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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욱연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 중국 지성』, 서강대출판부 2017

비판적 중국학의 길에서 만난 ‘이중과제론’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사학과 교수 baik2385@hanmail.net

 

 

179_449개혁개방 이후 중국 지식인사회의 사상적 모색과 분화의 지형도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국내 연구자(조경란 이종민 전인갑 등)의 저서들이 최근 잇따라 간행되고 있다. 그중 중문학자 이욱연(李旭淵)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에 기반해 다양한 사조를 비평하면서 ‘비판적 중국학’의 길을 제시하고 있어 돋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족위기와 문명위기 극복 과정에서 서구중심주의와 중국중심주의라는 극단적인 인식이 반복적으로 출현한 것이 중국 근현대사상사의 줄기라고 말한다. 중국 역사학자 거 자오광(葛兆光)의 표현대로라면, 중국은 자기를 비춰 볼 타자라는 거울이 하나도 없는 ‘자아중심적 상상시대’를 거쳐, 거대한 타자인 서구라는 ‘하나의 거울만이 있는 시대’를 통과한 뒤, 이제는 ‘다양한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는 시대’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중국이 G2 대국으로 부상한 지금도 사상계는 중국 대 서구라는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양자를 균형있게 투시할 수 있는 매개항을 가지지 못한 형편이다. 바로 여기서 저자는 백낙청()이 제출한 ‘이중과제론’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차원’에서 중국사상계를 분석하고 평가할 이론체계로 주목한다.

그 시각에서 보면,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는 반중국 서구중심주의가 중국 지식인사회의 주류 담론이 되었던 ‘신계몽주의 시대’이다. 서구에 물신주의적으로 경도된 시대였기에 그들에게 서구와 근대화는 하나이고 전통 역시 단일한 봉건적인 것이었다. 그때의 쟁점은 ‘현대화’였다.

1993년 장 쩌민(江澤民) 체제 등장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로 들어간다. 현대화 추세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면서 중국 지식인사회는 서구에 대한 물신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쟁점은 ‘현대성’이었다. 현대성의 본질을 질문하면서 현대성 자체에 대한 비판적 질문과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당시 논의는 서구와 중국이라는 이분법을 그대로 둔 채 그 위계질서를 전도시켜 중국 중심으로 복원시킬 따름이었다. 그 시기에 신계몽주의의 현대화 논리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담론으로 표출되어 새로운 체제이데올로기로 작동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급격한 현대화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깨지면서 비판적 인식이 등장함으로써 신계몽주의 대오가 분화되었다. 잘 알려진 신좌파와 자유주의자의 대립이다.

그에 이은 ‘G2시대’, 곧 후 진타오(胡錦濤) 시대(2003~13)와 시 진핑(習近平) 시대(2013~ )에는 ‘중국’中國性 재발견과 재구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유교, 천하주의 및 조공체제 같은 유산이 정체성 재구성의 자원으로 동원된다. 그 특징은 서구근대를 보편으로 상정하는 보편론의 이론적 토대를 해체하는 작업과 중국을 문명국가로 재발견하는 두가지 작업으로 집중된다. 문명국가 담론이 확산되면서 이와 더불어 국가주의 역시 확산되었고, 문명국가를 실현할 주체로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역할이 재발견된다.

이처럼 복잡다기한 지적 경향 간의 차이와 문제점을 간결하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더 세부적인 내용은 직접 읽어보길 권하면서, 평자는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중국론의 핵심을 짚어보기로 한다.

중국의 자유주의자와 신좌파의 대립 구도는 여러 나라 중국학계의 중국인식에 영향을 미쳐 논쟁을 일으키기에 그에 대한 저자의 입장에 초점을 두는 것은 효과적일 터이다. 저자의 입장은 각 대표자에 대한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역사학자 쉬 지린(許紀霖)이 다른 중국 자유주의자 지식인에 비해 ‘진보적이고 건강하나’ 그의 사고는 ‘자유주의의 극한에 서 있지만 자유주의를 넘어서지는 않고 있다’(230면)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의 쇄신’을 요구하는데, 그 방향은 신좌파에 근접할 것을 요청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실 저자는 신좌파의 대표 격으로 일찍이 ‘반현대성적 현대성’을 제기한 왕 후이(汪暉)를 ‘근대 이중과제론의 문제의식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한다. 심지어 2000년대 들어와 신좌파 내부의 분화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중국 현대문학 연구자 첸 리췬(錢立群)이 아닌 왕 후이에게 지지를 보낸다. 첸은 자유주의의 입장으로 기울었으나, 왕은 전형적인 신좌파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잘라 말한다. 왜냐하면 첸은 인민민주주의보다는 계몽주의적 엘리트주의에 기울었는데, 왕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근대체제의 극복을 염두에 두고 마오 사회주의 시대의 대중노선과 인민민주주의를 재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왕 후이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적 근대의 인식에서 “근대적응에 대한 지적·실천적 관심은 부족하고 근대비판에 대한 지적·실천적 관심은 넘치는 점”이 왕의 한계(251면)라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의 중국학계가 서구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과도하게 신좌파에게 의미 부여한 문제를 개괄적으로 서술하지 왕 후이를 특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왕 후이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체제이데올로기와 만날 수 있는 측면, 조공체제에 상호인정과 상호존중의 평등한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측면, 그리고 미국 중심의 서구 근대 제국주의 정치질서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비판에 과잉 경도된 나머지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해체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복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한다.

얼핏 보면 왕 후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4장)과 비판하는 대목(5장)이 다소 충돌하는 듯한데, 그것이 발표 시점이 서로 다른 글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인지, 달리 말하면 비교적 늦게 발표된 5장 즉 이중과제론과 비판적 중국학의 문제의식이 그전에 발표한 글들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이것은 평자의 오해이기 쉬운데, 그같은 독자의 염려를 불식하려면 추상 수준이 높은 이중과제론을 중국에 적용할 때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의 과제가 절충주의로 전락하지 않고 ‘단일한 기획’(project)임을 밀고 나가려면 고도의 지적 긴장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고정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도록 가차없이 부정 작업을 계속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근대극복을 제대로 달성하려면 그에 걸맞은 근대적응이 필요하므로 근대성의 중요한 지표 가운데 성취할 만한 특성은 성취하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배격하면서 성취와 부정을 겸하는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좀더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중국 안팎에서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교차하는 대상인 왕 후이가 중시하는 중립적 국가(中性國家)와 당의 자기교정 능력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그 근거인 민주적 요소와 잠재력, 즉 지식인사회의 공론과 당내 이론투쟁 및 노선투쟁이 (신자유주의가 조성한 탈정치화된 정치상황에서) 인민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형식을 창조하는 것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논란의 핵심이므로 동아시아에서 이뤄지는 논쟁의 내용과 효과를 염두에 두고 엄밀하게 추궁해볼 필요가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왕 후이가 기대는 마오가 소홀했던 근대적응의 여러 과제도 좀더 날카롭게 천착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의 역사적·사상적 경험을 중간고리로 삼아봄직하다. 예컨대 촛불혁명에서 분출된 새로운 민주주의 경험(을 낳은 한국사의 축적과 그 미래 전망)을 중국인의 그것과 상호대조해보는 것이다. 그럴 때 ‘보편적(즉 지구적) 보편주의’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저자도 알고 있듯이, 이중과제론의 시각에서 “중국에 적극 개입하는 일”과 “한국사회에 보다 적극 개입하는 일은 둘이 아니라 하나”(254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 중국학의 길을 닦는 태도 아닌가.(비판적 중국학에 대해서는 평자와 이남주의 관련 글에 대해 언급한 242~46면 참조)

이 길에 이미 들어선 저자가 ‘이중과제론’의 미덕을 체감한 만큼 왕 후이를 비롯한 당대 중국사상계의 지적 작업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저자의 글을 더 기대해본다. 물론 그는 앞으로 루쉰(魯迅)을 비롯한 문학 텍스트 연구에 진력하겠다고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지만, 중국 근대 성립기 루쉰의 문명관에 드러난 근대인식의 복합적 성격(取今復古 別立新宗)을 본격적으로 분석한다면 그것 역시 왕 후이 등에 대한 분석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체계적이고 역사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이중과제론’의 지구적 적용 가능성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