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서영 朴書瑩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1996년생.
westyeong@daum.net
윈드밀
현수막에 적혀 있던 철자가 현대였는지 혼다였는지, 혼타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맨 앞의 알파벳이 H였다는 정도다. 브랜드 로고 있잖아. 그런 건 못 봤어? 응, 못 봤어. 혼타는 그러면서 그곳에 배치돼 있던 자동차들을 설명했다. 세단, SUV, 해치백, 스포츠카…… 처음 보는 자동차 앞에서 레이싱 누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어. 무대는 그 가운데에 있었고. 혼타는 무대에 올라가 음악에 맞춰 헤드스핀과 나이키를 추고 환호를 받았다. 무대를 마친 뒤 관계자에게 받은 돈 봉투는 여태껏 받았던 것 중에 가장 두꺼웠다. 본명으로 활동하다가 대뜸 혼타라는 가명을 쓰게 된 것도 그때 느낀 일종의 감동 때문이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해서 혼다 광고모델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대놓고 혼다라고 지으면 너무 아부 같으니까 혼타,라고 중얼거리다가, 어쨌든 현대도 외국인들이 발음하면 혼타 아니야?라고 억지를 부린다. 뭐, 혼타든 혼태든 상관은 없다. 이제 혼타라는 명칭은 행사판 저변에서 춤 잘 추는 비보이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고, 그 덕분에 저렴하게나마 러브콜이 끊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혼타는 전국 단위로 행사를 다니고 나는 컵밥 장사를 한다. 혼타가 축제장에서 열심히 춤을 추는 동안 나는 그 도시의 번화가에서 푸드트럭 문을 연다. 행사가 끝날 시간이 되면 트럭을 몰고 혼타를 데리러 간다. 여자애들이 싸인을 받기 위해 종이를 들고 줄 서 있는 것을 본다. 작은 키에 펑퍼짐한 콧잔등, 쭉 째진 눈과 얼룩한 주근깨를 가졌는데도 팬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춤만은 날렵하게 잘 추는 모양이다. 혼타는 보조석에 타서 종이에 일일이 싸인을 해주고 창밖을 향해 손 인사를 한다. 여자애들에겐 트럭이 곧 밴으로, 내가 매니저로 보일 것이다. 싸인을 끝내고 혼타는 내게 자신이 현장에서 어떤 음악으로 어떤 춤을 췄는지 말해준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정작 혼타의 춤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혼타의 춤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없이 지역 도매상에서 재료를 사고 손질하고 장사를 하고 또 모자란 수면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혼타의 춤을 매일 상상하기만 한다. 백드롭이라든가 핸드스프링, 텀블링, 가볍고 민첩한 풋워크까지…… 이름만 듣고 본 적은 없는 기술들이 매일 머릿속에서 기이한 모양으로 재생된다. 그중에서 가장 연상되지 않는 기술은 윈드밀이다. 땅에 손을 놓고 다리를 허공에 올린 다음 원을 돌며 뱅글뱅글 도는 기술이라는데, 아무리 들어도 어떤 포즈인지 가늠되지가 않는다.
윈드밀만큼 쉬우면서도 화려한 기술은 없어. 동작이 큰 파워무브 중에서도 가장 기초로 꼽히곤 하지. 그래서 쉽게 도전했다가 다치는 사람들도 많고. 다들 기초라고 하면 준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런 건 절대로 아닌데. 왜, 복싱할 때도 잽 날리기 전에 줄넘기부터 시키잖아. 사실 잽 한번 날리는 것보다 줄넘기 천개가 더 힘든데 말이야. 하여튼, 윈드밀을 하기 위해선 적당한 체력과 균형 잡힌 힘, 다리의 유연성이 반드시 받쳐줘야 해. 평소에 체력운동도 하고 체조도 해야 한단 소리지. 내가 저번에 말한 기술 기억 나? 한쪽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올리는. 프리즈 말이야! 그새 까먹었어? 좀 귀담아 들어봐. 아무튼 프리즈를 한 상태에서 바닥에 누워. 물론 허리와 다리는 그대로 허공에 띄워져 있어야 해. 그냥 어깨만 바닥에 눕듯이 하는 거야. 이제 몸을 꺾어야 하는데, 다리의 힘이 아닌 어깨와 허리의 힘을 써야 해. 머리? 아아, 맞다. 머리는 최대한 땅에 붙이고 있어야 해. 머리를 고정시키지 않으면 몸이 다른 곳으로 움직일 테니까. 꼭 옆구르기 하는 것처럼 말야. 이렇게 허리반동으로 몸을 돌리는 거, 이게 윈드밀이야. 무릎 절대 붙이면 안 돼. 다리 물론 아프지. 계속 찢고 있어야 하니까. 아까 말했잖아. 다리 유연성 중요하다고. 처음이 힘들지, 하다보면 제일 쉬운 게 윈드밀이야. 기초로 꼽히는 기술치고는 무척 화려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기에도 요긴하지. 그렇다고 아스팔트같이 까칠까칠한 땅에서 하면 안 된다. 살갗 다 까져. 정수리는 말할 것도 없고.
골자는 한 위치에서 하염없이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윈드밀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둥그렇게 세워진 도미노를 떠올리게 된다. 손가락으로 툭 건들면 도미노는 세워진 모양 그대로 넘어진다. 다른 곳으로 이탈하거나 증발하지 않는다. 중간에 끊긴다 하더라도 잠시다. 조각 위치를 살짝 옮기면 된다. 모든 대소사가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행해진다.
혼타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곳은 일산이다. 반면 내 기억엔 일산에서 혼타를 만난 적이 없다.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인 채로 김치 볶고 쌀 안치고 잔돈 거슬러 주다보면 누군가의 얼굴 따위 뒤돌아서는 순간 잊히기 마련이다. 네가 파는 컵밥은 이름이 없어서 신기했어. 보통 자기 브랜드랍시고 이름을 짓곤 하잖아? 혼타는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내게서 이천원짜리 컵밥을 하나 사서 선 채로 다 먹고 쓰레기까지 버리고 갔다고 한다. 컵밥을 기다리는 줄이 길던 것도 아닐 텐데, 정신없이 조리대를 치우고 돈을 계산했던 모양인지 나는 그날의 혼타를 기억하지 못한다.
두번째 만남은 여주에서였다. 행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가던 혼타는 도로변에 멀뚱히 정차해 있는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이날의 만남은 나도 기억한다. 시가지로 가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휴게소 근처로 가려니 불법 장사 광고하는 꼴이라 그곳에 세우긴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혼타는 일산에서 나를 봤다며 알은체를 해왔다.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다며 컵밥 하나 달라고 했다. 참치김치덮밥 같은, 뭐 그런 이름도 없이 그냥 컵밥인 요리. 나는 종이용기에 밥을 담고 참치에 볶음김치를 얹어서 간장과 김가루를 뿌렸다. 혼타가 컵밥을 받아들면서 왜 트럭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야, 지금 불법으로 장사 중이니까. 그러나 함구했다. 일종의 영업 비밀이었다. 건조하게 손바닥을 내밀며 이천원이라고만 대답했다.
내가 혼타의 얼굴을 외운 건 제천에서였다. 그날은 우리가 함께 다니기로 결정한 날이기도 하다. 정착할 곳 없이 빙빙 도는 푸드트럭. 그저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다시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행로. 그 중간에서 혼타는 벌써 세번째로 만난다며 내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자신이 무슨 행사를 하다가 왔는지도 얘기했다. 그때는 나도 여주에서 본 지 며칠 만에 또 만난 걸 신기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그렇네요, 와아, 하고 성의껏 대답했다. 혼타는 컵밥 하나를 주문했고 나는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기에 밥을 담으면서 흘깃흘깃 혼타를 관찰했다. 흑인 얼굴이 프린트돼 있는 검은 티셔츠, 소매 밑으로 보이는 다부진 팔, 통이 넓은 칠부 바지, 팔과 달리 삐쩍 말라서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종아리. 주변 풍경을 구경하던 혼타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혼타가 이천원을 건넸다. 앞으로 빠져나오는 내 손을 보고 혼타는,
어? 손가락.
악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칼에 베인 건지, 검지에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피를 빨아 삼켰다. 휴지로 상처 난 부분을 돌돌 감싸 말았다. 원래 이래요. 대답은 초연하게 했지만 실은 혼타의 말이 칼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손이 아니라 마음이 그랬다. 정말로 손가락은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다시 칼질을 했다. 혼타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손가락의 신경이 죽은 건 혼타와 일산에서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혼타 때문에 손가락이 죽은 것 같은데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하필이면, 운이 없게도 푸드트럭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종종 트럭과 대학 사이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분노를 조준할지 고민한다. 그 안의 사람이 부서졌는데도 유리창만 깨졌을 뿐 내부는 전혀 망가지지 않은 트럭이 문제인가, 아니면 내게 조금의 유예기간도 주지 않고 다른 학생을 받은 대학이 문제인가. 트럭은 죽은 아빠가 내게 남겨준 유일한 재산이었다. 영업신고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업체로 인정된다는 게 입학처 직원의 설명이었다. 예. 그래서 나오는 장학금은 이게 다예요. 수화기 저편의 직원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등록금을 채우기엔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 트럭은 내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원인이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이거라도 몰기로 결심했다. 나라에서 준 보험금으로 트럭 주방을 고치고 유리창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그리고 운전면허 1종 보통을 따서 핸들을 잡았다.
아빠는 재료를 사러 도매상에 다녀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새벽같이 뛰쳐나가 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다리가 두동강 나고 척추뼈가 다 깨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얼굴 한쪽은 함몰돼 있었는데 그 안의 피가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몸이 부서진 상태에서도 아빠는 의식을 붙잡고 방언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눈을 감은 건 그러고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너무 이른 시기였다.
나는 아빠의 생전 하루를 따라했다. 축제 일정을 미리 찾아놓고 구청에 영업신고를 했다. 그러면 구청에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정해줬는데 매번 축제장 뒤편 구석이었다. 사람만 기다리다가 하루가 지났다. 이럴 때 아빠는 번화가로 가서 삼십분만 정차해놓고 장사를 더 했던 게 떠올랐다. 나도 똑같이 했다. 한참 컵밥을 만들다가 경찰차가 보이면 바로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다른 장소를 찾아 빙빙 돌았다. 넓은 땅과 수많은 건물들 중에 내가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은 단 한평도 없었다. 바퀴 달린 게르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푸드트럭은 가보라면 가보였다. 그렇다고 내 손가락보다 더 중요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푸드트럭은 정비소에 가서 고칠 수 있고, 또 그게 안 되면 새로 살 기회라도 있지만, 손가락은 한번 잘리기라도 하면 고치기도 힘들고 새로 살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막상 손가락이 망가지던 순간에 푸드트럭을 선택했다. 신월동이었던가 신정동이었던가, 하여튼 양천 어딘가에서 장사를 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줄 선 사람들이 많았고, 주문에 맞춰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급하게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어버린 건 순식간이었다. 내가 썬 건 재료만이 아니었다. 놀라서 손가락을 들어보니 살이 깊숙이 파여서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다. 핏방울이 도마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휴지로 손가락을 대충 아무렇게나 감싼 뒤 다른 쪽 손으로 칼질을 했다. 아프다고 해서 트럭과 사람들을 두고 무작정 병원에 갈 순 없었다. 그러나 통증이 자꾸만 머리 위까지 올라와 눈이 시렸다. 살점이 덜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소름이 끼쳤다. 결국 트럭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손가락은 이미 괴사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였다. 붙일 수는 있지만 신경은 살릴 수 없다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나는 칼질해서 번 돈으로 칼질로 망가진 손가락의 사망을 확인하는 데에 썼다. 그때 참은 고통을 뒤늦게야 앓는다.
현금인출기는 우리가 갔던 식당과 모텔과 편의점의 이름을 토해낸다. 나는 뜨거운 통장을 받아들고 은행에서 나온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이제 좀 아껴야겠다는 얘기부터 한다. 보조석에 앉아서 스냅백을 이리저리 써보던 혼타가 볼멘소리를 한다. 충분히 아끼고 있었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렇지. 나는 통장을 펼쳐 보인다. 이렇게 기록이 많은데도 아끼고 있었다니? 혼타는 스냅백을 벗고 통장에 적힌 기록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 읽는다. 배고파서 피자 시켜 먹고 세계맥주 네개에 만원 한다기에 그거 사고 휴대용 치약 없어서 두개 사고 언제까지 못생긴 양말 신을 수 없어서 무색 양말 몇켤레 산 것밖에 없잖아. 많이 산 거라고 해봐야 도매상에 가서 재료 몇묶음 산 게 다야. 나는 혼타가 읽지 않은 부분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거, 영화관. 네가 가자고 해서 갔잖아. 그러자 혼타는 어깨를 으쓱한다. 영화까지 안 보면 무슨 낙으로 사냐? 나는 혼타를 노려보다가 백미러에 비치는 경찰차를 발견하고 시선을 거둔다. 티켓값이 너무 비싸잖아. 그렇게 말하며 시동을 걸고 기어를 올린다. 트럭이 도시를 벗어나는 동안 가만히 있던 혼타는 내게 핀잔을 준다. 넌 숫자 불리는 재미밖에 모르는 애라서 그래. 그러나 정작 나는 숫자를 제대로 불려본 적도 없다. 컵밥 하나 팔면 천원 남는 주제에 불법 딱지 피하느라 기름값 쓰며 도망치는 생활에서, 건질 수 있는 재미라곤 먹고 자는 것밖에 없다. 기댈 수 있는 것은 막연한 미래뿐이다. 내가 지나는 길은 복잡하지만 지루하다.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톨게이트 하나를 지난다. 통행료를 내는 그 순간 귓가에 쨍그랑, 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돈이 빠져나갈 때를 상징하는 나만의 효과음. 그러나 얹힌 속처럼 꽉 막힌 교통체증을 보는 순간 통행료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다. 이때부터는 오롯이 기름값에 대한 근심뿐이다. 혼타는 그것도 모르고 콧노래만 부르고 앉아 있다. 그러더니 창문을 열어 불쑥 고개를 내민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다.
“도로변 어딘가에 우리 엄마가 있을 것만 같아.”
엄마? 나는 혼타를 바라본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가위처럼 날카롭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엄마가 고속도로에서 뻥튀기 장사를 했거든.”
혼타는 엉킨 실을 풀듯 엄마에 대한 기억을 꺼낸다. 꽃무늬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양손에 뻥튀기를 든 채 이리저리 흔들던 엄마. 엄마는 밑창이 다 닳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껌을 찍찍 씹으면서 뻥튀기 오징어를 외쳤다. 혼타가 기억하는 당시의 고속도로는 지금처럼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고 차가 간헐적으로 쌩쌩 달리는 현장이었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던지, 보고 있자면 조금 무서울 정도였어. 막 나한테 돌진할 것 같은 거야. 어린 혼타는 우두커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엄마가 손에 쥐여준 뻥튀기를 뜯어 먹었다. 도로에 나가 있던 엄마는 뒤돌아 걸어와서 껌을 뱉고 담배를 꺼냈다. 가스레인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도 빨고 싶어? 무신경한 어투로 물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혼타를 아프지 않게 손바닥으로 툭 쳤다. 어린게 까불고 있어. 그러고는 가만히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혼타의 말에 따르자면 그것은 춤에 집중한 비보이와 견줄 수준의 굉장한 집중력이었다. 연달아 줄담배를 피워내는 동안 정면 아닌 다른 쪽으로는 절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엄마는 발치에 꽁초가 수북해진 후에야 혼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뻥튀기 사가는 사람이 없다. 학원에서 춤 배운 거 보여줘봐.
혼타는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바닥을 땅에 대고 다리를 위로 찢어 프리즈를 했다. 햇볕을 받아 뜨겁게 발열된 콘크리트의 온도가 손바닥을 확 뒤덮었다. 손을 본능적으로 살짝 뗐다. 엄마가 뒤에서 박수를 쳤다. 거기서 멈추지 말란 듯이. 혼타는 결국 느리게 윈드밀을 하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혼타만이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땀을 흘렸다.
“엄마는 춤을 추면 사람들이 뻥튀기를 많이 사갈 줄 알았나봐. 내가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마른세수를 한다.
“엄마는 아직도 뻥튀기 장사하셔?”
“아니. 지금은 집에서 그냥 텔레비전만 봐.”
“도로변에 엄마가 있을 것 같다며.”
“그건 그냥 오래전 기억에서 새어나온 향수일 뿐이지.”
혼타는 양손에 깍지를 끼고 뒤통수에 갖다 댄다.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난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게 아니야. 내가 하는 건 예술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핸들을 툭툭 건드린다. 트럭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춤춰서 돈 버는 주제에 뭐라는 거야.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다만 사는 데 돈이 필요할 뿐이야. 이윽고 잠에 든다. 사위가 조용해진다. 도로를 빼곡하게 채운 자동차들의 바퀴 움직이는 소리만이 미세하게 들린다.
나도 다시 지루해진다.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뗐다가 밟았다가 뗀다. 트럭의 총 이동거리는 서울과 부산을 천번도 넘게 왕복한 수치다. 이 중에서 내가 이동한 거리도 아마 십만 킬로미터는 훌쩍 넘을 테다. 그러나 이동하는 거리가 길다고 해서 멀리 가는 인생인 것만은 아니다. 전봇대 위로 올라간 수리공이 땅을 웃는 얼굴로 내려다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런 때의 고도는 오히려 높을수록 불리하게 작용한다.
나는 손을 뻗어 혼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땀에 젖어서 축축하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다. 기름값은? 아, 몰라. 쟤 더운 게 먼저야. 귓가에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 난다.
혼타를 행사장에 데려다주고 난 뒤 지정된 구역에 트럭을 세운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축제장 뒤편 구석이다. 컵밥 여섯개를 미리 만드는 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다른 트럭들도 모기 잡는 데에 시간을 보낸다. 뚱뚱한 쓰레기차만이 검은 매연을 남기고 지나간다. 미리 만들어놓은 컵밥 위에 검은 재가 내려앉는다.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온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저어 매연을 쫓는다. 구부렸던 허리를 편다. 여기서는 장사 못하겠다. 운전석에 올라타 핸들을 돌린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거리에 와서 트럭을 세워놓는다. 작은 창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바깥에 경찰이 있는지 살펴본다. 없다. 앞치마를 메고 비닐장갑을 낀다. 트럭 문을 열자 아래에 그늘이 생긴다. 종이용기 세트의 포장 비닐을 뜯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앞에 줄을 선다. 나는 다시 바빠진다. 용기를 세개씩 꺼낸다. 짬짬이 밥을 새로 안치고 김치를 볶고 참치 캔을 뜯는다.
저기요. 앞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고개를 든다. 처음 보는 남자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있다. 무스 칠을 한 건지 머리가 반질반질하다. 지금 이거 허락받고 하시는 거예요? 비닐을 뜯던 내 손이 조금 엇나간다. 나는 손으로 콧등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자기 뒤편에 있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가 여기 주인이거든요. 건물은 3층 규모의 빌딩이다. 남자는 양미간을 찌푸린다. 이런 거 불법이에요. 남의 땅에서 뭐하는 거예요, 지금. 컵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와 남자를 번갈아 쳐다본다. 나는 눈알만 초조하게 굴린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등줄기 위로 땀방울이 쭉 미끄러지는 게 느껴진다. 아뇨, 허가를 아예 안 받은 건 아니고 제가…… 남자가 내 말을 끊는다. 장사하는 건물 앞에서 이러면 곤란하지. 얘기 들은 적도 없는데. 어느새 말을 놓고 있다.
남자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온다. 잠깐만 기다려봐. 남자는 전화를 받으면서 뒤돌아 걸어간다. 나는 급하게 짐칸에서 내려와 트럭 문을 닫는다. 주위를 살필 틈도 없이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건다. 백미러를 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남자가 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나는 기어를 넣고 액셀을 콱 밟아버린다. 트럭이 지체하지 않고 발진한다. 남자가 뒤에서 쫓아온다. 나는 무작정 직진한다. 백미러를 본다. 그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점이 되어 없어진다. 액셀에서 발을 뗀다. 창밖으로는 궁벽한 도시 외곽이다. 급하게 달려오는 동안 짐칸의 음식들이 난잡하게 흩어졌을 것이다. 잘한 것도 없는데 억울해진다. 울어버릴까.
그러나 터지는 건 내 울음이 아니라 타이어다. 난데없이 밑에서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좌석이 살짝 내려간다. 트럭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어이가 없다. 씨발. 몇번 액셀을 밟아보아도 빨라지지가 않는다. 핸들을 주먹으로 세게 친다. 경적이 날카롭게 울린다.
혼타와 나는 간만에 둘 다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다. 보통은 나만 누워 있고 혼타는 쌩쌩하게 움직인다. 모텔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질려버리면 텔레비전을 켠다. 성인 채널을 틀어놓고서는 내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한다. 저런 걸론 서지도 않아. 파김치처럼 맥이 빠져서 누워 있는 내게 기어온다. 내 다섯 손가락을 본인의 음경에 갖다 댄다. 나는 손가락만 살살 움직여준다. 이 별것 아닌 애무에 혼타의 음경은 금세 부풀어 오른다. 그때부터 혼타는 얼른 박아버리고 싶어서 엉덩이를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해도 돼? 해도 돼. 나는 하품을 하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굳이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혼타는 스스로 콘돔을 낀다. 내 손을 잡아서 콘돔의 감촉을 확인시킨 뒤 음경을 천천히 넣는다. 잠시 뒤 위에서 열심히 움직인다. 나는 그 밑에서 산송장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다. 만지는 것도 빠는 것도 모두 다 혼타의 몫이다. 너는 안 느껴져? 혼타는 묻는다. 안 느껴져. 나는 대답한다. 우리는 잘 안 맞는 걸까? 또 혼타의 질문. 몰라. 그냥 난 너무 피곤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도매상에 가야 하기도 하고. 피로에 찌든 나의 목소리. 혼타는 시뻘건 얼굴로 끙끙대다가 음경을 빼낸다. 발기한 상태 그대로인 그것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가 혼자 수음을 한다. 다 싸고 나와서는 내 옆에 눕는다. 신경이 죽은 손가락을 고양이처럼 핥아주다가 잠에 든다.
그러나 오늘은 혼타도 춤을 추다 말고 잘못 착지했는지 허리에 시퍼런 멍을 새기고 와선 통 움직이질 않는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혼타에게 몸을 뒤집으라고 한다. 혼타는 몸을 뒤집는다.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멍을 쓸어본다. 혼타의 허리가 움찔거린다. 윈드밀은 못하겠네. 넌지시 내가 중얼거린다. 혼타는 대답이 없다. 다리 힘이 아니라 허리 힘으로 하는 기술이라며. 덧붙이는 내 목소리에도 혼타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너만 우울한 거 아냐. 나도 타이어 펑크 났어.”
나는 옆에 풀썩 눕는다. 침대 스프링이 출렁거린다. 건물주한테 걸려서 한참을 도망쳤다고. 혼타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기분 상한다. 나는 혼타를 등져버린다. 이불 시트를 의미없이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장사가 잘될 줄 알았어. 근데 재수 없게 걸린 거지. 또 그놈의 남의 땅 때문에. 트럭 짐칸은 아직도 열어보지 못했어. 온갖 재료가 뒤섞인 그 모습을 보기가 두려워서. 내일 우리가 이 도시를 떠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음 행사지로 갈 수 있을까. 난 걱정돼.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아마 멀리 가지 못할 것 같거든.”
한참을 떠들다가 입을 꾹 다문다. 혓바닥에 맴도는, 그래서 가장 뜨거운 말은 억지로 삼킨다.
달리지 못하는 트럭은 필요 없다면서, 네가 떠나버리면 어쩌지.
혼타가 나를 떠난다면 그건 혼타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극장에서 돈 주고 영화를 보는 혼타의 취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 하루쯤은 조금 비싸더라도 모텔이 아닌 호텔에서 자자는 혼타의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자는 혼타를 향해 남아도는 게 컵밥이라고 핀잔을 주는 나.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장사만을 위한 계획표가 설계되어 있다. 몇시에 도매상에 가고 몇시에 청소하고 몇시에 재료손질을 해서 몇시까지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지이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혼타와 껴안고 뽀뽀하고 섹스하려 하지 않는다. 내 계획표에 그런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만일 혼타와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작은 변수에 불과하다.
내가 혼타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듯 혼타도 나의 강령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바꾸기 위해 강압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만은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것이 꼭 나를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게 없도록 미리 깔아두는 밑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 혼타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주는 연습을 한다. 하도 읊조려서 외워버린 대사와 후회도 설움도 없는 덤덤한 표정. 이게 연습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다가 깬다. 예고된 슬픔이라고 해서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섹스는 내가 설계한 계획표의 오차범위에 들어가지만 이별은 오차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방금도 혼타를 배웅해주는 꿈을 꾸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울다가 눈을 뜬다. 커튼이 빼곡하게 쳐져 있어서 사방이 깜깜하다. 바깥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본다. 혼타가 없다. 잡히는 것은 핸드폰이다. 전원을 켠다. 어두운 방 안에 핸드폰 빛이 뿌옇게 퍼진다. 눈이 시리다. 미간을 찌푸리고 핸드폰 액정에 뜨는 글자를 읽는다. 이 도시의 대학병원으로 데리러 오라는 혼타의 문자다.
혼타는 응급실 앞에서 허리를 숙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다가가서 혼타의 팔을 내 어깨에 두른다. 한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 옆에서 신음한다. 안 되겠다. 나는 어깨에 둘러진 팔을 빼낸다. 앞에 쭈그려 앉는다. 업혀. 망설이는 모양인지 뒤에서는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업히라니까. 목소리를 높이자 나지막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었어. 내 등에 몸을 기댄다. 나는 일어서서 두 다리를 팔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주차장까지 걸어간다.
트럭 보조석 문을 연다. 혼타는 올라타는 내내 앓는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혼타의 옷을 걷어 올린다. 푸르스름했던 멍이 붉게 변해 있다. 혼타는 오른쪽 어깨를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고 푸념한다. 엑스레이만 찍고 나왔어. 척추에 금이 간 것 같대. 몇번 척추 몇번 척추 하는데 자세히는 기억 안 나. 엠알아이 찍어야 알 수 있다는데 그건 또 입원해야 한다잖아. 가뜩이나 검사비용도 비싸던데. 나는 걷어 올렸던 옷을 내린다. 찍으면 되잖아, 엠알아이. 내 대답에 놀란 듯 움찔한다. 고개를 돌려 나를 멍하게 쳐다보더니 얼굴을 양옆으로 젓는다. 창문을 톡톡, 두들긴다.
“나랑 미국에 가자. 지금 당장.”
뜬금없다. 미국?
“응. 미국.”
그러더니 주차장에 나열돼 있는 차들을 가리킨다. 저건 독일산. 저건 국산. 저건 미국산. 내 눈엔 미국산이 제일 멋져. 너도 그렇지 않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눈썹을 찡그린다. 근데 네 이름은 혼다에서 따온 거잖아. 혼타가 표정을 굳힌다.
“일본은 새로 도약하기엔 너무 가깝지 않냐? 재패니즈 드림…… 같은 말, 물론 있겠지만, 난 못 들어봤어. 아메리칸 드림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러니까 혼타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평생 살 생각으로 지은 건데, 오늘 평생 안 살겠다고 다짐했거든. 별 이유는 없고, 아주 먼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졌어. 비행기 한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 말고, 열시간은 날아가야 도착하는 지평선 너머에서 말야. 그냥 지금 인천으로 출발하자.”
나는 모텔에 두고 온 짐들을 생각한다.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건지 혼타가 쐐기를 박듯 빠르게 말한다.
“갖고 있던 걸 버리고 가야 진짜 새 출발이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 뭘 해도 잘될걸? 그동안 모은 돈이면 비행기 탈 수 있어. 돈 걱정은 하지 말자.”
“……미국에 가면 나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묻는다. 실은 늘 궁금했다. 그게 뭐라고 네가 먹고 자는 것보다 좋아하는 건지. 혼타는 콧잔등에 주름이 지도록 가볍게 웃는다.
“당연하지. 그곳에서는 피곤할 일이 없을 테니까.”
남은 행사지역은 김제다. 그러나 우리가 향하는 곳은 인천이다. 혼타는 일찌감치 핸드폰 전원을 껐다. 나는 근처의 카센터에 다녀왔다. 수리공은 타이어가 펑크 난 자리에 끈끈이 같은 것을 쑤셔 박았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니 장거리 운전은 하지 말라고 충언했는데 나는 귓가를 긁으면서 핸들을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오돌토돌한 외양의 감촉이 발끝으로 전해진다. 잠시 멈춰 세우고 살펴보려다가 달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 관둔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똑같다. 혼타가 앉아 있는 자세라든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든가. 다른 점은 오로지 목적지뿐이다. 목적지 같은 건 평생 정하지 못하고 살 줄 알았는데. 매일 돌고 돌기만 하는 게 주행의 전부였으니까.
새빨간 코카콜라 트럭이 우리 앞에 끼어든다. 코, 카, 콜, 라. 혼타가 트럭의 문구를 발음한다. 내게 영어 이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온다. 좋은 거 추천해봐. 나는 무심하게 말한다. 혼타는 코카, 한다. 본인이 말해놓고 웃긴 모양인지 큭큭 웃다가 허리를 붙잡는다. 듣던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만다. 맥도날드, 디즈니, 스타벅스, 케이에프씨. 혼타는 내 영어 이름 후보를 열거한다. 아무래도 여자애니까 디즈니가 나으려나? 나는 디즈니가 여자 이름이냐고 물어본다. 몰라. 퉁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생각해보니 혼타는 H로 시작하는 영어가 현대인지 혼다인지도 구분을 못한 이력이 있다. 그런 주제에 미국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의심하자, 혼타는 동남아 노동자 얘기를 한다. 그 사람들은 뭐 한국말 잘해서 한국에 일하러 오느냐는 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으로 일하러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거기에도 우리 땅은 없을 텐데.
돌이켜보면 내 궁금증은 늘 그거였다. 저 건물은 누구의 것이고 지금 내가 딛고 선 이 땅은 누구의 것일까. ‘누구의 것’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나를 빚어낸 최초의 재료였다. 나는 누구의 땅 위에서 아빠의 것을 물려받아서 살고 있으니까. 떠나고 싶어서 떠돌 수밖에 없는 스물두살. 내 얘기를 듣던 혼타는 양팔을 넓게 벌리더니,
“미국, 조온나 넓어.”
그게 뭐 다 한 사람 거겠어?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겪은 세상은 늘 틀린 말대로 진행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맞는 말대로 진행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다짐한다. 모텔에 두고 온 짐들은 떠올리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먹자 미국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머릿속에 떠돌기 시작한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코카콜라 트럭이 어떤 징표처럼 여겨질 정도다. 미국으로의 여정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 화살표라고 해야 할까. 나는 코카콜라를 따라 운전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비행. 그리고 나와 함께 톨게이트를 지나는 경찰차.
경찰차는 내 옆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냥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목격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지쳐버린다. 이런 기분은 이제 그만 겪고 싶다. 경찰차를 향하던 시선을 거둔다. 코카콜라에 초점을 둔다.
코카콜라가 속도를 낸다. 그러자 경찰차가 비상경고등을 켜고 싸이렌 소리를 낸다. 코카콜라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코카콜라의 뒤를 바짝 쫓는다. 제한 속도를 금방 넘긴다. 경찰이 확성기를 들고 얼굴을 창밖으로 내민다. 속도를 줄이라고 소리 지른다. 코카콜라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엔진 소음을 더 크게 내며 가속한다. 미국이 내게서 벗어나려는 건지, 아니면 경찰이 미국행을 방해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나는 액셀을 더 세게 밟는다.
타이어가 푹 주저앉는다. 콘크리트와 트럭 밑바닥이 마찰하면서 기괴한 소리가 난다. 귀가 찢어질 것 같다. 잠깐만.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찰나 트럭이 급회전한다. 순식간이다. 몸이 천장과 창문에 부딪힌다. 핸들에 얼굴을 정면으로 박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부딪히고 깨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얽혀서 공간을 옥죄어온다. 나는 양팔로 안전손잡이를 붙잡는다. 허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다리가 아닌 어깨와 허리힘을 써야 하는…… 윈드밀? 혼타! 나는 목청을 높인다. 나, 이제 윈드밀이 뭔지 알 것 같아! 넌 허리를 다쳐서 당분간 돌 수 없겠지만. 혼타? 혼타는 딴 곳을 보며 웅얼거린다. 멀미, 멀미가 나. 차 안은 금방 토사물 냄새로 가득 찬다.
코카콜라가 우리 위로 무너진다. 아니다. 그냥 코카콜라가 아니다. 미국이다. 그건 정말로 미국이다. 단 한번도 미국이 아닌 적은 없었다. 혼타!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이 뭐였더라? 게워내듯 묻자 게워내듯 대답한다. 혼타,라고. 불길이 솟는다. 사위가 뜨거워진다. 숨을 들이쉰다. 콧구멍 안으로 무거운 습기가 훅 들어온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밖에 없다.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프리즈를 하는 것처럼 세상은 뒤집혀 있다. 사방이 빨갛다. 피? 아니구나. 코카콜라잖아. 코카콜라가 거꾸로 광고되고 있다. 얼굴에 피가 쏠린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게. 나 예전에 댄스학원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 일이야. 보통 수강생들 연령대가 10대고 끽해야 30대가 최대거든. 근데 어느날은 50대 아저씨가 수강하러 온 거야. 기초체력도 없고 유연성도 없어서 완전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케이스였지. 몸 풀려고 준비운동을 하면 혼자 얼굴 시뻘게져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했으니까. 하루는 텅 빈 연습실에서 혼자 입으로 소리 내면서 스텝을 밟고 있더라. 풋워크 연습하는 거라는데 좀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어. 그래서 물었지. 이런 거 왜 배우냐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글쎄, 자기가 한평생을 놀이공원에서 빙빙 도는 기구 검사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슬슬 면역을 키워야 할 것 같아서 배운다는 거야. 나이가 드니까 어지러워서 돈 벌기가 힘들다고. 비보잉은 워낙 도는 기술이 많으니까 어지럼증 단련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대. 웃기지 않아? 응, 웃기네. 뭐야, 너 별로 안 웃긴 것 같은데. 좀더 크게 웃어야 하는 거 아냐? 미국 가서 웃으려고 지금 참는 거야. 미국에도 우리 땅은 없겠지만. 또, 또 땅 얘기! 남들도 땅 없는데 다 가잖아. 안 그래? 그래, 맥도날드. 어, 디즈니야. 맥도날드. 디즈니. 맥도날드. 디즈니. 맥도날드. 정민아.
심사평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는 총 329편의 단편소설이 응모되었다. 이 뜨거운 열기는 거의 관습적이 되어버린 문학의 위기에 대한 청년들의 반기 같아 반가웠다. 물론 중요한 건, 청년세대든 기성세대든 쓸 수밖에 없다는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어쩌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응모작을 검토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쓰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응모작 한편 한편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본심에서는 예심에서 선정된 9편의 작품을 다루었는데, 두시간에 걸쳐 밀도 높은 논의를 이어간 끝에 「윈드밀」로 의견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의 경향을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했는데, 그중 하나는 현실과 유리된 기발한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불안정한 청년의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의아한 건, 지난 몇년간 기성작가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인 응모작에서 발견된 시대 반영적인 작품이 이번 심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를 관통한 여러 비극과 정치적인 반동이 소재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라면 이른바 세월호세대일 것이고 특히나 2017년은 촛불집회의 결실로 새 정권이 들어선 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본심에서는 「이상식욕」과 「잠잠한 소란」, 그리고 「윈드밀」이 주로 논의되었다.
「이상식욕」은 일단 서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있는 문체에 신뢰가 갔다. 이번 심사대상 작품 중에서 가장 기본기가 탄탄한 작품을 고르라면 분명 「이상식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모범성은 아쉽게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 응모자가 앞으로 쓰게 될 소설에 지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는 의미이다. 치매 아버지에게 비정상적인 재료로 음식을 요리해주는 설정이랄지 식욕과 살부의식이 은유적으로 결합된 결말은 그로테스크하고 자극적인 면이 있는데, 이러한 설정으로 연이어지는 작품들이 어떤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열심히 고친 흔적이 역력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지만 끝까지 지지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성장담인 「잠잠한 소란」은 서정적인 문장과 애틋한 시선에 호감이 갔다. 특수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장면과 점점 고요해지는 세계를 묘사하는 문장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어디에 있든 ‘특수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는데, 세계와 분리된 채 특수학교를 다니고 그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엔 작업장으로 그대로 공간을 옮겨 다시 그들끼리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이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간을 옮겨도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공동체 의식이랄지 세계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너’를 향한 ‘나’의 욕망과 체념으로 끝나는 점은 아쉬웠다. 물론 개인으로 수렴되는 고민도 소중하고 충분히 문학적이다. 문제는 응모자가 어떤 특별한 개연성 없이 아이돌 가수인 ‘너’를 서사 안으로 끌어왔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나’가 열망하고 구체화하는 그 아이돌의 이미지 역시 우리가 쉽게 공유하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선작이 된 「윈드밀」은 푸드트럭을 모는 주인공과 그에게 얹혀사는 힙합댄서 혼타의 이야기이다. 푸드트럭과 힙합댄서라니, 이 소재는 이미 신선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신선함은 인물들의 태도에서 나온다. 험난한 길 위의 생활에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인물들의 건강한 태도 말이다. 또한 사랑이랄지 희망 같은 것을 소박하게 소유한 그들의 여유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등록금이 없어 아빠의 유산인 푸드트럭을 몰며 전국을 다니는 주인공의 상황과 춤을 추다가 다쳐도 검사비 걱정부터 하는 혼타는 충분히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들이 신세를 한탄하거나 세상을 염오하는 장면은 없다. 두 인물의 대비가 구구절절 설명되지 않고도 전달되었다는 점도 호감을 샀다. 트럭 사고라는 파국적인 결말과 사고 중에 주인공이 윈드밀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 인위적인 장면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그 일관된 건강함을 지지하며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무한한 축하를 보낸다. 더 정진하여 자기 세계가 뚜렷한 작가로 성장해가길 바란다. 귀한 작품을 보내온 삼백여명의 응모자들에게도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낸다.
김숨 손홍규 조해진
당선소감
솔직하게 쓰겠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된 게 처음이어서 너무 얼떨떨합니다. 고등학교 때 꿈 발표 대회라는 행사에 참여해 제 꿈은 소설가이고 그 시작이 대산대학문학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꼭 4년 만에 이 자리에서 진짜로 수상소감을 쓰고 있을 줄은 진심으로 몰랐습니다. 기쁩니다. 수상 시기를 굳이 따지자면 스물두살쯤이 좋겠다고 말했던 게 떠올라서 더 기쁩니다. 당분간은 이 기분을 막연하게 곱씹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저는 희망이랄지 야망 같은 것에 냉소적인 인물로 보였겠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이 꿈에 간절하게 매달렸습니다.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은 탓으로 저는 이유 없이 어떤 서글픈 상념과 자주 마주해야 했고, 그 순간을 감당하지 못해 기숙사에서 기차역까지 무작정 걷곤 했습니다. 돌아오고 나선 글을 썼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조금이나마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물론 썩 만족스러운 글을 썼던 건 아닙니다. 제 문장보다 타인의 문장이 더 좋아 보일 때가 많았고, 대부분의 새벽을 절망과 함께 보내야만 했습니다.
「윈드밀」도 절망을 느끼게 하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작품으로 기대를 하는 저 스스로를 많이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절대로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고 떠들지 않겠습니다. 대산대학문학상은 말도 안 되는 작품으로 탈 수 있는 상이 아니니까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저 자신을 조금씩 믿겠습니다.
감사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 제 소설에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제게 시작의 기회를 주신 대산문화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문창과로 전과했던 그 순간부터 여태까지 저를 이끌어주신 정은경 교수님, 문장 하나하나 세심하게 조언해주신 정지아 교수님, 꾸준히 열심히 쓰겠습니다. 저를 늘 챙겨주신 강연호 교수님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던 정영길 교수님, 이상복 교수님, 수상 소식을 듣고 자랑스럽다고 해주신 원대신문사 차천호 선생님과 조영철 주간교수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또 사랑합니다.
저는 나약합니다. 다만 제 앞에 무한히 펼쳐질 창작의 새벽을 견딜 만큼의 힘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어떻게든 쓸 것입니다. 저의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견디게 하는 용기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박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