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두식 『법률가들』, 창비 2018
‘작은’ 이야기들로 복원해낸 해방공간의 법률가들
이소영 李昭永
제주대 사회교육학과 교수postsoyoung@gmail.com
해방 전후 법조계의 풍경을 그렸다 할 때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두 갈래의 서사가 떠오를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변론대에 섰던 ‘반일·민족변호사’ 영웅담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입신양명에만 관심을 둔 비양심적 권력상층부의 표본으로서의 당대 법조인들에 대한 고발서사일 테다.
가인(街人) 김병로로 대표될 민족변호사나 제1세대 법학지식인들의 의의 및 성과를 다룬 전자에 속할 미담들은 원로 법조인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또는 ‘○○법대 ○○년사’ 형식의 교사(敎史)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강우석 검사에서 영화 「변호인」(2013)의 송우석 변호사로 이어지는 정의로운 법조인 상(imagery)의 계보를 형성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이 즉각적으로 예상했을 이 책의 관심대상은 아마도 후자였으리라. 부제인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 의미하는 바를 가늠해보아도 그렇고, 전작인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2009)의 연장선상에서 저자의 집필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때도 그렇다. 실제 저자는 책의 밑거름이 되어준 선행연구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전3권, 민족문제연구소 2009)을 가장 먼저 언급하면서, 따로 인용 표시하지 않은 일제 강점기 판검사들의 기본경력은 대부분 여기에 기반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누가 친일법조인이었고, 누가 아니었나’를 파헤치는 데 주력하진 않는다. 일제 말기 법률가 직역에서—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천황과 제국에 충성을 보이지 않으며 직업 활동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테고, 이를 거부한 이들은 너무 일찍 사법의 무대에서 밀쳐졌다. 그렇기에 해방 직후 법조인들에게 자신의 직업적 에피소드는 감추어야 할 치부였을 것이고, 그나마 좌익에 속한 쪽의 이야기는 공식기록에서 지워졌다. 좌익의 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법조인들은 이후 자기 과거를 함구했을 것이다. 따라서 해방 전후 법조계 이야기는 미담이든 고발이든, 반쪽짜리 기록에 의존했다는 데서 매한가지라는 것이 저자의 전제인 듯하다. 『법률가들』은 그 반쪽짜리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들로 인해, 혹은 그들에 의해 묻힌 이야기들을 당대 수많은 주변인물 군상 속에서 더듬어내고 있다.
이 책은 안동지역 독립운동가 가문 출신으로 1937년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일제 시기 검사로 복무한 김영재로부터 출발하여, 그해 조선인 합격자 17명 가운데 일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저자가 제1법률가군으로 분류한 이들은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를 거쳐 판검사를 지낸 부류로서, 해방 이후 법조계 최상층부를 형성한 사람들이다. 한편 제2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으로, 판검사로 임용된 바 없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 이류 취급을 받았으나 덕분에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에 비해 친일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식민시기 서기 겸 통역생 출신으로 해방 직후 판검사에 임용된 사람들은 제3법률가군으로, 해방 직후 잠깐 존속했던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등 해방 이후 법률가 자격을 갖춘 이들은 제4법률가군으로 분류된다. 책의 전반부는 위의 네 법률가군의 기원과 계보를 추적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후반부는 이들이 해방 이후 민간인학살과 한국전쟁 정국에서 어떤 위치에 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에 할애되어 있다.
그중 흥미롭게 읽힌 대목은 제2법률가군인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의 이야기다. 대한제국시기에 등록한 조선인 변호사와 식민지 조선의 변호사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수행한 사회학자 박천웅 등의 연구와 달리, 저자는 통계자료나 공문기록이 아닌 한 시험 합격자의 인생 회로를 통해 ‘시대 속의 제도’를 의미화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1907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던 허헌의 삶이 그것이다.
저자는 허헌의 직업 활동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지인들의 관계망과 그들이 연루된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다.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이종호와 김립, 한영욱과 ‘금광왕’ 이종만이 등장하고, 윤치호의 일기와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밀청’ 사건과 ‘대동콘체른’의 결성까지 이어진다. 더 거칠게 말하자면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식으로 인물과 인물이, 일화와 일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어느 순간 그 단락의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법제도를 구성하는 기본법제의 계보를 추적하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법과 국가권력이 보여준 얼굴을 묘사해낸 문준영의 『법원과 검찰의 탄생』(역사비평사 2010) 같은 연구물이 보여주는 면밀함과 집중도를 이 책에서 기대하기란 다소 어렵다.
들뢰즈(G. Deleuze)와 과따리(F. Guattari)는 『천 개의 고원』(한국어판 새물결 2001)에서 나무형 글쓰기와 줄기뿌리(리좀)형 글쓰기를 구분한 바 있다. 전자는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하여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는 반면, 후자는 질서의 중심점 없이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접속하며 얽힌 채 큰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법률가들』은 줄기뿌리형으로 집필된 책이다. 그리고 평자는 이것이 흠결이 아닌, 저자가 의도적으로 채택한 서술기법이라 이해했다. 한 시대란 특정 영웅이나 악인이 아닌, 줄기뿌리처럼 얽힌 관계망과 미소한 기억들 안에서 읽어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다소 어지러운 스케치 방식을 택했다고 말이다. 거기서 우리는 흑 또는 백으로 양분화할 수 없는 다양한 명도의 회색‘들’을 감지할 수 있다.
어릴 적 위인전기나 역사동화에서 ‘창을 스치면 단숨에 모두 쓰러졌다’ ‘한획에 열명의 목이 날아갔다’ 같은 문장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모두’와 ‘열명’에게도 각자 사랑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단지 영웅에게 화려한 수사를 덧붙여주기 위해 소리 없이 단칼에 사라졌던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말이다. 역사 속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듣는 것이란, 비유하자면 그 영웅이 휘두른 칼에 목이 베인 이름 없는 이의 집에 찾아가 그의 서랍을 열고, 구석에서 발견해낸 일기장을 꺼내어 읽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사라진 사람, 잊힌 이야기를 찾아 화각을 조금 넓히고 앵글을 살짝 바꾸니 새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605면)고 밝힌 저자의 다음 기획은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하며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