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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은진 張恩珍
1976년 광주 출생.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없음』,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등이 있음. bom25da@hanmail.net
외진 곳
집을 옮기고 첫날 밤이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휘이휘이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고, 창문이 부들부들 떨 때마다 방은 냉기로 차올랐다. 그릇에 수돗물을 받아두면 다음날 아침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강추위였다. 나와 여동생은 불을 끄고 각자 이불을 두채씩 포개어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웅크린 몸으로 이빨을 덜덜거리던 여동생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씨발 좆나 춥네. 내일 뽕뽕지 사다 창문이나 덮자.”
이불에 반쯤 묻혀 탁해진 목소리 때문인지 동생이 방금 한 게 욕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쁘게 짐을 정리하느라 보일러에 기름 넣는 걸 깜빡했더니 코딱지만 한 방에 닥친 재앙이었다.
“기름보일러라 난방비 많이 들 텐데. 그냥 전기장판 살까.”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난 저렇게 창호지로 된 방문은 첨 봐.”
“나도.”
방은 전에 살던 원룸을 딱 반으로 접어놓은 크기였다. 급하게 보증금을 빼야 했고, 역시나 반토막 난 보증금에 맞추어 방을 구하다보니 동생 말대로 ‘여기까지’ 굴러오게 된 것이다. 추운 날씨에 짐을 옮기는 과정도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다급하게 이루어졌다. 새 세입자가 들어오기로 한 날짜를 일요일인 내일로 착각하는 바람에 점심을 먹다 말고 당장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우리 짐을 치우는 것과 새 짐이 들어오는 시간이 겹쳐서, 밥통이 있었던 자리에 곧바로 토스터가 놓였고, 운동화 네켤레뿐이라 자리가 남아돌던 신발장은 하이힐과 부츠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 짐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시멘트 바닥에 반나절 동안 까발려지듯 놓여 있어야 했다. 정말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이 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누추한 우리 살림을 자주 힐끔 거리는데다 눈까지 내려서 보자기와 수건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덮어두어야 했다. 포장이사를 할 만큼 물건이 많은 게 아니라서 작은 용달차를 렌트한 뒤 면허증이 있는 대학교 동기를 불러 운전을 부탁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어찌나 많은지 용달차 안에서 우리의 몸은 여러번 서로 부딪쳤고, 자주 출렁였다. 짐을 대충 옮긴 뒤 정신 차리고 났더니 저녁이 한참 지나 있었다. 음식을 배달시키기엔 후미지고 위치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곳이었지만 주인집의 도움으로 겨우 보쌈과 군만두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무언가를 걷어차듯 발을 휘두르며 동생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한테 사기 친 그 개새끼를 어떻게 잡아 죽일까?”
나는 뭉개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여야지. 언젠가 꼭. 돈도 돌려받고.”
입도 얼어붙은 듯 우리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이불 속에서 자기 숨으로 덥힌 공기로 조금씩 추위를 누그러뜨려가며 천천히 잠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리 자매에게 적응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언제나 방 한개짜리 집에서 살아온 생이었지만, 그 모든 방에는 배려하듯 화장실이 공간 안에 덧붙어 있었다. 그런데 여긴 화장실이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딴청 부리듯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려면 제일 먼저 휴지를 챙긴 뒤,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에 앉아서 신발을 신고 긴 마당을 지나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공동화장실이라 볼일이 생길 때마다 집을 옮겼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깨닫게 해주었다. 하루에 여섯번 화장실을 사용하면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가난과 그것이 몰고 온 온갖 불편함들을 여섯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날도 추워서 화장실 가는 건 우리에게 매번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동생은 오래 참거나 자주 가는 일이 안 생기도록 물을 적게 마셨다. 그러다 병난다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만, 여름까지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걸 주인아주머니도 아는지 방을 계약하던 날 남이 들을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래 말고, 조금만 살다 가.”
집주인은 60대 부부였다. 그들은 이 집을 네모집이라 불렀다. 집 구조가 ‘ㅁ’ 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인데, 부부는 세를 놓지 않고 네모집 전체를 여섯 식구가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남부러울 게 없어서 그때는 아흔아홉칸짜리 집에 사는 것 같았다던 아주머니는 몰락한 가문의 여인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숨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세입자에게 그들은 집주인이고, 월세가 하루만 늦어도 방문을 두드릴 것이므로.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다, 둘째 아들놈이 사업을 크게 말아먹어서 자식 덕 보고 살기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고 판단한 내외는 자기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방을 개보수했다. 아들놈이 쫓아와 있는 돈 다 내놓으라고 할까봐 서둘러 집을 고치는 데 써버린 것이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어 코인세탁기를 세대 들여놓고, 부엌이 없는 방에는 물을 쓸 수 있게 수도관을 연결하고 보일러도 따로 놓았다. 네모집에는 주인 내외가 기거하는 방을 빼면 총 아홉개의 방이 있었고, 부엌이 별도로 딸린 방은 방세가 조금 더 비쌌다.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9번방으로 네모집에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끝방이었다.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들고 고무신 변기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오늘의 가난에 대해 두번째 생각하는 중이었다. 공동화장실은 엉덩이를 걸치고 사용해야 하는 변기보다 고무신 형태의 변기가 위생적이었다. 단점은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는 거였다. 나는 다리가 저려오기 전에 서둘러 용무를 끝낸 뒤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고 발로 레버를 눌렀다. 오늘의 두번째 가난이 소리를 내며 물과 함께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되도록 다른 세입자와 마주치지 않고 살아보려 애썼는데 네모집의 구조상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중앙 마당. 여긴 원룸과는 다른 것이다. 화장실을 나가자 내 또래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여자는 치약 거품이 하얗게 튄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며 인사했다. 애초의 다짐을 잊고 얼떨결에 나도 모르게 얼룩덜룩한 거울을 향해 고개 숙이고 말았다. 네모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정을 묻지 않아도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므로 이 사람도 어딘가에서 밀려왔을 것이다. 힘의 원천이 무엇이든, 그 힘이 없으면 사람은 외진 데로 밀려나는 거였다. 바깥으로, 중심에서 먼 변두리로, 어둡고 냄새나는 구석진 자리로.
“지난주에 9번방으로 이사 오셨죠?”
“아, 네.”
“전 3번방이에요.”
“네.”
“9번방이 웃풍은 세도 재수가 좋은 방이에요.”
“네?”
“그 방에 살았던 사람들 다 잘돼서 나갔어요.”
“여기 오래 사셨나봐요.”
“2년 됐어요. 사는 데 좀 불편하긴 해도 방세가 싸니까요.”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다 씻은 여자는 자기 옷에 물기를 닦고 화장지 좀 빌려달라고 말했다. 나한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 것도 화장지를 얻어 쓰기 위한 꿍꿍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엉거주춤하게 두루마리 화장지를 건네자 여자는 손에 한 열바퀴쯤 돌돌 감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루마리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헤픈 여자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화장실을 나가는 내 등 뒤로 여자의 발랄한 목소리가 닿았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알면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언제든 필요할 때 써요. 여긴 컵라면 하나 사러 편의점 가는 길도 멀잖아요. 그리고 밤에는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고요.”
헤프지만 공짜는 좋아하지 않는 여자 같았다.
3번방 여자의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햄버거를 사 왔다. 여기가 얼마나 한적한 곳이냐면 네모집이 있는 데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버스 종점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그조차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며, 밤에는 다른 곳보다 빨리 어두워져서 행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편의점이 가까운 데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자전거를 세게 몰았더니 방에 도착했을 때 약한 불에 올려둔 물이 막 끓기 시작해서 동생과 나는 컵라면에 곧바로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었다. 치자 단무지에 라면을 먹으며 아까 3번방 여자한테 들은 ‘9번방의 재수’에 대해 얘기하자 동생이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다단계 사기꾼 새끼도 잡을 수 있다는 건가.”
“뭐든 잘돼서 나간다니까.”
동생과 나는 평소 잘 믿지 않던 미신적인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방이 하나도 안 추운 것 같다.”
동생이 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면서 뽕뽕지로 뿌옇게 덮여 있는 창문을 쳐다봤다. 벽 전체를 아예 비닐로 막아두어서 우리는 겨울이 끝나지 않는 한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창백한 바깥 풍경도 볼 수 없었다.
“참, 편의점에 물어봤어?”
국물을 한모금 삼킨 동생이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상에 컵라면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안 구한대.”
“새벽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 때부터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던 동생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여행사에 취직해 일본인 관광객 가이드를 했지만 도가 지나친 오너의 갑질과 횡포를 견디다 못해 책상을 엎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지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그 편의점 점주도 호락호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없는 틈에 스마트폰으로 일본 방송을 보며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점주가 CCTV로 감시하고 있다 전화질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네모집으로 이사를 오고 교통비 때문에 발보다 발가락이 커진 상황이기도 해서 동생은 가까운 편의점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밤낮 바뀌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면서 새벽 타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걸 보면 그 점주가 정말 못마땅한 것 같았다.
“언니는 발표 날짜가 다음주 언제랬지?”
“금요일.”
“합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면접도 만만치 않대. 선배들 중에 2차에서 떨어진 사람도 많아.”
다음주 금요일은 중등교원 임용고시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두번째 도전이다. 현재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선배를 도와 보육교사보조로 일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라 생각하면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었고, 하루에 네시간만 일하면 되니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다니기엔 괜찮은 일자리였다. 다만 집을 옮긴 후 동생처럼 출퇴근 시간이 왕복 세시간으로 늘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컵라면을 먹고 물은 한잔도 안 마신 동생은 점주 욕을 실컷 한 뒤 유튜브로 일본 방송을 시청했고, 나는 시험공부 하느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설책을 전자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둘 다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방바닥에 누운 채였다. 그때 바람이 세게 불어와 얇은 창호지 문과 창문이 떨어져 나갈 듯 크게 흔들렸다. 창문을 덮은 뽕뽕지는 비닐 소리를 내며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방 안에서 산사태를 맞는 것 같았다. 아니, 가진 게 없다고 협박을 받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부는 각도와 시간이 달라서 다른 방의 문들이 흔들리는 소리도 얇은 벽과 창호지를 통해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여긴 왜 다른 사람들의 방까지 신경 쓰게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순간, 여기서 잘돼서 나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보다 더한 데도 없을 것 같았다.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마주친 눈동자로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바람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잦아들지 않았고 그 바람 소리를 잊기 위해 맘먹고 전기장판 온도를 조금 높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와서 계란말이와 어묵볶음을 만들고, 조갯살을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김도 구워서 여섯조각으로 잘라놓았다. 밥이 되는 동안에는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코인세탁기 사용법을 듣고 일주일 동안 모아둔 빨래를 돌렸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고요한 네모집을 흔들었다. 네모집은 사람이 산다면 부딪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만난 세입자는 3번방 여자뿐이었다. 세입자가 우리와 3번방 여자뿐인가 싶었지만, 간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 아홉개의 방에 모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그 불빛이 오래된 창호지 문을 통해 은은하게 스며나와 마당을 밝히는데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어떤 방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다른 방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한군데도 빠짐없이 모두 불이 켜진 방을 보고 있자니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이상하게 모두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와 같은 주소를 가진 사람들. 다들 하루 일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에 나는 화장실 가는 걸 잠시 잊은 채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한바퀴 빙 돌아보았다. 방이 아홉개인 걸 알면서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빛으로 가득 찬 문을 세어보기까지 했다. 네모집의 세입자들은 불빛과 소리로만 자기 존재를 알려오는 것 같았다. 빛으로 칠해진 방문과 그 방문을 여닫는 소리로. 신발을 끄집는 소리와 종잇장처럼 가벼운 한숨 소리로. 나는 그들이 여기 오래 머물지 않고 사정이 나아지면 곧장 다른 데로 옮길 마음을 품고 살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곧 떠날 텐데 깊은 정을 나누면 뭐하나,라는 마음으로 머물고 있어서. 그들은 혹여 화장실과 세탁실, 마당과 대문에서 마주치더라도 알은척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알은척하는 게 귀찮아서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며 다니거나 다른 방 세입자가 활동하는 시간대가 언제쯤인지 귀 기울여 알아낸 뒤 피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들은 그것을 배려라 여기는지도. 나 또한 그래서 누구든 만나게 되면 인사를 나눠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방 바깥 마루에 건조대를 놓고 빨래를 널고 있을 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동생이 돌아왔다. 동생은 몹시 지쳐 보였고,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빨래를 마저 넌 뒤 동생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서둘러 저녁상을 차렸다. 모처럼 장을 봐서 차린 상이라 반찬은 푸짐했지만 동생은 식사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털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애가 조용히 밥만 먹어서 모처럼 반찬이 여러개 올라온 저녁상이 무안해지고 말았다. 동생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믹스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고서야 차분하게 입을 뗐다.
“편의점 관뒀어.”
나는 왜냐고 묻지 않고 동생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CCTV에 대고 뻑큐를 날려줬어.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역시나 바로 전화를 걸어서 욕을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다 해줬지. 처음 들어보는 욕이 많은지 혀를 내두르더라. 욕으로는 누구도 날 못 이기지. 여기서 가까운 다른 편의점 알아볼래. 널리고 널린 게 편의점이야. 사람 구하는 데도 있겠지.”
동생은 울고 싶을 때 우는 대신 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는 욕을 다 했다는 건 그만큼 많이 울고 싶은 날이었다는 뜻이다.
“잘했어.”
동생은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잘했다는, 그 말. 커피잔을 비운 동생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설거지를 하고, 나는 방을 쓸고 닦았다.
청소를 끝낸 뒤 양치질하고 손에 로션을 바르고 있을 때였다. 남자 두명이 옆방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나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를 가는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어떤 낌새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거나 결정되는 사건이 이사인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심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번방에 사는 사람을 나는 본 적 없지만 동생은 마당에서 한숨 쉬며 담배 피우는 뒷모습을 두번인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혼자 사는 50대 아저씨라는데 3번방 여자 말로는 미장일을 한단다. 여기 사람들은 진짜 임시로 살아서 엉덩이를 방바닥에 반만 내려놓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 앞에 엉덩이를 엉거주춤하게 들고 있는 육상선수처럼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사는 것으로 보였다.
몇번 후다닥거리는가 싶더니 짐 옮기기는 금방 끝나버렸고, 옆방은 숨 막히게 조용해졌다. 왠지 보란 듯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떠났을 것 같았다. 옆방이 남기고 간 고요함을 깨뜨릴까봐 그런지, 빈방이 울릴까봐 그런지 동생은 콧잔등에 까맣게 발라놓았던 코팩을 뜯어내며 소곤거리듯 말했다.
“여긴 꼭 여관 같지 않아?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곳.”
“너 여관 가봤어?”
나도 괜히 작은 소리로 말하게 되었다.
“꼭 가봐야 알아? 드라마 같은 데 많이 나오잖아. 그리고 가봤으면 또 어때서?”
“하더라도 좋은 데 가서 하라고. 호텔 같은 데.”
“언니는 호텔에서 해봤어?”
“호텔로 날 데려가는 놈이 있었으면 진작 그놈이랑 결혼했지.”
오늘 밤, 8번방의 창호지로 불빛은 스며나오지 않을 것이고 방은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우리 방이 옆방의 한기까지 떠안은 듯 춥게 느껴졌다. 왠지 떠났다는 것이 배신당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집에서 하루쯤은 쉴 줄 알았는데 동생은 다음날 바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인근을 돌아다녔다. 3번방 여자의 자전거를 타고, 그 자전거로 닿을 수 있는 거리의 모든 편의점을 둘러봤지만 동생을 원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빙판에 미끄러져 자전거가 넘어졌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자전거를 돌려주다 3번방 여자와 친해진 동생은 내내 그 방에서 과자를 얻어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퇴근할 무렵에야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동생은 간호조무사인 3번방 여자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여자는 낮은 연봉과 간호사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에 지쳐서 간호전문대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각 방의 세입자에 대한 얘기도 방번호 순서대로 해주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 있다 가버릴 사람들이고, 우리 또한 오래 있을 생각이 없으니까. 어쩌면 이미 아는 이야기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안 다쳤다 생각했는데 동생은 저녁밥을 먹고 나더니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바지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비상약이 없어서 3번방 여자한테 파스를 얻어다 붙였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동생은 금방 잠이 들어버렸고, 나는 방을 나와 세탁실로 갔다. 오늘은 속옷을 빨 생각이었다. 속옷은 모아두었다 다른 빨래와 섞이지 않게 따로 빠는 게 좋았다.
세탁실로 들어서는데 마른 체형의 남자가 세탁기 한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남자는 턱을 받치고 쭈그리고 앉아서 드럼세탁기의 투명창을 골똘하게 들여다봤다. 세제 거품이 투명창으로 거칠게 부서져 내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꼭 선창을 통해 보이는 폭풍 치는 바다 같았다. 어쩌면 남자는 내년에도 갈 수 없을 한여름의 바다를 미리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기척에 뒤돌아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인사를 건네야 하나 고민이 되었고, 남자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지만 서로가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인사란 한번 하면 다음에도 계속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주니까. 세탁기 앞에 머물러 있던 남자는 멋쩍은 듯 내가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속옷이라 좀 난감했다. 드럼세탁기라 돌아가는 내내 창문을 통해 세탁물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생리혈이 묻은 속옷도 여러장 있는 터라 저녁에 다시 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싶어 투입구에 동전을 넣고 속옷을 집어넣었다. 세제와 섬유유연제가 자동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세제를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것 같았다. 배려를 받았다는 생각에 아까 동생이 해준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은 게 조금 후회되었다. 어떤 사정으로 이 먼 데까지 밀려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 남자의 세탁기가 열심히 빨고 있는 건 여름 이불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날 밤은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동생은 내가 옆에서 여러번 뒤척이는데도 아랑곳없이 코까지 골며 잘 잤다. 나는 겉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왔다. 아침부터 계속된 폭설로 마당에는 눈이 제법 높게 쌓여 있었다. 나는 발자국이 하나도 찍히지 않은 순결한 마당에 첫발을 내디뎠다. 짐작보다 발이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당혹스러웠는데, 눈 밟는 소리에서 깊이가 느껴졌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버릇대로 아홉개의 방 중 불이 켜져 있는 곳이 몇군데인지 세어봤다. 숫자가 적으면 왠지 허전했고, 많으면 괜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홉개의 방에 모두 불이 들어와 있으면 한가지 질문에 아홉개의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된 시간 같아서 나도 모르게 와,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두군데였다. 허전해서 맨손으로 눈을 한줌 주워 단단하게 뭉쳤다. 허리를 수그려 뭉친 눈을 굴려 몸집을 점점 키워나갔다. 두텁게 쌓인 눈 때문에 몇번 굴리지 않았는데도 주먹만 한 눈뭉치가 금세 농구공만큼 커졌다. 그때 등 뒤에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5번방이었고 아까 세탁실에서 본 그 남자였다. 한밤중 마당에서 혼자 눈을 굴리는 모습에 당황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남자는 문을 닫고 도로 들어가버렸다. 마주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깨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걸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눈 굴리는 걸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느닷없다는 느낌으로 5번방 문이 다시 열리고 남자가 신발을 신고 나와 나처럼 눈을 뭉치고 그 눈을 눈밭에 굴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남자와 나는 말없이 두덩어리의 눈을 완성했고, 내가 만든 건 좀 커서 아래에 두었고 남자가 그 위에 자신이 만든 눈덩어리를 올려놓았다. 그러고 남자는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아니었다면 장갑을 끼지 않은 내 손은 이보다 더 시렸을 것이다.
남자와 내가 만든 눈사람은 오랫동안 마당에 있었다. 스스로 녹아서 작아지고 찌그러질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무너뜨리지도 않았다. 네모집에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훼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눈사람이 한줌의 형태 없는 눈으로 돌아갈 즈음, 8번방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고, 동생은 무릎이 나아 절뚝거리지 않고 걷게 되었으며, 오늘은 임용고시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밤에 결과를 전해 들은 동생이 말했다.
“우린 아직 젊어.”
아직 젊어 만만하게 보고 실패와 좌절이 이토록 자주 찾아오는 걸까. 젊음과 청춘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약이라면 젊지 않은 나이에 실패와 좌절이 찾아오면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떤 핑계를 대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될까. 나는 미래에 준비되어 있을 무수한 절망들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까지 앞서 생각하다 불현듯 두려워지고 말았다. 동생이 내 두려움을 듣고 있다 대답했다.
“그땐 연륜이란 게 생기지 않을까. 삶의 연륜.”
동생은 잠시 허공을 보고 뭔가를 생각하다 이어서 말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먹으면 삶에 그려지는 무늬들.”
이럴 때 보면 나보다 두살 어린 동생이지만 두살 많은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삶 어딘가에 내게 없는 어떤 무늬가 그려져 있을 것 같았다. 언제, 무슨 일을 겪어서 얻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아서 어려울 때마다 드러나는 무늬. 좌절을 이겨내게 해주는 건 옆사람과 그 사람이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오늘 밤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사라진 젊음을 찾을 수 없어도 사람의 말은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니. 무늬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대신 말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갖게 된 무늬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쓰게 된다.
젊음도 없고, 옆사람과 그 사람의 말조차 없다면 감내하는 것뿐이었다. 사람한테는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적 갈등이든, 걱정이든, 어떤 일에 대한 결과든. 사람들은 그걸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갔다. 그 많은 일들이 투명 유리에 비치듯 다 보인다면 일상은 살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시끄러울 것이고,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네모집의 세입자들이 고요하게 보이는 건 실패와 좌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내하고 있어서였다. 어떤 곳보다 더 많은 절망을 품고 사는 데가 여길지도 모르니 어쩌면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을지도.
그래도 가끔씩은 시련이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었다. 투명 유리 때문이 아니라 소리 때문에. 지금 밖에서 들리는 저 소리처럼. 주인집 둘째 아들이 술을 먹고 밤늦게 찾아와 주인 내외한테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아들은 부부에게 욕을 징그럽게 쏟아내며 물건을 집어 던졌다. 아들이 부부에게 갖고 있는 불만이, 부부가 아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삶의 자세가 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퍼져나왔다. 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말리거나 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가는 세입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에게 익숙한 문제이지만 그들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세입자들은 불을 켜둔 채로, 혹은 불을 끈 상태로 자신의 어떤 시절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자신들의 오래된 시련을 떠올리며. 나는 둘째 아들도 동생처럼 우는 것 대신 욕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울고 싶은가보다 하고. 부부 내외는 아들에게 욕을 하지 않고 울었다.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다며.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다른 해 같으면 친구든 애인이든 함께 중심가로 몰려다니며 먹고 마시느라 바빴을 텐데 올해는 춥기도 하고, 실패와 좌절의 기운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인데다, 중심가에 가기엔 너무 멀어서 동생과 단둘이 방에서 이브를 보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가족과 이브를 맞는 건 초등학생 때 이후 처음이었다. 의미있는 날에 가족보다 친구나 애인을 먼저 찾는 나이라서 그랬다고, 누구나 그렇게 각도가 틀어지는 시절이 잠시 있는 거라면서 동생과 나는 캔맥주를 부딪쳤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좀더 내고 싶은지 동생이 잡동사니가 든 상자를 뒤져서 향초를 꺼냈다. 선물로 받았던 것 같은데 누구로부터 무슨 이유로 받았는지 생각나지도 않고, 언제 쓰고 두었는지도 기억에 없는 물건이었다. 탁해진 유리컵에 든 초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다. 너무 굳어서 불도 안 붙고 향도 안 날 것 같았지만 가운데 놓여 일렁이는 그것은 좁은 방 안을 은은한 불빛과 향으로 채워주었다. 방 안에서 촛불 하나 반짝이고 있을 뿐인데 아쉬운 대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금 났다. 맥주캔을 잡고 있는 손이 시려서 우리는 가끔 그 촛불 가까이 손을 대고 쬐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여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과 나는 숨을 죽이고 방문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축복 가득한 성탄절 되십시오,라는 말에 이어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나온 청년들이 각 가정을 방문하며 캐럴을 불러주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더없이 고요한 밤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숙연해진 마음으로 들었다. 방 안은 아늑해졌고, 마음은 잔잔해졌다. 여기에 크리스마스는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것도 모르던 사람들에게 저들이 알려준 걸지 모르겠다. 특별히 누구를 만나지 않고 이벤트가 없어도 아는 것만으로 크리스마스는 있게 되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한곡만 더 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곡이 이어졌다. 역시 고요한 노래였다. 원래는 한집당 한곡씩만 부르는 건데 여긴 여러 세대가 모여 있다는 걸 알고 두곡을 불러주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중심가로 가지 않고 집에 있어서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집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그들이 떠난 뒤 맥주도 다 마셔가고 화장실도 갈 겸해서 방을 나와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놀랍게도 아홉군데 불이 전부 켜져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늘 밤 왜 중심가로 가지 않았나요? 각자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집에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는 일치된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불 켜진 방. 그것은 마치 오래된 나무에 전구를 둥그렇게 휘감아놓은,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자정 무렵 한개의 전구가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방에 널브러진 맥주캔과 그릇들을 치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갑자기 방문이 왈칵, 열리더니 누군가가 뛰어들어 왔다. 3번방 여자였다. 잠옷 차림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 올린 여자가 우리를 공포에 질린 얼굴로 쳐다보며 자신을 좀 숨겨달라고 했다. 손바닥만 한 방에 몸을 숨길 만한 데는 없었지만 여자는 스스로 숨을 곳을 찾아 비닐 옷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옷장 지퍼를 밖에서 닫아주었고, 우리는 숨을 죽이고 다시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술 마시는 척을 했다. 밖에서 누군가가 세입자들의 방문을 1번부터 차례로 여는 소리가 들려와서였다. 드디어 끝방인 우리의 방문이 열렸고,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누군가를 찾듯 충혈된 눈으로 방 안을 살폈다. 술냄새가 진동했다.
“아저씨, 뭐야? 뭔데 남의 방문을 함부로 열고 지랄이야!”
동생이 사내를 향해 소리쳤고, 사내는 사과의 말은커녕 미안한 기색도 없이 한참을 노려보다 방문을 닫았다. 사내가 완전히 돌아가고, 동생이 비닐 옷장 지퍼를 열었을 때 여자는 웅크린 자세로 앉아 폭설을 맞은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해도 여자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숟가락을 넣어 문고리를 잠그고 나서야 조금 안심한 듯 옷장에서 나왔다.
“옛날 남친인데, 자기는 죽어도 못 헤어진대요.”
애인과 데이트를 해야 하는 특별한 날에 여자는 전 애인한테 쫓기고 있었다. 여자는 악몽을 꾸는 듯한 눈동자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한때는 사랑하고 의지도 했을 사람이 도망치고 싶은 무서운 사람이 되다니. 우리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고 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가 다시 찾아올 것 같다며 여자는 그날 밤 우리 방에서 같이 잤다. 둘이 자다 셋이 누우니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았다. 여자는 창문이 조금만 들썩거려도 깜짝깜짝 놀랐지만 동생과 내가 번갈아가며 말을 걸자 곧 안정되었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여자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여기 있으면 못 찾아올 줄 알았는데……”
그래서 2년이나 산 모양이었다. 단순히 방세가 싸서가 아니라. 내가 대답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크리스마스가 오는 데라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던 여자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한밤중 도망치듯 이사를 가버렸다. 어쩌면 여자가 간 곳은 여기보다 더 바깥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마저 오지 않는 곳. 우리는 자전거를 더는 탈 수 없게 되었다.
5번방 남자는 세탁을 자주 했다. 거품을 구경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남자와 부딪치는 곳도 늘 세탁실이었지만, 남자와 나는 서로 알은척을 하지 않으면서 각자 세탁만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해서인지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웠고, 알은척하지 않는 게 다른 방식의 인사가 되었다. 저기 있구나,라고 눈으로 보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지 않게 공간을 함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말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느 한쪽이 무심코라도 말을 건네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알은척하지 않음이 인사로 인정되었던 지난 시간은 지워질 것이다. 나는 속으로 누가 먼저 침묵을 깨게 될지 내기를 걸었던 것도 같다.
무릎이 나은 뒤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매일 나가던 동생은 요 며칠간은 따끈한 전기장판 위에 팔자 좋게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와 열심히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오늘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었다며 경찰이 CCTV 영상을 확보하러 어린이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남자아이의 허벅지와 팔뚝에 꼬집혀서 생긴 멍자국이 여러군데 발견되었다고 했다. 가해 교사로 지목된 담당 보육교사는 아이들끼리 장난감을 두고 다투다 생긴 불상사이지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펄쩍 뛰었지만, 어린이집은 발칵 뒤집혔다. 패닉에 빠진 원장은 학부모로부터 걸려온 수십통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초주검이 되어버렸고,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의 퇴근이 두시간이나 늦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동생은 게으름을 털고 일어나 빨래를 널고 있었고, 저녁상을 차려 상보로 덮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진 식사시간 때문인지 밥맛이 좋아서, 한공기 더 담아와 첫술을 뜰 때 동생이 언니야,라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할 얘기가 있는 눈치였다.
“후미꼬 알지?”
후미꼬는 동생이 대학 다닐 때 교환학생으로 왔던 일본인이다. 동생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일본어에 능통해지고 싶어서 후미꼬에게 다가가 자주 말을 걸었다. 후미꼬도 동생에게 한국어로 자꾸 말을 걸었다. 이국의 언어는 둘을 가까워지게 해주었다. 졸업 후 후미꼬는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제법 친한 사이가 되어 아직까지도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나는 우유를 넣어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 계란말이를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미꼬가 그러는데, 일본은 지금 경기가 호황이라 구직난보다 구인난이 심각하대. 일할 사람을 못 구해서 가게를 닫아야 할 정도라, 한국 대학생들을 연수시켜 자기 나라로 좀 보내달라고까지 한대.”
나는 밥상에 수저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후미꼬 말이 거긴 프리터로 사는 젊은 애들도 많고, 시급이 세서 월급쟁이 못지않게 번대. 같은 일을 할 거면 일본에서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현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일본어를 더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봐서 정규직 자리를 구해도 괜찮고. 정 힘들면 한국어를 가르쳐도 되고.”
동생은 진취적인 데가 있었고, 나보다 겁이 없는 편이었으며, 미래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닥치면 그때 가서 하는 게 걱정이지 미리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애였다. 내가 아닌 동생이라서 세울 수 있는 계획으로 보였다. 벌써부터 좀 들뜬 것도 같았다. 여길 벗어나는 게 일단은 좋은 걸까.
“방은?”
“후미꼬가 당분간 자기 집에 머물러도 좋대.”
화장실 때문일까. 물을 많이 마시고 싶어진 걸까. 하지만 일본이라니…… 왠지 여기보다 더 외진 곳 같았다.
“지진도 많고 방사능 문제도 있어서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후미꼬가 사는 데는 오오사까야. 후꾸시마와 좀 떨어진 데라 괜찮을 거야.”
“그래도.”
“그렇게 따지면 일본하고 우리나라도 별로 안 멀어.”
동생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후미꼬는 좋은 친구지?”
“생각도 바르고, 한국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야.”
“……”
“걱정돼?”
“응.”
“그냥 어학연수 간다고 생각해.”
“어학연수?”
“그래, 어학연수.”
“어학연수라니까 근사하긴 하다.”
“나 대학 때 진짜 가고 싶어했잖아. 동기들 중에 나만 안 갔어.”
“그랬지.”
“일본어로 먹고살겠다는 애가 일본에 안 가봤다는 것도 이상하고.”
“근데 일본어는 욕이 몇가지 안 된다던데 욕 못해서 어쩔 거야?”
“욕할 일 있으면 한국말로 해야지. 욕은 한국말로 해야 찰져서 욕한 것 같아.”
“구인난이라니 일본 애들은 좋겠다. 하지만 방사능, 그건 안 좋네.”
“우리나라도 곧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까. 마냥 바닥만 치지는 않을 거야. 그때쯤 돌아오면 돼.”
동생은 나보다 어린데도 항상 어른스럽고 당찼다. 재난이 많은 나라에서도 살아올 아이였다. 여기 혼자 남을 내가 걱정되는지 동생이 물었다.
“나랑 같이 갈래?”
“일본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
“몰라도 일할 수 있는 데는 여기보다 많을 거야. 거긴 호황이라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이집 상황이 마음에 걸렸지만 얘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지 않을 걸 알면서 물어봤다는 걸. 여기 혼자 두고 가는 게 미안해서 그냥 해본 말이라는 걸.
“방사능 때문에 께름칙해?”
“……”
“언니, 넌 오래 살고 싶구나? 난 오래 안 살고 싶어.”
나는 안다. 동생이 일본에 가려고 하는 건 오래는 안 살고 싶어도, 당장은 살기 위해서라는 걸.
“내 꿈은 여기에 있잖아.”
꿈이 있는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동생도, 나도.
어린이집은 결국 내일부터 운영 정지된 후 폐쇄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울증을 겪던 담당 보육교사의 학대가 사실로 밝혀졌고, 피해 어린이가 두명 더 있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폐쇄되지 않더라도 경찰조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학부모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 오늘도 아이들 대부분이 결원상태였다. 보조교사였을 뿐이라 짐이 많지 않아서 어린이집을 나오는 손은 무겁지 않았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가벼운 양손을 음식으로 무겁게 채웠다.
음식이 식을까봐 걸음을 빨리했다. 가빠지는 숨을 따라 흩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하얀 입김이 퍼져나갔다.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빛이 줄어들고 어둠은 짙어져갔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거칠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집들이 있었고, 사람이 살았으며,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집을 옮긴 후 내 몸에도 무늬 하나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말의 형태로 드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게 될 무늬라고 생각하자 걸음은 더 빨라졌다.
집에 거의 다 왔다. 다행히 음식은 아직 온기를 잃지 않았다. 동생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일본에 가면 그리울 음식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이라 동생은 아마 들뜬 얼굴로 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이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게 된 동생의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어린이집 얘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열려 있는 녹슨 대문을 지나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잠시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르며, 불이 들어온 방의 개수를 세었다. 그래도 다섯군데나 되었다. 동생이 가고 나면 나는 더 자주 저 네모난 불의 개수를 세며 지내게 될 것이다. 그때, 등 뒤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혼잣말인 듯한 작고 부드러운 말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좀 늦었네요.”
5번방 남자였다. 남자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자 창호지 문이 노랗게 밝아졌다. 불은, 그로써 여섯군데가 되었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9번방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