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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문청’의 재발견

손홍규 소설집 『톰은 톰과 잤다』

 

 

이학영 李學榮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물의 에피파니 혹은 심연의 자화상: 한강론」이 있음.

ofyouth@naver.com

 

 

2031손홍규(孫洪奎)의 소설은 인간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악조건 속에서 고투하는 사람들의 처절하고 기구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사실과 환상이 뒤얽혀 직조된 그 참상은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불가피한 삶의 조건과 그것에 도전하고 이겨내려는 의지가 만나서 빚어낸 것이다. 운명을 주관하는 존재를 향한 반항자들의 적의가 도처에서 번득인다. 누군가는 태백산맥에 도전장을 띄우고(「너에게 가는 길」), 누군가는 이무기 사냥꾼이 되고(「이무기 사냥꾼」), 또 누군가는 초월자인 신에게 살의를 품는다(「사람의 신화」). 돌처럼 무거운 운명에 짓눌려 있지만 그것에 항구적으로 반항하는 인간, 멀리 시시포스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부조리의 영웅이 손홍규의 소설세계에서 우점종(優占種)을 차지해왔고, 그들이 내뿜는 단단한 결기와 위태로운 긴장이 그 세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왔다.

세번째 단편집 『톰은 톰과 잤다』(문학과지성사 2012) 역시 자신만의 어둠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얼굴 없는 세계」는 아버지를 잃고 의식분열을 겪는 한 청년을 통해서 비정한 시스템에 책임을 떠넘긴 방관자들의 사회, 즉 ‘얼굴 없는 세계’를 고발한다. 청년의 수중엔 아버지의 유물인 라이터가 놓여 있다. 그것으로 방관자 사회의 어둠에 맞서야 하는 가망 없는 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 운명을 멸시하는 부조리한 영웅의 진정한 후예는 아무래도 1990년대의 문청(文靑)일 것이다. 그들은 “단 한 편의 시를 위해 온 생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불멸의 형식」), 그러니까 ‘내일 없는 창조’에 온전히 투신할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누군가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증오의 기원」은 시인이 되는 것은 우선 증오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증오는 직접적으로는 ‘쁘띠’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기형적인 자본주의가 낳은 새로운 족속”에 대한 거부를 뜻하지만, 그것은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나르씨시즘적인 태도에 대한 경계라는 좀더 보편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증오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두가지 요구를 낳는다. 하나는 적의로 가득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다.

세상의 폭력성을 증언하려는 자는 자신을 압도하는 현실을 상징화할 적절한 언어를 체화하는 동시에 그 현실이 몸속을 통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은 그러한 소설가의 탄생 과정을 번데기에서 나비로 우화(羽化)하는 과정에 빗대어놓았다. 주인공은 국어사전을 한장씩 뜯어먹는 방식으로 언어를 체화하며, “폭력의 오금”과도 같은 학생운동의 현장에 머물면서 폭력적인 현실의 목격자가 된다. 그러한 자발적인 고행을 통해서 비로소 소설가-나비는 태어나고, 텍스트라는 새로운 공화국 위를 날아 자신의 작중인물과 만난다는 점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중요성은 흔히 그 실패가 초래하는 후회와 자책의 경험에 의해서 확인된다. 「내가 잠든 사이」와 「투명인간」에는 그러한 실패의 기록이 담겨 있다. 자신을 찾아온 연인을 매정하게 내쫓은 직후 그녀가 자동차 사고로 죽자 그제야 ‘나’는 그녀의 방문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몰랐음을 깨닫는다. 그가 안면신경 마비로 한쪽 눈이 늘 열린 상태라는 점은 개안(開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보는 눈”이 없다면 사물을 보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맹시(盲視)와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어떤 청춘에게 문학은 사랑의 추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불멸의 형식」의 박형규가 바로 그러한 인물로, 그는 시를 전공한 여교수와의 사랑을 위해 국문과에 왔으며 그녀의 감탄의 대상이 되기 위해 시를 잘 쓰고 싶어한다. 그의 무모하고 치기 어린 행위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 중심에는 사랑이 놓여 있다. 그는 대개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그려보는 지도를 이미 지”닌 것처럼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끝까지 걸어 완성에 이른 한 영웅이다.

『톰은 톰과 잤다』의 청년들에게 문학을 한다는 것은 운명적인 것에 근원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일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삶의 미로에서 자발적으로 길을 잃고, 다시 그 위에 소설의 미로를 겹쳐놓겠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쩐지 나는 기꺼이 미로에서 길을 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무한히 겹쳐진 미로」)라는 문장에서는 문청들의 풋풋하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로를 헤매는 일이 녹록할 리 없으니 그들은 여전히 고단할 것이되 자기 자신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고집스러운 증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