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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소연 金素延
1967년 경주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등이 있음.
catjuice@empas.com
열대어는 차갑다
사월은 차갑다
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
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
그는 어째서 가까운가
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 살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
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뒤뚱거리는 아기처럼
닫힌 문이 뒤뚱거린다
문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맥주가 목젖을 가시화한다
안주가 어금니를 가시화한다
우리의 대화를 대신한다
대화는 기억해둔 것들을 잃게 한다
사월은 유실물보관소일지 모른다
솥에 뚜껑이 없었다면
쌀은 밥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밥에 차가운 숟가락을 넣는 건
어째서 기예에 가까운가
손이 시려운 자가 장갑을 낀다
손목을 그어본 자가 시계를 찬다
문이 열린다
찬 바람이 들이친다
바다는 사월의 날씨를 집결한다
해파리가 뜨겁다 가오리가 가깝다
열대어는 차갑다
심해어는 내 방을 엿본다
그런 것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창문 바깥에서가 아니라 저 멀리 대관령에서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두고 바깥에 앉아 볕을 쬐고 있을 때 고양이가 다가와 내 그림자의 테두리를 몇걸음 걸었고 저쪽에 웅크렸다
꿈에서 일어난 일들이 쏟아져내렸다 허벅지에 떨어진 동그란 핏방울이었고 그 다음 양철 주전자였고 그 다음 도살장 옆 미루나무였다
단식을 감행했다 내가 아니라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저 먼 제주도에서
아침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많이 아팠다 내가 아니라 저 먼 시베리아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할머니는 선지를 좋아했고 엄마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나는 심부름을 좋아했다
자박자박 붉은 물기를 밟으며 도살장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한발씩 한발씩 서늘해졌다 검은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동물들은 걸려 있거나 누워 있었다 질질 끌려 우리집 앞을 지나간 건 어제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쪼그려앉아 선지를 먹었다 아주 오래전 그 집에서가 아니라 조금 전 꿈속에서
멀리서 날아온 빈혈들이 할머니의 은수저에 얹혀 있었다 할머니의 은빛 정수리처럼 똬리를 튼 채로
아침은 이런 것이다
도착한 것들이 날갯죽지를 접을 땐 그림자가 발생한다 바로 거기에서
나무가 있었다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사람이 아니라 저기 빈자리에서 나무 한그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