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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역사의 망각에 저항하는, 초능력 소년의 독심술

김연수 장편 『원더보이』

 

 

정여울

문학평론가. 저서로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씨네필 다이어리』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등이 있음. suburbs@hanmail.net

 

 

2031개인의 내밀한 기억이 집단의 공식적 기억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록들의 힘이 필요하다. 김연수(衍洙)의 소설은 공적인 역사로 등록되지 못한 개인의 은밀한 기억이 비로소 ‘이야기’라는 영혼의 확성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원더보이』(문학동네 2012)는 단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등에 이어 김연수식 ‘잃어버린 기억의 오디쎄이’의 변곡점을 그려낸다. 역사의 광풍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김연수 소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역사는 기념비적 사건의 한복판에서는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어주지만, 그 광풍이 지나가면 개인을 잔인하게 역사의 울타리 밖으로 추방시킨다. 김연수는 역사의 이름으로 추앙되던 개인이 평범한 일상에서 어떻게 버려지는지, 어떻게 자신의 억압된 기억을 일상의 리듬으로 승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원더보이』는 김연수의 오랜 화두를 보다 쉽고 친밀한 문체로 풀어낸 성장소설이다.

김연수 소설의 기존 인물들과 『원더보이』의 주인공 김정훈의 차이는 바로 빛나는 낙천성이다. 이전 인물들을 사로잡은 정서가 ‘기억과 화해하지 못한 자의 우울’이라면, 역사의 해일 속에서 부모를 잃은 정훈을 사로잡는 정서는 잃어버린 기억보다도 ‘잃어버린 사람들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다 못해 고통에 감염되어버린 어른들과 달리, 정훈은 대책 없는 순수와 세파에 찌들지 않는 열정을 지닌 소년이다. 1984년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정훈은, ‘광주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들을 만나고, 부모를 잃어버린 자신의 아픔을 그들의 아픔에 은유한다. ‘80년대’ 하면 떠오르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은밀하게 서사 속에 스며 있다. 인물들은 큰소리로 역사의 상처를 말하지 않는다. 『원더보이』는 한국전쟁을 사라진 전설처럼 치부하고 분단문제를 귀찮아하는 현대인을 향해, 우리 모두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여전히 역사의 주체임을 담담하게 상기시킨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빛깔과 무늬도 변하지만, 더 빠른 속도로 대중의 욕망과 언어도 바뀐다. 1980년대의 언어로 2000년대의 독자와 만날 수 없기에, 『원더보이』는 좀더 지금-여기의 문화에 밀착된 언어로 과거의 기억을 형상화하며 엄숙한 역사적 기억을 사소한 개인의 경험으로 풀어내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모두가 역사의 상처 따위는 잊고 싶다고 외칠 때도, 작가는 역사라는 시간의 암호를 해독하여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역사라면 이맛살을 찌푸리는 신세대에게 필요한 내러티브가 바로 이렇게 쉽고, 가깝고, 정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원더보이』는 ‘천재의 책읽기’, 즉 “작가가 쓰지 않은 글”, “썼다가 지웠다거나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쓰지 못했다거나, 처음부터 아예 쓰지 않으려고 제외시킨 것들”(234면)까지 읽어야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이후 독심술이라는 초능력이 생긴 정훈. 그러나 이 초인적인 독심술보다 소중한 것은 아버지를 닮아 걸핏하면 눈물 흘리는 능력,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닐까. 세상은 이 소년에게 가혹하다. 아직 어떤 잘못을 할 기회조차 없었던 소년에게, 세상은 끝없이 ‘너는 혼자’라고, 너를 도울 자는 아무도 없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세상에 복수하지 않는다. 공격을 원한으로 변환하지 않는 힘, 증오를 복수로 번역하지 않는 힘, 상처를 분노로 요리하지 않는 힘. 바로 그런 순수가 오히려 어른들에게 역사의 상처를 딛고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선물한다.

네가 있는 곳이 바로 땅끝이라고, 너야말로 천애고아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을 향해, 소년은 속삭인다. 아직 우리에겐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고. 당사자가 죽어버림으로써 영원히 휘발되어버릴 것 같은 기억도, 그의 삶을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타인과 나눌 수 있다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죽은 이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외로워도 혼자가 아님을. 소년은 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립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독심술을 ‘국가의 정보관리기술’이 아닌 ‘고통받는 자들의 치유력’으로 전환시킨다. 누군가 살아온 시간은 덧없이 휘발되지 않는다.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실천 속에서, 시간의 흔적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한 초능력 소년의 기억을 담은 이야기의 캡슐은, 현대인에게 역사는 ‘바로 우리 삶’ 자체라고 속삭인다. 원더보이의 눈에 비친 광주는, 단지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진보를 향한 희망으로 물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