아버지는 대체 누구와 여기서 2만 2천원어치를 사갔을까. 한동안 단발머리 할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오빠들과 나는 예전보다 자주 엄마만 있는 집에 들른다. 올케언니와 조카들까지 모두 오는 주말도 있고 조카들만 따라오는 주말도 있고 삼남매만 오붓하게 모이는 주말도 있다. 열심히 음식을 차리던 엄마는 이제 음식 재료들만 사다 놓는다. 함께 김치전을 부쳐 먹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만두를 빚어 먹었다. 작은오빠가 만두를 너무 예쁘게 잘 빚어서 놀랐다. 식사가 끝나면 오빠들이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한명은 세제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닦고 또 한명은 헹궈내어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쳤다. 내가 우리 오빠들 같지가 않다고 하자 올케언니가 집에서는 많이 한다고 말했다.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다 잘해요. 근데 이상하게 이 집 대문만 통과하면 무슨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닥에 척 들러붙더라고요.”
아차 싶었는지 언니가 옆눈으로 엄마를 한번 스윽 봤다. 엄마는 그럼, 요즘 세상에 다 같이 해야지, 했다. 엄마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다 같이 해야 하는 요즘 세상에도 엄마는 모든 집안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며 평생 혼자 했다.
“엄마는 살림이 천성인 줄 알았더니.”
“천성은 개뿔. 아주 징글징글하다.”
함께 음식을 해 먹는 시간이 많아지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큰오빠에게는 제과제빵 자격증이 있다. 빵을 직접 구워 파는 작은 베이커리 겸 까페를 차리는 게 큰오빠의 꿈이다. 지금은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업 자금이 모이는 대로 시작할 거라고, 올케언니도 동의하고 같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오빠네가 불임클리닉을 다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아무 어려움 없이 낳았는데 둘째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부부는 그냥 하나만 잘 키우기로 결정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왜 둘째를 낳지 않느냐, 하나는 외롭다는 소리를 해서 답답하단다. 종종 그런 말을 했던 엄마가 오빠에게 사과했다. 문자 한번 주고받지 않던 삼남매의 단체 대화방이 생겼다. 돌아가며 매일 저녁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하게 됐다.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승진했고 월세 계약을 2년 연장했다.
문자메시지도 드물게, 하지만 계속 온다. 왕십리의 노래방에서 만 2천원, 파주의 아울렛에서 5만 8천원, 지리산 입구의 밥집에서 만 6천원, 제주도의 횟집에서 12만 4천원…… 처음에는 문자메시지를 받자마자 택시를 타고 결제한 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버지는 이미 없고 아르바이트생도 손님들도 아버지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몇차례 허탕을 친 후에는 메시지를 받고도 달려가지 않게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좋구나. 너무 걱정 마라.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 지리산을 오르고 제주 바다를 구경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젊은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걷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