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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자동화,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노동의 미래

 

 

전병유 田炳裕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정책과제』 『디지털경제와 일자리 창출』 『한국 경제 규칙 바꾸기』(공저) 등이 있음. bycheon@hs.ac.kr

 

 

첫번째 이야기: 과거의 자동화와 미래의 자동화

 

지금으로부터 구십년 전 전세계가 대공황으로 비관주의에 빠져 있을 때, 경제학자 케인즈(J. M. Keynes)는 「우리 후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1930)이라는 낙관적 에세이를 썼다. 기술 혁신이 하루 3시간, 주당 15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고, ‘우리 안의 아담’(the old Adam in most of us), 즉 인간 본능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케인즈의 걱정은 ‘기술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있었다. “노동의 새로운 용도를 찾기 전에 노동 자체를 줄이는 수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케인즈는 사회와 경제가 더 높은 생산성 수준으로 조정되면서 “부적절한 조정의 일시적 단계”가 오리라 걱정한 것이다.

버클리대학 교수인 들롱(J. B. DeLong)도 자본과 노동은 보완하는 것이 아니며 자본축적의 고도화는 상대적 과잉인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맑스(K. Marx)의 주장은 맑스 시대부터 지금까지는 틀린 것이었으나 다음 세기가 지나기 전에는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1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은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냈고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류의 생활수준을 높였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정설이다. 인간 활동의 자동화는 생산과정에서 오류를 줄이고 품질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경우에 따라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인간 노동을 심화-확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동화시대는 다르게 작동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축되는 데이터 기반의 기술 혁신은 두뇌 작업의 자동화를 극적으로 가속화할 수도 있다. 자동화를 통해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본은 노동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고 있으며, 자동화 투자에 따른 생산성 향상 효과는 미국의 경우에도 2006년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자동화는 이전과는 다른 특이점(singularity)을 가지는 것인가?

4차산업혁명에 대해 왈가왈부가 있지만, 이를 과거의 산업혁명과 굳이 구분 짓는 하나의 특징을 들라면 비트(bit, 최소 정보 단위)와 아톰(atom, 최소 물질 단위)의 결합, 온라인 정보세계와 오프라인 물질세계의 융합을 들 수 있겠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계학습 그리고 로봇공학의 발달로 인간은 새로운 자동화시대의 첨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동화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확산되는 중이고, 로봇이 조립라인을 떠나 당신의 지적 노동까지 떠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와 노동에 관한 대표적 연구자인 레비(F. Levy)와 머네인(R. Murnane)은 2004년 실증 연구에서 컴퓨터는 규칙으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패턴 인식 작업에서 인간에게 도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2 일상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구조화되지 않은 인지적·창조적 과제는 영원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폴라니의 역설(Polanyi’s Paradox)과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단순 반복 계산)을 컴퓨터가 더 잘하지만, 인간이 하기 쉬운 일(감각 감정 추론 판단)을 컴퓨터는 하기 어렵다’는 모라베크의 역설(Moravec’s Paradox)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용화를 앞둔 자율주행차량에서 보듯이, 인지와 판단을 동시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자동화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던 운전 같은 활동도 조금씩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법조인과 의료인 등 자동화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여겨지던 광범위한 범주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기계의 인지능력이 확장됨에 따라 이른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영역조차 기계에 의해 침범당하면서, 인간은 최후 영역인 창의, 배려와 공감,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제2의 기계시대’의 자동화는 막강한 컴퓨팅 능력으로 기존의 자동화와 차별화된다. 오늘날의 인공지능을 뒷받침하는 기본 알고리즘 대부분은 이미 수십년 전에 개발되었지만, 당시의 능력으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컴퓨팅 능력의 거대한 도약은 인공지능 기술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을 더욱 강화해준다. 만물의 디지털화는 미래의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더 많은 데이터를 생성함으로써 인공지능의 힘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량은 시간당 약 2.5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생성한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도록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MIT의 에스모글루(D. Acemoglu)와 보스턴대학의 레스트레포(P. Restrepo)에 따르면 기술 혁신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기술 혁신과 인간을 위해 새롭고 더 복잡한 작업을 창출하는 기술 혁신이다. 전자는 자동화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임금이 하락하지만 후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간의 능력을 높여준다. 역사적으로 이 두가지 유형의 기술 혁신은 시장에 의해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두 사람의 주장이다.3 그러나 균형은 깨질 수 있다. 자본의 가격이 임금보다 싸다면, 자동화가 영구적으로 승리하여 생산을 완전히 로봇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도 자동화와 일자리 간의 관계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기계가 일부 노동을 대체하지만, 노동을 보완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여전히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망과 추정 결과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2016년 ‘4차산업혁명에 따른 미래 일자리 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4차산업혁명의 영향으로 2020년까지 일자리 510만개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인공지능 활용이 보편화하는 이른바 ‘로봇 경제’의 출현으로 2025년까지 전세계에서 창출될 일자리는 1억 3300만개이고, 로봇에 의해 대체될 일자리는 그 절반 수준인 7500만개로 예상했다. 2016년의 전망을 WEF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시각 전환은 연구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자동화의 고용 효과에 낙관적이었던 에스모글루와 레스트레포는 2018년 연구에서 고용 및 임금에 대한 로봇의 강력한 부정적인 영향을 계량적으로 추정했다.4 노동자 천명당 하나의 로봇이 추가되면 고용은 0.2%, 임금은 0.37% 감소한다는 것이다. 반면 보스턴대학의 베센(J. E. Bessen)은 컴퓨터가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80년부터 2013년까지 317개의 직종에 컴퓨터 자동화가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하는 직종에서 고용이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다”5는 결론을 도출했다.

들롱 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기계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사이버네틱스 제어 루프(cybernetic control loop)의 실제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사이버네틱스 제어 루프가 인간의 뇌를 필요로 하는데, 모든 인간의 뇌는 성장, 교육 및 개발하는 데 평균 15년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오늘날 기술 혁신은 작업 프로세스와 절차를 통제-감독하는 노동의 구성 요소 대부분을 사람에서 기계로 이동시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6

자동화에 관한 기존의 논의와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자동화가 인간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와 경제주체들의 대응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어쩌면 다소 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동화가 기술적으로만 진전되는 것은 아니고, 자동화에는 많은 비용이 들며, 규제는 기술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자동화로 불이익이 예상되는 기존 조직의 구성원들은 저항하고 투쟁한다. 결국 자동화의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컴퓨터과학은 여전히 사회과학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이야기: 디지털 노동 플랫폼과 인간의 노동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그리고 알리바바, 텐센트 등 2018년 주식가치 세계 10대 기업 중 7개가 이른바 거대 플랫폼 기업이다. 올해 기업공개(IPO) 예정인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주식가치가 각각 100조원과 4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공급자와 사용자의 매치메이킹7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성공하면 독자적인 자신의 플랫폼 시장을 구축하고, 더 크게 성공하면 다른 시장 영역까지 포괄하여 전체 경제를 통제하기까지 한다.8 디지털 플랫폼은 ‘기그 경제’(gig economy, 고용 없이 필요할 때마다 계약해 일을 맡기는 형태)와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를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소셜미디어의 경제적 엔진이자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인간의 관심을 상품으로 여기는 시장)의 아키텍처를 자임하며, ‘소유권의 종말’을 주장하기도 한다. 플랫폼 기업은 자산이나 직원을 거의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양면시장(또는 다면시장multi-tier market)의 (교차)네트워크 효과로 성장하여 시장을 독점 지배할 경우 ‘책임은 적고 이점은 많은’ 혜택을 누린다.

물론 플랫폼 산업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독자와 광고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사와, 차용자와 예금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은 수세기에 걸쳐 영업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9 양면시장의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성장하는 것은 기존의 플랫폼 산업과 유사하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이라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거래과정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독점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시장과 노동을 관리·통제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플랫폼과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 플랫폼은 단순한 ‘거래촉진자’(transaction enabler)에서 시장과 거래를 통제하는 ‘문지기’(gatekeeper)로 전환하게 된다.

지난 십여년간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장 속에서 노동력의 거래를 중개하는 디지털 노동 플랫폼도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유휴자산의 공유나 재화의 유통이 아닌 개인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의 상업적 조정에 기반을 둔다. 이는 서비스 사용자가 방대한 주문형(on-demand) 노동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10

최근 시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나 연구자들이 이들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이론화·개념화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독립적 계약자, 고용, 지불, 타인의 데이터 센터 사용 같은 용어보다는 터커(Turker, 제공자), HIT(Human Intelligence Tasks, 인간 지능 업무), 보상(awards), 클라우드(cloud) 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은 플랫폼 노동의 문제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그나마 슈미트(F. Schmidt) HTW드레스덴대학 교수의 2017년 연구와, 국제노동기구(ILO) 재닌 버그(Janine Berg)의 2018년 연구11 등은 이를 어느 정도 개념화하는 데 일조했다.

슈미트는 디지털 노동 플랫폼에서 수행되는 작업을 ‘클라우드 워크’(cloud work)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 ‘기그 워크’(gig work) 등으로 구분했다. 작업이 위치 기반이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우 클라우드 워크, 작업이 불특정 개인이나 온라인에 있는 정의되지 않은 그룹에게 주어질 경우 크라우드 워크, 작업이 특정 위치와 시간, 작업을 담당하는 특정 사용자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 기그 워크로 분류한 것이다. 특히 조각 작업을 위해 더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할당되는 경우는 마이크로태스크 플랫폼 워크(micro-task platform work)라고 했다. 버그도 슈미트의 개념화에 기초하여 지리적으로 분산된 군중(crowd)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모집하여 작업을 아웃소싱하는 웹 기반 플랫폼과, 특정 지리적 영역의 개인에게 작업을 할당하는 위치 기반 앱을 통해 작업을 아웃소싱하는 앱 기반 플랫폼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배달·가사 서비스·대리운전 등 저숙련 노동 중심으로 기그 워크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크라우드 워크나 클라우드 워크는 아직 발전이 제한적이다. 기그 워크의 경우, 노동인구의 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물리적 자산의 형태로 훨씬 더 커다란 자본이 관련되기 때문에 특히 파괴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확산되는 측면도 있다. 강한 인공지능이 완성되기 전까지 약한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생하는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AMT(Amazon Mechanical Turk)라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서비스를 보자. 이는 ‘소규모 정보 작업을 위한 온라인 노동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AMT는 작업 요청자가 등록한 작업들을 작업자가 처리한 양만큼 현금으로 보상한다. 요청되는 작업은 대개 단순업무인데, 이미지를 보고 단어를 입력한다든가 필기체를 입력하는 식으로 특정 데이터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여전히 인간이 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 개체 식별, 데이터 중복 제거, 음성 녹음 변환, 데이터 세부사항 분석 등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들을 등록된 터커들에게 할당하면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아마존은 이를 ‘인공의 인공지능’(artificial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 이름 붙이고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작업을 수행하는 주문형의 확장 가능한 인력 서비스’로 AMT를 정의한다. 인공지능의 실패 또는 한계가 마이크로태스크 디지털 워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공지능의 머신러닝을 지원하는 셈이다. 테슬라모터스의 자동운전을 위한 컴퓨터 비전 시스템, 아마존의 음성인식 비서인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 비서 코타나 등이 터커들의 최대 고객이다.

온라인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인 ‘Mighty AI’도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학습 데이터(training data)를 만들어내는 데이터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다.12 유튜브의 동영상 900만건, 이미지넷의 사진 1400만건에 대해 온라인 크라우드소싱을 통해서 태깅 작업을 수행하는 데 투입된 인력만 약 5만명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을 활용하는 대표적 서비스로 명함 공유 서비스인 ‘리멤버’가 있다. 이 앱의 뒤편에는 약 500명의 태깅 노동자가 있다. 크라우드소싱 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인 크라우드플라워(CrowdFlower)의 모토가 ‘데이터가 알고리즘보다 중요하다’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여전히 핵심적 기능이다. 플랫폼 제공 업체는 플랫폼의 데이터, 프로세스 및 규칙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과 제어 권한을 가진 유일한 당사자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특정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인 알고리즘은 체계적인 정보 비대칭을 초래하고, 이를 통해 권력 비대칭성을 유발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에 의한 관리(algorithm management)는 인간의 노동이 알고리즘 및 추적된 데이터를 통해 할당되고 최적화되고 평가되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채용 및 관리 프로세스는 물론 작업과정까지 통제한다. 특정 경험과 기술을 가진 작업자를 걸러낼 수 있도록 이들의 자격과 업무를 평가하는 메커니즘이다.13 우버의 가장 큰 혁신도 알고리즘 관리(독립 계약자의 자동 평가 및 추적)에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차량 배차와 가격 최적화를 자동화한 것이다. 기그 노동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추적되기 때문에 중요한 개인 데이터가 위치 기반 서비스에 의해 수집되고 이를 통해 관리된다. 마이크로태스크 플랫폼인 크라우드플라워는 누구의 작업 결과가 가장 정확한지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쿼럼 시스템(quorum system,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시스템)을 사용한다. 자신의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를 작업자들과 공유함으로써 작업 결과가 통합적으로 평가관리되도록 하는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디지털 플랫폼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디지털 도구가 중개자 역할을 한다는 기술적 측면만 제외하면 기존에 확산되어온 비정형의 작업-고용 형태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다.14 디지털 노동 플랫폼에서는 노동시간보다 수행한 업무량에 따른 급여 지불 구조를 가지는데, 이는 산업화 초기의 개수임금제(piecework arrangement)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고, 디지털 수단에 의한 중개 기능은 파견용역업체의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코스(R. Coase)는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 1937)이라는 저서에서 기업이 필요한 노동을 매일 공개된 시장에서 새로운 계약으로 협상하고 구매하는 것보다는,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며 지시와 명령을 받는 댓가로 종업원들에게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임금을 제공하는 장기계약 방식이 더 효율적임을 보인 바 있다. 그런데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이 모델을 뒤집는다. 이는 테일러식 과학적 관리법(Taylorism)에 의한 탈숙련화 전략으로의 후퇴, 그것도 충성(기업에 대한)과 안정(고용안정)의 타협까지 배제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노동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흐름(비정형 고용형태의 확산)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버나 태스크래빗(TaskRabbit) 같은 온라인 프리랜서 시장은 독립적인 노동력을 새로 창출했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독립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15

물론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거나, 부업을 통해 불안정한 소득을 보완하거나, 공식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활용 가능하다는16 새로운 측면도 있다. 이렇게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유연성을 중시하며,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장소에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상당수는 정상적인 취업 기회를 찾지 못한 비자발적 취업자들로, 평균소득은 매우 낮고 플랫폼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계층이 대부분이며, 업무의 사회성이 떨어져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노동과 소득의 불규칙성이 가장 큰 걱정거리이며, 미취업상태에 있거나 무급노동을 하는 데 전체 노동시간의 3분의 1을 소비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17

양면 또는 다면 시장에서 플랫폼 제공자는 거래와 관련된 비용과 위험 및 책임의 대부분을 상대에게 떠넘길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고객, 노동자 및 주변 세계와의 긴장관계는 경제와 사회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더이상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다. 현재 이 긴장은 고용이 이미 불안정하고 계약 기반인 택시운전 같은 저숙련 부문에서 플랫폼 노동이 처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려져 있거나 무시되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이 정치적·사회적 자본이 많은 계층으로 확산됨에 따라 이 긴장은 확대될 것이다.

특히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하여 기존의 노동자에게 제공해야만 했던 노동 및 사회 보장법의 보호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을 단순히 온라인 중개업자로 자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듯이, 디지털 노동 플랫폼은 단순히 중개인이 아니라 거래와 작업 방식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용자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가져가고 있다.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여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임금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이들의 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가입을 지원하거나,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플랫폼 주식을 부여하는 아이디어도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서비스의 품질이 중요시되는 경우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법과 제도 측면에서의 대응도 활발해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를 임금노동자로 정의하도록 하는 소송과 입법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실상 임금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하는 오분류 방지 방안,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노동법을 일하는 사람 전체를 위한 노동법으로 개편하는 방안, 자영업과 임금노동 중간에 제3의 고용지위를 만들어 보호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다. 다만 영역 간 경계가 매우 흐릿하여 이러한 방안들이 쉽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노동법적 보호가 쉽지 않은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보호의 보편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시작하자는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반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한 노동 통제 규제 방안은 아직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알고리즘 통제에 대해서는 데이터 사용 시 익명성의 원칙, 자신의 작업 공간에서 어떤 기술과 데이터가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공개 청구권,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 정도가 제시되고 있다.

 

로봇이 사람의 모습과 닮아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하여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수준까지 접근하게 된다. 일본 로봇과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正洋)는 이렇게 ‘인간과 흡사한’ 로봇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로봇 사이에 거부감이 존재하는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불렀다.

인공지능 기반의 자동화와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지금 인간은 이미 ‘불쾌한 골짜기’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불안은 로봇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인간은 로봇과 공생하는 새로운 인류,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디자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싶다. 다만 이는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에서처럼 ‘테마파크(웨스트월드)’를 꿈꾸는 자본과 로버트 포드 박사의 계획을 제어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능력을 전제로 한 전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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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Bradford DeLong, “Marx and Mechanical Turk,” Korea Herald 2014.4.4.
  2. Frank Levy and Richard J. Murnane, The New Division of Labor: How Computers are Creating the Next Job Marke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3. D. Acemoglu and P. Restrepo, “Artificial Intelligence, Automation and Work,” in A. Agrawal, J. Gans, and A. Goldfarb, eds., The Econom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 An Agend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8.
  4. D. Acemoglu and P. Restrepo, “Robots and Jobs: Evidence from US Labor Markets”(https://economics.mit.edu/files/15254).
  5. J. E. Bessen, “How Computer Automation Affects Occupations: Technology, Jobs, and Skills,” SSRN Electronic Journal 2015.1.
  6. J. Bradford DeLong, 앞의 글.
  7. 페이스북, 구글, 애플, 네이버는 개발자-사용자-광고주를, 이베이와 지마켓은 판매자-구매자를,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차량 및 숙박시설 소유자-사용자를 연결한다. 이들은 개인이 소유한 비상업용 유휴자산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상업용 자산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 동남아의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인 그랩(grab)은 교통수단을 앱으로 부르는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 금융대출 기능과 교육훈련 기능까지 자처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취약한 금융이나 교육 같은 준공공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우고 있다. 에어비앤비도 주거공유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이미지까지 재구성한다.
  9. Florian A. Schmidt, Digital Labour Markets in the Platform Economy: Mapping the Political Challenges of Crowd Work and Gig Work, Friedrich-Ebert-Stiftung 2017.
  10. 같은 글.
  11. J. Berg, M. Furrer, E. Harmon, U. Rani, and M. S. Silberman, Digital labour platforms and the future of work: Towards decent work in the online world,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2018.
  12. 김호성 「AI 머신러닝을 위한 데이터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다수 등장… ‘학습데이터’부터 태깅 ‘노가다’까지 업무 ‘천차만별’」, 뉴스비전e 2017.5.30(http://www.nvp.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094).
  13. 플랫폼에서 작업하는 조건은 플랫폼의 ‘서비스 약관’(terms of service) 문서에 나와 있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는 작업을 시작하려면 이 약관에 동의해야 한다. 각 조항은 플랫폼 노동자가 언제 어떻게 급여를 받는지, 이들의 업무는 어떻게 평가되는지, 상황이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규정해놓는다.
  14. 큰 프로젝트를 위해 세분화된 작은 정보를 제공하는 작업에 ‘군중’을 사용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은 (인터넷 및 웹사이트로 설계된) 새로운 기술매체를 사용하여 이러한 프로젝트를 조정하고 조직의 일부 측면을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은 직장(job)을 작업(task)으로 잘라내 업무의 일부분을 저렴한 비용으로 아웃소싱하고자 하는 수요자들의 요구에 따라(on demand) 제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출한 것이다. J. Berg, M. Furrer, E. Harmon, U. Rani, and M. S. Silberman, 앞의 책.
  15. 경제사가인 하이만(L. Hyman)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진 순수 신규 일자리의 94%가 전통적인 일자리 밖에서 출현했다고 한다. Louise Hyman, Temp: How American Work, American Business, and the American Dream Became Temporary, Viking 2018.
  16. 코디 쿡(Cody Cook) 등은 미국의 우버 운전자의 68%가 6개월 이내에 우버 플랫폼을 떠났다는 분석 결과를 제출했다. C. Cook, R. Diamond, J. Hall, J. A. List, and P. Oyer, “The Gender Earnings Gap in the Gig Economy: Evidence from over a Million Rideshare Drivers,” 2018.6.7(https://web.stanford.edu/~diamondr/UberPayGap.pdf).
  17. U. Rani and M. Furrer, “On-Demand Digital Economy: and Can Experience Ensure Work and Income Security for Microtask Workers?,” Journal of Economics and Statistics(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