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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재종 高在鍾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시여 무기여』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등이 있음. kojaejong21@hanmail.net
소나무는 푸르다
소나무 한그루 진즉에 있었더니
소나무는 거기 그대로
뜨락에 푸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노래해도 소나무는 거기 그대로다
소나무는 곡선이 생명이매
소나무는 몸을 한번 더 뒤틀었으면,
바래어도 소나무는 거기 푸르다
바람을 빗질하는가, 고요한 소나무
숫눈을 뒤집어쓰는가, 가만한 소나무
홀로 허공 청람을 머리에 인 소나무는
거기 머무는 소이연이랄 것도 없이
소나무는 내가 자꾸 작란하여도
소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없이
소나무는 진즉에
소나무는 지금 거기 그대로 푸른가?
쓸쓸한 인생을 쓰다
매일 하루 분량의 나를 창조한다는 어느 작가처럼
매일 하루 분량의, 핏빛으로 이글거리는 것들이
늦가을 저녁답, 싸늘한 잔광 속의 억새처럼
무장무장 무너져내리는 그 쓸쓸함을 노래하랴
한밤중이건 수업시간이건 가리지 않고 한달에
무려 삼천여건의 문자메시지를 치는 소녀들의 시절에
나는 나를 지우기 위해 글을 쓸까
삼류인생에나 적합한, 삼류소설 같은 게 드러내는
바로 그 오줌색 갱지 빛깔을 닮은 삶의 내력들은
늦가을 강변, 노을녘을 향해 긴 울음의 목을 쳐드는
황소의 바리톤 하나 정도는 건졌으련만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세계 속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매 십분마다 자기를 출몰시키는 소녀들의 시절에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신파극의 독백 같은 것이
더욱 절실해지는 인생의 경우도 있는 법,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고 쓰는 순간
나는 하루 분량의 고독을 창조한 것이려니
밤이 칠흑의 순수한 힘으로, 죽음의 첩자처럼
고양이의 형형한 눈빛을 방사하는 만큼은
꽃 다 졌다고 우는 한 사람의 세월을 몰래 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