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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현실과 소설의 현실
김이설 장편소설 『환영』
김나영 金娜詠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신(新)자궁에 흐르는 세 혈맥(血脈)」 등이 있음. kfbs4@naver.com
경제성장률이나 환율 따위로 제시되는 현재의 지표가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부를 것이다. 대부분에게 현실은 구체적 삶의 다른 이름이다. 현실은 대개 단위시간 동안의 노동과 그 노동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체감된다. 반면, 현실의 무수한 조건들을 반영하되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내는 이야기로서의 글쓰기가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소설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때 소설의 장치들은 현실에 가상이라는 허울을 덧씌우는 일을 감행한다. 그러한 시도만이 소설과 현실(혹은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할 수 있게 하며, 결과적으로 소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김이설(金異設)의 소설은 고단한 현실을 다루는 일에 집요하다. 현실의 일부를 가상으로 변형하는 대신 현실의 허울을 벗겨 날것 그대로의 삶을 복원하는 그녀의 글쓰기는 현실과 소설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때 소설은 사실과 허구 중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양쪽 모두 개연성을 의심하게 하는 것, 애초에 그것이 소설의 역할이 아니었는가.
김이설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환영』(자음과모음 2011)에는 윤택하고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 가난과 불륜으로 점철된 현실 묘사는 작가의 관심이 사회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사이에 가로놓여 있음을 드러내면서도, 이 소설을 묘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만든다. 정치적인 것은 드러내고자 할 때 감추어지고 감추고자 할 때 드러난다는 점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만 겨우 공유될 수 있다고 한다면, 김이설 소설의 정치성은 그 경계지점을 끈질기게 노려보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주인공 윤영은 가난한 가정에서 장녀로 나고 자란 여자이며, 고시원에서 만난 남편과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아 역시 가난한 가정을 이룬다. 지하방 전세금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윤영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끝내 윤영은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몸을 파는 일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노동이지만, 엄마와 아내로서의 윤리를 포기하는 일탈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일과 일탈 사이에서의 몸부림은 윤영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 위태로워 보이지만, 끝내 윤영은 “처음에는 큰일 나는 것처럼 펄쩍 뛰었지만, 언제부턴가는 따따블이면 못할 것도 없죠, 하고 웃”어 넘기며 자신의 변화에 태연해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태연함이 초래하는 낯선 기운이야말로, 가혹한 현실을 계절을 겪듯 초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야말로 누구나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 아니겠는가.
『환영』은 일면 단순한 플롯과 스토리 때문에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전반에 깔린 자책과 원망은 끝내 거대한 고통으로 흘러 삶을 집어삼킬 것 같은 위태로움으로 형상화된다. 고통에도 우선순위나 가치가 매겨지는가. 이렇게 되묻는 듯한 윤영의 일상화된 고통은 소설과 현실의 삶을 교통하게 하면서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을 교란하고, 끝내 소설이 현실에 응답하는 방법이란 안주하는 삶을 계속해서 뒤척이고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기대할 만한 변화 역시 삶에 대한 갈급함 속에서 의도치 않게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려고?”라는 윤영의 질문에 중국에서 온 식당 동료 용선은 “사람대접 받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윤영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렸고, 용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려 한다. 이 대목에서 윤영은 문득 제 삶의 함정을 감지한다. 그것은 매일 윤영이 식당으로 가기 위해 통과하던 시・도 경계 표지판의 이면에 쓰여 있을 환영(歡迎)에의 느낌이다. 그날 윤영은 왕백숙집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윤영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다른 삶의 기미를 맛본 윤영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온도와 빛깔을 띠고 흘러갈 것이다.
김이설의 소설은 지독하리만큼 냉담한 눈으로 오염된 삶의 물줄기를 지켜보는 중이다. 그 시선은 문학적 행위가 사회적인 관심으로 발하고 사회적인 관심이 문학적 행위로 화할 때 생겨나는 다른 현실로서의 소설을 주시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작가가 노렸을 법한 과도한 현실적 소설은 미만(彌滿)한 소설적 현실의 환영(幻影)들로 언제든 되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