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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보영 文甫榮
1992년 제주 출생.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음.
openingdoor@korea.ac.kr
모르는 게 있을 땐 공항에 가라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와, 우리 엄마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조퇴를 하고 당장 엄마를 보러 가야 했다. 그래서 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갈 채비를 했다. 왜냐하면 공항에는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고, 거기에 가면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질문은 거기 가서 하라. 우리는 모르는 게 생겼을 때,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대신 공항에 가라고 배웠다. 선생님은 공항 가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공항에 가라. 선생님은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친구들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따라서 내가 공항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은 질문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과 같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며, 엄마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오직 공항 인포메이션 데스크 직원만 알았다. 근 오년간 나는 모르는 게 없었다. 따라서 오년 만에 공항에 가보는 것이었다. 질문할 일이 생긴 아이들이 일년에 한두명씩 학교를 떠나곤 했는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초행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오년 전에는 무슨 일 때문에, 무엇을 물어보기 위해 공항에 갔던가. 그런 건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다. 한번 너무 아프고 난 뒤에는, 아프기 이전 삶은 마치 전생과 같이 느껴졌고, 그건 행복한 일이 벌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오년 전에 너무 행복해서 공항에 갔는지, 너무 불행해서 갔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중요한 건 내가 질문을 하기 위해 공항에 간다는 사실이었으며, 질문 자체는 행복도 고통도 아직은 아닌 상태로, 질문은 차라리 감정이 발견되기 이전 단계와 같았다. 나는 하얀 숲을 지나 공항으로 간다. 눈이 펑펑 내렸다. 뒤돌아보니 희한하게도, 지나온 나의 발자국이 실제 내 발보다 컸다. 발자국도 자라는 걸까. 아니면, 누가 내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덮으며 나를 뒤따라오는 걸까. 내 뒤는 텅 비었다. 그러니 나를 따라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빈 공간이었는데, 빈 공간은 누구보다 발자국이 크다고 어디선가 배웠다. 그런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그저 눈이 내렸다. 나는 걸었다. 가는 길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십년이 넘도록 학교에서 배운 것이 오로지 ‘공항 가는 길’이었으므로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잘 상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모르는 게 생기면 공항에 가라. 그것이 우리가 배운 전부였고, 선생님이 그 이상을 가르치려 했다면 그건 직권 남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눈 내리는 하얀 숲을 지나 공항으로 가고 있다. 아픈 엄마를 찾기 위해서. 그런데 가방은 너무 무겁고 그래서 속도를 내기 힘들고, 그런데 오래전에도 엄마가 아팠던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급해진다. 나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걸었다.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저 멀리, 언젠가 한번 와보았던, 그래서 익숙한, 그러나 너무 오래전이어서 낯선,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냉담한 회색 건물. 공항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공항은 머무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향했다. 직원이 유리창 너머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그녀에게 뭔가를 물었고, 그 소리는 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알아들었으며, 그녀는 왼쪽 코너를 돌면 복도 끝에 청소 도구함이 나오니 거기서 쉬면 된다고 말했다. 내 질문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공항에 온 이유는 아픈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묻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내 입에서 흘러나온 질문은 영 다른 것이었다. 학교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 그런데 그 질문을 던지자 나의 내면은 모든 임무를 마친 것처럼 평온해졌다. 그녀는 다시 미소 지었고, 자기가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으며 내가 쉴 방을 찾고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학교 가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설명을 열심히 새겨들었다. 그녀는 다시 미소 지었고, 언젠가 쉬고 싶다면, 아까 말한, 복도 끝 청소 도구함을 이용해도 좋다고, 거기에는 아무도 오지 않으며, 청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고, 알다시피 청소라는 건 과거의 유산과 같아서 요즘 시대에는 아무도 청소를 안 하지 않느냐며, 쉬고 싶다면 언제든 그 방을 쓰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공항을 떠났다. 나는 다시 하얀 숲 앞에 섰다. 눈이 내렸다. 세상을 재우듯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커다란 이불이 내려와 세상을 덮는 것처럼. 엄마는 어디에선가 아파하고 있다. 나의 내면은 고요하다. 나의 불안은 조금씩 자라 나의 선생님이 된다.
소망
아빠와 나룻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우리 뒤로는 다른 무리가 노를 젓고 있었다. 강은 기역 자로 꺾여 있었는데, 뒤에는 악어가 산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로부터 떨어져나간 무리가 (혹은 우리가 무리에서 떨어져나간 것이거나) 악어가 사는 쪽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아빠와 나는 그들을 향해 어서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악어가 소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랬다. 우리는 그건 미신일 뿐이며, 더 나쁜 건 그건 비유이기 때문에 실제 악어 앞에서는 무력하며, 만에 하나 악어가 행운을 가져다준다 해도 그건 악어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강기슭 따위에서 악어를 바라볼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십분 양보해서, 악어가 정말로 소망 그 자체라 하더라도 소망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소망에게 잡아먹히거나 물어뜯길 거라고, 아빠는 소리쳤다. 나는 그들 무리가 위험에 처할까 몹시 걱정되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걱정과 달리 더욱 사기를 드높이며 악어가 사는 곳으로 노를 저었다. 물살은 넘실거리고, 그들은 우리와 점점 멀어지고, 결국 아빠와 나는 외로이 둘만이 남았다. 아빠는 앞을 보며, 더이상 뒤돌아보지 말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노를 힘껏 저었다. 악어가 소망이라니, 멍청한 자식들… 아빠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좀 특이해서 바닥에 다리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네개 뚫려 있었다. 그래서 그 구멍에 아빠 다리 두개, 내 다리 두개를 끼워 넣고, 노와 함께 다리를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배를 바지처럼 입은 듯이. 실제로 이 마을에서는 배를 탄다,라는 표현보다 배를 입는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우리는 물살에 두 다리를 맡기고 앞으로 향했다. 가끔은 노를 놓아 두 손을 자유롭게 하고, 바닷물에 잠긴 두 다리를 휘젓기도 했다. 그렇다고 배가 앞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 무언가 내 다리를 소름 끼칠 정도로 부드럽게 스치고 갔다. 그것의 움직임은 크림처럼 부드러웠지만 단단하고 강했다. 악어의 등이었다. 악어가 우리에게도 나타났어요!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아빠는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도 나타났단다. 아빠가 말했다. 마침 우리는, 우리를 떠난 무리가 저들끼리 소망을 이룰까 불안한 참이었다.