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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오끼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관한 짧은 생각
C. 더글러스 러머스 C. Douglas Lummis
오끼나와 국제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아시아퍼시픽저널』(The Asia-Pacific Journal) 편집자, 사회운동가. 저서 『급진적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등이 있음.
* 이 글의 원제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 Reflections on the Okinawan Anti-Base Resistance”이며, 『아시아퍼시픽저널』(Asia-Pacific Journal) 17권 1호(2019.1.1)에 발표되었다. ‘후기2’는 한국어판에 추가된 내용이다. ⓒC . Douglas Lummis 2019 / 한국어판 ⓒ 창비 2019
작년 12월 14일 오끼나와 방위국은 오끼나와 북부 헤노꼬(邊野古) 연안에 대규모의 미 해병대 항공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매립공사를 개시했다. 나는 숙고한 끝에 ‘공식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방위국에서 거의 팡파르를 울리다시피 한참이나 일찍 공사 개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 즉 건설현장 및 흙더미를 선적하는 부두에서 주당 6일씩 연좌농성을 벌이던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과시용 공사’(見せかけ工事)라고 부른다. 농성자들의 시각에서 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오끼나와 방위국은 마침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농성자들과 오끼나와 현(縣)정부를 대상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시위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애써 설득 중이다. 그런 식으로 이 기관은 자신들의 준비과정에서 전환점이 생길 때면 언제나 일종의 의례행위로서 쇼를 벌이는데, 그 공공연한 메시지는 다름 아니라 “이제는 돌이킬 수 없으니 단념하고 포기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쇼’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14일부터 헤노꼬만(灣)의 해수가 흙과 분쇄된 바위로 실제로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들과 현정부 관리들이 맞는다면 이는 불법, 다시 말해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위국이 11월의 지사선거를 두고 희망했던 것처럼 12월 14일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시위대의 기를 꺾어놓으리라 기대했다면 그들은 또 한차례의 커다란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결전의 날 직전인 12월 8일 토요일과 12일 수요일 두차례에 걸쳐, 그리고 당일인 14일 금요일에 또 한번 헤노꼬 행의 시마구루미 회의(시마구루미〔島ぐるみ〕는 ‘섬 전체’라는 뜻으로 1956년의 오끼나와 반환운동의 이름이기도 하다—옮긴이) 전세버스에 올랐다. 이 지면을 빌려 사람들이 버스와 공사장 정문에서 나눈 몇몇 이야기와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자 한다.
8일 토요일 헤노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현지의 기지 반대 활동가들 외에 전일본자치단체노동연합(JICHIRO)에서 온 백여명의 본토 사람들이 두대의 대형버스를 타고 찾아와 있었다. 평소 연좌농성을 벌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은퇴자들이라 그곳에서 그토록 많은 청년들을 보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평화센터에서 야마시로 히로지(山城博治) 다음가는 2인자 오시로 사또루가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 다른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간추린 것이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지사선거를 통해 기지 반대운동을 와해하고자 했다. 그들이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면 그 당선자가 공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허가를 내주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7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제 일본정부는 2월에 있을 현(縣) 주민투표에서 우리를 꺾고 싶어한다. 그들이 현재 공사현장에서 하고 있는 일은 그들이 볼 때 현의 허가가 필요없는 일이다. 실제로는 현의 협조가 있어야만 추진 가능한 일들이 아직 많이 있다. 그 지역에 흙을 매립하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주변 제방의 높이가 흙을 담아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높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허가 없이 진행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현이 류우뀨우(琉球)시멘트 부지에서 흙을 담아오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다른 장소에서 흙을 담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른 장소의 흙 대부분이 오끼나와 적토(赤土)이며 그 흙을 바다에 매립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들은 오끼나와 적토를 반도의 헤노꼬 쪽 제방에 둘러싸인 작은 지역(전체 매립 공간의 4%)에 매립하고 있다. 오오우라(大浦)만 쪽에는 아직 제방이 없고,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제방을 건립하려는 실행 가능한 계획도 없다. 잠함(潛函, 속이 텅 빈 거대한 콘크리트 블록) 하나를 건립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대부분의 해저면 탄성이 마요네즈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폐기되었다. 그러나 바닥이 단단한 반도의 헤노꼬 쪽의 이 작은 지역을 매립함으로써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이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라고 있다.
배 한대당 트럭 약 200대 분량의 매립토가 실린다. 덤프트럭 수송단을 거느리고 하루에 배 한대분을 해당 지역에 내린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매립에 5년이나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오우라만 쪽에 매립을 시작하려면 먼저 그곳에 제방을 건설해야 하고, 그 제방을 건설하려면 먼저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곳의 해저면 대부분이 40미터 정도의 연니 층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그들의 계획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해저면을 견고하게 다지는 데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사장 입구에서 만난 한 인물은 해저면에 구멍을 뚫은 후 각각의 구멍에 모래를 채우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해저면이 연니인 지역이라면 이 얘기는 거대한 콘크리트 관들을 바닥에 내려 보낸 다음 그 관들이 가라앉을 때 준설기의 버킷(bucket)으로 내부를 퍼내다가 마침내 무언가 단단한 것에 닿으면 빈 관들에 모래를 쏟아붓는 작업을 의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인물은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2만개의 구멍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애초의 업무 계획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방위국은 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도 않았다. 여태 해저면을 뚫으며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해결책을 발견하기는커녕 아직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은퇴한 기술자인 오꾸마 마사노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방위국이 분쇄된 바위라고 주장하는 것의 상당량이 사실은 적토라는 것이다. 분쇄된 바위나 심지어 모래조차도 곧바로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적토는 분해되어 바닥에 도달할 경우에는 스펀지 덩어리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물을 흐리게 만든다. 적토는 해양 생명체에 커다란 해를 끼치므로 오끼나와에는 적토가 바닷물에 유입되는 것을 금지하는 엄격한 법이 있다. 오꾸마는 이외에도 이 지역 하부에 활성단층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판단할 테스트를 시작하기 위해 몇명의 지진학자를 부를 계획이라고 알려주었다.
8일 토요일에는 덤프트럭이 공사장에 진입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12일 수요일. 오전 9시에 그곳의 전세버스는 여느 때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이야기(이 버스들에는 마이크가 구비되어 있다)와 웃음과 노래 소리로 흘러넘쳤다. (사람들 얘기로는 우찌나아구찌〔오끼나와어〕는 거의 사어가 되었다지만, 언제나 가장 커다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우찌나아구찌로 하는 농담이다.) 수요 버스 운행을 정기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히가 씨는 그 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분노를 쏟아낸 후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본인이기를 포기했다. 나는 사임한다. 나는 우찌나안쭈(우찌나아구찌로 ‘오끼나와 사람’이라는 뜻—옮긴이)”라고 공언했다.
치넨 씨(그는 이 버스를 700회 넘게 탔다고 주장하는데, 항상 맨 뒷좌석에 앉는 놀라운 이야기꾼으로 버스를 자주 타는 사람들은 그의 랩을 ‘치넨-가락’이라고 부른다)는 어째서 우리가 낙담해서는 안 되며 어떻게 낙담하지 않을지에 대해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타마끼 데니(玉城デニ—)가 당선되는 데 쏟아부었고 타마끼가 큰 표 차이로 이겼는데도, 그들은 우리를 그냥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위협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쓰러질 때까지 싸움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나는 이길 작정으로 이 싸움에 나선 것이다. 우리는 주민투표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주민 가운데 70~80퍼센트가 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것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되어간다고 해도 기지를 완성시키는 데 향후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14일은 진짜 싸움이 시작되는 날이다!(그가 한 이 마지막 발언에 커다란 박수가 쏟아졌다.)
정문에서 아까미네 세이껜(赤嶺政賢, 일본공산당의 오끼나와 지부장이자 오끼나와에서 선출된 중의원)은 지금까지 중립을 선언했던 의원들이 정부의 완고함과 (적토를 사용하는 행위를 포함한) 불법행위를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이날 정문에서 있었던 큰 행사는 한동안 입원했던 야마시로 히로지가 귀환한 일이었다(전언에 의하면 입원 이유는 부정맥이었다. 친구들이 그에게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타마끼 지사가 방위국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다 쓰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지사는 키따우에다(쓰요시) 씨의 말을 들어야한다!”(키따우에다는 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또다른 퇴직 엔지니어다.) 야마시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 추정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애초의 추정 비용은 2310억 엔이었는데, 현재는 2.5조 엔으로 열배나 증가했다(이때 청중 가운데 한 여성이 “열두배! 열두배!”라고 소리쳤다). 추산에 따르면 증가치의 절반은 보안조치에 따른 것이다(수백명의 시위진압 경찰병력이 병영이 아닌 헤노꼬 근처의 값비싼 리조트 호텔에 주둔하고 있다).
12일 수요일에 통상적인 덤프트럭 수송단 세 부대가 공사장까지 들어갔으나, 시위진압 경찰이 입구의 연좌농성 시위대를 끌어내느라 20분에서 25분가량 지연된 다음이었다.
14일 금요일—방위국이 실제로 매립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한 바로 그날—현(縣) 청사 앞 버스 정류장에 당도해보니 사람들이 오전 9시 버스에 탑승하려고 줄을 서 있었고 버스는 금세 다 찼다. 결국 54명이 좌석을 배정받았고 십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뒤에 남았는데, 마을의 다른 쪽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도 십여명이 더 있었다(이들 중 일부는 아마도 자기 차를 타고 헤노꼬에 도착했을 것이다).
버스에는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다수 있었고 여느 때처럼 그들이 먼저 마이크를 넘겨받아 자기소개를 했는데 늘 그렇듯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연좌농성이 벌어지는 공사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천명가량이 그 앞에 앉아 있거나 길 건너편에 서 있었다. 이날은 방위국이 수송차량단을 파견하지 않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작고한 전(前) 오끼나와 지사 오나가 타께시(翁長雄志)의 부인이 소개되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녀가 연좌농성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그렇듯이 참여 인원이 많고 주로 지도부 인사들이 연설할 때면, 버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연설할 때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그러나 트럭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1950~60년대 오끼나와 반환운동 시절의 운동가를 부르기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한번 이상이었다. 야마또 사람들(본토 일본인—옮긴이)은 옛날 방식—“우리에게 오끼나와를 돌려달라”(沖縄を返せ)—으로 불렀고, 우찌나안쭈들은 약간 변형된 방식—“오끼나와를 다시 오끼나와에 돌려주라”(沖縄へ返せ)—으로 불렀다.
잠시 후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공사장 입구에서 캠프 슈와브(Camp Schwab) 정문으로 이동해 그곳에 머물렀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으므로 이는 사실상 정문이 봉쇄되었음을 의미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사 관련 차량만 막고 개인 차량, 심지어 군용 트럭도 통과시키는 것이 시위의 규칙이다. 운동 지도부 일부는 이 규칙을 지키려 했고, 일반 참여자 일부는 지키지 않으려 했다. 지도부가 사람들에게 출입하는 차량들을 위한 통로를 내어줄 것을 천천히, 그리고 온건하게 요청했다. 기지 안에 서 있던 소규모 시위 진압 경찰부대가 다가와 황색 경계선 저편에 서서 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지만 두 사람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보다 앞으로 나와 있었다. 이 장면을 한동안 지켜본 후, 두명의 시위 진압 경관이 황색 선을 넘어와서 그 두 저항자에게 말로도 하고 슬쩍 밀치기도 하면서 뒤로 물러나게 만들려고 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나중에 그 두 사람은 할 만큼 했다고 판단했는지 뒤로 물러섰다. 잘됐건 잘못됐건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시위 진압 경찰들이 항상 그 정도로 점잖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그러나 연좌농성자들의 비폭력적 행동은 분명히 그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그곳에서 우리는 헤노꼬항(港)의 해변으로 내려갔는데 사람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 집회에 대해서는 별반 전할 내용이 없다. 연설자들은 주로 정당 대표와 선출직 관리였는데 대부분 판에 박힌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런 행사는 세를 과시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연설자들은 각기 열성 회원들로 구성된 조직을 대표했고, 그러한 사실은 연좌농성자들의 용기를 북돋았기 때문이다. 이 일화들로부터 내가 도출한 결론은—이 글 서두에 이미 기술한 바 있지만—오끼나와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으니 단념하라’고 설득하려는 방위국의 전략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협은 맥 빠진 낙담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맹렬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방위국의 전략을 꿰뚫어보았고 그것을 꺾기 위해 무장하고 있다. 버스에 탔던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가 단념하는 날, 그날이 바로 우리가 지는 날이다.”
맺는말
매립이 시작된 지 하루 뒤인 15일에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 협회가 망년회를 열었다. 이런 행사에 많이 가봤는데, 워낙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참석하다보니 논란이 될 만한 주제는 좀체 언급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올해는 예외였다. 어쩌다보니 헤노꼬 얘기가 나왔고, 한번 물꼬가 트이자 모임은 서너 무리로 나뉘어 헤노꼬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분노에 차 있었다.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청년은 자신이 기지에서 근무하지만 타마끼 데니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시위진압 경찰을 감독하는 오끼나와 공안위원회(Okinawa Public Safety Commission)의 수장이었던 나의 이웃은 자신이 수세에 몰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적어도 나의 경험상으로는 이 모든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미국의 어느 현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2
후기 1
이 글이 『아시아퍼시픽저널』에 송고된 다음 날인 12월 22일 아침 오끼나와의 두 지역신문 모두가 1면에 놀라운 뉴스를 게재했다. 해당 작업에 아무런 진척이 없음에 따라 내각의 결정으로 일본정부는 2018년 오오우라만 제방공사 개시를 위해 오끼나와 방위국에 할당되었던 예산이 재무성으로 환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에 더하여 2019년에는 이 용도의 예산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알린 정부 관리는 “2020년 혹은 그후”가 되리라는 사실 외에 현재로선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 말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추가로 2년이 더 연기된다는 의미다. 이 후기를 작성하는 시점인 12월 15일 기준으로 이 소식은 일본 주류언론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으며 영어로는 아예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노련한 정치 관측자는 정부 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알고 싶으면 돈의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예산을 보라.
후기 2
1월 21일 일본 방위성은 또 하나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소식은 다음 날 오끼나와 지역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마침내 방위성이 오오우라만 제방 공사가 예정되어 있던 장소 바로 아래의 토양이 너무 불안정해서(‘마요네즈’ 문제) 공사를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인데, 이는 그들이 완전히 다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오끼나와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안 지는 일년 가까이 되었지만 방위성이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방위성이 어떤 수순을 밟을지에 관해 추측이 난무하다. 해저면을 어떻게든 다져볼 것인가?(‘강화 마요네즈’) 오오우라만을 포기하고 공항을 헤노꼬 갑(岬)의 다른 쪽으로 옮길 것인가?(환경론자들에게는 승리를 뜻하지만, 기지 반대주의자들에게는 패배를 뜻함) 활주로는 포기하고 헬리포트만 몇개 건설할 것인가?(기지 반대운동 측의 부분적 승리) 이 모든 수정안은 지사가 새로운 허가를 내줘야 가능해지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방위성이 모든 계획을 포기할까?(반대운동의 전면적 승리)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또다른 경우는 미국 정부/군대가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일본 측에 헤노꼬는 잊어버리고 다른 곳(예를 들어 큐우슈우)에 기지를 제공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요즘 골치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번역: 이용화(李鏞和)/인천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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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요네즈’라는 분류 표시는 공학용어로 N값이 0에 해당하는 탄성을 가진 토양을 지칭한다. 탄성은 표준 침투 테스트에 따라 결정된다. 이 간단한 테스트는 토양에 구멍을 뚫는 관을 대상 토양의 표면에 수직으로 놓은 채, 그 위로 30인치 높이에서 슬라이드 해머를 떨어뜨린다. N값은 그 관이 12인치 아래로 뚫고 들어가는 데 필요한 타격의 숫자이다. 오오우라만의 일부 지역에서 관측된 N값 0은 타격이 전혀 필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은 그 자체의 무게로 12인치 이상 내려갔다. 따라서 그 토양은 마요네즈 정도의 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잠수해서 내려가 눈으로 본다면 아마 그것을 연니(軟泥), 즉 연한 찰흙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테스트는 오끼나와 방위국이 실시한 것이지, 테스트 대상지역에 접근권이 없는 기지 반대자들이 실시한 것이 아니다.↩
- 뉴욕양키즈의 포수였던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