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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언희 金彦姬
1953년 진주 출생.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가 있음. pitchblood@hanmail.net
극북(極北) II
소리 없이 번개가 희뜩였다. 장막(帳幕) 속에 누군가가 들어 서 있었
다. 우뚝. 윤곽이 희뜩희뜩 변했다. 말머리를 한 여인. 바람이 제 사
지를 광목처럼 찢었다. 시체를 먹는 추운 숲의 여인. 비살희. 두터운
입술을 말아올리며 검은 말머리가 웃었다. 낙뢰에 지질린 돌덩이들
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비살희. 누군가가 얼린 고기를 쥐여주었다.
차가운 기름에 파묻힌 뻣뻣한 냉육. 섬광으로 불러낸 나는 눈썹도
속눈썹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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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琵薩希. 『베다』 경전에 나오는 악귀로, 산스크리트어 ‘피사치’의 한역. 중음계에서 시체를 먹는 여덟명의 여신을 뜻한다.
보고 싶은 오빠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 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 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가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걸,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