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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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먹거리 기반의 순환과 공생의 공동체

옥천 이야기

 

 

김광남 金光男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 농어촌네트워크 상생 대표. 공저 『열린사회와 21세기』 『사회문제를 보는 새로운 눈』 등이 있음. forgoodworld@gmail.com

 

황민호 黃民鎬

『옥천신문』 편집국장, 배바우작은도서관 운영위원. 공저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등이 있음. minho@okinews.com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먹거리 생태계

 

어느 사회나 먹거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과 이를 소비하는 구매자가 서로 다른 방향의 이해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마늘이나 고추 같은 작물이 태풍 등의 자연재해를 입어 생산량이 시장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가격폭등이 예상될 때는 당국이 수입조치 등을 통해 개입한다. GMO(유전자변형작물) 표시 문제나 농산물 수입을 둘러싸고도 농민단체와 수입업체 그리고 소비자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있다. 나라마다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통상압력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먹거리는 공간적으로 다양한 국가와 지역이 개입되어 있고,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여러 주체가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먹거리 생태계에서 정작 생산자인 농민이나 최종 소비자 모두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결정자의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GMO식품, 닭살충제 파동, 농수축산물 수입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어온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식품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자본이 중요한 결정을 주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정부도 수동적으로 사후에나 대처하는 실정이다. 우리의 먹거리 주권이 사실상 남의 손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먹거리를 둘러싼 이같은 위협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해답이 될 만한 사례로서 충북 옥천군을 주목하고자 한다. 옥천에서는 30여년 전부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농민운동이 조직화되었는데 지금까지 농촌마을 민주주의공동체,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경제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과 공생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옥천1

 

(옥천은) 농정과 지역발전에서도 여러 선진지에 비해 내세울 특이점은 없는 편이다. 튼튼한 협동조합의 뿌리를 가진 원주시나, 잘 짜여진 계획을 통해 빠른 성장을 보이는 완주군, 마을의 내재적 발전 역량을 지속적으로 배양해온 진안군, 교육과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홍성군 등 여러 선진지와 비교하면 평범한 과정을 거쳐온 것이 옥천군 지역농업의 발전 모델이라고 하겠다. (…) 특별할 것 없는 지역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지역과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상식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삶의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풀어가는 평범한 방식이 이른바 ‘옥천 방식’의 대표적인 작동 원리라고 할 수 있다.2

 

내실을 더해온 주민자치 기반

위에서 보듯이 의지를 가진 군수 그리고 컨설팅기관의 연대체로 구성된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이 있는 전북 완주군이나, 별정직 공무원의 혜안이 만든 귀농지원 정책과 마을 살리기 정책의 결합이 이뤄진 전북 진안군, 장일순과 지학순 등 역사적 인물에 기초한 협동조합 역사를 가진 강원 원주시, 역시 이찬갑과 주옥로가 만든 풀무학교의 역사를 토대로 하는 충남 홍성 홍동면의 농업 등에 비하면 출발 당시 옥천군은 모든 조건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옥천 농민운동조직의 씨앗인 ‘옥천군 농민회’는 1990년에 다소 늦게 만들어졌는데 한두군데 지회를 빼고는 확장성이 떨어지는 등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인근 보은군과 영동군에서 화려한 투쟁의 역사를 자랑하던 농민회가 아예 없어진 것과 달리 옥천군 농민회는 가늘지만 길게 내실을 기하며 이어져왔다. 옥천군 농민회는 옥천 농정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역 농업과 농촌을 건사하면서도, 순수성만을 고집해 홀로 싸우지 않고 같이 연대했다.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여농(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옥천흙살림, 친환경연구회 등의 농업인 단체와 꾸준히 연대의 틀을 공고히 하며 자기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으로 전환해 같이 목소리를 냈다.

옥천의 특수성이라면 1989년 군민주(郡民株)로 만들어진 『옥천신문』이라는 공론장을 빼놓을 수 없다. 농민회가 농민연대의 틀을 구성해 이슈를 제기하거나 잘못된 농업정책을 비판하거나 거리에 나와 투쟁을 하면 『옥천신문』을 통해 공론화됐고 확산됐다. 주민이 목소리를 내면 신문이 알려주고, 그것을 통해 자치단체 및 의회와는 투쟁과 대화를 오가는 논의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지역신문의 존재는 지역사회의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함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농촌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다. 옥천군은 단순히 돈 잘 버는 농업만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들 방안을 강구하면서 면 단위 자치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나갔다. 안남면과 안내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옥천군 농민회의 오랜 지역기반이었던 안남면과 안내면 주민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할머니들의 한글학교인 ‘안남어머니학교’와 ‘안내행복한학교’를 스스로 만들었고, 도서관과 복지회관 등도 자발적인 논의를 거쳐 세웠다. 특히 안남면은 지역 내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인 지역발전위원회라는 틀을 2006년에 만들어, 물 이용 부담금으로 조성된 주민지원 사업비를 활용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옥천군은 또한 환경에 대한 고민도 같이하며 터전의 지속 가능성을 성찰하고 있다. 지역 친환경농산물의 유통을 위해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2008년에 만든 ‘옥천살림’은 현재 학교급식을 운영하는 생산자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조직된 ‘대청호 환경농민연대’와 함께 친환경농산물 교류는 물론 농촌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한다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농업·농촌 발전은 요원한 것인가? ‘똘똘한’ 군수와 의원을 뽑는 것만이 능사라면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위기는 더이상 헤어나올 길이 없고 미래를 그릴 힘도 없어 보인다.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늘 관()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변화가 요원하다고 생각해왔다. 설령 법과 제도, 행정과 공무원이 문제일지라도 그들만 탓해서는, 그들이 바뀌기만을 기대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안 되면 싸운다. 공론장을 스스로 만들어 대화한다. 지향해야 할 가치를 놓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협의하며 더디지만 하나씩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더이상 빼앗기지 않도록 다 함께 지켜낸다.

거버넌스(governance), 즉 협치가 시대적 화두다. 그러나 4년마다 바뀌는 대리자치 주체에게만 맡겨버렸다가는 구호에 머무를 뿐이다. 그것은 관치의 또다른 유형에 불과할 따름이다. 협치의 가치와 본뜻을 살리려면 주민 스스로 나서야 한다.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이것이 바로 협치라는 화두가 품고 있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한다.

 

농민운동의 흐름 속에서 옥천살림이 태동하다

옥천살림은 2001년 옥천 농민들이 ‘쌀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옥천군에 농업발전위원회를 요구하며 가시화한 농민운동의 흐름상에 있다. 옥천살림은 단순한 유통조직이 아니라 농민들이 대화와 투쟁으로 쟁취해낸, 어찌 보면 지난한 운동의 산물이다.

2004년 12월 옥천군청 앞에서 이루어진 천막농성 당시의 주장을 살펴보면, 지역농업의 활로를 찾기 위한 ‘친환경농업 육성 및 학교급식 조례 제정’이 있다. 이것은 2003년에 옥천에서 시작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 당시 농민들과 전교조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만든 ‘옥천희망연대’가 가장 우선한 활동으로 이 운동을 내걸면서 학교급식을 개선하려는 열망은 급물살을 탔다. 군청과 의회에 급식조례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결과 의회가 수용했지만 그 내용이 충분치 못해 수차례 이의 신청 끝에 다듬어 만든 것이 2007년 10월 10일 제정된 ‘옥천군 학교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다.

이러한 농민운동·시민사회운동의 선상에 옥천살림이 존재한다. 제정만 해놓고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던 학교급식조례를 살려내기 위해 22명의 농민이 2008년 3월에 직접 영농조합법인을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해당 조례가 제정되고 나서 지역 농협에 사업을 제안했지만, 농협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시골 학교는 읍내에서 차로 40분 남짓 가야 한다거나 학생수가 30명 이하인 곳이 많아 수익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얼마 안 되는 물량에다 기름값, 인건비를 따지자니 일반 업체는 물론이고 농협 또한 손사래를 쳤던 것이다. 그런 난관에 봉착했을 때, 농사일만으로도 여념이 없던 농민들이 시간과 열의를 직접 모았다. ‘그럼 우리가 해보자.’ 그런 마음에는 ‘최소한 여기 사는 아이들만이라도 우리가 농약 안 쓰고 건강하게 가꾼 것들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지 않겠나. 먹고살려고 농사짓지만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만은 우리가 책임지자’는 뜻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500만원이 채 안 되는 초기 출자금으로 이들은 그렇게 거의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

2008년에 로컬푸드 정책을 시작한 완주군이 군 주도로 다양한 정책·사업을 실행한 데 비해 이렇듯 옥천에서는 농민들이 직접 만든 옥천살림 영농조합법인을 바탕으로 밑에서부터 안간힘을 써왔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안대성 대표는 이를 두고 “옥천은 주민자치 역량으로 땅을 단단히 다져오면서 완주보다 더 길게 갈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지만 가용자원으로 가능한 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 옥천 사례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렇게 옥천살림은 2008년 3월, 지역 초중고 대상 무농약 쌀 공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옥천살림의 설립 이유는 정관에 잘 나와 있다. “협업적 농업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농산물의 출하·가공 등을 통해 조합원과 조합법인과 관련을 맺고 있는 ‘환경’농업인의 소득증대를 도모하고,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기본 생활권’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옥천살림을 알릴 때 따라붙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로컬푸드’라는 모토를 풀어서 쓴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아래의 말에서 옥천살림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여기 참여하게 됐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하늘과 땅만 보고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땀 흘려 지은 농산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구한테 얼마에 파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같이 나누고 싶은데 믿음으로 건네고 싶은데 대도시의 공판장과 유통회사들은 가격을 후려치면서 모양 좋은 것만 가져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옥천의 친환경농업 하시는 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우리가 농사짓는 땅이 있는 곳, 옥천을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그렇게 지역도 살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우선 아이들 먹는 것부터 챙겨야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학교급식운동을 해서 조례로 만들고 친환경 지역농산물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 급·간식까지 그 범위를 넓혔지요. 흙만 보고 살았던 농부들인데 왜 실수가 없었겠습니까? 갖은 시행착오 속에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옥천 곳곳에서 외롭게 홀로 농사짓는 작은 농부들, 구부정한 허리 톡톡 두들기며 발 딛기도 힘든 할머니 농부들의 작은 텃밭에도 아름다운 연대의 꽃을 건네드릴 작정입니다. 옥천살림은 순수하게 메이드 인 옥천, 옥천에서 나고 자란, 옥천 땅과 옥천 사람들의 기운으로 자라난 그 농산물을 같이 나누려 합니다. 이것이 처음 시작한 그 착한 농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함께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순환과 공생으로 만들어가는 지역공동체 옥천살림을 자치와 연대로 같이 품어주십시오.3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하게

옥천살림은 점차 활동의 내용과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2009년 10월부터 옥천 콩을 직접 수매해 두부 제조를 시작한 데 이어 2010년 1월에는 학교뿐 아니라 옥천 지역 전 어린이집 27개소에 무상 급·간식 식재료를 공급했다. 2011년에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지역의 친환경농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공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학교급식센터 회의와 어린이 무상 급·간식 회의 등의 공론장을 통해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농산물을 생산·유통해왔고 농민들과 가격 협의를 거쳐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재료를 공급해왔다. 매월 각 면 대표 영농조합법인이 참여하는 이사회를 통해 취급 품목을 넓혀가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대표적 폐단인 단일품목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나 다품목 소량생산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지역 내에서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유통될 수 있는 생태계 건강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자급의 거점이자 토대를 일구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취급하는 농산물 품목수는 현재 40여가지에 달한다. 지역 내 장애인보호작업장인 빵 공장, 방앗간 등과 협력해 지역 친환경농산물 원료를 공급하고 그것으로 만들어진 빵과 떡을 간식 제품으로 활용하게 됐다. 2011년 주민발의 운동으로 시작해 3년 동안 투쟁과 대화를 거쳐 2013년 11월 20일 비로소 결실을 본 ‘옥천푸드지원조례’ 제정은 옥천 농업과 먹거리운동의 또다른 분기점이라 볼 수 있다. 학교급식을 넘어서 지역의 공공급식으로 발을 넓히는 큰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한편 옥천푸드지원조례가 제정된 이날, 묘하게도 옥천친환경농업인연합회 역시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지역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들의 모임으로 그동안 옥천살림 중심이던 활동의 구심을 좀더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영리 공론장을 표방하며 설립되었다. 그래서 2013년 11월 20일은 더 큰 의미를 지닌 날이 되었다.

옥천살림의 구호는 앞서 말한 대로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로컬푸드’이다. 옥천살림은 내부 조직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옥천의 전체 살림살이를 모든 농민·주민과 함께 건사하려는 움직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1월에는 지역 주민들과 옥천살림 노동자들, 생산자 농민들까지 아우르는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옥천군이 만든 옥천푸드유통센터를 위탁받는 성과가 있었다. 이 역시 학교급식을 넘어서 공공급식으로 나아가는 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자궁부터 무덤까지, 옥천의 모든 주민이 보편적으로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접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려는 운동의 중심에 바로 옥천살림이 존재한다. 옥천살림은 아래로부터 농민들이 만들었지만 생산자 이익단체, 돈 많이 버는 유통조직이 아니라,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생산자 농민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보장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인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지역 생태계 및 주민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역 안에서 다양한 품목의 친환경농산물 재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작지만 강한 공동체’의 가치 확산을 기대하며

 

순환과 공생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옥천군의 이야기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먹거리 주권, 지역공동체와 마을자치, 마을민주주의 등이 지속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경제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좌표와 내용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기존의 중앙집권 체제 아래에서의 형식적 지방자치, 외부에 의존하는 지역경제 등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자각에서 출발해 주민의 자발적 주도와 참여로 운영되는 직접자치 및 경제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날이 심화되는 농촌 지역의 고령화, 지역경제의 외부 의존 심화 현상 속에서 농촌소멸을 걱정하는 와중임에도 제대로 된 정책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여 농촌 지역이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옥천군, 특히 안남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지역의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공동체와 대안경제를 모색하게 되었고 앞에서 설명한 노력들이 지속돼왔다. 그 결과 공동체와 사회적자본이 단단하게 구축·순환되는 지역생태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을민주주의와 경제공동체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먹거리를 기반으로 30년 이상 지속되어온 생명·생태 존중 사상, 두레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농민운동이 밑바닥에 깔려 있으며, 지역미디어 『옥천신문』이 지역 내의 의지·의사·비전을 연결하는 소통의 고리 역할을 해온 공이 크다. 옥천의 마을공동체, 경제공동체는 마을의 각종 공간을 토대로 삼아 육아, 교육, 시장, 농업, 협동조합, 로컬푸드, 주택, 환경 등 모든 활동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그래서 이곳 공동체는 어떤 내외부의 충격과 스트레스에도 건강함을 지탱하는 회복력과 지속 가능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4대강사업, 뉴타운사업, 도시재생 뉴딜,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등 수십억에서 수십조원 단위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뚝멋과 거대 망상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는 이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슈마허(E. F. Schumacher)의 외침을 되새겨야 할 때다. 옥천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 농촌사회의 ‘작지만 강한 공동체’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같은 가치와 활동의 사례가 곳곳으로 퍼져 그런 공동체·지역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한 행복공동체로 거듭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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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 절은 황민호 「옥천군의 지역먹거리 체계 구축 사례」, 삼락농정포럼 1차전문가워크숍(2016.4.28) “지역먹거리 체계의 이해와 접근방향” 주제발표문을 토대로 했다.
  2. 황민호 「자치와 연대로 만들어가는 지역공동체: 옥천군의 실험」, 농정연구센터 제225회 월례세미나 발제문, 2012.
  3. 옥천살림 일동 「옥천살림 이야기」, http://www.oksalim.co.kr/com/com-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