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창비 2011
한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오솔길
김유진 金柳眞
소설가 enenfer@empal.com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소리도, 어떤 말도 없었다. 그리고 들릴락말락한 작은 소리로 장송 행진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밤은 끝나가고, 여명이 다가온다. 저 멀리 창백한 바다 위의 섬에서 씨즈웰 발전소의 묘처럼 보이는 마그녹스 원자로의 윤곽이 드러난다. 도거뱅크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 지난날 청어떼들이 산란하던 곳, 오래전에는 라인 강의 삼각주가 있었고 범람된 모래 위로 푸르른 초지가 자라나던 그곳에서.”(205면)
영국 동남부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며, 제발트(W. G. Sebald)는 한권의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한때 번성했으나 이제는 쇠락한 도시, 바닷물이 범람하고 폭풍우가 일어 방파제가 무너지고 집과 사람이 쓸려내려간 폐허의 공간에 대해 적었다. 모래사장의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처럼 빛나던 청어떼의 무덤과 자살과 독살로 얼룩진 왕족의 계보, 고요히 불타오르는 숲을 목도하던 암흑의 밤을 기술한 이 책은 환영의 기록이자 기록의 허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제발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었다. 그가 십여년 전 사망한 사실도, 최근 무심히 책날개를 넘기다 작가약력을 보고 알았다. 그것은 무척 기이한 경험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죽음과 폐허의 공허에 대해 되뇌이는 것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그를 죽음과 한묶음으로 둔 적이 없었다. 그는 지나치게 죽음과 가까웠으므로, 붉고 메마른 땅을 딛고 서서 끝내 살아남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이웃이 사실은 유령이었다는 식의 낡은 서사를 떠올렸다.
나는 제발트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는 내가 제발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종종 혀끝에 올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의 소설은 호불호를 따지기엔 겸연쩍은 데가 있었다. 멀리 두는 것도, 품안에 넣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의 소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 쉽사리 아름답다고 말해도 괜찮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스스로를 완벽히 지우려는 사람 같았다.
나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기억을 잃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제발트의 전작(『토성의 고리』보다 앞서 번역되었으나 실제로는 유작인) 『아우스터리츠』에서 그는 생존자가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사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수많은 사진과 사료들을 제시하며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된 수많은 공간과 풍경을 따르다 보면, 종국엔 고통과 고독이라는 유령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는 그 공허만을 남긴 채, 기나긴 문장의 숲 너머로 홀연히 몸을 숨긴다, 혹은 사라진다.
며칠 전 서울과 외곽을 잇는 고속도로를 지날 때였다. 일주일에 두어번가량 지나는 길이었다. 도로 양옆 잡초가 무성한 공터와 논밭, 언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낮은 야산과 듬성듬성 자라난 나무, 가시덤불이 제멋대로 뭉쳐 있거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풍경 위로 먹구름이 출렁이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강이 있었다. 나는 새삼스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듯 두서없이 솟아오른 가로수와 무너진 벽돌담을 뒤덮은 넝쿨을 따라 이어지며 시시각각 변하는 강줄기의 폭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것은 꼭 들판 한가운데를 파헤쳐 도로를 깔아놓은 후 방치해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도로가 생기기 이전의 풍경을 떠올렸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시로 바람이 부는 지역의 내력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내내 여행용 티슈처럼 가방에 넣고 다녔던 『토성의 고리』(Die Ringe des Saturn, 이재영 옮김) 때문이었다.
길을 걷는 제발트를 생각한다. 풍경을 바라보는 그를, 이내 병실 창문을 통해 넘어들어오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엄습해오는 환영을 받아들이는 그의 우울한 얼굴을, 환영도 풍경의 일부인 듯 둘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그를, 내력과 추억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력과 내력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시간을 차차 지워나가는 그를, 말하고 또 기록하는 그를 본다. 우울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병약한 육체의 변화에 예민한 그를, ‘인생은 꿈은 많고 행복의 빛은 드물며, 약간의 분노에 환멸이 더해지고, 고통의 세월 뒤에 끝이 오는 것’이라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길 즐겨하는 그를, 달빛을 받으며 우물을 건너는 물방개의 궤적을 전율하며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른다. 질주하는 들짐승의 아름다움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그것이 지평선 너머로 무심히 사라져버리는 광경을 목도하듯이,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을 주지 않고 아름다움을 강요하지 않은 채,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행렬을, 문장 위에 또다른 문장을 끼얹는 그의 의지를 본다. 나는 문장이 아니라 그 의지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리하여 이내 차츰 지워져가는 그의 문자들과 그의 고향과 한때 그토록 아름다웠으나 이제는 없는 오솔길의 환영이, 마치 달리는 들짐승의 뒤꽁무니를 따라 이는 먼지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광경을,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