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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세르히 플로히 『얄타』, 역사비평사 2020

1945년 얄따, 1972년 베이징, 그리고 2019년 판문점

 

 

김학재 金學載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hack7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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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간 러시아 흑해의 휴양지 얄따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가 협상을 벌이는 3국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독일, 이딸리아, 일본과의 전면적 총력전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잠재적 승전국인 세 국가가 2차대전의 전후처리와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위해 ‘외교전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 출간된 『얄타: 8일간의 외교전쟁』(Yalta, 허승철 옮김)의 저자 세르히 플로히(Serhii Plokhy) 하바드대학 석좌교수는 이전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소련의 얄따회담 문서를 입수했다. 그는 지금까지 축적된 많은 지식을 더해 8일간 벌어진 얄따회담의 과정과 결과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사료들을 종합해, 얄따에 대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당시 미국, 영국, 소련 지도자의 입장과 각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냉정하고 상세하게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 먼저 영국 보수당 대표로 1940년 총리의 자리에 오른 윈스턴 처칠의 초점은 전후 유럽의 권력 균형과 통제권에 대한 것이었다. 소련의 스딸린은 45년 초 강력한 대(對)독일 공세의 성공으로 영향력을 키워가며, 전후 회담을 통해 전쟁승리의 보상을 최대한 얻어내려 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 민주당 뉴딜연합을 이끌며 4연임에 성공한 미국의 대통령 로즈벨트는 유엔 설립을 주도해 새로운 평화질서를 수립하고 태평양전쟁에 소련을 참전시키려 했다. 세 정상 중 스딸린과 처칠은 주로 유럽에 초점을 두고 있어 입장 차가 컸지만, 로즈벨트는 더 큰 국제적 기획을 제시하며 이들을 중재하고 최종합의를 추진했다.

긴 역사적 시선에서 볼 때 얄따회담은 영국이 주도하던 19세기 국제질서에서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는 20세기 양극질서로 변화하는 불완전한 이행기의 산물이다. 2차대전 이후 영국 헤게모니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미국과 소련이 새롭게 부상했다. 구시대 초강대국과 새로운 초강대국 둘, 세 국가가 지역강국들인 독일, 이딸리아, 일본의 파시즘과의 전쟁에 승리하여 승전국으로서 세계질서를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3국 정상이 나눈 대화는 적나라하다. 이들은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을 때가 좋았다’며 독일을 3개, 4개, 7개로 분할·해체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스딸린이 ‘어색하고 다루기 힘든 친구’로 여긴 드골의 프랑스를 열강으로 복원시킬지를 상의했다. 며칠 동안 세 정상은 독일, 폴란드, 우끄라이나, 발칸반도, 극동의 전후 질서를 결정하며 각자 원하는 것들을 교환했다. 책의 25장에 묘사된 ‘최후의 만찬’에서 이들은 총선을 앞둔 처칠에게 국가의 리더로서 다양한 어려움에 공감하며 서로 조언하고 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회담을 마무리했다.

얄따에서 한반도 문제는 어떻게 다뤄졌을까. 17장 「극동 기습」에 기술되어 있듯이 미국과 소련이 합의하기로 한 ‘극동 쪽의 거래’ 두가지는 바로 소련의 유엔 창설 참여와 대일전쟁 참전이었다. 미국은 소련이 대일전쟁에 참여하는 댓가로, 사할린 남부와 꾸릴열도, 뤼순항과 “다롄항, 만주철도, 한국에 대한 40년간의 신탁통치”(409면)에 관한 이권을 소련이 갖거나 나눌 것을 제안했다. 얄따에서 한반도 문제는 강대국 간 교환에 있어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주제였다.

3국 최고 지도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운명을 짧은 기간 동안 결정한 만큼, 그 책임에 대한 평가에 지속적인 논쟁이 있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들은 얄따회담을 결국 핵무장과 냉전으로 치닫기 전의 “의미없는 휴전”으로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곤 했다. 하지만 저자는 “비록 여러 오류가 있었지만 유럽 역사상 가장 긴 평화의 확립에 이바지한 성공”으로 평가한다.(41면) 그 이유는 ‘얄따정신’이라고 부를 만한 기회와 계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얄따정신이란 바로 뿌리 깊은 정치적·문화적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대화와 교환을 통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낙관적 인식이었다. 얄따의 성공은 과거의 무력행동, 영향권, 세력균형을 넘어 국제연맹에서 국제연합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평화기획을 추구하고자 하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얄타에서 합의된 것보다 더 나은 합의안을 협상하지 못한 것은 전후 지도자들의 무능”(713면)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유엔을 창설한 후 미국과 소련의 협력의지는 소진되었고, 이들은 적대적인 두개의 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얄따합의는 왜 실패했는가? 우선 이 책은 리더십이 교체되는 것의 위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준다. 1945년 4월 12일 로즈벨트가 별장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의 기획은 흔들렸다.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소련과의 합의나 대화보다 각자의 배타적 영향권 설정을 선호했고, 참모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도 그랬다. 처칠은 7월 5일 총선에서 패배했고, 미국은 7월 16일 핵실험을 했다.

이렇게 얄따합의를 이끌어낸 리더십이 교체되자 얄따가 넘어서려고 했던 구조적인 차이가 다시 강화되었다. 저자 역시 얄따가 지정학적 비전, 이념적·문화적 차이를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비록 합의와 대화를 통해 성공적 교환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지속되지 못하면, 국가들 간의 적나라한 영향권 다툼과 경쟁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얄따회담을 마음에 두고 그만한 의지와 비전을 추구했던 리더십은 많지 않다. 다만 베트남전과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악화되던 상황에서 1972년 닉슨이 마오 쩌둥과 회담을 통해 이끌어낸 미중 데땅뜨는 얄따에 견줄 만한 시도였다.

얄따의 성공과 실패는 성공적인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바라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준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 이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2019년 판문점에서 이뤄진 최초의 남·북·미 정상회동 역시 악화일로의 남북,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평화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리더십의 성과였다. 하지만 얄따의 평화가 냉전으로 퇴보했듯이, 동북아에 남아 있는 중층적 냉전구조는 늘 새로운 평화와 협력보다 과거의 갈등으로 회귀하려 한다.

국가 간 갈등과 경쟁을 막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더구나 냉전적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차이를 해소하고 문제를 풀어가려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얄따의 선구적인 성취라 할 만한 역사적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지만, 지정학적 비전과 이념적·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론적 설명과 분석을 제시함에 있어서는 대체로 아쉬움을 남긴다. 리더십의 중요성 못지않게 협상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국내 정치적 조건도 뒷받침되어야 하며, 사회적 수준에서 현실화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간 전쟁과 냉전을 지나 평화로운 질서를 열어내려 했던 오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관계들이 다시 과거로 퇴행하려 하는 지금, 얄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궁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갈등과 차이를 넘어 성공적 평화협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미국과 중국의 최고지도자들, 동북아의 리더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