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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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팬데믹 시기는 새로운 의료를 예비하는가

 

 

최은경 崔銀暻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 공저 『감염병과 인문학』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 등이 있음.

qchoiek@gmail.com

 

 

1. 들어가며

 

코로나19의 발발은 그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로 전화되었고 그간 구상으로만 그쳤던 미래를 성큼 다가오게 만들었다. 사상 초유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온라인 개학, 그리고 스마트-역학조사에 이르기까지, 일견 인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신종감염병 자체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1980년대 HIV/AIDS가 등장한 이래, 감염병은 현대 의학이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위기로 늘 거명되었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인력과 생물체의 실시간 이동 강도가 늘어나고 메가시티 등 도시 인구의 집적이 전세계적으로 커지면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전염병이 새로운 숙주 환경을 찾아 전파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그간 전례가 된 신종감염병은 그 등장만으로도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신종감염병 중 전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단기간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코로나19가 처음이다. 초연결사회가 된 글로벌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그리고 현재로서는 백신이나 치료제 등 뚜렷한 의학적 대응물질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인류사회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되고 있다.

유명한 저술가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위기에 관하여 인류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1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 강화 사이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선택이다. 누가 어떤 방식의 선택을 할 것인지는 아직 알기 어려우나, 팬데믹하의 일상이든 향후 전망이든 ‘선택의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평화 상태에서 늘 인식의 저편에 머물렀던 분배의 논리와 통제의 논리는 위기 국면에서 전면화된다. 모두가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의 주체로 내몰리거나 호명된다. 팬데믹의 가장 치열한 현장인 의료 현장은, 그 자체로 위기의 대상이거나 구원의 자리이다. 이 흐름은 참여한 의료진의 영웅화(혹은 소진)로도, 또는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호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치료의 일선에 있는 의료진에게는 또다른 긴밀한 고뇌의 순간과 시간이다.

이 글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의료의 시간을 살피고 팬데믹이 호출하는 의료의 형태를 되짚고자 한다. 코로나 사태는 소위 ‘선진의학’의 후발주자로 간주되었던 한국 의료의 위상을 선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구 국가들의 의료의 민낯과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의료가 직면한 과제는 한국이든 서구 국가든 동일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의료자원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 다른 하나는 감시와 개인 자유 제한이라는 문제, 마지막은 의료인에게 부과되는 부담의 문제이다. 이외에도 의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가 있으나, 우선 이 세가지 문제에 초점을 두어 논하고 향후 과제를 고려해보고자 한다.

 

 

2. 의료자원의 분배 결정 문제

 

공중보건 위기는 치료 시스템의 역량과 한계를 노출한다. 평상시에는 의료 시스템에 그렇게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하나의 침상, 한명의 의료진이 중요해진다. 팬데믹 준비(pandemic preparedness)에 관하여 안내하고 있는 WHO(세계보건기구),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 국제사회 지침은 이러한 상황을 가정하여 팬데믹 상황에서 운용할 수 있는 계획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고, 팬데믹 대비를 위한 역량 강화 및 주요사항 점검을 미리 준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매번 팬데믹의 규모와 전파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고 치료 기간 등 신종감염병 관련 정보도 희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원이 미리 필요한지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기존의 병·의원 자원을 활용하되 팬데믹 상황에 맞춰 물량과 인력이 충분히 가용 가능하도록 전환하고 경증·중증 환자 분류에 맞추어 시스템을 재배치하는 것이 치료자원 분배의 요체이다. 그러나 병·의원 자원 준비가 충분하더라도, 팬데믹 규모에 따라 희소한 자원의 분배를 최전방에서 결정해야 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충분하지 않은 침상과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누구를 치료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한국에서는 초기 대구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확산 초기 무렵 환자들이 몰렸을 때 대구시의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은 부족했다. 확진자 중 최대 2300명까지 집에 머문 적이 있었고 전체 사망자 중 23퍼센트가 입원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2 2월 말 대구시의사회의 호출에 대구로 달려온 자원봉사자 의료진이 아니었다면 환자 폭증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팬데믹이 대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번졌다면 자원봉사 운영 여력은 금방 한계에 달했을 수 있다. 또는 중증질환을 동반하지 않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상황이어서 사망률이 낮아 의료자원의 비상적 운용이 가능했을 수 있다.3 아직 팬데믹이 종식된 상황이 아니며 언제든 제2차, 제3차 유행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원 역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구가 역량 한계를 노출할 뻔했으나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사례라면 이딸리아와 뉴욕의 경우 자원의 한계로 인한 임상적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딸리아의 경우 급박한 환자 급증이 발생하자 중환자의학회에서 ‘사회적 유용성’을 기준으로 환자를 분류해 받을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4 이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재난적 상황에서는 공리주의에 입각해 기대 여명이 높은 이, 동반질환이 없는 이에게 우선적으로 응급의료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뉴욕의 경우 일부 병원에서 두명의 환자에게 한개의 호흡기를 사용하는 방침을 세웠는데, 이는 일부 환자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한 조치였다.5 충분히 전량 검사를 수행하기보다는 심각한 증상을 가진 일부에게만 검사를 수행하는 영국, 미국 등의 조처 역시 검사 후 치료자원 운용 부족에서 비롯된 한계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부족한 의료자원은 정책 당국과 의료진들에게 고도의 도덕적인 고려와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누구를 살리고 살리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운데 ‘모든 이를 살릴 수 있도록’ 기획된 근대적 생명정치는 그 작동을 한시적으로 멈춘다. ‘먼저 도착한 이들에게 먼저 의료자원을 분배한다’는 일반적인 의료자원 분배 원칙은 오히려 비윤리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원칙이 유용한가? 외국의 의료윤리학자들은 공리주의를 원칙으로 삼되 의료진 우선 분배, 회복 가능성에 따른 우선 분배, 필요한 경우 동의 없는 연명치료 중단, 유사한 예후를 보이는 경우 제비뽑기로 순서 정하기 등 재난 상황에 적절한 의료자원 분배 원칙을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6 이러한 원칙에 의거하면, 고령이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는 의료자원 분배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차별로 이어지기 쉽다. 의료자원 분배 원칙이 공개적으로, 공정하게 결정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윤리학자들의 지적은 충분할까?7 장애인 단체들은 자신들이 의료자원 분배 결정에서 소외될 것에 대한 우려를 이미 천명하고 있다.8

국내에서는 어떠한 원칙이 도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마스크 분배를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국내에서 자원 분배의 원칙은 주민등록번호에 기반한 평등주의적 원칙에 가깝다. 일견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대책으로 평가받으나 마스크 접근이 어려운 중증질환자 등 취약계층, 외국인 근로자들은 아직 이러한 평등주의적 분배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회적 ‘비시민’에게는 마스크를 분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평등주의적 분배라고 보기는 어렵다. 평등주의적 분배 자체가 공정한 분배냐는 질문 역시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평등주의적 분배는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집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의료진이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서비스직 등 마스크를 통한 보호가 필요한 집단 역시 획일화된 공급 대상으로 간주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불공평한 분배가 발생할 수 있다.

평등주의적 분배와 다른 원칙으로 사회에 가장 유용한 계층에 분배하는 공리주의적 분배, 약자에게 제일 먼저 분배하는 약자우선주의적 원칙 등이 있을 수 있다. 공리주의적 원칙은 평상시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으나 전염병 유행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 긴요하게 고려되는 원칙이다. 의료진 우선으로 의료자원을 분배하거나 젊은 연령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약자우선주의 원칙에는 중증환자 우선 원칙, 적은 나이 우선 원칙 등이 있을 수 있다. 모두 공정이라는 가치가 어떤 원칙을 통해 가장 잘 구현될지를 고려하는 것들이다. 마스크를 예로 들면 영·유아나 소아,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먼저 분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위기 상황의 의료자원 분배는 의료진이나 정책결정집단 등 일부 의료제공집단의 몫이 아니다. 어떤 방식의 자원 분배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는 한 사회의 가치이자 구성원들을 대우하는 방식에 따라 판단되며, 구성원들의 참여와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원 분배의 결정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사회적 기능이며, 서로의 돌봄을 예비하고 나누는 장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 방식이 절대적인 원칙일 수는 없으며 구성원들의 다양한 가치관이 경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숙고 과정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각자의 숙고와 고려, 돌봄의 자세가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3. 감시와 개인의 자유 제한

 

코로나19 사태는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 록다운(lockdown), 전방위 감시 등 그간의 공중보건 개입 중 가장 높은 수위를 요구하고 있다. 사스나 신종인플루엔자, 에볼라 때에도 일부 격리와 거리두기가 이루어졌으나 이번 사태처럼 전사회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전례 없는 위기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은 전통적인 방식의 강제력 행사보다 기술을 이용한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9 한국의 모델은 검사, 추적, 치료의 세가지 도구를 결합한 모델로서, 전국민 정보가 조회 가능한 보건의료행정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며, 유전자 PCR 검사, 인식 기술, 경로 추적, 데이터베이스 축적 분석 등 첨단 테크놀로지를 결합한다. 이러한 실시간 감시(real-time surveillance) 시스템은 한국의 코로나19 감염자 추이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기존 전통적인 록다운과 여행 제한, 이동 제한만큼의 자유권 제한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미시적으로 바이러스와 인체 움직임을 추적하고 격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한국 모델은 록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일부의 각광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다른 나라, 심지어 싱가포르보다 더 과도한 정보를 수집하고 연령과 성별, 분 단위 이동 등 자세한 정보를 일반인들에게 배포한다.10 심지어 이를 이용한 ‘코로나맵’(Coronamap.Site) 같은 지도도 출간되어, 감시에 기반한 전국민의 추적 및 자가격리를 유도한다. 이러한 실시간 신원 및 위치 노출은 노출자와 확진자에 대한 낙인과 사회적 비난, 차별도 동반되어 자체 주의가 요청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지난 3월 9일 “확진 환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며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별로 방문 장소만을 공개”할 것, “확진환자가 거쳐 간 시설이나 업소에 대한 보건당국의 소독과 방역 현황을 같이 공개”할 것 등을 권고하였다.11 방역당국도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 거주지 세부 주소 및 직장명은 공개하지 않으며 시간적·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 만큼 확진자와의 접촉이 일어난 장소 및 이동수단을 공개하는 것으로 정보공개 방침을 개정한 상황이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별로 공개되는 확진자 정보 수위와 배포 범위가 달라 추가적인 피해가 여전히 우려된다.13 감염자 방문 장소 회피가 과학적으로 방역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방문 장소 공개는 진단 전 노출자의 자각에만 도움될 뿐, 노출자들뿐 아니라 해당 장소에 대한 낙인을 남기며 그 효과도 불분명하다.

외국에서는 한국 모델에 대해 프라이버시 관념이 미약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조처라는 시각이 많다.14 이러한 프라이버시 희생 모델을 서구 국가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15 그러나 한국이 유교국가이고 아시아 문화권이어서 프라이버시 관념이 미약하다는 외국의 인용은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해외 일부 언론은 ‘78.5%의 응답자가 전국 유행을 예방하는 데 도울 수 있다면 사생활권 보호는 희생해도 된다고 응답했다’라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연구조사를 인용한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무리한 방역 대책의 결과는 사회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진술에 44.3%가 동의한 점은 다루지 않는다.16 한국의 디지털 기술 수용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으나 필요 이상으로 이루어지는 ‘빅브라더’의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만약 효과도 없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그럴지는 의문이다. 이렇듯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는 성공적인 방역을 수행 중인 한국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서구에서도 프라이버시 침해적 기술을 받아들여서라도 록다운을 풀어야 한다는 논의가 많다. 방역 기술의 도입 방향은 국가별 문화권별로 다를 수 있어도 팬데믹 시기에는 유사한 방향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국가들이 취하는 록다운과 여행·이동 제한이 전통적인 자유권 행사 제한을 가하는 방식이라면 실시간 감시 및 미시적 추적, 격리 방식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방식이다. 이 중 어떤 것이 더 위험하고 개인에게 더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가를 손쉽게 판단하기란 어렵다. 이동권만큼 프라이버시권도 기본적인 개인의 행복추구권, 인격 구현의 권리에 해당된다. 더욱 어려운 점은 프라이버시권이 점점 더 기술 의존적 권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빅데이터, 웹2.0 기술 등의 발전은 데이터 수집력과 함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반면 개인정보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이 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19는 향후 기술 발전과 데이터 수집이 중앙집약화될 길을 열 가능성이 크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역학조사 절차를 자동화하는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을 정식 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17 이는 대규모 도시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스마트시티 연구개발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으로서, 과거에는 카드사, 통신사에 유선이나 공문을 통해 일일이 자료를 요청했다면 이제는 빅데이터 방식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자료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개인정보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나, 제3자 감시기구 설치 등 실질적 방법에 관해서는 아직 별다른 언급이 없다. 록다운 등 전통적인 자유권 제한은 한시적인 방식인 데에 반해, 기술 발전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영구적인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

 

 

4. ‘치료의 의무’와 ‘의료인 돌봄’ 사이에서

 

팬데믹은 전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여기에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주체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일선의 의료진들이다. 아무리 좋은 방역 계획을 갖추더라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충분치 않다면 팬데믹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치료는 궁극적으로 신종감염병을 감당할 수 있는 버팀목이다.

코로나의 시간은 일선 의료진들에게도 불균등한 시간이 된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웅으로 조명받으나 이들에게 그만큼의 대우와 보상이 주어지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서는 초기 대구 상황에서 의료진을 대상으로 숙소 제공과 수당 등에서 문제가 불거졌다.18 전세계적으로 의료진이 처한 상황은 더 열악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은 엄청나게 늘어나나 감염 확률은 비의료인에 비해 훨씬 높다. 보호장구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으며, 매일 죽음을 목격하고 누구를 살릴지 고민해야 하는 탓에 감정적 소진에 쉽게 노출된다.19 이딸리아 북부 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 2명이 두려움과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우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육체적 고통, 불시에 차출되는 업무, (대구와 같은 지방에서는) 치료가 어려웠던 현실 등을 경험하며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는 의료진이 많다.20

신종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진의 희생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진료에 참여할지부터 어떤 환자를 선택하느냐 등까지 의료진들은 쉽지 않은 선택에 내몰린다. 역사적으로도 의료진의 ‘치료의 의무’(duty to care)가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1665년 런던 페스트 유행, 1773년 필라델피아 황열병 현장, 1918~19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치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사라진 예는 곧잘 만날 수 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해외 보건의료인 중 50퍼센트만이 심각한 팬데믹 상황에서 출근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치명적인 질환인 경우 직장을 떠날 것이라는 응답도 19퍼센트에 달했다.21 코로나 상황에서도 치료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무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22

의료진에게 치료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근거는 주로 세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23 하나는 공중보건적 필요가 커질수록 그에 걸맞은 책무도 커지며, 마침 진료에 대한 의료진의 역량이 일반 대중보다 낫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의료진은 그 위험을 이미 가정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직의 독점적인 지위를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들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일종의 사회계약적 근거이다. 그러나 이들 중 사회계약적 근거 외에는 치명적인 생명 위협 상황에서까지 의료진에게 치료의 의무를 부과할 논리는 희소하다. 특히 직업 선택 시 이미 동의했던 사안이라는 논리는 우리가 직업 선택 시 해당 직업의 내용 전부를 미리 예견하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합당한 논증이 되기 어렵다. 사회계약적 근거조차도 의료진에게 팬데믹 상황 치료의 의무를 부과하는 절대적인 명령이 되지는 못한다. 최소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숙련된 의료진이 받아들일 만한 위험으로 완화될 수 있도록 조처되어야 하며, 이 역시 사회적 명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 많은 의료진들이 치료의 의무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균등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의료진의 가족 돌봄은 시급하나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24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아이를 돌보는 의료진의 경우 격리 의무와 가족 돌봄 의무 둘 다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고충을 겪는다. 돌봄휴가 등은 있으나 무급이며 팬데믹 시기에 유용한 별도의 가족 돌봄 제도는 없다. 의료진 소진 또한 긴급한 문제이다. 이는 의료의 질, 환자 안전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며,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욱더 치명적일 수 있다. 의료진 소진은 단순히 업무량의 문제로만 환원되기 어려우며,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적절한 보상과 의료진 스스로를 보호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 및 권한의 요소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팬데믹 시기 의료진에게 몰리는 과도한 부담은 두가지 면에서 아이러니하게 그동안 의료직에 부여해왔던 엄격하고도 독점적인 권한과 부담을 완화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는 그동안 훈련의 대상이 되었던 견습생들의 투입이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과대학 학생들을 투입한 미국 뉴욕주의 조치가 대표적이다.25 이러한 팬데믹 상황하의 비상조치는 그간 국내 의료계에서 강하게 반대해왔던 의사 보조인력 등을 양성화시킬 가능성을 키운다. 다른 하나는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최첨단 기술과 결합된 원격의료 도입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26 원격의료는 중국, 일본, 미국에서는 이미 코로나 위기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의료의 위기는 전통적 방식의 의료, 의료전문직 제도의 위기인 동시에 어쩌면 새로운 경로로 이어질 수 있다.

 

 

5. 나가며

 

코로나 시기 의료는 미증유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의료는 전통적인 의사-환자 간의 영역에서 국가, 병원, 보험, 전문직 등 다양한 요소가 집결·개입되는 영역으로 변모하였다.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면서 의료는 어떠한 변화를 거칠까? 방역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면서 의료는 이제 필수적인 안보 역량으로, 정부와 사회의 통제가 긴밀히 필요한 분야로 정립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에 의한 계획과 기술에 의한 개입은 더욱더 의료의 주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전문직의 지위 하락, 의료의 ‘인간적인 면’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이미 거대한 첨단기술산업복합체가 되고 있는 21세기 의료의 경향에서 기인한 바도 크나, 코로나 사태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코로나 시기 병원에 도착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진료를 제공할 것이고, 개인의 자유와 기밀유지가 존중될 것이고, 의사들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회자원으로 대할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현재 의료, 그리고 과학기술이 줄 수 있는 것은 위기에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일 뿐이다.

위기의 시기에 통상 강조되는 것은 ‘대중의 신뢰’에 기반한 ‘책무’이다. 신뢰의 대상이자 상징이 된 의료에 쉽지 않은 책무의 시간인 셈이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 유행 첫 몇개월간 중차대한 위기를 겪고도 회복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전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모델이 되었다. 한국 의료는 이 시기를 잘 통과했지만 이후에도 그러할 수 있을까. 혹은 그 이후 도래할 새로운 의료의 모습에 낯설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낯선 시간에 대한 물음의 무게는 비단 책무를 지닌 의료(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 ‘의료’의 수혜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Yuval Noah Harari, “Yuval Noah Harari: the world after coronavirus,” Financial Times 2020.3.20.
  2. 「대구의 코로나19 상처와 경험, 연대의 기억으로 남을까」, 시사 IN 2020.4.1.
  3. 「한국 코로나19 치사율 세계 최저 수준… 그 이유는?」, TBS 2020.3.11.
  4. SIAARTI, Clinical Ethics Recommendations for the Allocation of Intensive Care Treatments, in Exceptional, Resource-limited Circumstances, 2020.3; Yascha Mounk, “The Extraordinary Decisions Facing Italian Doctors,” The Atlantic 2020.3.11.
  5. Kevin McCoy and Dennis Wagner, “Which coronavirus patients will get life-saving ventilators? Guidelines show how hospitals in NYC, US will decide,” USA Today 2020.4.4.
  6. Ezekiel J. Emanuel et al., “Fair Allocation of Scarce Medical Resources in the Time of Covid-19,”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82 (17), 2020.
  7. Anthony Wrigley, “Coronavirus and triage: a medical ethicist on how hospitals make difficult decisions,” The Conversation 2020.4.1.
  8. American Associ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 Letter to Prohibit Discrimination during Medical Rationing, 2020.4.16.
  9. Michael Ahn, “How South Korea flattened the coronavirus curve with technology,” The Conversation 2020.4.21.
  10. Mark Zastrow, “South Korea is reporting intimate details of COVID-19 cases: has it helped?,” Nature 2020.3.18.
  11.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19 확진자의 과도한 사생활 공개 관련 국가인권위원장 성명」, 2020.3.9.
  12.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접촉자관리단 「확진환자의 이동경로 등 정보공개 안내」, 2020.3.14.
  13. 「‘코로나 주홍글씨’ 지운다… ‘확진자 동선’ 삭제 나선 지자체들」, 뉴스1 2020.4.22.
  14. Mark Zastrow, 앞의 글.
  15. Bruce Klingner, “South Korea Provides Lessons, Good and Bad, on Coronavirus Response,” The Heritage Foundation 2020.3.28.
  16.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코로나19 국민위험인식조사(2차)」, 2020.3.
  17. 「10분내 확진자 동선추적… 외신 50곳이 궁금해한 한국의 역학조사」, 연합뉴스 2020.4.10.
  18. 「“유학생이 상팔자”… 숙소도 안주고 ‘의료진 대구 차출’ 논란」, 국민일보 2020.2.23; 「‘영웅’이랄 땐 언제고… 코로나19 의료진 수당·대우 논란」, 메디파나 2020.4.9.
  19. 「‘누굴 살리느냐’ 묻거든… “모두”를 택할 의료진들」, 한겨레 2020.4.7.
  20. 「‘코로나 사투’ 의료진 비상… “정신 건강 살필 때”」, YTN사이언스 2020.4.22.
  21. Robert Nasha, “Health-care workers in influenza pandemics,” Lancet 370 (9584), 2007, 300면; HL Barr et al., “Ethical planning for an influenza pandemic,” Clinical medicine 8 (1), 2008, 49면.
  22. Sandeep Jauhar, “In a Pandemic, Do Doctors Still Have a Duty to Treat?” The New York Times 2020.4.2.
  23. Chalmers C. Clark, “In harm’s way: AMA physicians and the duty to treat,” Journal of medicine and philosophy 30 (1), 2005, 65~87면.
  24. 「‘코로나와 사투’ 의료진 자녀는 누가 돌볼까」, 연합뉴스 2020.3.21.
  25. 「코로나19 확산되면서 현장 투입되는 ‘의대생’: 이탈리아·영국·미국 등 비상인력 활용… 한국 부정적 분위기」, 데일리메디 2020.3.26.
  26. 「코로나19로 드라이브 걸린 원격의료… 기존 입장 고수하는 醫」, 청년의사 2020.4.23.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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