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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성은 姜聖恩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등이 있음. mongsangs@hamnail.net
Ghost
여자가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큰 강이었는데 지금은 온통 하얀 빙판이었다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여자가 얼음물에 옷가지들을 헹구고 있었다 시퍼렇게 부은 손을 간혹 입가에 대고 녹이며 눈보라와 사나운 북풍이 여자의 얼굴을 마구 쓸고 지나갔다 빨래통에 수북이 담긴 옷가지들은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고 이상한 일이네 여자는 생각했지만 너무 추웠다 해가 지기 전에 빨래를 끝내야만 해 서둘러 헹구고 또 방망이질을 했다 쌓아둔 빨래는 그대로 얼었다 저 무거운 얼음들을 들고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여자는 멈췄다 손과 발이 얼어붙어 더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누가 내게 빨래를 시켰지 누가 내게 이 혹한의 날씨에 빨래통을 내밀었지 이 빨래를 다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누가 내게 말했지 여자는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이 입은 낡고 더러운 옷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고개 돌려 마을을 바라봤다 산과 들판 마을까지 모두 내내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그때 멀리서 누가 등불을 들고 빙판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네 한낮인데도 등불이 저렇게 환히 보이다니 등불을 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여자는 한동안 꼼짝도 않고 등불을 바라보았다 등불은 여자를 향해 오고 있었는데 너무 더뎌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손을 흔들려는 순간 여자는 자신이 얼음이 된 것을 알았다 곧 머릿속까지 얼음이 차오를 것 같았다 여자의 눈물이 순식간에 고드름처럼 매달렸다 이 강은 이 빙판은 끝나지 않는 겨울과 빨래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여자는 안간힘을 다해 얼음이 된 몸을 움직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온통 희고 차고 끝나지 않는 이 겨울을 끝낼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녹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