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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손미 孫美
1982년 대전 출생.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수상.
sm6986@nate.com
미끄럼틀
좀, 앉을게
구둣발로 들어왔다
차갑지만 둥근
여기에 좀 있을게
네 속에
창백한 애인이 피아노를 친다
양옥집 애 같다
고개 돌리면 입댈 수 있는 거리
어쩌면 이것이 절정일 수 있겠다
우린 몰래 무릎을 열고
긴 관 속을 헤매고 다녔지
조용히 바라보았어
떠다니는 해파리들
망또를 걸치고 뛰어내려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깊은 모래 속으로
만질 때마다 번지는 핏물
여자를 버린 애인과 누우면
미끄러운 것에 눌리는 꿈을 꾼다
몸을 말아넣으면
나는 천천히 굴러떨어져
손잡이도 없는
네 속에
그만 좀, 앉을게
이제
나도 너의 물집인데
플래니모*의 답장
나를 생각하며 검은 것만 먹고 있다는 안부
어제는 싱싱한 연못에 빨려드는 풍선을 보았어
네가 놓친 것들은 거품이 되어
의자에 앉자마자 터져버렸지
축제가 열리면 한번도 오지 않는
내 생일을 찾아 만찬을 열고 싶어
이빨이 길어지는 속도로
분화구를 긁는 것은
너에게 묻는 나의 안부
혹시 찾을 수 있다면
나 좀 가져다줄래?
고리들은 항상 길게 침묵해
어쩌면 네가 동봉한 새 한마리를 발견한지도 모른다
둥글게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겠지
손을 들면
가느다란 실 하나가 잡히다, 놓쳐
아무도 끌어당기지 않는
이, 공중에서
곧 만나겠지 너와 나
어디에도
침강할 곳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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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행성으로, 모성(母星)이 없어 시간도 빛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