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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촛불 이후 되새기는 4·3문학

 

 

김동윤 金東潤

문학평론가, 제주대 국문학 교수. 저서 『작은 섬, 큰 문학』 『소통을 꿈꾸는 말들』 『제주문학론』 『기억의 현장과 재현의 언어』 『4·3의 진실과 문학』 『신문소설의 재조명』 등이 있음. kdongyun@hanmail.net

 

 

1. 광장의 촛불과 오름의 봉화

 

지난겨울 우리가 이뤄낸 촛불혁명은 찬란하고 황홀한 역사가 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언제 어디에 이처럼 명예로운 위업이 있었던가. 오래도록 자랑 삼기에 충분하다. 물론 혁명의 진정한 완수는 적폐를 확실히 청산하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듦으로써 이뤄지는 것이겠지만.

촛불은 서울 광화문뿐 아니라 부산의 서면 중앙로, 광주 금남로, 대전 둔산동 등 전국 각처에서 동시다발로 타올랐다. 제주에서도 제주시청 집회에 20회 동안 연인원 56천여명이 참가했다. 비행기 타고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 중에는 촛불을 보면서 무자년(戊子年)에 오름마다 타올랐던 봉화를 떠올린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집회의 자유발언대에서 4·3을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가 밀어붙였던 국정교과서의 왜곡된 4·3 기술을 규탄하는가 하면, 4·3 해결을 위해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주장하기도 했다.

‘촛불’과 ‘봉화’는 상통하는 불꽃이다. 적폐를 없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자고 불을 밝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개개인이 존중되는 공화국에 대한 염원은 다를 바 없다. 결국 오래전 제주에서 청산 못한 적폐 문제가 촛불혁명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의 완수는 4·3항쟁의 완수이기도 하다.

실로 4·3은 제주와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흐름에서도 주목되는 항쟁이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체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쌓인 긴장이 제주섬에서 폭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이 여기에 주목함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4·3문학은 공산폭동론 외에는 허용하지 않던 난공불락의 벽을 전위에서 기어코 무너뜨리면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현기영(玄基榮)이 있었다. 항쟁 30주년에 발표된 그의 중편 「순이 삼촌」(1978)은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이 작품은 제주섬에 그런 믿기 어려운 참사가 있었고, 그 상흔이 계속 곪아가고 있음을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으로 인식시켰다. 국내에선 연구논문도 없고 언론도 침묵하는 가운데 연이어 발표된 현기영 소설은 4·3 인식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재일작가 김석범(金石範)4·3문학에서 뚜렷한 위상을 지닌다. 김석범이 ‘제주4·3평화상’의 첫 수상자(2015)가 된 것은 4·3 작가임과 상관성이 크다. 그가 국제적으로 펼친 평화운동은 작품세계와 연관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1957년부터 발표된 그의 4·3소설들은 1988년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제1부가 번역 출간되면서 국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화산도』는 2015년 완역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4·3항쟁이 이제 70주년을 맞는다. 촛불혁명의 완수 여정과 맞물린 중차대한 이 시점에서 4·3문학은 진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4·3문학의 두 거장인 현기영과 김석범의 소설을 다시금 짚어보고자 한다.1 4·3문학에서 지금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 그러려면 어떤 방식이 유용할지를 짚어본다. 특히 적극적인 현재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에서 항쟁담론으로서 4·3문학에 방점을 둘 것이다.

 

 

2. 봄의 항쟁담론으로서 4·3문학

 

4·3은 오랫동안 겨울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4·3시집인 김경훈의 『한라산의 겨울』(삶이보이는창 2003)과 강덕환의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풍경 2010)에서도 그 계절을 내세웠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수만의 죽음 대부분은 무자·기축년 겨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진상규명운동도 억울한 죽음을 신원(伸冤)하라는 요구가 주된 방향이었다. 4·3특별법도 “194731일을 기점으로 19484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규정함으로써 희생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희생담론이 4·3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 이제 다른 담론을 본격화해야 한다. 항쟁의 참뜻은 무엇인지, 거기서 어떤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 되새길 때가 되었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짓눌려 논의를 꺼려왔던, 봄날의 열정 그 자체에 대해 당당히 말하자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항쟁담론으로 4·3을 보는 일이 중요하다. ‘사건’이 아니라 ‘항쟁’이라는 이름을 달아줘야 마땅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무엇을 위한 항쟁이었던가.

우선 적폐에 대한 항쟁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3항쟁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의 핵심은 친일파였다. 그들이야말로 새 조국 건설의 도정(道程)에서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김석범과 현기영의 소설에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김석범의 『화산도』는 4·3봉기 직전부터 19496월 무장대가 붕괴되는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제주 젊은이들이 남로당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단독정부 추진 세력 등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열정, 좌절, 번민, 허무, 사랑 등을 담아낸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방근은 “제주도사건도 친일파가 지배했기 때문에 일어났다”(7318면)고 말한다. 입산 활동가인 남승지도 “일장기가 36년간이나 ‘국기 게양대’에 걸려 있었”던 상황과 “본질적으로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138면)라며 입술을 앙다문다. 친일세력의 득세가 여전한 현실을 방기하고서 자주독립국가가 세워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놈 저놈 모두 일제협력자가 아닙니까! 도대체가 말이죠. 이 나라는 일제협력자의 천국입니다.”(5175면)

 

이방근과 함께 밀항투쟁을 벌이는 한대용의 발언이다. 일본군 군무원으로 남양군도에서 근무했던 그는 연합군에게 전범(戰犯) 취급을 당하며 고초를 겪다가 귀향하여 혁명 대열에 동참코자 했으나 당 조직에 의해 거절당했다. 반면에 “일본 지배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 조선총독부 기관 내에서도 유능한 관리가 되었을”(1182면) 정도의 친일파였던 유달현은 자기비판도 없이 조직활동을 하다가 배신의 길을 걷는다. 한대용은 결국 일본으로 도망가려던 유달현을 처단하는 일에 앞장선다.

현기영 소설은 주로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정세 인식을 드러낸다. 「거룩한 생애」의 해녀 간난이(양유아), 「목마른 신들」의 심방(무당) ‘나’, 「마지막 테우리」의 테우리(목자) 고순만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주민중이 체감하는 현실을 포착한다.

 

왜순사 노릇하던 자들이 왜순사복 차림 그대로 ‘미군정 경찰’이라는 완장만 두른 채 버젓이 사람들 앞에 나서고, 공출 많이 안 낸다고 매 때리고 벌주던 면서기들도 여전히 그 흉측한 국민복 차림에다 수건을 꽁무니에 차고 버젓이 행세하고 다녔다.(「거룩한 생애」 50면)

 

3인칭 시점이지만 간난이라는 해녀의 눈으로 본 적폐 세상의 실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일제에 의해 불온분자라고 낙인찍힌 자는 해방된 땅에서도 여전히 불온분자”가 되는, “가슴을 치며 통곡”(55면)할 일까지 벌어진다. 이처럼 친일파가 득세하는 거꾸로 된 세상은 미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조선을 해방시켰다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점령한 것이라는 섬사람들의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처럼 적폐가 득세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현기영 소설은 이런 상황을 잘 포착했다. 섬사람들은 1947년 해방 후 두번째 맞는 3·1절 기념식을 통해 하나된 목소리로 새 세상을 향한 갈망을 표출코자 했다. 자주독립 의지를 만방에 과시한 기미년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인민의 독약 양과자를 먹지 말자, 미군 철수, 신탁통치 반대의 외침이 줄기차게 이어지더니 드디어 삼일절 기념행사날 관덕정 마당과 북교 운동장에 일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대집회가 열렸다.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이 거꾸로 되어 삼팔선이라는 방해선이 생겼다고, 해방은 되었지만 왜놈 머슴살이 대신에 미국놈 머슴살이 하게 되었다고,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고 새로운 독립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연사들이 절규하고 군중의 함성은 온 읍내를 떠나보낼 듯이 우렁찼다.(「목마른 신들」 60면)

 

「목마른 신들」에서 묘사된 것처럼 제주의 항쟁은 바로 이러한 자주독립의 열망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비폭력 3·1절 기념시위를 미군정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유혈사태를 몰고 왔다. 섬사람들은 민관 총파업으로 맞섰으나 탄압은 더 심해졌다. 결국 이듬해 4월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외세를 배격하는 자주국가 수립을 위해 단독선거 반대, 통일정부 수립 등을 봉기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보게, 안 그런가 말이여, 나라를 세우려면 통일정부를 세워야지, 단독정부가 웬말인가.”(「마지막 테우리」 15면)

 

「마지막 테우리」에서 고순만 노인은 봉기세력의 주장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섬백성들이 5·10선거를 반대한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목마른 신들」에서 해녀 간난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니까 이왕 정부를 만들 바엔 단독정부가 아닌 통일정부를 만들자 하는 것은 국민된 도리로서 능히 할 수 있는 주장”(61면)이라는 말에서 보듯, 자주국가 수립의 과제가 중요했기에 작품에 구현된 4·3의 형상화에서도 ‘항쟁’의 성격에 대한 강조를 읽을 수 있다.

『화산도』에서는 더 분명하게 봉기의 명분이 표출된다. “파업이나 데모 같은 걸로 뭘 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 지금은 파업도 데모도 할 수가 없네”(454면)라는 상황 인식은 무장봉기의 결행으로 이어지면서 분명한 요구사항을 내세운다.

 

‘하나, 미군은 즉시 철수하라! 둘, 망국적 단독선거에 절대 반대한다! 셋, 투옥 중인 애국지사를 무조건 즉각 석방하라! 넷, 유엔조선위원단은 즉각 돌아가라! 다섯, 이승만 매국도당을 타도하라! 여섯, 응원경찰대와 테러 집단은 즉시 철수하라! 일곱, 조선 통일 독립 만세!’(4186면)

 

적폐가 준동하는 현실을 타파하여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제주민중의 염원이 바로 4·3항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제국주의 투쟁이면서 “자르면 하나가 되고, 자르지 않으면 두 개가 되는”(2325면) 38선을 잘라내는 통일투쟁이기도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신제국 미국과 연결된 적폐세력의 위력은 막강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반공이었다. 서북청년회, 친일파, 단선 추진 세력은 미군정과 손잡고 반공을 내세워 제주섬을 유린했다.

 

만주와 중국에서 일본의 밀정을 하고, 조선 독립운동 투사를 매도한 자, 조선의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를 고문, 죽음으로 몰고 간 조선인 고등계 경찰관들. 일제의 특고경찰제도와 방식, 전후 일본에서는 폐지가 된 것이 그대로 형태만 바꿔 미군정하에 남아, 지금 반공입국의 선두에 서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12227면)

 

신제국주의 세력이 적폐 세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하면서 급기야 제주섬은 초토화되었다. 수만의 희생을 초래하면서 항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완전한 패배는 아니었다. 김석범은 이방근이라는 인물로 하여금 상징적인 과업을 수행케 한다. 이방근은 친구인 유달현을 바다에서 처단시키고, 친척인 정세용을 산에서 직접 총살했다. 친구와 친척이라는 가까운 존재를 단죄하는 행위를 통해 적폐청산이란 냉엄하고 과감하게 단행해야 하는 과제임을 입증했다. 그는 또한 남승지, 신영옥 등을 일본으로 탈출시킴으로써 훗날을 기약하는 희망을 남겼다.

하지만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내세웠다고 4·3항쟁에서 국민국가 차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지역공동체 문제를 놓치면 곤란하다.

『화산도』는 제주의 풍속 재현과 더불어 공동체가 파괴되는 양상이 그려진다. “멸치도 생선이야, 제주도 것들이 인간이냐”(5165면)라거나 “정어리도 물고기인가, 제주 새끼도 인간인가”(10248면)라는 인식이 사태를 키운 주요 원인이었음을 포착한다. “태평양 너머에서 온 외적과, 제주해 너머에서 온 같은 조선인이라는 외적들”(10257면)에 의해 제주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음을 개탄해 마지않는다. “제주에서 계속된 식민지적 상황은 일본에 의한 지배에서 미국에 의한 지배로, 미국의 후원을 입은 ‘서울 정권’의 지배로 이어지는 이중의 식민지”2였음을 『화산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테우리」에서는 오름을 비롯한 초원이 아름답게 그려지는데, 그것이 ‘해변’으로 인해 환란을 겪는다. 이는 제주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사십오 년 전, 초원은 법을 거스르고 해변에 맞서 일어난 곳이었다.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고 투쟁이 있었다. (…)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섬백성들이 투표날 초원으로 올라와버렸고, 그래서 초원은 여기저기 때아닌 우마시장이 선 것처럼 마소와 사람들이 어울려 흥청거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법을 쥔 자들의 보복은 실로 무자비했다.(15면)

 

초원은 ‘섬백성’이며, 해변은 ‘법을 쥔 자’들의 상징이다.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정권을 잡으려는 법을 쥔 자들의 활동공간이 해변인 데 반해, 그에 대항해 법을 거스르며 맞서 일어난 공간은 초원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제주의 해변은 역사적으로 온갖 외세들이 침입했던 곳이다. 해방 직후 미군도 서청도 토벌군도 모두 해변으로 들어와 제주민중을 초원으로 내몰았다. 그렇기에 소설 말미에서 초원이 ‘강풍’과 ‘검은 구름’과 ‘눈보라’를 불러들여 파괴 세력을 응징하는 양상은 예사롭지 않다.

제주섬을 한반도의 부속도서로만 여기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자체를 중심에 놓는 가운데, 국민국가의 일원이면서 동아시아나 세계의 일원인 제주섬을 말해야 한다. 자기결정권을 갖고 작은 단위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던 제주공동체의 염원을 4·3항쟁에서 간과해서는 안 됨을 두 작가의 소설은 보여준다.

 

 

3. 혁명의 꿈과 장소성의 확보

 

4·3항쟁이 탄압에 대한 저항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혁명을 꿈꾸었음도 주목해야 마땅하다. 『화산도』는 제주민중의 혁명 의지를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확보한 작품이다.

남승지는 확고한 혁명 의지를 토대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남승지가 목도하는 현실에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데, 이는 활동가를 통한 혁명의 실천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는 “혁명가는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이든 뭐든 혁명 이외의 것은 모두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3376면)라고 할 정도로 굳은 신념을 지녔다.

 

“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구상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없애버리는 것이지만, 현실로서는 이 섬의, 이 나라의 혁명입니다. 눈앞에 다가온 단독선거를 분쇄하고, 하루라도 빨리 삼팔선의 벽을 허물어 조국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까.”(3383면)

 

남승지는 당 조직의 일원으로서 투철한 혁명가로 활동하면서도 맹목적이지는 않다. 당 조직의 절대성과 교조성에는 비판의식을 견지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남승지는 봉기 전에 투쟁자금을 모으는 활동, 즉 ‘캄파투쟁’을 수행하고, 봉기가 시작되자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헌신한다. 그의 염결한 열정은 혁명의 진실성을 대변한다. 아울러 그가 살아남아 훗날을 도모하는 상황은 제주민중의 혁명의 꿈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남승지의 혁명 활동을 돋보이게 하고 그를 재생케 한 인물은 이방근이다.3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던 이방근은 봉기의 패배가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혁명’에 봉사”(9238면)하기 위해 밀항투쟁을 전개한다. “패배를 예상하는 싸움에서의 죽음을, 혁명적인 죽음이라곤 생각하지 않”(10274면)았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은 살아 있는 자, 생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고,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자 속에서만 사는”(11324면) 거라는 신념 속에서 그는 여동생 유원과 여성 활동가 신영옥을 일본으로 탈출시킨 데 이어, 붙잡혀 있던 남승지를 빼돌려 기어이 밀항선에 태운다.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미완의 혁명임을 역설한 셈이다.

『화산도』에서는 이렇게 4·3항쟁에 대한 탐구가 어느 정도 이뤄지긴 했지만, 항쟁의 핵심주체가 아닌 이방근 중심의 서사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남승지·양준오·김동진의 고뇌를 이방근만큼 밀도있게 그려냈다면 미완의 혁명으로서 4·3항쟁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화산도』의 위상은 장소성에서도 돋보인다. 주목할 장소로는 바다와 성내(城內)가 꼽힌다. 바다는 4·3소설의 폭을 넓혔으며, 성내는 그 깊이를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동안의 4·3소설에서 사태의 양상과 면모는 주로 한라산과 오름, 초원 그리고 마을과 해안을 무대로 그려졌다. 바다는 수장(水葬)된 공간, 떠나고 들어온 공간, 차단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으나, 『화산도』는 달랐다.

봉기 직전 강몽구와 남승지는 투쟁자금을 모으기 위해 바다를 건넌다. 긴 항해 끝에 일본 진입을 앞뒀을 때 남승지는 “압박해 오는 뭔지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끌려갈 것만 같은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등 뒤로 펼쳐진 광대한 바다 건너 아름다운 한라산 자락 아래 펼쳐진 제주도의 모습을 떠올”린다.(2360면) 압박감과 두려움은 봉기 주역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감이다. 그것은 사명의식이나 진실성과 상통한다.

그들은 캄파투쟁을 마치고 제주행 밀항선을 탄다. 그러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 직전의 위기에 빠진다. 급박한 상황에서 강몽구는 총을 꺼내 들고 “당신들은 장사꾼이다. 돈은 또 벌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가져가는 짐은 개인의 물건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3232면)라며 화주들에게 짐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강몽구와 남승지의 짐 중에서도 일부는 버려야 했다.

작품 후반부에서 이방근은 김달준으로 위장해 도망가는 유달현을 밀항선에 태운다. 친일파이자 조직의 배신자에 대해 “바다 위의 인민재판”(11310면)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선상에서 한대용과 청년들에 의해 유달현이 돛대에 매달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며 한참이나 돛대에 묶여 있던 유달현은 환각에 사로잡혀 소리치다가 분뇨를 흘리며 죽고, 그의 시신은 파도에 씻긴 후 어두운 바다로 던져진다.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이방근은 바다에 밀항선을 띄움으로써 자신의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바다를 통하여 재생과 부활의 씨앗을 남겼다. 바다가 없었다면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살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산자락에서 맞는 최후의 순간에도 바다를 응시한다. “아득한 고원의, 보다 저 멀리, 초여름의 햇볕에 반짝이는 부동의 바다”(12370면)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그에게 포착되었다. 바다는 그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화산도』는 4·3항쟁에서 낯설면서도 유용한 바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디테일하고 밀도있는 묘사를 바탕으로 누구도 그려 보이지 못한 새로움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여러차례 제주, 목포, 일본 등지를 배로 드나들다가 19467월에 일본으로 밀항했던 김석범의 경험과 관련이 깊음은 물론이다. 국내의 4·3소설에서 간과되어왔던 해양문학적 요소의 뜻깊은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한편, 제주읍내의 중심 지역인 성내가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전경화한 것도 중요한 맥락이다. 그간의 4·3소설에서는 외곽의 농어촌을 무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1사건의 상황이나 관덕정 앞에 전시된 이덕구 시신 장면의 묘사 등을 제외하고는 성내가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것이다. 민간인 학살 문제나 토벌대와 무장대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양민들의 모습을 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화산도』는 남승지가 탄 버스가 성내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성내에서 이방근, 양준오, 김동진, 강몽구, 유달현 등과의 접촉이 이뤄지면서 사건이 전개되고, 게릴라의 삐라가 인쇄되어 뿌려지고, 이방근의 고뇌와 갈등이 요동친다. 서청의 횡포가 자행되고, 단선 추진 세력의 행보가 구체화되며, 토벌 작전이 수립되고, 미군정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다소의 피난민은 있어도,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성내 지구”(755면)를 택한 작가의 전략은 주효했다. 제주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면서 무장대의 공격이 거의 못 미치는 곳, 토벌 군경과 서청의 활동 근거지인 곳, 그러면서도 제주도 지식인들의 활동 중심지인 성내가 주요 무대가 됨으로써 4·3항쟁의 심장부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성내는 거리 두기에도 적절한 공간이 되었다. 4·3항쟁 당시 그곳이 살육의 한복판이 아니었기에 성내를 중심으로 소설을 전개한 점은 사태를 좀더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43일 성내 공격의 불발로 “성내 거리의 진공 같은 정적”(4319면)을 그린 부분에서는 봉기의 결과를 예감케 한다. 성내의 상황이 사태 전반을 가늠하는 핵심인자였음을 의미한다.

이방근이 성내의 부르주아라는 점도 중요하다. 성내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은 봉기를 주도한 인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서청이나 경찰, 지역 유지들도 종종 찾아왔다. 부스럼영감과 목탁영감도 드나들었고 부억이는 그곳을 거점 삼아 조직연락원으로 활동했다. 이방근은 돈이 많기 때문에 사태의 와중에 목포를 통해 서울에 드나들었고 밀항선까지 운영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사용할 돈이라면, 이성적으로 의미 있게 사용”(7433면)한 이방근으로 인해 4·3항쟁이 더 입체적으로 조명된 셈이다.

 

 

4. 새로운 리얼리즘과 에코토피아의 세계

 

4·3항쟁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은 그 현재적 해결의 전제로서 아주 중요하다. 기억의 방식으로서 굿은 매우 유용하고 탁월하다. 굿에서 심방은 기억의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죽은 자와 산 자를 불러내 진실을 밝히면서 원을 풀어준다. 그런 과정을 거칠 때라야 용서가 이뤄지면서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현기영의 「목마른 신들」은 그것을 여실히 입증한 작품이다. 회갑을 맞은 늙은 심방인 ‘나’(이 글에서 ‘그’나 ‘심방’으로 지칭함)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4·3소설이 견지할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어머니가 심방이어서 ‘새끼 심방’으로도 불리던 그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결국 자신이 무병(巫病)을 앓고 있음을 깨닫고 20대 초반에 심방의 길로 들어선다. 4·3 희생자인 어머니의 무덤에서 무구(巫具)를 꺼내 “무도한 총탄에 죽고 간 설우신 어머님”(67면)을 위무하는 귀양풀이굿을 시작으로 심방이 되었지만, 금기였던 4·3 굿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876월항쟁 이후 달라진 세상을 맞았다. 그후부터 그는 4·3 원혼을 달래는 귀양풀이를 오백 집이나 다녔다.

1991년 봄에는 고2 남학생을 치유하는 굿을 하게 되었다. 학생은 날마다 야위어가고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울부짖는가 하면, 한밤중에 나갔다가 가시에 긁히고 옷이 찢긴 채로 새벽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굿이 진행되어 신칼을 휘두르며 잡귀를 쫓는 의식에 이르자 환자 학생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에 심방은 혼신을 다해 몰아붙이다가 “무자·기축년 4·3사태에 죽어가던 군졸”(73면)을 언급하는데, 학생이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더니 살려달라고 헐떡거렸다. 무섭게 압박해 들어가던 심방은 학생 몸에서 피 냄새와 살코기 타는 냄새를 맡는다. 그때 학생이 벌떡 일어나 낯선 얼굴로 말한다.

 

“난 무자년 시월 우리 마을 불탈 때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영혼이우다. 열일곱 어린 나이 외아들로 죽어 홀로 남은 어머님한테 제삿밥 얻어먹은 불효잡니다. 이제 무정세월 흘러 작년에 어머님마저 세상을 하직하시니 불쌍한 우리 두 모자 어디 가서 제삿밥 얻어먹으리오?”(73면)

 

어느 집 자손이냐고 심방이 다그치자 학생은 졸리다며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아침 가족들과 심방이 보는 가운데 눈을 뜬 학생은 동문시장 앞에서 웬 할머니에게 붙잡혀 17살 아들이 40년 전 사태 때 죽었다는 전언을 들은 적이 있음을 말한다. 그때부터 앓게 되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그 할머니의 정체가 확인된다. 외아들을 사태 때 잃고 79살까지 살다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봉산마을 사람이었다. 그 마을에서 70여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는데 아들은 거기서 죽고 그 여인은 시체더미를 헤치고 살아났다는 것이다.

학생이 귀신에 들린 주된 원인은 조부에게 있었다. 조부는 서북청년회 출신으로서 “피검자 가족을 건물 뒤로 끌고 가 목숨 값 흥정을 하던 사내”(76면)였다. 여자에다 점포까지 빼앗고는 지금껏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을 살리려면 원혼굿이 필요했다. 심방은 사흘거리 큰굿에 신명나게 놀았다. 막판에는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었다. 굿을 치른 후에 학생의 병은 큰 차도를 보였다.

심방은 4·3항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결코 눈감을 수 없어 허공중에 살아 있는”(79면) 원혼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원혼을 진혼하려면 온 마을 사람들이, 온 섬 백성이 한 자손 되어 한날한시에 합동으로 공개적으로 큰굿을 벌여야 옳다”(80면)고 주장한다. 그것은 형식적인 의례가 아니라 모든 진실이 밝혀져 진정으로 소통하는 어울림 마당을 의미한다. 기억을 낱낱이 소환해냄으로써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해원을 성사시키고, 그것을 계기로 사회정의가 구현되어야 비로소 상생하는 세상, 즉 ‘정의로운 평화’( just peace)4를 이뤄낼 수 있다는 메시지다.

「목마른 신들」은 서구적 리얼리즘의 관점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작품일 수도 있다. 40년 전의 죽음에 빙의하고 굿으로 아픔을 치유한다는 이야기는 서구식 합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작중의 상황과 비슷한 실제 사례는 제주에서 얼마든지 확인된다. 나아가 황석영의 『손님』(창작과비평사 2001)이나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 같은 작품에서 보듯, 이는 제주 밖에서도 두루 확인되는 현상인 만큼 더욱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공동체의 전통에 젖줄을 대면서 지역민의 세계관에 기인한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4·3항쟁의 의미를 훨씬 충격적이고 뚜렷하게 형상화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마지막 테우리」의 핵심 서사는 고순만 노인의 가슴 아픈 사연, 즉 늙은 내외와 손주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데 따른 죄의식이 현재적으로 생생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이는 4·3항쟁 당시의 학살 양상이 “골프장 만든다고 또 목장을 까발리는” 현실로 재연됨에 따라 “초원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는 포크레인 소리를 들으면서 노인은 자신의 몸속에서 들어오는 죽음의 진행이 느껴”(14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제주를 초토화한 항쟁의 진압 양상과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제주개발의 현실을 동일한 맥락으로 짚어냄으로써 역사적 상상력이 생태학적 상상력에 녹아들고 있다. 이는 에코토피아(ecotopia)의 세계를 넌지시 제시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오름 분화구의 동북쪽, 완만한 경사면에 납작 엎드린 옛무덤 하나, 마을 공동목장의 테우리 고순만 노인이 그 무덤가에 앉아 친구 오기를 기다렸다./ 야트막한 분화구는 말굽쇠 모양으로 서남 방향이 터져 있어, 일망무제로 퍼져 있는 초원과 크고 작은 오름의 무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무덤자리는 방목하는 소떼의 이동을 살피기 좋은 위치인 데다가 바람의지도 되어 그가 자주 찾는 장소였다. (…)/눈이 절로 스스로 감겼다. 분화구 안은 포근하여, 엷은 졸음 속에서 햇볕이 부드럽게 무릎을 감싸는 온기가 느껴졌다.(5~6면)

 

이러한 원초적 삶의 세계는 제주민중의 고향과 같다. 오름의 분화구는 자궁이고 인간은 자궁 속의 태아다. 테우리 노인은 소를 비롯하여 목장의 마른풀, 물매화, 도꼬마리, 도깨비바늘 등과 더불어 생명공동체를 이룬다.

제주민중은 원초적 삶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을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제주민중만이 아닌 보편적 인류의 지향점이다. 원초적 삶의 세계는 비록 과거의 것이었지만, 이 문명세계가 끝내 자멸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끌어안아야 할 세계다. 결국 4·3항쟁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에코토피아의 세계를 지향함을 현기영은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흔히 화해와 상생을 말하지만, 그것은 똑바로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용서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4·3항쟁의 진실을 제대로 말해야 한다. 「목마른 신들」에서 보여준 현기영의 새로운 리얼리즘은 대단히 유용한 진실 말하기의 방식이었다. 「마지막 테우리」에서는 제주공동체가 복원하고 지향해야 할 상생하는 삶의 모습, 즉 에코토피아 세상을 잘 보여줬다. 다만 그것들이 장편을 통해 좀더 입체적·본격적으로 제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5. ‘작은 섬’의 ‘큰 문학’을 위하여

 

4·3문학이 이제는 겨울의 희생담론에서 벗어나 봄의 항쟁담론을 주목해야 하는바, 앞에서 우리는 김석범과 현기영의 소설을 통해 적폐에 맞선 반제국주의 통일운동이자 주체적 삶을 위한 공동체 항쟁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문학화의 방식에서 미완의 혁명임을 선도적으로 드러내고 유의미한 장소성을 확보한 『화산도』,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회복과 지향의 대상으로서 에코토피아의 세계를 상정한 「마지막 테우리」의 차별성과 수월성을 조명했다.

현기영과 김석범은 4·3문학 1세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제 2세대, 3세대 작가들에 의해 4·3문학의 갱신과 도약이 이뤄져야 할 때다. 새 세대 작가가 짊어져야 할 촛불 이후의 4·3문학은 앞 세대의 성과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한편, 해방공간의 제주를 폭넓은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해석하면서 공동체의 자립과 평화의 연대를 도모하는 방식을 치열하게 탐색해야 한다. 말하자면 지역문학이나 국민국가문학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면서 월경(越境)하는 문학으로서의 독자적 위상을 당당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제주섬과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또는 세계와 만나는 가운데, 횡행하는 ‘제국의 폭력’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용의주도하게 형상화함으로써, 마침내 온전한 평화 세상에 도달하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동아시아의 ‘작은 섬’에서 분출된 4·3문학이 ‘큰 문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지구적 세계문학으로서 찬란히 빛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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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기영 소설은 『마지막 테우리』(창작과비평사 1994) 수록 단편들, 김석범 소설은 『화산도』(전12권, 김환기·김학동 옮김, 보고사 2015)를 텍스트로 삼는다. 아울러 이 글에는 필자의 논저 『4·3의 진실과 문학』(각 2003) 『기억의 현장과 재현의 언어』(각 2006) 『작은 섬, 큰 문학』(각 2017), 「4·3항쟁의 소설화 양상」(『제주작가』 2017년 가을호) 등에서 기왕에 논한 사항을 토대로 재구성하거나 고쳐 쓴 부분이 적잖음을 밝혀둔다.
  2. 김동현 「김석범 문학과 제주」, 고명철·김동윤·김동현 『제주, 화산도를 말한다』, 보고사 2017, 187면.
  3. 이방근의 혁명 도정을 ‘① 혁명 이전: 해방공간에 대한 인식 → ② 혁명과 대면: 혁명에 대한 냉정과 열정 → ③ 혁명의 현실적 패배: 허무 극복’으로 분석한 고명철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고명철 「해방공간, 미완의 혁명, 그리고 김석범의 『화산도』」, 같은 책 66~76면.
  4. 정주진 『평화를 보는 눈』, 개마고원 2015, 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