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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형권 朴炯權
1961년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두커니』가 있음. pkvalley@yahoo.co.kr
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
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
장마전선이 물폭탄을 쏟아부은 동네의
자작한 하수도를 따라
늘 곰팡이가 솟아오르는 우리의 정오(正午)를 지나서
나팔꽃 아래 덤성덤성 파인
골목으로 들어선다
비가 새지 않으면 방이 아니라고 믿는
공인중개사의 늙수그레한 자전거가 앞장을 서고
딸 자전거를 타고 나온 비옷 같은 아내가 그 뒤를 따르고
나는 아내의 젖은 꼬리를 물고
아직은 종아리가 단단한 페달을 밟는다
이 서울의 지표면에는
창틀이 마당과 맞물린 우리의 꿈을 품어주려고
축축하게 젖어서 기다려주는
반지하 단칸방이 있어
우리의 미래는 송이버섯처럼 번창하리
보증금 삼천오백만원은 우리 생명보다 소중하여
왼쪽 가슴에 단단히 찔러넣고 두근두근 돈이 심장소리를 들을 때
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
대체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기에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남는지
참새들이 골목에 나와 고단한 날개를 말린다
언젠간 바퀴를 크게 저을 수 있지만 오늘은 기어를 저속에 놓고
우린
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
우리 네 식구가 냄새를 풍기며 구더기처럼 꼬물거릴
그 기도(祈禱)를 찾아서
지칭개 골목
지하방 창에 딸깍 불이 켜지면
지칭개 핀 골목이 어딘가로 간다
어딘가, 어딘가, 어딘가로 가고 있지만 선언하노니 그 끝은 없다
지칭개 골목은 떡 골목과 어깨를 걸고
걷다보면 전파상 골목과 만나고
또 치킨 골목과 손을 잡는다
골목에서 시작한 모든 새벽들이
사거리에 모여 사거리로 흩어진다
어디로 가든 서울로 가고 어디로 가든 로마로 간다
그 지하방 창의 목발 짚는 아이는
우루무치로 가고 싶어
매일 이백원씩 저금통에 넣고 외삼촌이 사다준 지구의를 돌린다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아버지는 지금 가고 있을까
지상의 모든 길을 다 걸어야
치킨가게의 훈제닭을 사서
아버지는 돌아올 것이다
엄마의 손등으로 봉제공장의 미싱바늘이 지나가고
급히 병원 다녀오는 사이 하루가 지나가고
길들이 돌아온다
어깨를 걸고 손을 잡고 밀고 당기면서 지칭개 골목으로 돌아온다
모든 골목이 롤스로이스처럼 기다린다
엄마가 새벽밥 먹고 타고 나갈 지칭개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