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김성중 金成重
1975년 서울 출생.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개그맨』 『국경시장』, 중편소설 『이슬라』 등이 있음.
hippieshow@naver.com
정상인
사년 만에 메일을 받았을 때 주영은 그려려니 했다. 정선배는 육년 전에도, 팔년 전에도, 십이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장황하게 근황을 묻고 그보다 길게 자신이 몰두한 일들을 늘어놓다가 ‘한국에 가면 보자’로 마무리되는 뜬금없는 메일. 이러다 끊어지겠지 싶다가도 그들은 몇년을 주기로 영양가 없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정선배가 우울증 내력을 고백하기도 하고 주영이 해고 직후의 곤궁함을 털어놓은 적도 있지만 서울과 런던이라는 거리 때문에 내밀한 편지가 각자의 일상에 영향을 끼칠 일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연락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메일의 말미에는 예상 밖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배는 아예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갈무리하고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5월 5일에 만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비혼인 그들에게 5월 5일은 어린이날이 아니라 맑스가 태어난 날이기도 했지만, 굳이 그날로 약속을 잡은 모양새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신을 쓰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더니 선호에게서 카톡이 왔다. 같은 소식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어 주영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선배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주영은 선호와 조심스럽게 다시 만나는 중이었다.
퇴근 후에 주영은 책장 앞에 오래 서서 한권의 책을 찾았다.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91년에 초판이 나왔고 95년에 5쇄를 찍었다. 가격은 만 팔천원이고 책등은 3.5센티미터쯤 된다. 얼마나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지 이 책을 꺼내자 옆에 있던 다른 책들이 비명을 질렀다.
내친김에 주영은 한무더기의 책을 더 꺼내어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스무살에 보던 책의 밑줄 친 부분을 마흔 넘어 읽어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건 이십년 전의 나를 만나는 일이구나. 열자리 휴대폰 번호며 책 가두리의 낙서,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글씨가 낯설었다. 얄팍한 개론서를 펼치자 털어내지 못한 지우개 가루가 고스란히 박혀 있기도 했다. 변증법을 설명하는 나선형 계단을 이십년째 감싸고 있던 지우개 가루들은 털어도 잘 털어지지 않았다. 주영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의 몇조각처럼.
“네가 우리 캠에서 마지막이야.”
나경 언니가 어둠 속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어묵탕에 숟가락을 넣다 말고 주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늘부로 깃발 내린다.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거야.”
언니의 표정은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저 전설적인 파마머리는 언어 성폭력을 저지른 토목과 남학우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받아내던 날 기념으로 한 것이다. 생머리에서 굵은 파마머리로 바뀌자 나경 언니의 카리스마는 네배쯤 불어났다.
새내기인 주영은 리얼리즘 문학회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맛보다가 고학번 선배에게 제안을 받았다. 더 집중적으로 유물론을 가르쳐줄 사람이 있는데 만나보겠느냐는 말이었다. 주영은 그러겠다고 했고, 나경 언니의 지도 아래 『철학의 기초이론』과 『경제학의 기초이론』을 비롯해 개론서들을 뗐다. 오늘은 『공산당선언』에 들어간 날이었다. 그런데 저녁 겸 반주를 하는 자리에서 언니가 느닷없이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세미나가 캠에서 하는 마지막 운동이라고,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졸업 즉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처지라고 했다.
주영은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가 되어 보이지 않는 바통을 건네받은 것 같았다. 자기가 이 바통을 집어들 것은 분명한데, 트랙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맑스의 진짜 문장을 본 날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얼마나 선동적인가! ‘잃은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주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끓는 피를 식혀보고자 소주를 마시던 참인데, 언니가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한총련 끝물 세대인 주영은 강력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선배들의 무협지 같은 시절이 막을 내렸고 이 판을 기웃거려봐야 ‘오늘부로 깃발 내린다’ 같은 소리밖에 들을 수 없음을. 마음속에 환멸인지 실망인지 모를 안개가 피어났는데, 주영은 그게 또 싫지 않았다. 그 와중에 캠퍼스를 ‘캠’이라고 줄여 부르는 선배의 말을 새겨들었는데 캠퍼스는 캠, 공산당선언은 공선언, 마르크스는 당연히 맑스. 이렇게 줄임말을 사용하면 뭐랄까, 그 세계를 친근하면서도 전문적으로 대하는 느낌이 든다. 캠퍼스를 캠으로 부르니까 평범한 대학가가 하나의 진지처럼 동그랗게 뭉쳐지는 것 같았다.
“내 말 듣고 있어?”
어느새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온 나경 언니는 딴생각에 빠진 주영의 정신머리를 퉁겨주었다. 주영이 끝내 운동권 꿈나무가 되지 못한 것은 시대 탓이라기보다 옆길로 새도 너무 새는 부족한 집중력 때문일 것이다.
“끝낼 때 끝내더라도 넌 확실히 책임질 거야. 네가 공부할 곳은 이미 알아놨어. 그 전에 나랑 책 한권만 더 보고 그리로 가면 된다.”
‘자꾸 어디를 가라 마라 해……’ 반감을 느끼면서도 주영은 선배들이 가라는데 가지 않은 적이 없다. 얼마 뒤 타 대학에서 하는 외부 세미나에 간 다음에서야 주영은 자신이 이어달리기 주자가 아니라 ‘바통’ 그 자체였다는 것을, 선배들끼리 이야기되어 이 세미나에서 저 세미나로 자신이 인수인계됐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주영은 신촌에 있는 ‘오늘의 책’에서 나경 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자유롭게 둘러봐.”
언니는 서점 안을 익숙하게 오가며 책을 꺼내거나 메모를 했다. 반면 주영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서점 전체에서 가장 쉬운 책을 읽을 사람이 자신인 것 같은데, 심지어 그 책조차 오늘 살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주영은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걸으며 가판대에 놓인 책들을 살펴보았다. 목차부터 무슨 소린지 당최 모르겠다. ‘그러게 『철학용어사전』이라도 사지 그랬어.’ 턱수염과 긴 머리의 혁명가들이 책표지에서 이렇게 말을 거는 듯했다.
나경 언니가 추천해준 책들은 하나같이 긴 주석이 붙어 있거나 ‘더 읽을거리’라는 목록이 달려 있었다. 이런 목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이 가이드북 성격을 띤다는 의미이고, 앞으로 읽을 게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목을 하나 베면 그 자리에서 서너개의 목이 나오는 괴물처럼 배워야 할 책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주영은 왜 그런 책들에 이끌렸을까? 소화가 되지 않는 관념을 집어삼키는 일이 어떻게 기쁨이 되었을까? 사회과학 공부는 이상했다. 아는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공부였으니까.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 것이 구체적으로 늘어나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그럼에도 세계의 진짜배기를 맛본 것 같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리와 심장이 터지지 않은 것은 중간에 비밀 연애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밖에 없는 곳을 혼자 찾아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경 언니가 알려준 회기동의 한 대학 강의실로 향하면서 주영은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고민했다. 인문대 건물을 찾느라 이미 늦었고, 여기서 돌아간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갈등 끝에 찾던 강의실이 나오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안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강의실 의자를 원형으로 배치해 앉아 있었다.
그 모임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주영은 다이어리에 ‘외부 세미나’라고 적었고 구성원들끼리는 ‘원전 읽기’ 혹은 그냥 ‘모임’이라고만 칭했을 뿐 이름조차 없다. 이주일에 한번씩 아무런 친분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정해진 분량의 진도를 나간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읽어와 선배의 발제를 들은 후 토론을 한다. 이따금 허름한 술집에서 뒤풀이를 했고 누군가의 생일 케이크를 자르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생일은 물어도 서로의 연락처는 묻지 않았다. 심지어 정확한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는데 절반 이상이 본명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미나를 이끌어줄 최기진 선배—물론 가명이다—는 첫날이니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밝히자고 했다.
“지금 시대에 맑스는 교양 아닌가요? 저는 교양 삼아 읽으러 나왔어요.”
“저희 총학은 주사파인데 공부를 너무 안 시켜요. 계속 운동을 하려면 이렇게 무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왔습니다.”
“철학 공부를 혼자서 쭉 해왔는데 그동안 관념론만 판 것 같아요. 유물론을 제대로 공부해 균형을 맞추고 싶습니다.”
다들 청산유수다. 반쯤은 거리를 두는 심드렁한 태도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어휘를 골라 말하는 것 같다. 차례가 오자 주영은 심사숙고 끝에 한마디만 했다.
“저는…… 맑스의 문장이 좋아서 왔어요.”
이 무슨 ‘쁘띠’ 같은 개소리란 말인가! ‘있어’ 보이려다 가장 반동적인 동기를 고백하고 만 셈이다. 달리 보면 그 분위기에 가장 편승한 대답이기도 했다.
낯설고 긴장된 첫 모임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을 절반 정도 살펴보면서 시작했다. 이런 책을 두번 만에 끝낸다는 것에 주영은 압박감을 느꼈지만, 나경 언니와 미리 들춰본 덕분에 바보처럼 앉아 있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주영이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은 맑스가 『자본론』 1권을 끝내고 엥겔스에게 편지를 보낸 대목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직 당신 덕분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당신의 자기희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세 책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을 끝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꽉 찬 감사로 당신을 포옹합니다.
두장의 교정지를 동봉합니다.
15파운드는 매우 고맙게 받았습니다.
안녕, 내 사랑하는 친구여!
스무살의 주영은 이런 종류의 편지에 마음이 울컥했다. 서른살에도, 마흔살에도 마찬가지였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미하일 조셴꼬가 첫 연금을 받고 문우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이 가난한 자의 작은 기쁨이 넘치는 글은 언제나 주영의 마음을 강타한다. 아마도 그 액수는 크지 않을 테지만 받은 사람은 그 돈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의 꿈을 꾼다. 엥겔스가 맑스에게 보낸 돈이야말로 『자본론』이 나오는 데 필요한 최소 자본이 아닌가. 돈을 화폐, 자본, 임금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주영에게 ‘15파운드’ 같은 대목은 환산할 수 없는 금화처럼 빛났다.
“그나저나 맑스가 악필이라 취직을 못한 건 너무 재밌지 않아요?”
뒤풀이에서는 가벼운 대화들이 오갔다. 누군가 그 편지에 대해 언급을 하자 평생 맑스에게 헌신한 엥겔스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그러자 ‘정상인’이라는 독특한 가명—본명일 리 없으니까—을 밝힌 사람이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자기의 메모를 읽어주었다.
‘맑스의 생애에서 내 가슴을 울린 것은 위대한 책 한권이 나오기까지 맑스 가족이 겪은 일들이다. 그 가족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어머니는 울면서 남은 아이들과 죽어버리기를 바랐고, 책과 냉소 속으로 도망친 무어인(가족이 붙인 별명)은 동굴 같은 서재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나날이 불어나는 사상, 나날이 불어나는 참고문헌과 자신의 완벽주의와 싸우고 있었다. 엥겔스가 보내주는 몇 파운드가 없었다면 진작 사라지고 말았을 이들의 필사적인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본론』은 맑스 가족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처럼 여겨진다……’
“와, 근사한데요.”
주영은 솔직히 감탄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정에 대한 말이 오가는 동안 분위기가 다소 감상적으로 변했다.
“그들이 말한 것은 혁명이지만 내가 본 것은 우정이에요.”
“맞아요. 『자본론』은 우정의 결과물이에요.”
“『자본론』을 쓰는 동안 맑스가 엥겔스한테 받은 돈, 그 책이 쓰이는 데 들어간 ‘자본’을 생각해보세요. 우정의 자본. 우정이 자본이 되는 주의. 우정의 자본주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에 나오는 인물 같은 말투를 쓴다’라고 주영은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우정의 자본주의’라는 말을 꾹꾹 눌러쓴 다음 동그라미를 두개 쳤다. 기진 선배가 없는 자리에서 모임 사람들은 낭만적인 말들을 연극적인 어조로 떠들어댔다. 그중 대표자랄 수 있는 사람은 정상인이었다. 외모는 평범했지만 입만 열면 비정상적일 만큼 열광적으로 떠들어댔는데, 자신은 이상주의자라는 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면서 몇년 내로 ‘이상주의의 이상주의’를 찾기 위해서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정상인씨’ ‘상인이 형’이라고 부르다가 그냥 선배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우리보다 나이가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주영과 동갑인 선호를 말한다. 선호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반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이 너무 없어 부끄러워서 왔다고 했다. 모임 사람들 중 둘만 새내기였기 때문에 주영은 그와 쉽게 친해졌다. 그래서 맑스 원전을 사러 갈 때도 선호와 함께 갔다.
‘오늘의 책’은 언제 가도 붐비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비어 있지도 않았다. 서너명이 넘는 손님들이 깊이 몰두한 표정으로 책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영은 단호한 걸음걸이로 레닌의 『국가와 혁명』, 칼 뢰비트의 『헤겔에서 니체에로』, 그리고 대망의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을 골랐다. 계산대 앞에 의기양양하게 책들을 내려놓으면서 주영은 자신의 허세를 또렷이 인식했다. 허세의 끝판은 책 포장에 있었다. 이 서점에서 책을 사면 손님의 요구에 따라 표지를 포장해주기도 하는데, 테이프 대신 ‘오늘의 책’이라고 인쇄된 스티커를 사용한다. 주영은 이걸 또 으쓱한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자신이 낯간지러웠지만 뿌듯한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주영과 선호는 두꺼운 책을 품에 안고 까페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엄숙하게 양장으로 된 표지를 넘겼다. 첫 페이지에는 맑스의 초상과 서명이, 두번째 페이지에는 엥겔스의 초상과 서명이 나온다. 엥겔스의 기다란 수염을 들여다보며 주영은 글을 쓸 때마다 수염이 책상에 닿았을 거라고, 그래서 그 끝이 구부러져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문장이 박혀 있었다.
우리의 영원한 벗 박종철 동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스무살이란 가벼운 풍선 같은 것이어서 주영은 무거운 것에만 끌렸다. 두꺼운 책, 묵직한 개념, 무거운 문장들. 주영은 긴장감 속에서 납덩이 같은 그 무게를 간직했다.
방학이 되었다. 즉,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주영은 압구정에 있는 백화점 이벤트 매장에서 와이셔츠를 팔았다. 아홉시간씩 서서 일하니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처음으로 노동자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이론과 생활이 따로 놀지 않는 거야. 판매대 밑에 쭈그려 앉아 종아리를 두드릴 때면 뜬금없이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이런 용어들이 떠올랐다. 의미가 없는데도 용기가 났다.
개장 준비를 서두르는 오전의 백화점은 전쟁터 같았다. 물건을 꺼내고 진열하느라 직원용 복도며 창고가 북새통이 된다. 세팅을 마치면 직원들은 전부 매장 앞에 나와 자세를 똑바로 하고 섰다. 다 같이 인사를 복창하고 마지막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체조 음악이 나오고 모두 거기에 맞춰 체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난감한 것은 표정이다. 국민체조니까 무슨 동작인지는 안다. 하지만 체조를 하면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앞 매장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결국 대체로 표정을 지우는 표정, 즉 무표정을 택하기 마련인데, 모두가 무표정으로 국민체조를 하는 모습은 백화점 조명 아래 너무도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시키니까 한다지만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표정. 그럼에도 체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층마다 담당자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외구나.’
순간 주영의 머리에 망치처럼 내리치는 두 글자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면서 상품을 판매하지만 백화점의 재화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우리의 인건비에 비해 상품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명품 화장품 하나가 나의 한달 인건비와 맞먹는 일은 흔하다. 밤낮으로 일해봤자 내 임금으로는 이 백화점의 작은 물건도 선뜻 살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부자연스러운 체조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상품들로부터, 이 공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주영은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활짝 웃을 뻔했다. 드디어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용어가 자신의 삶과 연결된 순간이었다. ‘소외’를 실감하며 두꺼운 철학책에서 소외되던 기분에서 탈출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영은 모임에 가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 팔을 쭉 뻗었다.
“세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물들의 복합체가 아닌 과정들의 복합체로 파악되어야만 하며 그런 맥락에서 겉보기에는 고정적인 사물들이라고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는 변화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기진 선배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작게 들렸다. 늘상 틀어놓는 라디오에서는 이소라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영의 머릿속에는 맑스와 이소라가 뒤섞이다가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들이 흘러들었다.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모두가 몰두한 공기에서 슬쩍 빠져나오는 느낌, 생각의 수초가 흔들리며 다른 물길을 찾아가는 느낌, 이런 순간은 달콤했고 주영은 이 유혹에 저항해본 적이 없다. ‘허블의 법칙’을 배우던 열일곱 이후로.
고등학교 1학년 지구과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단조로운 목소리와 따뜻한 봄날의 대기, 점심시간 직후인 5교시의 나른함이 합쳐진 어느 순간 주영은 문득 깨달았다. 반 아이들 전체가 졸고 어쩌면 선생님마저 반수면 상태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오직 자신만 또렷한 상태라는 것을. 창문 너머 만개한 목련이 눈에 들어왔는데 단단한 꽃잎은 한장도 떨어져 있지 않아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칠판에 정비례 그래프를 그렸다. 거리와 속도에 관한 허블-슬라이퍼 도표.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는 우주가 끝없이 팽창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선형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거대한 개념에 압도된 주영은 선분의 끝을 타고 자신의 존재를 교실 밖에서, 나라 밖에서, 지구 밖에서, 그러니까 우주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일종의 유체이탈과 같은 그 순간에 상상은 꿀처럼 농밀하게 흘러 일종의 명상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이 장소에 있으면서 다른 세계로 소속되는 느낌이 들 때마다 주영은 항상 허블의 법칙을 떠올린다.
“……이 대목을 어떻게 생각해?”
질문을 받고서야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재빨리 고개를 들었지만 기진 선배의 질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딴생각을 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주영은 반사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라디오 끄고 하면 안 돼요?”
그러자 모두들 책에서 눈을 떼고 주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그만 모른다는 듯이.
선배는 헛기침을 하더니 “소리가 좀 컸나? 줄여야겠다”라고 대답했다. 주영은 석연찮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오기를 부리듯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왜 맨날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를 해요?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를 켜놓는 게 이상하잖아요.”
“도청 때문에 그래.”
기진 선배는 속삭이듯이, 거의 부끄럽다는 듯이 털어놓았다. 순간 외국어를 들은 것처럼 뜻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도청이라고? 우리 같은 잔챙이를 누가 주목한단 말인가? 맑스에 관한 책이 금서에서 풀려난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다. 기진 선배가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닌가 싶을 만큼 주영은 어이가 없었다. 구성원들은 책이나 파고 있고 ‘앎’과 ‘함’ 사이의 거리가 오억광년은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비록 이 책의 표지가 선짓국처럼 빨갛다 해도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책 읽고 토론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대화조차도 도청이 무서워 「싱글벙글쇼」를 틀어놓고 한다는 게 블랙코미디 아닌가.
“정말 이상하지 않아? 도청이라니.”
모임이 끝난 후 주영은 버스를 타러 가면서 선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호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라고 대답해서 코웃음을 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앞서가던 다른 선배가 한마디 거들었다.
“기진 선배는 두번이나 수감됐던 사람이야. 그러니까 몸이 밴 버릇이라고 봐야지.”
“정말요? 선배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소문이 그래. 익숙해져서 그런가 별로 거슬리지도 않던데. 오히려 라디오가 나오니까 강의실 공기가 캐주얼해지잖아.”
‘캐주얼 좋아하시네. 백화점에 틀어놓는 국민체조 음악만큼이나 부조리극 같다구요. 맑스 운운하면서 김건모나 녹색지대 노래를 듣는 게 얼마나 웃기는데요. 부자연스러운 건 말이죠, 수치스러운 거예요……’ 주영은 이런 말을 속으로만 늘어놓았다. 두꺼운 책들에 중독되면 냉소적인 태도라는 부작용을 겪기 마련인데, 지금이 딱 그랬다. 주영은 다른 새들이 떨군 깃털을 주워 꽁지를 장식하는 풋내기였지만 자신의 시니컬함 또한 그 모임 특유의 말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익어갈 무렵 모임은 예기치 않게 깨어졌다. 기진 선배가 검거됐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 때문에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나경 언니에게 이 소식을 들은 주영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직도 사상 때문에 잡혀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게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분간 조용히 지내.”
“기진 선배는 어떤 사람이에요? 선배는 기진 선배를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그 선배에게 학습받은 적이 있어.”
재차 물어보아도 언니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주영은 기진 선배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에 신비화된 기진 선배는 운동권 고위층 이미지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몇주가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주영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자 격주마다 보던 사람들도, 라디오를 틀어놓고 하던 토론도, 연극조의 선문답 같던 뒤풀이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주영이 사회과학 공부를 재개한 것은 그해 11월, 노동자전진대회에서 정상인 선배를 만나면서부터다. 행렬의 바깥에 서 있다가 마주쳤는데, 주영이 반갑게 손을 흔들자 정선배는 선호도 근처에 있다면서 대오에서 찾아냈다. 수많은 깃발과 인파 한가운데서 이들을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 주영에게는 기적처럼 보였다. 헤어지기 전에 그들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만남을 약속했다.
“우리끼리라도 모임을 해볼까?”
셋이 만난 자리에서 정상인 선배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영은 생각해보는 척했지만 자신이 응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원전의 마지막 단원은 여전히 밑줄을 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래서 그 책을 볼 때마다 미완성 원고를 보는 듯 찜찜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회기동에 있는 외대가 아니라 한양대다. 평평한 외대와 달리 언덕이 높고 나무가 울창한 한양대 교정을 올라가면서 주영은 이 모임의 끝은 어디일까 떠올려보았다. 선호가 군대에 입대하면 끝일까? 시작의 날에 마지막 장면부터 헤아려보는 버릇은 나경 언니와의 세미나 때문이지만, 주영에게는 이후 바뀌지 않을 모종의 심리적 전통이 될 것이었다.
“『신좌파의 상상력』.”
“네?”
“이 책으로 하자고. 맑스 원전 끝내고 우리, 68혁명 가자.”
거두절미 본론으로 들어간 정선배가 책 한권을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섯권 중에 맨 위에 있던 책을 내려놓은 것이다. 주영은 재빨리 나머지 책들을 훑어보았다. 뜨로쯔끼, 알뛰쎄르, 그람시, 벤야민, 푸꼬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의 어지러운 자취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정상인 선배가 주도한 세미나는 이해한다기보다 오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선배의 스타일이 그랬다. 우선 많은 책을 사고 본다. 목차와 서문, 1~2장까지는 재빠르게 독파한다. 그리고 우물쭈물 눈뒤짐을 하다가 역자의 말을 대충 읽고 다른 책들의 허들로 넘어갔다. 정선배는 국수를 먹을 때도 국물까지 다 마시는 법이 없는데, 독서습관도 그와 비슷했다.
주영은 ‘세번째 세미나 선배’가 된 정상인 선배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재미를 터득했다. 얇고 넓게, 책의 요점보다 저자가 무심코 썼던 수사여구에 더 많이 밑줄을 치면서 읽는 방식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책을 돌파해나가면서 주요 개념보다는 ‘염세의 가래침’ ‘사변의 거미줄’ 같은 말들을 음미했다. 노트에는 ‘○○의 ○○’로 된 문구들이 넘쳐났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무얼 공부했는지조차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주영은 이주에 한번씩 한양대 언덕을 올라갔는데 캠퍼스 귀퉁이에 앉아 잡담을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잡담은 잡담이되 책을 펼쳐놓고 한다는 것, 그 주의 텍스트를 하나 끼고 있다는 것 때문에 모임은 느슨하게나마 지속력이 있었다. 동아리 일에 바쁜 선호가 빠진 날에는 정선배와 둘이서만 만난 적도 있는데, 이성 간에 그처럼 화학작용이 없기도 드물다 싶을 만큼 편했다. 어떤 의미에서 정선배는 나경 언니보다도 더 ‘언니’ 같았다. 폭넓은 문화와 교양을 자랑하지만 한편으로 연예인 가십도 시시콜콜 꿰고 있는 선배는 주영과 수다코드가 맞았다.
책 읽기 모임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꾸준히 들고 났다. 모두 정상인 선배의 요설에 혹했다가 알맹이 없는 모임에 실망해 빠져나가고는 했다. 결국 붙어 있는 것은 주영과 선호뿐이었다. 그들은 선배 몰래 사귀는 중이었는데, 그렇다고 둘만 쏙 빠져나가는 것은 떳떳지 못한 것 같아 여전히 모임에는 충실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영은 정선배의 진짜 재능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 말로 군사학을 배워 민중을 조직했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선배가 가장 잘 조직하는 것은 2차 술자리, 혹은 2차에서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 구성원이 이탈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일이다.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호령하고 목에 팔을 걸어 기어이 술집 의자에 착석시키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영업사원이 회식자리에서 빛을 발할 재주라 할 수 있는데, 선배가 원하는 진로는 따로 있었다.
“직업으로 원하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 바로 그거지.”
주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회주의자가 될 만큼 그럭저럭 의식화됐다 쳐도 혁명은 어디서 하며 그걸 직업으로 한다고? 대학교 4학년으로 졸업을 몇달 앞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닐 텐데?
“런던으로 유학 갈 거야. 뜨로쯔끼 공부하러.”
한국의 사회주의는 스딸린주의 일색이라 한계를 느낀다며 정선배는 엄숙히 선언했다. 영국도 아니고 콕 집어 ‘런던’이라고 말한 것은 대영도서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유학’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독학을 할 생각이고, 모델은 대영도서관 앞에서 노숙을 하며 스물네살의 나이에 『아웃사이더』를 쓴 콜린 윌슨이다. 맑스와 벤야민이 거쳐간 대영도서관에 앉아 자기만의 책을 쓰는 것이 정선배의 꿈이었다. 선배는 모든 종류의 독학자를 존경했고, 그들의 계보 없는 세계관을 숭배했다.
일년 넘게 지속된 모임에도 마침내 마지막 날이 왔다. 그날은 선배가 방을 빼는 날이었다. 주영과 선호가 가보니 투룸 밖으로 책 기둥 다섯개가 세워져 있었다. 선배는 그 외 묶지 않은 책 더미를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건 뭐든 가져가라고 했다. 가구라고는 행거 하나, 책상 하나, 음료수 냉장고 하나가 전부였는데 냉장고는 코드를 꽂지 않고 비디오테이프를 넣어놓는 용도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용달차를 불러 선배의 고향집으로 책을 실어 보내고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최후의 만찬을 했다. 좀 둔한 선호와 좀 예민한 주영은 각자의 방식으로 선배를 좋아했지만 작별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몰라 서먹했다.
맹렬하게 탕수육을 먹던 선배가 “아얏!” 하고 비명을 질렀다.
“뭐예요?”
“별거 아냐.”
정선배는 고기 조각과 함께 빠진 이빨 하나를 뱉어냈다.
비쩍 마른 선배의 영양상태를 생각하면 밥 먹다 이빨 빠지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빠진 이빨을 남방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치과에 가야 한다고, 이빨이 얼마짜린 줄 아느냐고 잔소리를 퍼부은 다음에야 선배는 우물쭈물 이빨을 휴지에 싸서 안경집에 넣었다.
선배는 빠진 이빨을 해 넣고 출국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 봐. 새 번역으로 이 책이 나왔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정선배는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선배의 손에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이 들려 있었다. 역자가 바뀌고, 표지가 바뀌고, 제목에 ‘카를’이 새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이 책이 서점에 꽂혀 있다는 사실에 주영은 약간 감동했다. 아직도 생명력을 지닌 채 신작 코너에 올라와 있는 이 책을 본 것이 정선배와 재회한 것만큼이나 반갑게 여겨졌다.
첫마디는 자연스러웠는데 그다음부터는 그렇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선호가 도착할 때까지 뻣뻣한 태도로 이미 알고 있는 안부를 나눴다. 편집자로 경력을 쌓아온 주영은 함께 일한 디자이너와 독립해 작은 기획사를 차렸고, 정상인 선배는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몇시간 강의해요?”
“두시간.”
두시간 강의하러 천안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교통비도 안 되는 것 같아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선호가 헐레벌떡 뛰어와 세 사람은 교보문고를 나섰다.
종로 뒷골목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자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파전에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우고 나자 정선배는 고백조로 말했다.
“사실 한국에 들어온 거 이년쯤 된다. 그간 정신이 없어서, 아니 용기가 없어서 연락을 못했지.”
정선배는 털어놓고 나니 후련하다는 듯이 인상을 폈다.
선배는 이십년 세월을 뭉뚱그려 말하고 ‘영국 시절’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영어로 공부하는 데 애를 먹었고, 한국 유학생들과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었다 부수고, 이따금 시티투어 알바를 하면서 그럭저럭 지내왔다는 정도였다. 학위에는 욕심이 없어 석사만 겨우 마쳤고 그다음부터는 도서관에 파묻혔지만 생각보다 손에 쥔 것 없이 세월만 빨리 흘러가버렸다고 했다. 밝지 않은 선배의 표정을 보니 더 자세히 묻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대학 시절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신문 한토막이 말밥에 오르고,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예전 같으면 정세 분석이라고 불렀을 시사 관련 뉴스로 갈아탔다. 대화는 점점 확대되어 멕시코 국경에 진을 치고 있는 중남미 캐러밴, ‘외로운 늑대’라고 불리는 살인자들, ISIS와 테러, 트럼프와 김정은에 대한 중구난방식 토론과 선배의 열광적인 논평이 이어졌다.
이윽고 거대한 주제를 한바탕 돌아보고 난 뒤의 허망함이 그들을 엄습했다. 너무 큰 주제를 떠들고 난 다음에 오는 이상한 공복감 같은 것으로, 대화가 끊어지는 마지막 정거장이기도 했다. 세계는 변함없이 대학살의 아수라장이고 우파 파시스트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변혁의 움직임은 줄어들거나 소멸 직전인데, 그 말을 떠들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 축소되어 있음을 발견할 때의 침묵. 대학 시절부터 그들은 종종 이런 식의 침묵에 잠기곤 했다. 청년기에는 미래에 대한 말들로 이 침묵이 깨어졌지만 소시민이 된 중년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주영은 막걸리를 저으면서 가라앉을 분위기를 바꿀 만한 다른 화제가 없을까 머릿속을 뒤졌다.
“선배, 어렸을 때 보던 『소년중앙』이라는 잡지 생각나요? 기사 때문에 다시 볼 일이 생겼는데 거기에 ‘21세기가 되면 변하는 우리의 생활상’ 이런 특집이 있더라고요. 정말 신기한 것이 거기에 언급된 신기술이 대부분 현실이 됐어요. 달 왕복선 같은 것은 안 됐지만 영상통화 전화기라든가, 워킹보드라든가, 입는 컴퓨터라든가, 아무튼 현실이 된 게 훨씬 많았어요.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영 이상한 거예요. 그 잡지를 보던 꼬마 입장에서 보면 내가 바로 미래인인데, 막상 미래에 와보니 그리 신세계는 아니니까요.”
선호는 말 줄기를 다른 데로 돌렸다.
“주영이 말 들으니까 신자유주의 생각이 나네요. 선배가 제본 떠와서 같이 봤던 인문대 학술세미나 자료집 기억해요? 거기서 예측된 것들이 거의 다, 아니 그 이상으로 실현됐잖아요. 2008년에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나고, 대형 금융사들이 망해 나자빠지고, 기업은 줄도산을 하고 양극화된 세상은 장기불황에 빠지고…… 그때 20:80의 사회 운운했는데 10:90보다 더한 세상이 됐죠. 우리가 공부한 대로의 세상이 왔잖아요. 다 책대로 됐는데, 혁명만 오지 않았어요.”
“달 왕복선처럼. 그렇지?”
선배는 속삭이듯이, 거의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 어조가 들어본 듯하여 주영은 기억을 더듬었다. ‘도청 때문에 그래.’ 문득 기진 선배가 떠올랐다. 맥락은 달랐지만 이상하리만큼 비슷하게 들리는 목소리. 취기 탓인지 세미나를 하던 강의실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 술집에서도 라디오를 틀어놓았기 때문일까.
“난 맑시즘 강의를 다시 듣고 있어. 철학 아카데미에서. 좁은 강의실에 30명쯤 꽉 들어차더라. 그런데 사람들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여기 올 사람들처럼 생겼는지 말이야.”
“‘여기 올 사람들’이 뭔데요?”
“조금 촌스럽고, 조금 고색창연하고, 책과 가깝게 생긴 얼굴들이지 뭐. 늙은 맑스주의자들은 거기 다 모인 것 같더라. 처음에는 많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그게 전부 다일 것 같기도 했어.”
선배는 여전히 그런 데를 다니는구나. 주영은 생각했다. 그러면서 선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들 주식 얘기 안 하고 부동산 얘기 안 해도 되는 게 숨통이 트인다고,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스님이 한명 있는데 수강생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고 했다.
“근데 두번 듣고 더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어.”
“왜요?”
정선배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잇몸이 들여다보이는 미소를 보자 오래전 자취방에서 밥 먹다가 빠진 이빨이 생각났다. 쓸데없는 것들만 떠오르는걸 보니 우리도 늙었구나 싶었다. 미래에 와 있는데, 고작 맑스 책 한권 읽으면서 도청 운운하던 시절에서 훌쩍 떠나왔는데, 그 시절의 지식들은 무해한 것으로 변해 인류가 한때 꾸던 꿈이나 아이디어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데, 여전히 등받이 없는 술집 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
“선배는 참 그대로네요.”
선호가 불쑥 씹어뱉듯이 말했다.
“여전히 맑스 얘기나 하고. 그게 선배의 ‘정상적인’ 상태겠죠.”
시비 거는 것이 분명해서 주영은 깜짝 놀랐다. 선호는 작심한 듯 속내를 쏟아냈다.
“평생 포즈로만 맑스주의자로 살면 뭐해요? 부모님 돈으로 유학 갔다가 여태 직업 한번 갖지 않고 살면서 뭐 그리 세상에 불만이 많아요? 선배가 대영도서관을 산책할 때, 맑스 피터 팬이 되어 네버랜드에서 날아다니고 있을 때, 난 졸업하고 취직하고 학자금 갚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대출받고 빚 갚으면서 바쁘게 지냈어요. 선배한테 메일을 받으면 부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죠. 나도 이 나라 뜨고 싶었어요. 아니, 이 세상을 뜨고 싶은 적도 많았어요. 이십년 만에 나타나 대학 때와 비슷한 말만 지껄이는 걸 보니 되게 좋아 보이네요.”
선호는 공공연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실패한 결혼생활에서 체득한 분노를 엉뚱하게도 선배한테 터뜨리고 있었다. 주영은 그가 화를 내는 대상이 녹록지 않은 자기 인생 자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주영이 하고 싶던 말이기도 했으니까. 선배가 뜨로쯔끼에 반한 것은 ‘영구혁명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구적인 것은 선배의 관념뿐이 아닌가. 관념의 온실 속에서 늙지 않는 피터 팬, 그러나 웬디도 마이클도 존도 네버랜드를 떠나 어른이 된 지 오래였다.
정상인 선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얼마나 통쾌했던가. 그게 왜 통쾌했던가. 우리가 부러워한 것은 피터 팬일 수 있는 그의 계급, 철들지 않고 생존에 내몰리지도 않은 채 혁명을 말할 수 있는 계급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초록색 나뭇잎 옷을 폭로한다고 우리가 나아질 것도 없는데 말이다.
“죄송해요.”
선호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 삶의 울분을 엉뚱한 데 부려놓고 뒤늦게 잘못을 인지한 것이다.
“사는 게 힘들었나봐요. 괜히 선배한테 화풀이를 한 거예요.”
고개를 푹 숙이고 선호는 힘없이 감정의 마개를 막았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그런 말 여러번 들었다. 내 꼴이 그냥 봐도 우습고, 진짜 맑스주의자가 봐도 한심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어.”
정선배는 무력하게, 거의 비겁해 보일 만큼 담담하게 비난을 받아들였다. 그 담담함은 쓰라린 사교술처럼 보였는데, 이런 비난에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가능해진 태도 같았다.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네가 말한 것과도 관련이 있어. 온실이 박살나서 할 수 없이 세상으로 나왔다는 소리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한국에 온 거고.”
개인사는 말하지 않던 선배가 씁쓸하게 털어놓았다. 젊은 시절 이상주의를 좇다가 철이 들면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받는 수순으로 흘러가는 평범한 이야기. 선배가 뜬구름 잡는 동안 비용을 대주던 너그러운 부모도 늙는다. 그게 보이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고 말았다. 영국에서 모은 돈을 탈탈 털어보니 돌침대 하나 살 정도가 되더라고, 돌침대 하나 사들고 천안으로 영영 내려갔다는 말이 이어졌다.
“부탁할 것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 이것도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정선배는 가방에서 한뭉치의 서류봉투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예감이 맞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영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는 출판사가 아니라 기획사를 하는 건데요. 사보 같은 거 만드는 작은 회사예요.”
소용이 없었다. 선배는 제작에 드는 비용은 따로 보내겠다며 천부씩만 찍어달라고 했다. 사실상 자비출판인데, 그래도 네가 제작이며 유통과정은 나보다 잘 알지 않겠느냐며 이십년 세월을 정리하는 형식이 자기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맑스 탄생 200주년의 날에, 주영은 그렇게 한꾸러미의 원고를 받아 왔다.
사무실에 앉아 선배가 맡긴 서류봉투를 열어보니 세뭉치가 나온다. 초벌 번역을 마친 역서 하나, 혁명가들의 메모 모음집 하나(뜨로쯔끼 유서를 인용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가제를 달아놓았다), 자전적인 내용이 분명한 중편소설 하나. 이렇게 세권이다.
원고 더미를 보자 주영은 “오늘부로 깃발 내린다. 네가 우리 캠 마지막이야”라는 나경 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제 캠도 없고 혁명도 없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도 앨범을 내지 않고 정상인 선배는 상인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주영은 또다시 바통을 물려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두꺼운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두꺼운 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 지식이 아닌 감정들. 그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두레, 풀잎, 동녘, 새날, 책갈피, 새물결, 이후…… 그런 출판사에서 펴냈던 오래전 책들을 넘겨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선형 은하는 맹렬한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을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 바꾸닌과 끄로뽀뜨낀, 그 외 전 세기의 혁명가들을 바리케이드에 싣고 저 멀리 블랙홀을 향해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로부터 일년 뒤, 인류는 지구만 한 전파망원경으로 최초의 블랙홀 사진을 찍게 될 것이지만 주영은 아직 그 미래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밖에서 시위대의 노래와 함성이 들려왔다.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종종 듣던 소리지만 정선배의 원고를 보는 도중이라 그런지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생각의 수초가 흔들리면서 주영은 저 함성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시위대의 모습을, 각자의 은하로 떠나는 시위대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주영은 가장 먼 미래로 날아가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아무도 도청할 리 없는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 것만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햇빛 때문이야.’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주영은 창문가로 갔다. 어느새 시위대의 행렬은 사라지고 없었다. 주영은 시위대가 떠난 아스팔트 끝자락을 타월처럼 돌돌 말아 쥐는 상상을 하다가, 이런 상상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고 블라인드를 반쯤 내렸다.
알맞은 그늘 속에서 주영은 ‘이상주의의 이상주의’를 좇던 정상인 선배의 원고를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