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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이다 이치시 『웹소설의 충격』, 요다 2019

웹소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박인성 朴仁成

문학평론가 clausewiz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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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충격: 인터넷 소설은 어떻게 출판 시장을 정복했는가』(선정우 옮김)는 일본의 웹소설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출판시장의 구조 및 콘텐츠의 빠른 회전, 사용자 중심의 소비패턴 변화 등을 충실히 기록한 보고서다. 이이다 이찌시(飯田一史)는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웹소설의 생태계를 진단하고, 기존 출판업계가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와 함께 웹소설이 서적화되며 종래의 문학출판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현상까지 적극적으로 분석한다. 핵심은 새로운 미디어들이 출판보다 우선하는 시대에 웹소설이 사용자 중심으로 시스템을 갖추는 적극성을 보이며, 빠른 유행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콘텐츠에 대한 객관적 평가 및 반성을 통해서 자체적인 진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저자의 논의를 따른다면, 웹소설은 독자-사용자 지향의 플랫폼과 문학 콘텐츠의 가장 적극적인 결합 방식처럼 보인다. 이야기에 대한 여러 세대 독자의 포괄적인 욕구를 솔직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뒤흔드는 것’은 공통의 수요”(102면)라는 점이나 이야기는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쉬운 것”(109면)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 한국의 출판 종사자들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특히 인터넷 문화를 매개로 하여 작가와 독자 사이에 스키마(schema)의 적극적인 공유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중요하다. 작가가 개인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독자와 인터넷상에서 열심히 소통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즐기고 공감한 문화와 그에 대한 스키마를 적극적으로 소설 내부에 적용하고 독자의 반응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웹소설의 전망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 아니라, 종이책 중심 문학출판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시장을 주도하는 웹소설 생태계에 대하여 “출판업계가 자력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TV나 인터넷의 힘을 더 빌려서라도 부흥시켜야 할 것”(272면)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웹소설을 매개로 다시금 문학출판계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웹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설 콘텐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의 트렌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신규 사업에 대한 비전 및 실패에의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문학출판사 내부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란 난망하며, 기성문학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태도들도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현실적으로 웹소설과 기성문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그리고 문학출판계가 큰 변화를 실제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실상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문학출판 시장의 침체와 무관하게, 웹소설은 자기만의 매체 적응력과 경쟁력을 통해 새로이 뿌리 내린 이야기 시장이자 소비형식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오히려 일본보다 웹소설 시장을 먼저 개척한 한국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웹소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특기할 만한 전망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지금 시점에 한국의 문학출판 현장에 의미를 제공하는 지점은, 문학출판 구조에 대한 내밀한 반성의 차원에서다.

문학출판계의 종사자가 웹소설을 새로운 문학의 미래라고 추어올리든, 어느 때나 존재해온 수준 낮은 대중문학의 변형태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든 웹소설 시장에는 하등의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기존 가치관을 지키고 기존 권위를 통해 신흥세력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거기에서 사고를 멈추고 현실을 부인해도 웹소설과 그 서적화 작품의 기세는 바뀌지 않는다.”(266면)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웹소설은 기성문학을 압도하는 새로운 이야기 콘텐츠다. 무엇보다도 사용자 중심의 이야기 형태와 소재를 보유한다는 점 때문에 매체를 가리지 않고 확장되고 있다. 작년 말 중국의 CLL과 국내의 엔씨소프트가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에 250억원 상당의 거액을 투자할 정도로 최근 들어 웹툰보다 웹소설의 OSMU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는 미디어 관계자들이 늘고 있다. 정반대로 종이책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기성 문학출판 종사자들(작가·편집자·평론가)은 웹소설을 그다지 진지하게 따라 읽지 않을뿐더러, 실시간으로 확장되는 웹소설의 소비 현상을 문학출판 구조 내부에서 참고할 만큼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능동적인 기획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이야기 시장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개척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지닌 상업성과 세속성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웹소설 시장은 단순히 돈이 모인다는 의미에서만 활기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즉각 반영한다는 점에서 웹소설의 이야기성과 그에 대한 소비의 방식은 갈수록 분화되면서 역동성을 확보한다. 웹소설 시장의 유행 중심 소비경향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으나, 웹소설 플랫폼은 그저 시류에 따라가는 것만은 아니며 “가설 검증의 사이클을 고속으로 돌려 학습할 수 있다.”(77면) 비평가의 논평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수많은 실제 반응과 수치화된 데이터를 통해 반성적인 능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웹소설의 반성 능력이야말로 기성 문학출판계가 참고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사람들이 소설에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출판사 직원이나 기성 프로 작가, 문예비평가가 믿어왔던 내용이 실제 독자의 욕망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음을”(49면)을 직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웹소설 플랫폼들의 지나친 ‘효율성 중시’에 대하여 ‘중장기적 시선’을 함께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이책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곧장 웹소설에 진입할 새로운 세대들의 이야기가 가져올 형질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종이책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문예를 조금 더 주시”(272면)하고자 하는 시도다.

웹소설은 기성의 문학출판이 뿌리내리지 못한 웹환경과 플랫폼에 기민하게 적응해왔다. 반면 웹플랫폼에 연재를 시도한 여러 기성작가들이 있었지만 그 소설 형태와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고 시장과 독자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었다. 그처럼 이야기 형식과 성격을 그대로 적용해온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했음에도 기성 문학출판은 적극적인 변화를 고민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연재된 콘텐츠는 곧 종이책으로 나올 것이며, 여전히 종이책 중심의 출판구조는 작가들에게도 심리적 방어막을 구성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웹소설의 약진이 암시하는 것은 현재 문학출판계에 필요한 것은 본질적인 자기소외를 통해서 기성의 구조를 완전히 재구성해야 한다는 예언이다. 이이다 이찌시가 강조하듯 중요한 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웹플랫폼이나 뉴미디어든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문학을 전면적으로 게재하려면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종이책 중심 문학출판 구조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문학은 진정 벌거벗은 상태로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두려움과 함께 어떤 이정표도 없이 새로운 문학 형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지금 현장의 출판관계자들 및 작가들의 총체적인 숙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